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에 듀나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한창 영화를 보던 시기에 그의 영화 평도 본 적이 많다. 최근에 와서 영화 볼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으면서 그의 영화 평도 점점 멀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상당히 꾸준히 나오는 그의 책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그의 소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집 책장을 뒤지면 몇 권은 더 나온다. 취향에 완전히 맞는 작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한국 SF를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놓은 책은 상당히 취향과 잘 맞았다.

 

민트의 세계. 제목만 놓고 보면 완전히 취향 바깥에 있다. 표지는 또 어떤가. 아마도 듀나라는 이름을 보지 못했다면 편견으로 이 소설을 놓쳤을 것이다. 책소개를 보니 6년만의 장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설정이 2013년 연작소설집 <아직은 신이 아니야>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것은 초능력을 일깨우는 배터리라는 존재다. 처음에는 이 배터리의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배터리임을 알게 된다. 이들이 없다면 사람들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이들은 초능력 에너지 공급원이다.

 

에너지 공급원이 있다고 모두가 똑같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발현되는 능력이 다르다. 등급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다면 그 능력에 제한이 걸린다. 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자신만의 배터리와 링크된다면 그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 속에 이런 설정들을 계속해서 알려준다. 이런 장르의 특성이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 소설이 한정된 독자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두 시점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21층 천장에서 시체로 발견된 류수현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트 팩의 이야기다. 작가는 교묘하게 이 두 시점을 꼰다. 읽다 보면 다른 시간대를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설정은 독자의 시선을 유도해서 다른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시체를 발견한 한상우 등의 류수현 죽음 원인 찾기는 과거 민트의 활약을 복기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시에 민트는 적들과 싸우면서 그들의 팩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그들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 두 시점은 하나로 합쳐진다.

 

이전에 듀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낯설게 느낀 것은 그 당시 실제 지명을 사용한 것과 한 여자 연예인의 실명을 등장시킨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Twinkle이란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나왔을 때 태티서가 떠올랐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리고 지금부터 40년 뒤에 한국에서 지금과 같은 이름의 커피숍이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명은 그렇다고 하지만 커피숍까지 그럴까? 이런 이름들을 보면서 작가가 새로운 이름 지어내기 귀찮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좋게 포장해서 대기업이 아직도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대기업이 거의 사라진 미래를 말하고 있다.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힘을 합쳐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아쉽게도 어벤져스의 영화 장면들이다. 나의 한계인지, 할리우드 영화의 대단함인지. 그리고 낯선 개념들은 읽는 속도를 생각보다 더디게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환영을 만들고, 거기에 인격을 부여하고, 그 인격에 중독된 사람들 이야기다. 이것은 뒤로 가면서 더 정밀해지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한다. 민트의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 있다. 반면에 한상우의 시점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었다. 어떻게,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그 이면에는 어떤 일이 있는지 등. 읽으면서 많은 SF영화나 소설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중간중간 미래 이야기를 할 때는 또 다른 떡밥으로 다가왔고, 민트의 미래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