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타협 미식가 - 맛의 달인 로산진의 깐깐한 미식론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김유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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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즐겨봤던 요리 만화가 있다. <맛의 달인>이다. 몇 권까지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현재 111권까지 번역 출간되었다. 이 만화에서 주인공 지로의 아버지로 나오는 우미하라를 이 책의 저자인 기타오지 로산진을 모델로 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실제 만화 속에서 우미하라는 엄청난 미식가이자 도예공이고 요릿집을 운영한다. 성격도 얼마나 모났는지, 친아들 지로와 문제가 많다. 로산진도 실제 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유사성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안 것이고, 로산진이란 이름은 여기저기에서 이미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미식가는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많으니 미식가란 이름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미식가들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있다. 미식을 위해 그들은 엽기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언제나 맛있는 재료와 요리사를 갈구하는 그들을 보면 심한 경우 광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소설의 좋은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음식 에세이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에세이를 좋아한다.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 좋은 식재료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것을 요리하는 모습, 새로운 경험을 섬세하게 풀어낸 문장들, 내가 몰랐던 음식의 맛과 알고 있던 맛의 정보들, 이런 글들이 나에게 재밌게 다가왔고, 나의 삶과 비교하면서 잠시 아련한 감정에 잠긴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아련한 감정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역자가 다섯 장으로 구분했다. 원래 이런 제목의 일본 원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역자가 로산진의 글을 모아 편집하고 번역한 모양이다. 다른 로산진의 글을 읽지 않아 비교할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 맛과 재료와 미식 등을 아주 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맛을 알기 위해서 많이 먹어봐야한다는 표현을 볼 때 미식의 시작은 역시 많이 먹어보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로산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식기다. 자신이 도예가이기도 한데 좋은 음식을 좋은 식기에 담아내어야 한다고 할 때 처음에는 약간 반감이 생겼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이것은 하나의 즐거운 식도락이다. 아내가 좋은 그릇 등을 탐내는 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식기와 좋은 식재료를 늘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형편에 맞는다면’이란 전제가 붙어 있다. 요리가 비싼 데는 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그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 논리에 쉽게 수긍한다. 실제 좋은 재료가 있으면 다른 조미료 등이 필요없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쪽으로 가면 아주 맛있다. 어릴 때는 대구 매운탕을 즐겼지만 지금은 대구 지리를 더 좋아한다. 다른 재료의 맛이 너무 부각되어 대구의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없다. 로산진이 좋은 재료와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한 것에 크게 공감하는 이유도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재료를 제대로 손질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가 많으면 다른 특별한 양념이 필요하지 않다. 실제 많은 양념들이 음식이 상해가거나 맛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한다. 어떤 조미료의 경우 재료 본연을 맛을 더 강화시켜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선하지 않거나 맛이 떨어지는 재료를 사용했을 때다. 책을 읽다 보면 지역과 그 지방 특산물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자주 본다. 도쿄와 교토를 비교해서 이 두 곳의 차이를 말할 때 자신의 출생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미식가가 되기 위해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식을 했기에 별다른 병 없이 잘 살았다는 말에 ‘음식이 약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저자가 최고로 치는 맛은 복어다. 사실 나는 복어국의 시원함은 알지만 복어회의 맛은 모른다. 바다에는 복어, 산에는 고사리라고 말하면서 무미라고 했는데 이때 떠오른 한국 음식이 냉면이다. 슴슴한 그 맛. 하지만 조금만 들어가면 강한 육수의 맛을 느끼는 냉면. 더불어 제비집도 같이 떠올랐다. 실제 이런 무미를 지닌 식재료를 다루면서 제비집을 말한다. 궁극의 진미를 찾아 다양한 식재료를 다룰 때 생각하지도 못한 재료를 보게 된다. 그리고 생선 초밥의 명인을 이야기할 때 초밥에서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게 되고, 지금 같은 스시집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다양한 오차즈케 요리법을 보면서 머릿속을 스쳐간 것은 한 여름 보리차에 식은 밥을 말고 총각김치와 먹던 기억이다. 이 투박한 음식과 로산진의 화려한 오차즈케가 묘하게 대비된다.

 

한 끼를 때운다는 말을 자주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침은 대부분 건너뛰고, 점심은 무리지어 대충 먹는다. 저녁도 제대로 먹기는 쉽지 않다. 로산진이 오늘 먹은 세끼를 말할 때 이미 이 말을 계속 주창한 사람이 떠올랐고, 그의 음식 방송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고 배웠는지 알게 되었다. 좋은 식재료를 바로 사용하지 않아 망치거나 손질을 제대로 못해 망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로산진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과 정성을 기우렸는지 말할 때 내가 얼마나 안이하게 음식을 대하고 먹었는지 알게 된다. 나 자신이 결코 미식가는 아니지만 이런 지식들을 머릿속에 품고, 조금씩 실천에 옮긴다면 내 삶에 또 다른 재미와 열정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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