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살다 -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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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시인의 산문집과 더불어 이 서문집을 읽게 되었다. 순서가 바뀌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 서문집을 읽는 동안 생겼다. 그것은 이 서문집이 시인이 시집 등을 내면서 쓴 서문과 후기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자필 수제본 시집 <산토끼>에서 시작하여 서른여덟 번째 <무연고>까지. 시집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화집도 있고, 산문집도 있고, 천재들에 대한 편저도 있다. 단순히 서문만 모았다면 조금 심심했을 텐데 후기도 같이 넣어 시집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발간순으로 서문 등을 나열했기에 삶의 여정도 잠시 느낄 수 있다. 산문집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산문집을 읽는 느낌이다.

 

이제 백세 시대라고 하지만 구십에 시집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노년에 더 활발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내가 평가할 부분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그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썼다고 하니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 산문집과 이 서문집에 실린 시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산문집에 등장했던 친구가 이 서문집에서 부고를 알려주기도 한다. 시간은 누구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죽음 앞에서는 동등하지 않다. 시인이 할머니라고 부른 그들의 나이가 그 당시 시인의 나이임을 알게 되면서 그가 얼마나 젊게 다가왔는지 깨닫고 놀란다. 아님 내가 너무 무감각했거나.

 

1955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인 이생진의 행보를 망라하고 있기에 그에게 관심 있는 독자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없다고 해도 한 권의 산문집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서전 같은 느낌이란 평이 있는데 동의한다. 책 한 권을 내고 거기에 서문과 후기를 정성스럽게 썼기 때문이다. 시를 썼을 때의 감상과 그 당시 분위기와 그의 관심사까지 축약되어 있다. 이것은 시인이 서문과 후기에 그 책의 내용과 의도를 충실히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산문 같다고 느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후기의 내용들이 그랬다.

 

괜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의 청년기에 쓴 <아름다운 천재들>에서 “요절은 불쾌하오. 오래오래 살아보시오.”란 문장을 썼다. 그 덕분은 아니겠지만 아흔에 이렇게 서문집과 시집을 내었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섬에서 많은 시를 썼지만 꼭 섬만 다룬 것은 아니다. 곤충도 산도 같이 시집으로 나왔다. 자연에 대한 그의 관찰은 간결한 시어로 표현되었다. 인사동에 머물 때는 인사동 시집을, 섬을 돌아다닐 때는 그 섬에 대한 시를 썼다. 이 왕성한 활동의 결과물이 바로 이 서문집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한 기록지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났을 때 그가 다시 자신의 시집을 읽고 느낀 점들에서 내가 쓴 글들을 돌아보게 한다.

 

정년퇴직 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섬을 돌아다니고, 시를 짓고, 시집을 낸다는 점에서 부럽다. 섬에서 고독과 마주하면서 힘들게 시를 쓴 그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이 시집들이 나오기 위해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을지도 궁금하다. 선생의 적은 월급을 꼬불쳐 방학마다 떠났다는 글에서 섬 사랑과 방랑벽을 느낀다. 섬을 가면서 낚시꾼들이 한 말을 그냥 넘기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멋지다. 그는 고기를 낚기보다 시어를 낚으려고 간 것이니 당연할 텐데. 20년 전 그때 노아가 이 서문집을 읽을지, 혹시 그의 부모가 나오는 시집을 읽었을지 어떨지. <맹골도>로 오면 세월호의 흔적을 다시 보게 된다. 빨리 집에 있는 그의 시집을 한 권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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