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시간 - 소설가 김별아, 시간의 길을 거슬러 걷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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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몸이 게을러져서 잘 걷지 않지만 한때는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한때는 종로와 광화문과 을지로를 두 발로 얼마나 자주, 열심히 걸어 다녔던가. 어느 순간 이 발걸음은 탈 것으로 바뀌었다. 몸이 무거워진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걸으면서 볼 것이 없어진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높은 빌딩이 많아지면서 도시를 걷는 사람들의 시선은 빌딩 숲과 차량으로 옮겨갔다. 바쁜 발걸음에 여유는 사라지고, 만남의 장소였던 서점은 조금씩 없어졌다. 노포들은 사라지거나 빌딩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 정취를 잃었고, 사람들은 이제 그곳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이런 장소를 작가는 표석으로 새롭게 되살렸다.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20년대와 30대를 보낸 종로와 광화문에서 제대로 한 번 눈길 주지 않은 것들 중 하나가 표석이다. 지나가다 본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머릿속에 담아놓지는 않았다. 아마 이 책에 나오는 몇 개의 표석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행 가서 본 수많은 표지처럼 순간의 알림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표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간략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곳에 있던 건물들은 사라졌지만 기록으로 남고 이야기로 남아 작은 표석으로 변했다. 뚜벅이의 발길은 그 흔적 속에서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길러낸다.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은 예전에 비해 엄청 영역이 넓어졌다. 사대문 밖의 일부만 한양이었던 것이 서울의 성장과 더불어 더 커진 것이다. 이 커지는 과정 속에 옛 건물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흔적만 살짝 남았다. 이 흔적 중 일부가 표석으로 표시되었는데 작가는 월간지에 연재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찾아간다. 19개월 동안 연재한 것이니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 시간의 변화는 글과 내용에도 조금씩 반영되어 있다. 모두 읽은 지금 가끔 책속에 나왔던 작가의 아들은 군대 제대를 했을 것이다. 이런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 시간 속에서 쌓여 있다. 그 중 일부를 표석과 표석을 찾는 과정 속에서 찾아내어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와 닿는 것은 당연히 어머니 이야기다.

 

50년 왕도였던 고도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한 외국인이 가이드북을 들고 와서 문화재를 찾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 이런 것이 있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다. 표석도 마찬가지다. 총 다섯 장으로 나눠 풀어낸 이야기는 고도의 흔적을 사료와 소설과 영화 등으로 연결되어 풀려나온다. 조금은 충격적인 백정들의 탈조선 행위는 ‘왜?’라는 물음보다 그 현실에 더 눈길이 갔다. 명성황후, 민비 등으로 불렸던 한 인물의 우상화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우리가 경계해야할 역사의 사실이다. 사도세자 부분에서 한때 내가 열광했던 음모론을 넘어 어머니로 다가간 것은 인간의 가장 본성을 건드린다. 모성. 아들을 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읽으면서 낯선 지명을 너무 많이 보았다. 지금도 지나가는 곳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그곳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란 것 정도는 안다. 다만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 표석을 보면 이전과 다른 생각으로 잠시나마 역사와 그 시대의 삶을 떠올릴 것 같다. 삶과 한 도시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신선하다. 무심한 일상을 깨운다는 문구처럼 최소한 읽는 동안은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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