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서는 채사장의 여섯 번째 계단 이상과 일곱 번째 계단 현실을 만나보겠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한상 대립하는 문제입니다. 이 둘을 조화롭게 통합해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여덜 번째 계단은 삶입니다. 먼저 이상의 계단부터 올라가봅시다. 

 

 채사장은 군대에 들어가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을 만납니다. 그는 안 병장이라는 인물입니다. 안 병장은 채사장에게 책이나 철학에 대해 물었고 채사장은 그에게 삶에 태도에 대해 묻습니다. 아래 글을 읽고 저의 태도를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귀감이 될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은 그의 전투화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안 병장의 전투화는 항상 깨끗했다. 당장 구보를 나갈 때도, 흙바닥에서 작업이 예정되어 있을 때도 그는 직전에 전투화를 닦았다. 내가 물었다.

 "어차피 곧 더러워질 텐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안 병장이 경계근무명령서를 확인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저도 예전에는 안 그랬지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도 힘들게 하고, 되는 일도 없고, 왜 힘든지 생각했더랬지 말입니다. 생각하다 보니까 보람도 성취도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보람도 성취도 없나. 그랬더니 제가 모든 걸 대충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군대 일이란 게 그렇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구색만 맞추려고 한 거지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군 생활 전체를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역해서 사회에 돌아가면 지난 2년은 버린 시간이 되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걱정이 됐습니다. 그러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2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하찮은 시간으로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지 말입니다. 나한테 선물해야겠다. 군 생활의 2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선물해야겠다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뭐, 구두부터 닦기 시작했습니다." -p209


 채사장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안 병장에게 체 게바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래는 체 게바라가 29세에 혁명군을 이끌고 쿠바 상륙작전을 하면서 벌어진 일화입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체는 목과 옆구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정부군이 바짝 뒤를 쫓고 한 손으로는 목을 지혈해야 하는 상황. 체의 앞에는 탄약상자와 구급상자가 놓여 있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한 개만을 집을 수 있는 선택의 상황이다. 그는 후에 이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의약품인가, 탄약인가? 나는 누구인가? 의사인가, 혁명가인가?" 체는 주저하지 않고 탄약상자를 선택했다. -p224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는 혁명에 성공해 쿠바에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합니다. 하지만 혁명으로 인해 미국계 기업들은 손실을 입게 되고 이어 미국의 보복이 시작됩니다. 첫 공격은 막아냈지만 미국의 재침공을 우려한 피델과 체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소련의 핵미사일을 쿠바에 설치해줄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소련은 이에 응했고 제3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르렀던 '쿠바 미사일 위기' 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가 있었다니, 핵전쟁의 위험이 있었다니 오싹하지 않으신가요? 


 당시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시대였다. 하지만 서서히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특히 핵무기 사용 능력에서 미국은 소련을 압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설치 요령은 소련의 핵전력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소련은 미국의 턱 밑에서 미국을 압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62년 7월부터 소련은 쿠바 내에 미사일 기지 건설에 착수했다. 하지만 10월 14일, 미국의 U-2 첩보기에 의해 건설 중인 미사일 기지가 발각되고 세부 사진이 공개되었다. 당시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강경하게 대응했다. 쿠바의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이 미사일 기지 완공을 강행할 경우에는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전 세계가 세계대전의 공포에 휩싸였다. 10월 28일. 소련이 극적으로 쿠바 미사일 기지 철수를 발표함으로써 극단으로 치닫던 대규모 핵전쟁 위협은 해소되었다. 소련의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그 대가로 미국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소련의 턱 밑인 터키에 설치된 미국의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할 것. 둘째,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 -p229


