텨댜 : 알 수 없어 두렵지만, 알 수 없어 재밌는 내 인생
텨댜 지음 / 북치고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인스타그램에 연재되었던 작가의 만화를 묶은 책이다. 시작을 보면 그냥 할 일이 없어 시작했다고 하지만 학창 시절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물론 그 시절 좋아하고 그렸다고 해서 나이가 든 지금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스웨덴에서 남자 친구와 살던 시절 할 일을 찾다가 실패했던 이야기를 보면 나의 삶과도 닮아 있다. 너무 쉬운 포기, 뒤로 미룬 것 잊어버리기 등.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텨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위해 그녀가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뒤에 가면 나온다. 하루 5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이 꾸준함은 정말 대단하다.

 

케빈과 함께 살던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학창 시절, 워킹홀리데이, 배낭여행, 알바 당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읽다가 유머 코드가 다르거나 세대 차이 등의 이유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크게 웃게 되는 에피소드도 참 많다. 텨댜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의 20대와 30대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나 자신도 마이 웨이로 살았지만 많은 부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기 때문이다. 아마 초반부터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외모 지적 부분에서는 나 자신도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런 대상 중 한 명이다.

 

이 만화들에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솔직함이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많다. 자기 삶의 경험을 알려주는 부분에서는 조금 재미가 떨어졌지만 디테일한 곳에서 소소한 재미가 꾸준히 생긴다. 장기 배낭여행을 한 탓인지 아니면 친화력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외국인과의 만남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앞 단어만 기억하고 다음 문장들은 그냥 배경 소리로 들렸다는 이야기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 꿈나무 19년차란 표현이 너무 절실하게 와 닿는다. 나는 도대체 몇 년 차인가? 그래도 텨댜는 케빈과 살면서 영어로 싸울 정도(?)는 되지 않았던가. 그 이후 영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성 씨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경우 실제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빵 터지다니. 한국 응 씨의 실체를 아는 순간 웃음과 함께 나의 무지했던 순간도 같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운전면허증 에피소드는 기대와 의문과 실망으로 이어지는데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반전처럼 이야기가 이어졌다. 머릿속을 지나간 예상 이야기 중 어느 하나 맞지 않았다. 이런 의외의 반전들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발리에서 자신을 알아 챈 독자를 닦달하는 모습은 과음과 초보 인기인의 흥분이 만들어낸 작은 이야기다. 혹시 내가 외국에서 작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피해야할 것 같다. 내가 텨댜처럼 작가에게 이런 저런 말을 주절주절할 수도 있으니까.

 

만화의 반 정도는 케빈과의 살던 시절 이야기고, 나머지는 한국에 살던 시절과 워킹홀리데이와 여행 중 이야기다. 앞부분이 알콩달콩하고 자신을 알리는 에피소드였다면 뒤로 가면서 교훈적인 경험담들이 나왔다. 중간중간 경험담들이 재밌게 풀려나오지 않았다면 흔한 선배의 경험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텨댜의 인스타그램을 본 적이 없어 몰랐지만 한동안 슬럼프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이겨내고 계속 그렸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고 싶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놀면서 생각나는 걸 그린다고 하지만 이런 꾸준함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알찬 한량이 되겠다는 말에는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가장 꾸준한 인물은 둘이다. 한 명은 당연히 케빈이고, 다른 한 명은 가영이란 친구다. 가영과의 만남과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가영의 캐릭터 때문에 더 빛난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의 블로그 표현은 너무 차이가 난다. 미남에게 끌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미녀에게 끌렸던 내가 보였다. 목차를 보다 거울의 배신이란 이야기를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 이야기다. 음식 이야기도 내 이야기다.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노는 한량을 꿈꾸는 텨댜를 응원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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