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데니스 루헤인에게 빠진 것은 영화로 만들어진 <살인자들의 섬>이나 <미스틱 리버> 등이 아니라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덕분이다. 이 탐정 커플에 얼마나 열광했고, 시리즈를 탐독했던가. 물론 저질 기억력은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때의 강렬함이나 즐거움까지 잊은 것은 아니다. 이후 나온 몇 권의 시리즈도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불만인 작품은 <살인자들의 섬>인데 서술트릭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라 더 그랬다. <미스틱 리버>는 영화의 빈곳을 채워졌지만 강한 임팩트까지는 아니었다. 반면에 커글린 가문 3부작은 기대한 것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이런 그의 신작이니 기대할 수밖에.

 

조금 평범한 시작이다. 아내가 총을 쏘고, 남편이 넘어간다. 이 총을 쏘기 전까지 서로 사랑했던 부부다. 그리고 이야기는 레이철의 과거로 돌아간다. 왜 아내가 총을 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바로 이 사건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여성의 삶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엄마는 유명한 저자이지만 딸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숨긴다. 첫 장의 73명의 제임스는 바로 레이철이 이름만 가지고 찾고자 한 가능성을 표시한 것이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고, 한때의 방황을 끝낸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산다. 그렇다고 아버지 찾기를 멈춘 것은 아니다. 가능한 곳을 모두 찔러보고, 찾아간다. 그러다 제임스가 이름이 아니라 성이란 것을 알게 된다.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한 그녀는 작은 성공을 거두면서 점점 큰 회사로 옮겨간다. 이 성공이 그녀에게 정보를 물고 온다. 그녀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가 지저분한 거래를 요구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그 정보를 얻는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강인함에 놀란다. 새로운 돌파구는 그녀가 기억하던 제임스 아버지에게로 인도한다. 하지만 딱 거기서 멈춘다. 현실은 그녀의 생각과 다르다. 과거에 있었던 엄마와 제임스의 불화를 듣게 되지만 진짜 생부는 누군지 모른다. 알고 싶어 계속 찾지만 이제 그녀 곁에는 제임스가 있다. 이 행운은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는다. 제임스가 쓰러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찾는 와중에 방송국까지 올라간다. 피디 남편도 생긴다. 이때 아이티 지진이 발생한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본 아이티의 더 깊은 이면을 보여준다. 참혹한 현장과 폭력, 강간, 죽임을 당하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생방송 중 공황장애를 일으킨다. 그녀의 경력이 끝나는 순간이다. 그녀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의 유산으로 생부 조사를 의뢰했던 사설 조사원이었던 브라이언을 만난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브라이언은 그녀에게 여러 번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녀 또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만남과 브라이언의 구애로 둘은 사귀고 결혼하다.

 

이때까지만 보면 누구 이 소설을 범죄소설이라고 하겠는가. 첫 장면이 없었다면 한 여성의 정체성 찾기와 성장을 다룬 소설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집밖으로 나온 레이철이 출장 갔다고 알고 있던 남편을 길에서 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의심을 품고, 남편을 뒤쫓으면서 진실의 한 자락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이야기의 몰입감과 속도감이 더 높아진다. 사랑의 믿음은 깨어지고, 배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여기에 킬러들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더 꼬인다. 이 모든 과정 속에 레이철의 트라우마와 공황장애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찾기와 아이티의 숨겨진 이야기 등은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이렇게 쉼 없이 몰아치는 이야기의 마무리는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위해 다음 작품을 써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레이철의 선택과 미래를 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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