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번이 세 번째 읽은 거 같다. 처음 읽었을 때만큼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 고베 지진을 배경으로 한 6편의 연작소설. 




# <다리미가 있는 풍경>

















 <다리미가 있는 풍경>이란 단편에서 잭 런던의 <모닥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읽어보고 싶은데 ebook으로 <모닥불을 지피다>라는 단편만 판매하는 거 같다. 



















 좀 더 검색해보니 <야성의 부름>이란 책에 <야성의 부름>과 <불을 지피다>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불을 지피다>는 잭 런던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소설로 꼽힌다고 한다. 꼭 읽어보고 싶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다. 



 미야케 씨는 곰곰이 생각했다. "불이라는 건 말이야, 그 형태가 자유롭지. 자유롭기 때문에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무엇으로든지 보이거든. 준코가 불을 보고서 평화로워진다면, 그건 준코 속에 있는 평화로운 마음이 거기에 비치기 때문이야. 그런 걸 이해할 수 있겠어?" -p064


 "할 수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어. 하지만 대개는 할 수 있지. 마음만 담아서 한다면, 대개는 할 수 있어." -p064

 

 

 <다리미가 있는 풍경>은 좀 어려운 작품이다.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소설이다. 



#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가슴속에 있는 상념을 상대방의 손에 전달하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내릴지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형태가 없는 것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고 서로 전할 수 있는 겁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추는 겁니다. -p112


 


#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개구리 군은 고개를 끄떡였다. "이것은 책임과 명예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나와 가타기리 씨는 지하에 잠입하여 지렁이 군과 맞설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만의 하나 싸움에 져서 목숨을 잃어도 누구도 동정해주지 않습니다. 만일 성공적으로 지렁이 군을 퇴치할 수 있다 해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아요. 발밑 저 아래쪽에서 그런 싸움이 있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오직 나와 가타기리 씨뿐이에요. 어떻게 되든 고독한 싸움입니다." -p169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이기는 방법보다 그 패배하는 방법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p179 


 단편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좋아했다. 별점 다섯개를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작품, 가장 인상깊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 였다. 아마 이번이 3번째로 이 단편집을 읽는 거 같다. 처음과 같은 감흥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무엇이 변한 건지 모르겠지만.


 

 # <벌꿀 파이>


 아마도 네겐 너 나름대로의 까다로운 살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내 눈엔 바지를 입은 채 팬티를 벗으려 하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p219

 

 무척 재밌는 표현이라 적어 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설을 쓰자, 하고 준페이는 생각한다.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껴안고, 누군가를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하지만 지금은 우선 여기에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영문 모를 상자 속에 넣어지게 해선 안 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 -p236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일 것이다. 하루키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푹 빠져서 재밌게 읽었다. 몇몇 작품들은 장편소설화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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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2-28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댓글 창에 쓰다가 뭔지 급한 일이 있어 닫았네요.
다시 읽으면 더 좋은 책도 있고, 그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잘 모르겠는 책도 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4-03-04 13:38   좋아요 1 | URL
요즘 제가 좀 문제인 거 같아요ㅠ 심지어 예전보다 식욕이나 음식 맛도 덜해요ㅠㅋ

일단 몸 컨디션, 건강부터 끌어올려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3-04 14:37   좋아요 1 | URL
건강이 제일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문유석 작가의 에세이는 다 읽었다. 소설, 드라마 대본도 쓰셨는데 궁금하긴 하다. 나중에 기회되면 읽어봐야겠다. 헌법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교양서였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의 경우는 어떨까. 2011년 7월 청소년 캠프에서 무차별 총기난사 테러를 감행하여 무려 77명을 살해한 자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21년이었다. -p142


 궁금해서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다. 검색된 기사들을 보다 이건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77명을 살해했는데 최고 형량 21년? 21년 후면 사회로 나온다는 이야기인가? 좀 더 찾아보니 5년에 한 번씩 형기 연장을 무한정으로 결정 할 수 있고, 반인륜 범죄 행위가 적용되면 직영 30년까지도 선고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하나 문제는 그가 수용되어 있는 교도소 시설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방3개, 샤워시설 2개, TV, 게임기, 책, 신문, 컴퓨터 등이 지급된다고 한다. 직접 음식을 조리하거나 빨래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독방 생활을 하다가 독방이 인권 침해적이라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했다. 


 이게 말이 되나 싶다. 77명을 살해하고 안락한 교도소에서 TV보고 게임하고 책보고 컴퓨터하고. 모르겠다. 어리둥절하다.



