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다. 여자들이 산을 오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했다. 여덟 산을 다루는데 등장인물이 겹치는 것도 있다. 서로 관계가 이어지는 사람도 있고,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여자들이고, 그들은 산을 오른다. 마운틴걸이란 용어가 있는 것을 보면 한동안 일본에서 등산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들이 산에 오르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마운틴 걸의 영향도 있고, 등산화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원래 등산을 좋아했던 사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들이 등산이란 하나의 주제로 묶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일본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100대 명산이 나오는데 그 중 아는 곳이 거의 없다. ‘거의’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후지산 때문이다. 만약 이 산이 빠지면 ‘거의’도 빼야할지 모른다. 일본 소설 등을 읽으면서 수많은 산을 봤지만 이 산들이 결코 낯익어지지 않는다. 한자로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발음대로 바뀌면서 더 심해졌다. 유명한 일본 산악 소설 혹은 산악 미스터리를 적지 않게 읽은 것을 감안하면 정말 저질 기억력이다. 이런 한탄과 상관없이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생긴다. 한참 체력이 좋을 때도 계곡에서 논다고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은 주제에 말이다.

 

첫 이야기는 등산화에 반해 친한 동료와 함께 산에 오르게 된 리쓰코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사내 커플과 결혼할 예정이다. 친한 마이코는 아파 못 오고, 직장 상사와 불륜을 저지른 유미와 산에 오르게 된다. 유미가 중간에 내놓은 비싸고 맛있는 간식도 그녀는 불편하다. 조공이란 생각 때문이다. 자신의 결혼 문제도 있다. 이런 감정들이 불쑥 튀어나와 감정을 뒤흔든다. 긴 여정과 중간에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속내를 말하고, 자신과 서로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다. 조공이라고 생각한 맛있는 간식도 다른 아주머니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힘든 등산을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의 심리와 엮어 잘 풀어내었다.

 

거품경제 시절 좋은 직장에 취직한 미쓰코는 거품경제의 화석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럭셔리 제품으로 몸을 휘감고 있지만 신상이 아니다. 우연히 나간 모임에서 한 남자를 만나 등산화를 선물 받고 산을 오른다. 그녀의 눈치를 보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보는 미쓰코의 모습은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게 만든 이유를 읽으면서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알게 된다. 이후 풀려나오는 고백 등은 어느 순간 막혔던 답답함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미쓰코가 가는 길에 리쓰코 일행도 같이 가고 있었다는 사실과 나중에 뉴질랜드 통가리에 이 커플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은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홀로 등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가 산을 오르면서 커플이라고 착각한 남녀와 만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과정은 밖에서 볼 때 평범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 등산은 그녀와 부모님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홀로가 아닌 ‘같이’가 가지는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은 마이코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자신이 오르길 원했던 후지산 대산 긴토키 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산을 보기 위해서는 그 산이 아닌 다른 곳에 올라야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목표 설정과 달성보다 진정 원하는 바를 찾는 것이 우선이란 점도. 이 이야기 속에 리쓰코와 유미의 현재 모습이 담겨 있어 상당히 반가웠다.

 

미야자와 가의 자매가 증장하는 단편이 세 편이나 있다. 첫 이야기는 동생 유미가, 두 번째 이야기는 언니가 화자다. 동생은 아버지를 돌보면서 번역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집에 왔지만 현실은 아버지의 연금에 빌붙어 있다. 바른 생활이 몸에 박힌 언니는 동생의 이런 삶이 불만이다. 리시리 산을 올라가자고 하는데 이상하게 이 자매가 어딘가를 가면 비가 온다. 징크스다. 함께 산을 오르면서 언니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 다음 이야기에서는 조카와 함께 겨울산을 오른다. 두 자매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산의 풍경을 보는 장면들은 나도 모르게 내가 산을 오르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마지막 장에 유미가 홀로 산에 가고, 그곳에서 동행을 만드는 이야기가 있어 훈훈한 마무리로 이어진다.

 

유일하게 일본산이 아닌 뉴질랜드 ‘통가리로’ 편은 유즈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풀어간다. 유즈키는 유미의 친구이자 여자들의 등산일기란 사이트에서 유명한 모자 장인이다. 이 단편은 유즈키가 모자를 만들게 된 사연과 더불어 통가리로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전 남친 요시다와 함께 했던 트래킹과 현재의 트래킹이 교차하고, 기억과 추억이 뒤섞이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다. 처음에는 이 교차하는 장면들을 이해하지 못해 난해하게 다가왔지만 어느 순간 시간의 교차를 알게 되면서 재밌어졌다. 카메오처럼 등장한 미쓰코 커플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살인 없는 가나에의 소설은 조금 낯설지만 탁월한 심리 묘사와 관계를 엮고 풀어내는 능력은 여전히 뛰어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