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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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逆浪)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역풍으로 인하여 거슬러 밀려오는 물결과 세상이 어지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작가가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중의적인 의미 때문일 것이다. 사야가란 인물이 겪은 일과 그 시대의 상황을 한 데 묶은 것이다. 사야가는 임진왜란 당시 항복한 왜군 출신이다. 이후 김충선이란 이름을 사사받았다. 작가는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를 풀어냈다. 쉽게 생각하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무대일 것 같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펼쳐진다. 일본의 전국시대 마지막과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까지의 시기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기본적으로 소설이다. 읽으면서 개인의 생각과 결이 다른 부분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사야가의 능력이다. 당쟁 때문에 살기 위해 밀항을 하고, 뎃포 부대원으로 팔려가는 것까지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열 살 소년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새로운 전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오다 노부나가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3열 전술도 이 책에서는 사야가의 전술로 바뀌어 있다. 이 책 내용대로라면 사야가가 보여준 능력은 특정 부대에 한정한다고 해도 너무 천재적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 자유연애를 집어넣은 것은 시대를 초월한 설정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살벌함을 감안한다면 더욱 더.

 

이런 몇 가지 거슬리는 부분을 제외하면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을 침공하는 과정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흥미롭게 잘 다루었다. 이 사이에 사야가의 능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은 액션과 스릴을 느끼게 만들었고, 이에야스의 비중을 적지 않게 다룬 것은 그 시대 정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이 둘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온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역사가 재밌기 위해서는 간결하게 서술된 역사 속에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부분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 작품의 몇 가지 이야기는 이 부분을 아주 잘 표현했다. 방대한 참고자료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축소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사야가가 행주산성에 와서 권율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순신의 추천이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사야가란 인물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풀어낸다. 사화에 휩쓸려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 어머니는 죽고 아이는 뎃포 부대원으로 팔린다. 하지만 이 소년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면서 뎃포 부대에 도움을 준다. 조선인을 멸시하는 장면과 조직원 간의 작은 갈등이 나오지만 핵심은 소년의 천부적 재능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특히 아츠카와 사랑은 둘을 굳건하게 묶어주고, 붉은 돌 뎃포 부대를 위험에 빠트린다. 그의 재능을 탐낸 전국시대 장군들 때문이다. 히데요시의 아츠카에 대한 구애와 사야가에 대한 욕망은 이후 중요한 이야기 거리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사야가의 정체성과 아츠카와의 사랑이다. 두 연인의 사랑은 시대의 한계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파국의 씨앗을 품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둘의 사랑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그리고 조선인이란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은 민족의식에 대한 과도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이런 민족 정체성을 그가 가졌다면 그를 따른 뎃포 부대원들의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같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의 지식이나 상식들과 충돌하면서 읽혔고, 역사적 사실과 엮인 몇몇 장면들은 예전에 읽었던 역사서들을 떠올려주었다. 더불어 사야가가 보여준 활약은 긴장감을 불러왔다.

 

개인적으로 기대한 만큼의 재미와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나의 선입견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캐릭터를 과도하게 포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더 깊이 있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지 호기심이 조금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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