 새로운 범죄가 끝없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고 미제 사건을 안고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의도 한정된 자원인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범죄의 중대성에 따라 일정 기준을 정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안타깝지만 사건을 종결시킬 수 밖에 없다. -p148 


 이해는 가지만 납득은 되지 않는다. 굳이 사건을 종결시킬 필요까지 있을까? 언제 어떻게 증거가 발견될지 모른다. 일본의 경우 2010년에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했다고 한다. 영국 역시 살인죄 등 중범죄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 찾아보니 우리나라도 2015년에 태완이법이 통과되어 법정 최고형인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고 한다. 이게 맞지.



 요약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헌법질서에 내재한 '인본주의' 와 '공리주의'는 형벌에 대해 '필요 최소한'의 관점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이 인간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 라면 형벌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의' 인 것이다. -p150 


 


 













 하버드대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 읽어보고 싶은데 품절이다. 중고 가격이 사악하게 비싸다. 이북이 있는데 이북으로라도 읽어야 하나. 다행히 도서관에 있다! 빌려봐야지!



 응보는 단순히 국민 감정에 휘둘리는 사법 포퓰리즘이 아니다. 오히려 사법이 해야 할 본질적인 기능일 수 있다. 

 법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탁이 아니다. 법은 인간을 위한 도구다. 법은 인간사회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중략) 대중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법조 엘리트들이 먼저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p159

 


 















 존 롤스의 <정의론> 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의 스승이다. 워낙 유명한 명저라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782p에 달하는 걸 보니 부담이 된다. 그래도 한 번 도전은 해보고 싶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답일지도 모르겠다. -p205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맺으려 한다. 공존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주인공 '선'은 다섯 살 남동생 '윤'이 밤낮 친구 연오에게 맞으면서도 또 언제 싸웠냐는듯 다시 같이 노는 꼴을 보니 열불이 난다. 그래서 채근한다.


 선: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리고 같이 놀면 어떡해?

 윤: 그럼 어떡해?

 선: 다시 때렸어야지.

 윤: 또?

 선: 그래, 걔가 다시 때렸다며. 또 때렸어야지.

 윤: 음...... 그럼 언제 놀아?

 선: 어?

 윤: 연오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오가 또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나 그냥 놀고 싶은데.


 천진난만한 다섯 살 아이 윤이의 말이 어쩌면 헌법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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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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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유석 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 이후로 좋아하게 된 작가다. 신간을 기다렸는데 21년에 나온 걸 모르고 지나쳤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만족스럽다. 뛰어난 글솜씨. 내가 좋아하는 문체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자신의 견해를 솔직히 그리고 확실히 밝힌다. 그리고 두괄식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읽기 편한 글이 좋다. 글을 잘 쓰면 어려운 개념도 쉽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글 잘 쓰는 과학자들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개념을 할머니나 어린 아이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본인이 잘 모르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문유석 씨의 글은 쉽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좋은 작가다.


 나는 미괄식, 만연체가 싫다. 진짜 그런 글 읽거나 그런 화법으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답답하다. 두괄식이 좋다. 듣는 사람이 괜찮 오해를 하거나 잘못 해석할 여지를 줄여준다. 문유석 씨는 두괄식으로 말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시원하다.  


 독서 모임에 이 책을 추천했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이 작가를 알고 있었고 좋아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독서 모임에 운영진을 맡고 있다. 내가 선정하는 책들은 대체로 참여율이 저조하다. 이 책도 참여율이 저조하다. 책 선정한 게 조금 늦은 감이 있기도 했고, 3월 첫째주 연휴라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확실히 평소에 들어본 책, 유명한 책들이 참석율이 높은 거 같다. <데미안>, <변신> 이런 작품들.


 책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쓸데 없는 이야기만 했다. 뭐, 항상 이런 식이지만. 


 이 책은 법에 관한 책이다. 법 중에서도 특히 헌법과 법치주의를 이야기한다. 더 정확하게 헌법과 법치주의의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헌법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생겨났는지,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떤 바를 지향하는지 말해준다. 


 문유석씨는 헌법의 역사적 배경부터,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헌법의 미래까지 이야기한다. 그는 독서광인 만큼 역사, 과학에도 박식하다. 


 헌법의 구절들을 읽으면 나는 가슴이 떨린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헌법에 담긴 숭고한 뜻에 감동하고 그 한 줄이 쓰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는지 생각하면 울컥하게 된다. 


 뉴스를 보면서 법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 다소 이해가 되었다. 아직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지만 헌법의 변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나도 더 잘 하고 싶지만 세상 일이란 게 어쩔 수 없다고요!'


