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조승원 지음 / 싱긋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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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크게 끌리지 않았다. 많은 저자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분석으로 해석하면서 어렵게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가끔 대담으로 하루키의 소설 한두 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기도 한다. 이때도 이 한 편의 소설을 위해 과거 작품들이 인용된다. 어쩔 수 없다. 한 작가의 작품은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작업들이 가끔 원작을 읽었거나 읽으려는데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어쩌면 이해를 돕지만 그 방향으로 이미지가 왜곡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책소개를 좀더 유심하게 보면서 저자가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미주가에 하루키스트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하면 술과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이해로 풀어내기보다 술이 들어간 문장을 인용하는 구성으로 책을 썼다. 목차를 보면 잘 드러난다.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이다. 마지막에 음악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것은 술과 연결된 키워드다. 맥주는 허무와 일상이, 와인은 격식과 품위를, 위스키는 고독, 진정과 치유를 담고 있다고 봤는데 칵테일에는 특별한 키워드가 없다. 워낙 오래 전부터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었기에 소설 등에 나오는 술들이 어떤 상황에 나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맥주는 늘 머릿속 한 곳에 남았지만 그때 마신 맥주가 무엇인지까지는 솔직히 기억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현재까지 나온 전작을 다시 읽고 술의 종류를 분류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하루키란 인물과 술을 엮었다. 하루키의 작품에 나온 술을 문장 그대로 인용한다. 하지만 하나의 술이 나오면 그 술이 어떤 작품들에 나왔는지까지 자세하게 기록한다. 최소한 이 책을 쓸 때까지 나온 책들은 모두 참고한 것 같다. 인터뷰 등도 참고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단순히 이런 나열만 있었다면 정보 분류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재밌고 놀라운 점은 이 작품 속 술들을 통해 술의 역사와 정보를 풀어낸 것이다. 최소한 이 책을 정독하고 좀더 세밀하게 읽었다면 네 종류의 술에 대한 기초 지식은 충분히 쌓을 수 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금상첨화다.

 

저자를 소개하는 부분 중 음악과 술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미주가란 말은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한다. 이 작업이 술과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글 속에 나온 술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 부분을 특히 부각시킨다. 나 자신도 얼치기 하루키스트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읽을 때 그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렇다고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다음에 술 마실 기회가 있으면 그 술을 기억해낼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처음 하루키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책 속에 나오는 소설들이 한국에 소개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술에 무지한 나 자신의 변명이 더 강한 부분이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전작을 현재까지 읽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직 사지 않았다. <1Q84>는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이 작품들에 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 나중에 읽을 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술이 나올 때면 또 어떤 연쇄작용을 할지 모른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매력 중 하나는 과거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와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들을 술과 간단한 장면 소개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하루키 작품 전체가 꽂힌 서재를 상상했던가.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으려만 당연히 맥주인데 이 책의 분량만 놓고 보면 칵테일이 가장 많다. 솔직히 칵테일에 무지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베이스가 무엇인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주, 와인, 위스키를 다룬 방송이나 책은 가끔 보지만 칵테일을 다룬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몇 가지 칵테일이 나와 반갑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가능하다면 각 장을 읽을 때 그에 맞는 술을 한 잔 옆에 두고 있으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재미는 훨씬 배가되었을 것이다. 다음 주에 담아둔 책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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