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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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를 미친 듯이 본 적이 있다. 죽음의 원인을 찾고, 과학적 증거를 발견하여 범인을 쫓는 그 드라마는 정말 대단했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검시관이 주인공인 책도 읽었다. 대부분의 범죄소설에서 검시관이나 병리학자들은 조연이었다. 이런 기억들 가지고 실제 현장의 볍의병리학자이자 총상 전문가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호기심과 기대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많은 부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진실이 가진 무게와 그 이면들을 들여다보게 했다.

 

빈센트 디 마이오가 법의학자고, 론 프랜셀은 작가다. 이 책을 생각한 것보다 편하고 재밌게 읽게 된 것은 론 프랜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디 마이오다. 이 책의 한 장은 바로 디 마이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왜 병리학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당연히 이 글들 속에는 그의 경력도 같이 다루어진다. 더불어 부족한 병리학자 문제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검시관 중에는 장의사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살인 사건에서 인종 문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첫 이야기도 바로 인종 문제로 발전한 사건을 다룬다. 서로 엇갈리는 증언은 이 문제를 더 키운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일관되게 하나를 주장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진실을 말할 뿐이란 것이다. 이 진실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지, 유죄의 판단이나 정치적 문제는 고려의 대상의 아니다. 지머맨의 무죄를 돕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그의 증언은 단지 하나의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무죄 선고가 항상 용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란 문장은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그가 왜 그 트레이본 마틴을 따라갔는지, 그들의 싸움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등은 증거자료를 보는 그에게 참고자료일 뿐이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트릭들과 특이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나의 진실 너머의 또 다른 의도가 풀려나올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법의학적 증거는 정의의 기반이다. 법의학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을 변주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자신도 ‘인간성에 대한 더욱 거대한 질문을 해결한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소설이 단순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법의학자가 밝힌 하나의 진실이 늘 그것을 담고 있는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의 진실 추구가 현실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이 참여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사건들 중 몇 개는 가십 같은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JFK살인범 오스왈드가 가짜라는 주장과 조금은 놀라운 고흐의 자살설에 대한 반박 등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법의학자의 의견은 죽음 그 자체만 놓고 본다. 오스왈드는 재검시 결과 동일인으로 판명나고, 고흐는 그의 의견에 따르면 자살이 아니다. 특히 고흐 같은 경우는 미술계와 대중의 호기심이 결합한 결과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장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하나의 주석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명 음악 프로듀스인 필 스펙트의 살인 사건이나 웨스트멤피스 살인의 경우는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의 상관관계가 같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무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이처럼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은 그 당시의 상황만 알려줄 뿐이다. 범인은 다른 증거와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수사다. 아기들을 죽이는 여자 이야기는 초동수사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지만 최소한 그 반복적인 행동을 제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밖으로 드러난 흉악범죄보다 숨긴 채 이루어지는 범죄들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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