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 사쿠라 마나 소설
사쿠라 마나 지음, 이정민 옮김 / 냉수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사쿠라 마나는 일본 AV 여배우다. 이쪽 문화에 밝은 사람에게는 낯익은 이름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한 명의 작가일 뿐이다. 내 경우로 한정하면 반반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잘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정도랄까. 아마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작가가 소설 등을 내었을 때 그 내용보다 출신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오고, 책이 팔리는 경우도 많다. 그녀의 첫 장편인 <요철>이 하루키의 신작을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 했다는 소식도 괜히 한 번 비틀어보게 된다.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그 선입견은 사라졌다.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가 화자인 것은 아니다. <모모코>의 화자는 <아야노>의 AV기획사 대표 이시무라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각 이야기마다 AV 배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야노, 모모코, 미호는 AV 배우고, 아야코는 AV배우였던 엄마가 낳은 아이다. 앞의 세 여자의 이야기에는 모두 이시무라가 등장한다. <모모코>에서 이시무라가 왜 AV 기획사를 세우게 되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앞 작품 <아야노>와 <미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야노> 속 화자 아야노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쿠라 마나의 삶을 잘 모르기에 단편적인 몇 가지만 가지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전문학교 출신이란 것과 자발적으로 이 세계에 몸을 담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 많은 부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아야노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언니나 엄마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과 다른 삶을 선택하고 우연히 AV에 입문한다. 이것이 고향에 알려지고, 일반 직장인을 만나 연애하는 감정을 느끼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작은 바람을 엿본 느낌을 받았다. AV계의 소소한 이야기는 작은 재미다.

 

<모모코>는 아주 예쁜 여자가 아니다. 덧니도 심하다. 그런데 AV 세계로 옮기기 전 이미 에이스였다. 이시무라가 세운 기획사의 첫 여배우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보다 <아야노> 속 인물들의 과거를 엿보고, 이시무라가 어떤 인물인지 더 잘 보여준다. 동업자가 회사 돈을 횡령했을 때 좋은 고기를 산 후 이시무라를 위로하는 모모코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모모코의 일을 두고 질투하는 이시무라와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과 함께 여운을 남긴다.

 

섹스리스 부부가 일본에 많다는 소식을 책이나 방송에서 보았다. 미호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직 젊은 그 부부 사이에 성욕이 없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내 미호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있다가 선택한 것 중 하나가 AV계로의 진출이다. 재밌는 것은 남편이 보는 비디오와 잡지를 보고 이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AV 세계에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떠오른다. 일과 아내의 역할을 동반하는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살짝 궁금해진다.

 

<아야코>는 갑자기 할머니가 된 지에의 시점에서, 아야코의 시점으로 변한다. 엄마 다카코는 한때 AV 배우를 했고, 딸을 낳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할머니 지에의 몫이다. 자라면서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이 입상하면서 관심을 불러온다. 신상 노출이 되면서 더 외톨이가 된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소녀는 자라고, 연애도 한다. 그리고 생부를 만난다. 인생에 불안이 없을 수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어쩌면 자신의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나오는 작가 후기는 그녀가 어떻게 데뷔하고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다른 작품도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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