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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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 열네 번째 대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장 선호하는 문학상 중 하나다. 며칠 전 김별아의 에세이 한 편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이다. 단순히 수상작품이란 것만으로도 유혹적인데 더 끌리게 만드는 심사평이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어떤 '폼'도 잡지 않으면서 주제를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나아간다”란 평이다. 어떤 글이길래 이런 평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받은 책은 생각보다 얇았고,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주제에 대한 부분은 조금 머뭇거리게 된다.

 

스페이스 보이. 한 지구인이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간다. 나가기 전에 수많은 훈련을 받는다. 무중력에 적응하고, 중력을 벗어날 때 생기는 더 강한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주인공이 지구를 벗어나자마자 눈을 뜬 곳은 아주 낯익은 풍경을 가진 곳이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본 우주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이것이 단순히 이미지뿐이라면 만지자마자 사라지겠지만 촉감과 후각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고 칼 라거펠트를 닮은, 아니 똑같은 노인 한 명이 그 앞에 나타난다. 그가 바로 진짜 외계인이다.

 

이 공간은 외계인이 지구의 미적 기준으로 꾸며놓은 일종의 세트장이다. 저예산 영화의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와 별 차이가 없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인공 김신은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더듬는다. 외계인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김신의 마음을 읽고 그대로 세트장을 만든다. 그의 기억이 선명할수록 세트장은 더 세밀해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잊고자 하는 기억 속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뇌 속을 탐험하는데 기억과 감정이 엮인 곳을 발견한다. 질척이는 이곳은 그가 없애고 싶은 기억들이 살고 있다. 물고기처럼 움직이는 이것들을 잡아 죽이면 된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다르다.

 

김신이 우주에 머문 시간은 겨우 2주다. 실제 그가 산 곳은 세트장이지만 지구인들은 우주정거장 속에서 살고 있는 가짜를 영상으로 본다. 시간이 되어 다시 지구로 귀환해야 한다. 이때 외계인이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말한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세계최고의 축구선수나 로또 당첨이나 최고의 미남 등도 가능하다.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의식의 탐험을 더 부각시킨다. 개인적으로 마무리를 보기 전까지 외계인과 함께 의식과 기억을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뭐 그럼 훨씬 무거운 소설이 되었겠지만.

 

지구 귀환부터가 후반부다. 몇 년 전 이벤트로 위성궤도로 갔다가 돌아온 이소연처럼 그도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그러다 기획사와 손을 잡고 연예인처럼 활동한다. 빡빡한 인기 연예인의 일정을 소화하고, 베스트셀러를 내고, 인지도와 인기를 높인다. 사실 이 장면들을 읽으면서 앞에 말한 우주에서의 체류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인기인으로 바뀌기 위한 일정들이 현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본다고 해도, 그가 우주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추억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말이다. 이 생각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바뀌지만.

 

전반부가 조금 무거웠다면 후반부는 조금 가벼웠다. 그 포문을 여는 첫 부분은 귀환 후 방송에서 한 여성 엠씨가 그의 혈액형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그제야 느꼈지. 아, 드디어 빌어먹을 지구에 돌아왔구나.” 이것과 함께 허세와 자의식 부족 등으로 흐르는 대로 따라갔던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그래, 이제야 인간다워졌군.”이란 말을 들을 때 왜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그 앞에 나온 뜬금없는 과거의 사실 하나는 또 다른 재미다. 작가가 더 나아가지 않고 겨울의 문턱에서 멈춘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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