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 그저 함께이고 싶어 떠난 여행의 기록
이지나 지음, 김현철 사진 / 북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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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여행을 왜 떠날까? 실제 지루한 여행의 기록이라면 누가 읽을까? 이런 물음 뒤에는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이 있다. 애를 키우는 부부라면 누구나 함께 가고 싶어하지만 두려워하는 여행이 바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다. 멀리 가는 여행이라면 애가 비행기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현지에서 탈이 났을 때 걱정도 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떠나지만 여행의 반경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점점 넓어진다. 그런데 이 부부의 여행은 미국이 시작이다. 대단하다. 아이가 비행기 안에서 12시간 정도를 잘 보냈을까 하는 물음이 먼저 떠오른다.

 

솔직히 이 에세이에서 기대한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겪게 되는 즐거움도 있지만 어려움들과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나의 바람을 그냥 지나간다.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는 가족, 사랑, 아이, 여행의 감상 등이다. 뭔가 실질적인 여행의 방법으로 들어가면 간결한 짐에 머물 뿐이다. 누구나 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짐싸기다. 현지 음식을 먹인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아이들에게 이것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의 기차 이동 이야기는 아이의 적응력과 현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용기와 열정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부러운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 바와 다르지만 공감하는 문장과 감상들이 자주 나온다. 가장 먼저 “어쩌면 집은 건물이 아닌 사람이 아닐까.” 같은 문장이다. 이것이 그녀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는 잘 잊고 지낸다. 부동산의 가격이 높아질수록 이것은 더 심해진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별로 볼 것 없다는 동생에 말에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서울을 평가할 때 흔히 하는 말과 같다. “우리는 낯섦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설레기 위해.”라는 말은 여행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작가도 말했듯이 같은 도시를 여러 번 가는 것은 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도시를 말할 때 늘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람 이야기다. 이 가족이 간 곳에서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작은 친절을 베푼다. 샌프란시스코의 버스와 스리랑카 기차 이야기는 순간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의 속도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쉽게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물론 버스나 기차에 타면 이들과 같은 애정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속도란 부분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작은 배려와 행동들은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사진들 대부분은 작가와 남편과 아이를 향해 있다. 풍경도 나오지만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남편 자랑은 아주 심하다. 친구에서 부부로 이어진 이들의 여행에 아들 얼이 나중에 동반했고, 지금까지 이어진다. 임신과 출산과 육아라는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는 여행을 이들은 떠났다. 그녀의 곁에는 남편이 있다. 여행에서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도 남편이라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 여행에서 그녀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과 액세서리를 단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옷은 작은 감탄을 자아냈는데 이 비결도 바로 남편이다. 같은 남자 입장에서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감탄해야 하나.

 

아이와 함께 한 여행은 언제나 아이가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다. 부모가 가고 싶은 곳을 간다. 물론 아이의 상태도 감안의 대상이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텐데”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한다. 이 부분을 작가는 현대 과학의 일부를 통해, 경험을 통해 반론한다. 이 여행의 경험은 다른 방식을 통해 몸에 기억된다. 작가의 이 말에 공감한다. 현실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르다. 이 부부처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여행했다면 다를지 모르겠다. 5년 15개국 30도시라니 대단하다. 월급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더. 실용적인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이런 여행을 하는 부부가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떠나고 싶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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