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품격 -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
이용재 지음 / 반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면의 기억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처음 먹을 때는 맛도 모른 채 먹었다. 아버지를 따라 거래처 회사 근처에서 먹었다. 대학생의 입맛에는 이 맹숭맹숭한 면이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내 입맛에는 오히려 시장통 양념 범벅 냉면이 더 맞았다. 그러다 집 근처에 있는, 아버지와 함께 간 그 냉면집을 혼자 가게 되었다. 그 당시 신문에 나오던 서울 4대 냉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맛도 모르고 여름이면 몇 번 가게 되었다. 이 집 냉면을 먹은 다음부터 시장 냉면은 너무 자극적이라 반감이 생겼다. 친구들을 데리고 몇 번 갔지만 그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아주 자극적이고 싼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간 그 집은 장충동 평양면옥이고, 자극적인 그 냉면은 동아냉면이다.

 

한때 음식에 대해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란 생각을 했다.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늘 나오는 냉면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유명하다는 식당을 한 곳씩 다녔다. 아버지가 올라와서 가게 된 을지면옥, 친구와 함께 간 을밀대, 비싼 불고기를 먹고 먹은 우래옥 등으로 발걸음이 옮겨갔다. 이보다 훨씬 전에 동국대 다니던 친구와 함께 간 필동면옥도 있다. 하지만 한결같이 나에게 냉면은 밍숭밍숭한 맛 그대로였다. 슴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맛이라고 할까. 그러다 비오는 날 아내와 함께 간 논현동 평양면옥에서 강한 육수 맛을 느끼면서 냉면집들의 육수 맛을 구별하게 되었다.

 

그 후 다시 냉면집을 돌면서 맛을 비교하고, 취향에 맞는 맞을 찾아다녔다. 현재까지는 논현동이 가장 입맛에 맞다. 그리고 얼마 전 의정부 평양면옥이 분점을 낸 하남 스타필드에서 이야기만 듣던 그 맛을 보게 되었다. 을지면옥과 닮은 것 같지만 다른 그 맛. 생각했던 것 같은 환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아마 시간이 되면 몇 번 더 먹어보고 나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다. 이렇게 글을 지금도 여름만 되면 유명 인사들이 좋아하는 평양냉면 맛집들이 생각난다. 면과 육수를 비교하는 그들의 평가에서 개인의 취향을 발견한다. 이것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의 저자가 매긴 점수는 왠지 개인의 호불호 혹은 취향을 나타낸 것과 같다. 분명 의미있는 작업인데 말이다. 같은 별점을 받은 업체들을 비교하면 너무 그 간격이 커진다. 나만의 생각일까?

 

냉면이라고 하면 보통 평양냉면을 말한다. 당연히 이 책에서 다루는 냉면도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하면 언제나 오고 가는 원형에 대한 논쟁은 깊이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한국 평양냉면의 뿌리와 그 가지를 구분하고, 후발주자들과 그 문법을 차용한 업체들을 다룬다. 서른한 곳의 냉면집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본 곳은 열 곳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분석 혹은 평가에 백퍼센트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작업들에는 언제나 관심 있다. 물론 음식점을 별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도 논의가 필요하다. 식당의 청결도나 서비스 등은 가능하겠지만 음식만 한정한다면 개인의 취향이 너무나도 다르다. “체계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분석과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맛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는 어떨까? 개인적으로 이 책에 반감이 든 부분들은 바로 이 평가들이다. 어쩌면 나의 취향과 달라 괜히 트집을 잡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냉면을 좋아하지만 자주 먹을 수 없다. 원하는 식당이 주변에 없고, 갈 경우 너무 유명해져 대기 줄이 너무 길다. 냉면에 대해 보고 들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나의 취향과 다른 사람의 취향을 비교한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단품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평가는 동의한다. 수저통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달걀 반 개를 냉면에 왜 올릴까? 하는 문제는 많은 답이 나왔지만 아직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여자들만 제복을 입고 있다는 지적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 책은 평소 무심히 보고 지나간 것들을 제대로 지적한다. 면과 육수에 대한 평가는 식당마다 동의하지 않지만 참고할 부분이 많다. 책을 읽으면서 옛 추억에 잠기고, 시간 나고 기회가 닿으면 가보고 싶은 냉면집들을 다시 되새겨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