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너무 유명한 작가의 이름에 비해 그의 책은 공저인 < 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을 제외하면 읽은 적이 없다. 공저의 특성 상 한 작가의 힘이 그대로 드러나기 힘들었다. 그의 대표작을 구매해 놓았지만 언제나처럼 묵혀두고 있다. 늘 있는 일이라 새롭지도 않다. 이번 작품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당연히 작가 이름이 먼저고, 그 다음은 작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심리적 고통을 주인공인 에이자 홈스라는 소녀의 입을 통해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는 그 작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뭐 아직 이 작가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부터 하다니 나도 참...

 

인디애나폴리스에 사는 열여섯 소녀 에이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적인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우리도 불안감과 강박증을 안고 살고 있지만 에이자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정도가 심하다. 심리 치료를 받고 약을 먹지만 좋아지지 않는다. 물론 약은 제때 제대로 먹지 않는다. 클로스트리움 디피실레라는 병이 있다. 극단적으로 가면 죽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서 에이자는 이 병의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데 그의 불안과 강박증은 한 번 이 병을 생각하면 나선형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다. 참 피곤하고 힘들고 무서운 삶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에이자에게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그녀지만 친구가 있다. 데이지다. 스타워즈 마니아이자 팬픽을 쓰는 작가다. 아주 활발하고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만약 데이지가 없었다면 에이자의 삶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이 둘의 우정은 데이지가 곁에 있어주었기에 가능하다. 그녀의 쉴 새 없는 수다를 참아줄 사람이 많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 모르지만 아주 좋은 친구다. 이야기는 데이지가 하나의 제안을 하면서 시작한다. 그것은 데이비스의 아버지 피킷을 찾아서 현상금 10만 불을 받자는 것이다. 이 시도가 에이자를 다시 데이비스와 만나게 만든다. 사랑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시간에 찾아온다.

 

데이비스는 부정부패로 달아났고, 전 재산마저도 파충류에게 물려준 아버지를 두었다. 동생은 아버지를 찾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예민한 10대인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없다. 이때 찾아온 에이자와 데이지는 작은 휴식과도 같다. 어릴 때 캠프에 한 번 같이 간 것이 인연의 전부였던 이 둘은 서로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기에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의 달콤함도 세균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순간 불안해진다. 감정은 불안을 품은 강박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더 가까이 가고 싶고, 그에게 키스하고 싶지만 강박의 소용돌이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에이자는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손톱 밑에 상처를 낸다. 손톱으로 상처를 내고, 치료하고, 다시 내는 일이 반복된다. 세균에 대한 불안감은 손 세정제를 먹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약을 먹으면서 치료하면 될 텐데 이 약이 자신이 자신 아닌 것처럼 만들 것이란 불안감을 준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된다. 아니 불안과 강박증이 상황을 거꾸로 만든다.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공감하지만 감성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다. 작가는 이 상황을 멋진 문장과 인용과 구성으로 잘 이끈다. 흡입력이 좋다.

 

첫 포문을 연 10만 불의 상금은 데이비스가 집에서 찾은 10만 불로 간단히 끝난다. 아버지 찾기 대신에 준 돈이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인데 대학에 가기에는 부족하다. 데이지와 에이자의 선택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나중에 둘 사이에 잠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그리고 피킷 씨의 실종과 그가 남긴 메모는 하나의 수수께끼 풀이가 된다. 데이비스의 어머니 죽음과 아버지 실종이 아주 큰 상실이듯이 에이자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이 그렇다. 아버지의 구형 핸드폰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상실은 각자의 삶에 큰 상처를 남긴다. 사랑으로 이것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에이자는 ‘나’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늘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이 소설은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다. 마지막 문장은 나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정말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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