빨래가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
타카노 후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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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 <하나코>에 1988년 6월부터 1992년 2월까지 연재된 만화다. 이 만화가는 만화가들의 만화가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리보기로 본 몇 컷의 만화는 재밌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줬다. 그리고 모두 읽은 지금은 이 확신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중년의 남자인 내가 공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마무리가 몇 편 보이지만 사랑스럽고 엉뚱발랄한 루키짱을 보면 즐거워진다. 친구인 엣짱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이전 직장의 여성 동료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연재만화란 특징 때문인지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다. 물론 연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루키짱과 엣짱이 같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고, 여성의 일상을 간결하지만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최근에 여성의 일상을 다룬 만화를 자주 보게 되는데 그 원조라고 하는 부분에 공감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그림에 색을 넣었다는 점이다. 요즘 만화에 색이 들어가는 경우가 흔치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가의 유일한 올컬러 작품이라고 한다. 간결한 선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세밀한 표현이 굉장히 많다. 읽으면서 자주 감탄하게 된다. 특이 표정으로 넘어가면 더욱 그렇다.

 

삼십대 중반 두 여성이 등장하는데 루키가 근검절약하는 스타일이라면 친구 엣짱은 멋 내기를 좋아한다. 루키의 직업은 병원의 의료급여 청구서 작성 업무를 재택근무하는 것이다. 일주일 만에 일을 끝내고 남은 시간은 도서관 가거나 책을 읽고 우표를 수집한다. 목욕을 좋아하고 운동신경은 둔하지만 사과를 손으로 쪼갤 수 있다. 연예는 관심이 없는 듯하고, 패션에도 둔하다. 이 부분을 채워주는 인물이 바로 친구 엣짱이다. 그녀의 옷 중 많은 옷들이 엣짱이 준 것이다. 엣짱의 직장 송년회에 참석하는 에피소드는 다른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특히 엣짱이 좋아하는 직장 후배 오가와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소소하지만 즐겁다.

 

이 만화 곳곳에 그 시대의 풍경이 담겨 있다. 유선 전화기는 대표적이다. 지금은 유선전화로 통화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전에는 이 전화가 유일한 연락 방법이었다. 집 전화가 없다면 공중전화로 연락하고, 전화번호부는 온갖 정보와 광고가 들어있었다. 이것이 불과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만화를 읽다 보면 여유가 넘쳐난다. 시간이 남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스마트폰 등이 없으면서 다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친구와의 대화, 작은 외출, 그 외출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 이렇게 아주 일상의 한 장면을 작가는 간결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그림과 이야기로 나를 매혹시켰다.

 

몇몇 에피소드는 남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인지 공감하지 못한다. 빨래가 마르지 않았는데 다른 옷을 꺼내 입는 것보다 벗고 있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밖에서 그녀의 집을 볼 수 있다면 문제다. 자전거 수리점 남자가 던지는 관심에는 무감각하드니 다른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말에는 추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 보고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전기밥솥 사용 설명하는 장면은 잘 보면 멍청한 행동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이렇게 이 만화는 나에게 읽는 내내 공감과 의문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던져주었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대한 추억도 같이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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