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라이터
사미르 판디야 지음, 임재희 옮김 / 나무옆의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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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의 작품을 아주 가끔 읽는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은 작품이 있는데도. 지금까지 읽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인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들은 아주 놀라웠고 재미있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한국의 과거 모습이 보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무대가 미국이다. 어릴 때 이민 온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민자의 삶보다 그들의 현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대목들은 조금 낯설었다.

 

현재는 과거의 기록과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소설 속 세 명의 인도인들도 자신들의 과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은 역사학과 대학생 라케시, 소설가 아닐과 그의 아내이자 작가인 미라 등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라케시다. 대학 졸업 후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었지만 역사학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다시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아르바이트 요청 메일이 온다. 맹인 작가 아닐에게 신문 등을 읽어주는 일이다.

 

아닐과 마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다, 마리는 라케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도 여성의 모습을 가졌다. 연상인 그녀에게 끌린다. 작가 아닐은 그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그의 과거와 문체와 이야기에 빠진다. 이 소설 속에서 인도가 배경이 되는 몇 장면들은 바로 이런 과거 속 몇 가지 이야기들이다. 아닐이 어떻게 맹인이 되었는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가 되었고, 어떤 여성 편력을 거치게 되었는지 등이 그의 글들에서 나온다. 이 장면들도 이전에 읽었던 인도 소설과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현대적인 공간을 다룬 인도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인이란 설정을 지우면 대학원생과 작가와 그의 아내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 읽으면서 이들이 인도인이라서 생기는 선입견이나 편견 등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어릴 때 이민 온 이들이 자라면서 느꼈을 편견이 이 소설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과거가 나오지 않으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우면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가족과 과거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혼 아닌 이혼 상태인 부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삶이 성인이 된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삶들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 이런 과정 속에서 라케시는 자신의 삶을 하나씩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라를 만난 후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아닐, 아닐에게서 작가의 길을 배우려는 라케시, 아닐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미라 등이 엮이고 꼬인다. 이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은연중에 알려지지만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상황에서 일어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며칠이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변질된다. 삶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이외에도 작가는 몇 가지 관계를 조용히 암시한다. 라케시의 부모나 미라의 새로운 연인 등이 대표적이다. 노골적인 장면들도 있지만 이 암시와 여운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삶에서 명확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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