 세상 일은 단순하지 않다. 문유석 씨도 비판하고 많은 학자들이 경계하는 바이지만 요즘은 극단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보면 세상이 정말 극단으로 나뉘는 거 같아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게 흑과 백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타협과 관용, 중용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이념도 극단으로 치닫으면 위험하다. 공산주의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문유석 씨의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그의 책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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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6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연히 수다 떨다 헤밍웨이의 문체를 하드보일드라 하니 뭐니 짧으니 뭐니 했는데
고양이라디오님 리뷰 읽으면서 문장 수업 해야겠다는 결심을!

<Dune2>예매하셨죠?^^
너무나 설레고 떨리고 ㅋㅋㅋ저는 4차 관람하게 될 거예요 ㅎ

고양이라디오 2024-02-26 23:14   좋아요 0 | URL
전 용아맥 일단 노려볼까해서 기다려볼까해요ㅎ 3-4주 기다리면 되겠쥬ㅎ?

못 참겠으면 빨리 봐야죵ㅎ
 



 평점 7.5

 감독 박찬욱

 출연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니콜 키드먼

 장르 스릴러



 음, 뭔가 애매했다. 엄청 공포스럽지도 않고 시나리오가 미친듯 하지도 않고 연기도 그렇고, 몰입감이 크지도 않고. 전체적 준수하긴 한데 임팩트가 작았다. 음악과 연출은 기깔나긴 했다. 


 박찬욱 감독 작품이라 찾아봤다. 역시 박찬욱 감독 작품다웠다. 네이버 댓글처럼 변태적이다. 니콜 키드먼이라는 유명배우가 나와서 놀라웠다. 배역을 잘 소화해서 연기했다. 


 미아 바시코브스카는 잘 모르는 배우인데 주연급 배우인 거 같다. 매튜 구드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 어디서 봤지? 하고 생각했는데 필모를 찾아보니 <왓치맨>이란 영화에서 봤었다. 


 초반부가 좀 지루했고 박찬욱 감독 영화치고 많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맛이었다.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영화. 




 평점 10 : 말이 필요없는 인생 최고의 영화

 평점 9.5: 9.5점 이상부터 인생영화. 걸작명작

 평점 9 : 환상적주위에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 수작

 평점 8 : 재밌고 괜찮은 영화보길 잘한 영화

 평점 7 : 나쁘진 않은 영화안 봤어도 무방한 영화범작

 평점 6 :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6점 이하부터 시간이 아까운 영화

 평점 5 : 영화를 다 보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영화

 평점 4~1 : 4점 이하부터는 보는 걸 말리고 싶은 영화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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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간만에 한국소설을 읽었다. 무척 재밌게. 생각 외로 문장이 무척 좋았다.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 소설의 주제의식도 좋았다. 모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모순들로 가득찬가? 아름답지만 한 편으로는 얼마나 서글픈가. 




 장미꽃을 주고받는 식의, 삶의 화려한 포즈는 우리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었다. -p28


 하루키는 말한다. 문장,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렇다. 아무리 좋은 내용, 좋은 스토리, 좋은 등장인물이 있으면 무엇하랴. 그것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심장을 두드리게 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면. 양귀자씨 문장이 좋았다. 좋았던 문장들이 많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p51


 아! 너무나 공감갔다. 나 또한 그렇다. 흔히 말을 길게 하면 말을 잘한다고 본인도 주위 사람도 착각하는 거 같다. 나는 반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뻔한 표현으로 길게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말을 끊을 수도 없고 딴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힘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일에 어머니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나의 실수였다. 뽀글래 미장원이란 명칭에 대해 우리 식구는 이미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너무나 오래된 어머니의 단골 미장원이어서 지금은 그냥 하나의 이름일 뿐이었는데...... -p139 


 웃기면서 슬픈 장면이었다. 가난은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다. 촌스러운 파마, 촌스러운 이름. 예전에 어딘 가에서 본 글인데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척 사람들을 속이다가 그만 음식점에서 탄로 났다고 한다. 음식점에서 주로 서민들이 먹는 음식을 주문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가 나영규이든 김장우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이든 간에, 이 사람과 결혼하고야 말겠어, 라는 결심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지금 결혼하여 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p165 


 나 역시 몹시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결혼하고야 말겠어라는 결심이 생기는 것일까? 언제 어떻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p173


 습관적으로 '까' 뒤에 ?를 쓰다가 지운다. 저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p220 

 

 공감갔다. 잘 보이고 싶은 상대에게는 자신의 단점이나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상대에게는 스스럼없이 단점,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어디 있으랴. -p229


 모순적이다. 인생에는 행복 뿐 아니라 불행, 고통도 필요하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p296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모두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어리석음과 모순을 안고서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이 또한 모순이리라.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 -p302

 

 위는 <모순>의 창작노트 곳곳에 쓰인 복합어 들이다.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간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p303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오른다. 모든 것에는 반대급부가 따른다. 항상 반대 편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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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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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16: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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