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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자화상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박홍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평점 :
"화가의 가슴에서 꺼내온 가장 내밀한 고백"
인간이 동물과 차별화되는 점은 풍부한 감정과 그 표현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쁘고 슬픈 감정에 따라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도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분되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책에서도 밝혔지만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해 오면서 오랜 기간 동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열등하고 나약한 존재로서의 모습으로 불리하게 작용해 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숨기기에 바빴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게 되면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되며 그것은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보며 깨닫게 된다
<감정의 자화상>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내밀한 나의 감정들을 세상의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 직접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책이다
누구에게도 내 보일 수 없었던 여러 형태의 감정들과 솔직하게 마주 서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길로 이끄는 시간이었다
들춰내고 싶지 않은 아픔과 상처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할 것이다
그것들을 어둠의 공간에 오래 방치할수록 이해되고 치유가 되기는커녕 생명력을 갉아먹는 유해한 존재로 점점 더 몸집을 불리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진두지휘하게 한다
스스로 자기감정의 상태를 파악하고 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의 내 모습을 꿈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감정의 자화상>은 열여덟 개의 자화상과 열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화가와 작가들의 은밀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만나고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삶의 고민과 고통, 의지와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잘 알려진 화가의 자화상과 각각의 감정과 연관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전소설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아냈던 그들의 열정적인 숨결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화가가 그린 자화상은 자기 내면을 관찰하고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기 기만을 통해 감정을 숨기면서 허세를 부리고 은폐하기도 한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기만으로 위장하고 도피하는 행태를 보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그들이 살아오며 직접 겪은 사회의 문화와 역사의 생생한 현장,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재해석해 담아내면서 감정의 여러 형태인 분열, 기만, 연민, 절망, 욕구, 열망, 허무, 울분, 상실, 고독, 공포 등을 표출해 낸다
소설은 비교적 제한적인 자화상의 표현에 반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다뤄지는데 현실 속 우리들의 삶의 여정이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 피부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실레의 <이중 자화상>에서 보여 주었던 정체성의 분열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성적 욕망과 정신적 절제 간 갈등으로 골드문트에게 분열되는 감정으로 투영된다
황소의 작가 이중섭이 남과 북에서 겪은 억압과 이로 인한 정신적 상실감에 비교될 수 있는 소설로 최인훈의 <광장>을 연결해 놓았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성폭행에 대한 고통과 울분의 감정은 피해 여성에 대한 전통 사회의 왜곡된 편견을 보여주는 <테스>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가로서 작가로서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그들 삶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그림과 글을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그림과 문학을 감상하는 포인트를 짚어 주기 때문에 그들과의 감정적 교류를 이끌어 주며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자화상과 소설 작품의 남다른 해석을 통해 그 동안 몰랐던 그들의 은밀했던 사생활과 시대적 배경, 상황 등을 알 수 있어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 소개된 화가 중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지금껏 접해왔던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다
오래전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프리다 칼로.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끔찍하고 섬뜩했으며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었다
큰 사고와 남편의 여성 편력, 유산까지 더해지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일생을 살아 낸 그녀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 아픔과 고통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상을 지배하는 고통에 침잠하지 않고 자기 연민의 감정을 능동적으로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로 승화시켜 그림에 녹여냈다
이쾌대, 이중섭 등 우리나라의 작가들을 소개한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들의 작품에는 시대적 상황과 이데올로기로 인해 창작의 자유를 통제받고 억압받으며 고뇌하면서 상실감과 더불어 현실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하는 열망 또한 담겨있다
현실의 고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을 마감한 이중섭 화가는 아픔 그 자체다
르누아르는 질병이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오히려 밝은 주제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에 녹여냈다
아름다운 분위기의 그림에 매료되었었는데 육체적 고통을 인내하면서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점과 고통스러운 날에도 미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그에게 존경과 더불어 진한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감정의 자화상>은 지금껏 접해왔던 다른 미술 작품 관련 도서와는 차별성이 느껴진다
현실을 반영한 그림과 문학의 유기적 연관성을 매개로 개인적인 심리와 감정에 집중했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내 감정을 살피고 대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화가와 작가들이 표현한 내면의 감정들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 혹독하고 예민하게 굴었구나
내 감정표현을 부끄럽게 여겨온 것에 대해 미안해지고 측은한 마음이 든다
좀 더 솔직하게 나를 내보이는데 주저하지 않고 겁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과 누군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감정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결국 '나', '살아 있는 자신'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와 연계된 다수의 문학 작품을 접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는 것도 좋았다
일상의 모습들을 들여다보면서 화가와 작가들의 가치관이나 문제의식에 접근해 보면서 그들이 표현해 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내밀한 고백에 귀 기울여본다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캔버스와 종이 위에 표현해 냈듯 나 또한 직접 표현하기 힘든 것들을 글이나 그림을 통해, 아니면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의 삶은 소중하니까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진실한 대화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