 '쿠마 미사일 위기' 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전후맥락은 몰랐습니다. 이번에 자세하게 알게 되니 더욱 재미있습니다. 존 F. 케네디는 쿠마 미사일 기지를 발견하고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미국 턱 밑에 핵미사일 기지가 있다는 것은 자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입니다. 이를 가만히 방관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미사일 기지를 타격하면 이는 핵전쟁, 제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습니다. 다행히 존 F. 케네디는 옳은 선택을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아찔한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채사장은 체 게바라가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안 병장에게 말해줍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이상적인 이들이 이상적인 이유는 그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서가 아니야. 그들의 내면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지. 체 게바라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쿠바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야. 그는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를 했어. 콩고와 볼리비아에서는 참혹하게 패배했지. 마찬가지로 그가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야. 그가 군의관의 신분으로 쿠바에 상륙했을 때, 혁명군들은 그의 지위가 아니라 그의 용기와 신념을 알아보고 그를 좋아했어. 이상적인 인간은 대중의 평가, 혹은 사회의 인정과는 무관해. 그런 사람은 각자 자기 세계의 범위 안에서 영웅이 되는 거야." -p239

 

 이상적인 인간, 영웅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추종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사회가 혹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밥을 팔아 평생 번 돈을 기부하고 떠나는 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찮게 듣게 됩니다. 그리고 평범한 순간이 아닌 진짜 위기의 순간에서 영웅은 드러납니다. 칠레 탄광사고, 155명의 탑승객 전원 무사히 구조된 허드슨 강 비행기 추락사고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영웅들이 각자의 세계 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주위에도 잘 찾아보면 묵묵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영웅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채사장은 군대에서 나왔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배우고 꿈꿔왔던 것들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채사장은 돈을 쫓습니다. 그는 조급해져갑니다. 


 지금은 안다. 이렇게 불안하고 조급한 시간들도 개인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간임을 말이다. 우리는 선입견이 있다. 내면의 성숙은 고결한 방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선입견. 동서양의 고전을 읽고, 어려운 철학책과 씨름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사색하는 아름다운 방법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절반의 배움이 있다. 고결하지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세계에서의 경험들. 부당함에 굴복하고, 부조리에 타협하고, 옳은 주장을 꺾고, 스스로의 초라함에 몸부림칠 때에만 얻게 되는 그런 배움이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게는 이런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나와 타인의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숙한 어른이 욀 수 있다. -p250


 그동안 저는 너무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을 읽는 것만이 저의 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오로지 시간을 책 읽는 데만 쏟았습니다. 물론 이는 옳은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과정을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현실을 회피하고 책으로 도피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경험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현실 앞에서도 당당해야겠습니다. 나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채사장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다시 꺼내든 책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이었습니다. 


이 책은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을 목적으로 집필된 책으로, 1848년 1월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당시 마르크스가 30세, 엥겔스가 28세였다. 이 혈기왕성한 두 청년이 작성한 3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자는 곧바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광범위하게 읽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사회과학 서적들 중에서 이 책만큼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는 책은 없다. -p257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보다도 우리에게 더욱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본주의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자본중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주장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입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부르주아의 편에 섭니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편에 섰습니다. 그의 사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유효합니다. 우리는 그의 사상 덕분에 최저임금을 확보하고,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줄이고, 아동 노동을 법적으로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자 조합을 결성할 근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노동자인 우리들은 그의 사상을 위험시하고 외면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왜 국가는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금지시하는 걸까요? 국가는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사람은 물대포로 죽입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국가적 범죄를 저지를 기업의 총수는 무죄사면해줍니다. 국가는 누구의 편에 서있는지는 국가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국가는 국민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 부르주아 계급만을 차별적으로 보호하는가?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근현대 국가의 형성 자첵 부르주아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말이다. 국가가 부르주아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된 단체가 국가다. -p262


 중세의 봉건제를 끝내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주도한 것은 부르주아 계층이었습니다. 돈은 많지만 계급은 낮았던 그들은 혁명을 통해서 근대 국가를 일궈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건 자본 즉 돈입니다. 돈 앞에서 정치, 언론, 사법까지도 그들의 하녀가 됩니다. 


 이상과 현실, 체 게바라와 칼 마르크스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여덜 번째 계단은 삶입니다. 이상과 현실 모두 삶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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