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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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토막난 시체와 누군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1986년, 열두 살 소년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것과 교차하는 현재 시간은 2016년이다. 이 30년의 시간을 더듬어 올라오면서 풀리는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구성이다. 앤더베리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1986년에 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시간 순으로 흘러나오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소년 에디가 성인이 되어 그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 사건들 옆에는 분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 장난 같다. 핏자국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작가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초크맨이란 이름과 교차하는 두 시대는 자연스럽게 잔혹한 살인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랫동안 스릴러를 읽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가끔 생긴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않는다. 3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짓눌리게 만드는 살인마도 없다. 단지 과거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 비밀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공부에 짓눌려 살았을 것 같지만 딴짓을 더 많이 했다. 혼자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돌아보면 멍청하고 유치했다.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허세로 가득했다. 나의 세상은 정말 좁아서 조금만 멀리 가면 다른 도시인 줄 알았다. 이런 십대 중 초반은 조금 더 순진했다. 열두 살 에디와 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공감을 한 부분들은 바로 나의 경험과 조금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지만 미숙한 소년들의 행동이 지닌 기본은 역시 변함이 없다. 가끔은 소심한 복수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상 외의 사실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은 당연히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소녀의 죽음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가 놀이기구가 고장나면서 외모도 신체도 손상을 입은 일라이저가 바로 그녀다. 많이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일라이저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 일라이저의 삶은 지엽적인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분필로 그린 그림들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과거에 이 분필 그림은 친구들끼리의 장난이거나 암호문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에는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온다. 이 분필 그림이 잊고 있던 30년 전 과거의 비밀문을 연다. 그 문 안에는 추악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살인 사건과 죽음 몇 개를 빼면 한 소년의 성장 소설과도 같다. 킹의 소설 중 <스탠 바이 미>와 분위기가 비슷한 대목도 있다. 물론 다른 장면은 <샤이닝>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1986년의 에디가 겪는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가 살아온 동안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가장 자극적인 사건들이 그 한 해에 일어났다. 놀이 기구가 고장 나 한 소녀가 크게 다치고, 다시 그 소녀가 토막 살해당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목사가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한 소년은 자전거를 건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에디와 연결되어 있고, 이 죽음 이면의 진실이 3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씩 밝혀진다,

 

가독성이 좋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소재를 하나씩 엮어가면서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현재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에디는 실수를 몇 번 저지르지만 ‘예단’을 경고하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하나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은 그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한다. 선입견과 편견이 사실을 파고들고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다. 이것도 과거를 파헤쳐 돈을 벌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가끔 나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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