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팝콘북
이부키 유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단숨에 읽었다. 처음에는 <샐 위 댄스>를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다르다. 춤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점이 없다. 그리고 영화가 사교춤이라면 이번에는 발레를 다룬다. 주인공이 발레를 배워서 대회에 나가는 종류가 아니라 발레단의 공연을 돕는 역할이다. 그 발레단은 회사 사장의 딸 사라가 주연으로 활약한다. 공연은 단원들이 표를 팔아야 가능하다. 사라가 주연인 것은 회사에서 표를 많이 팔아주기 때문이다. 발레의 재능보다 다른 재능이 더 우선인 곳은 이곳 이외에도 많이 있다. 이런 냉혹한 현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각가의 인생을 이야기한다.

 

아오야기. 제약회사 만년 총무과장이다.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 합병한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회사 음료수의 모델인 발레리노 다카노가 연말에 회사가 지원하는 발레단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이 공연의 성공에 따라 회사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아오야기는 발레를 모른다. 다만 회사에서 가라고 해서 갈 뿐이다. 젊고 능력이 있다면 사직서를 던지고 나오겠지만 마흔일곱 살의 그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가족은 깨어지고, 이제 직장마저 불안하다. 다만 처음 간 발레 공연에서 발레리나의 멋진 공연에 빠진다.

 

유이. 학창시절 정상을 꿈꾸었지만 부상으로 꿈이 좌절된다. 여자 마라토너 마이의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데 그녀가 임신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 이때 발레리노 다카노의 트레이너가 되라는 지시를 받는다. 다카노는 허리를 다쳤고, 한 연예인의 난입으로 바람둥이 이미지를 얻는다. 그녀가 그에게 자신에게 몸을 맡겨 달라고 하지만 다카노는 거절한다. 자신이 더 잘 알고, 남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대신 그녀는 다카노의 운전수가 되어 그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 시작부터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다카노. 세계적인 발레리노다. 그의 몸으로 표현한 광고가 큰 관심을 끌었다. 회사의 스폰서로 자신이 배웠던 발레단의 주연으로 연말 공연하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가 다치는 등 문제가 생긴다. 아주 괴팍하고 독선적이고 여자를 밝힐 것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현실은 다르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몸은 노쇠화 된다. 젊은 재능들이 앞으로 나오는 시점이다 보니 언제 은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연말 공연에 주연으로 활약할 생각이 없다. 마지막 은퇴 무대를 생각해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발레에 무지한 중년의 총무과장과 발레리나의 몸을 모르는 트레이너가 부상당한 발레리노와 함께 공연의 성공을 위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 과정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다. 다카노가 출연한다면 매진될 것 같았던 표도 다 팔리지 않고, 아이돌그룹의 한 명이 발레단에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더 꼬인다. 그렇다고 이 공연을 방해하는 악당 무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를 내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새로운 발레 체조를 만들어 홍보한다. 이 사이사이에 이 세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작가는 이 과정을 과도하게 흥분하지도 긴장하지도 않은 채 풀어낸다. 곳곳에 작은 감정들을 심어놓으면서.

 

아오야기의 삶을 보면서 오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큰 개성이 없고 욕심도 많지 않은 그가 싫어 이혼한 아내와 달리 발레단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발레단 사람들에게 서툰 일을 잘 처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때문이다. 달필이란 소리를 듣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해 좋은 기획서도 만든다. 이 기획은 직장 상사의 몫이다. 이 기획 등으로 작은 갈등도 생기지만 사람들의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진다. 극단적으로 이 갈등을 표출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일은 없다. 어떻게 보면 조금 밋밋한 것 같은데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흥미를 유발한다. 각자의 노력과 열정과 동료는 유이의 학창시절과 다름없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이 소설은 큰 자극이 없다. 괴팍하고 이상한 캐릭터도 없다. 발레의 매력을 표현한 장면은 많지만 압도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현실에서 꽃 피우지 못하는 불운을 보여주기도 하고, 발레단의 현실적인 미래도 알려준다. 발레가 좋아 발레단에 들어왔지만 월급은커녕 회비를 내고 표까지 팔아야 하는 단원들의 모습은 냉혹한 현실이다. 알바까지 뛰어야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잘 발달된 근육과 바른 자세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의 꽃길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 작은 감정의 씨앗들이 뿌려진다. 화려하게 꽃피울 것 같지만 아직 알 수 없다. 아! 컴퍼니는 회사란 의미보다 발레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동료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중의적인 단어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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