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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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남자>란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백용준 경감이 이번에도 나온다. 하지만 전편처럼 그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은 손창환이다. 그는 일반 고등학교 졸업 한 후 은행에 취직하고, 열심히 일하다, 동기이자 상사에게 이용당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감옥도 갔다 오고, 먹고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한 끝에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 그냥 무력한 일상을 살던 그에게 어느 날 그 동기이자 상사였던 박상준이 손님으로 탄다. 이 만남이 겨우 살아가던 그에게 희망을 던져준다. 그를 죽인다는 희망이다.

 

이야기는 손창환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희망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살인을 의뢰하는 한 남자와 히트맨의 만남과 어떤 목적에 동원될 사람들의 간단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현재 속에서 손창환은 박상준을 완전범죄로 죽이는 것을 바라면서 그를 뒤좇는다. 본업이었던 택시 기사도 퇴직한 채로. 박상준의 발견은 그의 얼굴에 웃음과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를 죽이기 위한 손창환의 조사는 꾸준하지만 아마추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박상준의 딸이 그의 삶에 끼어든다. 자신을 납치하라고 말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손창환과 박상준의 만남은 지방은행 동기연수다. 고졸과 대졸의 학력 및 나이 차이는 90년대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벽이다. 여기에 손창환은 상고 출신도 아니라 그의 뒤를 봐줄 사람도 없다. 이 사실은 기회주의자이자 비열한 성격의 박상준이 손창환을 괴롭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방세를 계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은행원으로써 부족함이 없었던 그이지만 상하 직급과 나이가 만든 권력은 그의 일상을 뒤흔든다. 이 소설에서 박상준이 보여준 권력 남용과 패악이 90년대 은행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별도로 생각하고, 그 시절의 부패와 퇴락의 흔적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 썩은 물에서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 혼자 깨끗한 척하면 당연히 배척의 대상이 된다.

 

박상준의 딸이라고 말하는 민정 혹은 엠제이는 납치 자작극을 펼친다. 이유는 박상준이 화훼단지를 운영하는 엄마의 돈을 사기 쳐서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행동이 어색하다. 처음에는 손창환도 그녀의 바람대로 끌려다닌다. 50억이란 거금을 요구하는 납치 사건인데 허술한 구석이 곳곳에서 보인다. 손창환과 엠제이는 이 납치극을 성공하기 위한 장치를 몇 가지 설정한다. 그러다 이 계획 중 하나를 손창환이 뒤틀어버린다. 그것은 시간 변경이다. 시간을 앞으로 당기고, 도주에 대한 계획도 바꾼다. 이것이 또 다른 계획을 뒤튼다. 잘 짠 설계지만 변수는 언제 어떻게 생길지 알 수 없다.

 

백용준 경감이 등장하는 것은 중반부터다. 이 납치극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수사를 더 깊이 진행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납치범을 잡고, 수사를 제대로 하기에는 시간도 정보도 부족하다. 어쩔 수 없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앞과 바뀐 설정과 계획으로 파편화된 이야기 조각을 하나씩 맞춰간다. 앞부분의 어색함이 잘 짠 구성과 설정으로 하나씩 메워진다.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고,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앞에 깔아둔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해진다. 등장한 분량만큼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데 이 부분은 왠지 모르게 그 장면들이 하나의 설명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짠 구성과 설정이지만 손창환의 변신은 조금 급하고 어색한 느낌이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90년대 한국과 IMF 구제 금융 등으로 더욱 팍팍해진 우리의 삶을 그려준 장면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작가가 던진 완전범죄의 방법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지만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아쉬움 중 하나는 손창환에 의해 그려진 박상준의 모습이다. 그의 속내나 의도를 직접 보여주지 않아 그가 저지른 범죄에 비해 그 매력이 조금 떨어진다. 손창환의 과거에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개인적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 또 하나. 에필로그는 조금 사족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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