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작가구나 싶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감정들 생각의 가닥 가닥들을 섬세하게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보고 묘사해낸다. 그 감정과 생각에 경중이 있지 않고 앞뒤가 있지 않음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 마음도 그 맞은 편의 다른 마음도 다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작가는 말하면서 은근하고 강단있게 그럼에도 옳은 방향은 이렇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 마음이 참 따뜻하다.

 

내가 누군가와 연대한다고 믿는 순간에도 내 속에 수만가지가 혼란스럽게 고개를 내민다. 우월한 위치에서 시혜적인 마음

한켠 이것이 전부 진실일 리 없다는 의심

그 의심을 감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믿는 신념들

나의 지적 능력에 대한 관신

이건 내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죄책감

내가 뭘 안다고 나서는 걸까 하는 소심한 두려움

그렇기에 도망가도 괜찮다 누군가 대신하지 않을까 하는 비겁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한다는 무모한 정의감까지

한가지 행동에 존재하는 수만 갈래의 마음들 그렇게 나는 나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지 못해, 단단한 믿음이 없어서 갈등한다.

어떤 한 갈래의 내 마음이 타인의 다른 갈래의 마음가 만나서 갈등을 만들고 마음은 서러움과 부딪친다. 상처입고 웅크린다.

내 마음을 내가 정확히 이름 지을 수 없다 선한 사람이길 바라며 동시에 무엇도 손해보고 싶지 않고 가난한 내것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비겁이 부딪치면서 타인의 속물스러움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혐오한다. 그 상대의 속물스러움은 내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불행을 절박한 상황을 들으며 나는 판단하거나 충고를 해주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상황을 잘 모른다. 어쩌면 그는 자기가 유리한 상황만을 내게 말하고 편을 들어달라고 하고 도와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순수한 중립이란 없다. 누군가는 상처를 입게 되고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그 놈의 중립이니까. 나는 완벽하게 그 사람의 편을 들고 싶다. 그가 틀렸더라도 내가 속았더라도 이용당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순간 그의 편이 되고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등을 쓸어주며 니 잘못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렇듯 그도 그렇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실 자기가 잘못이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크든 얼마나 작든 내게도 티끌이 있음을 안다. 다만 모른 척 할 뿐이고 아니라고 우기고 싶을 뿐이고 속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아는데 적어도 나는 속일 수 없다. 정말 완벽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그냥 나는 그 판단에 눈을 감고 편을 들고 만져주고 위안을 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타인에게 인정받고 공감받고 나면 내 잘못을 들여다 볼 용기를 낼 수 있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한 발 내디딜 힘을 얻을 거라 믿는다. 모두가 찾아와 도움을 청하고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마음을 먹고 실행하는 순간 그는 자기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짧은 경력의 상담사는 그렇게 기도하며 상담실로 들어간다.

 

갈등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는 매끈한 현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끔찍하다.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어떻게 갈등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을까?

알수록 어려운 타인이고 모를수록 관대할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고 편안하기만 할까? 제대로 갈등을 겪고 제대로 부딪쳐서 너와 내가 뭐가 다른 건지 이건 과연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다투고 고민하고 끝을 각오하고 덤비는 상황을 맞지 않고 그냥 일방이 참고 견디는 그런 매끈한 화목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엄마를 50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나는 엄마를 모른다는 걸 알았다.

엄마도 나를 모른다.

엄마가 판단하고 불렀던 말이 없어 속을 알 수 없고 삐딱하기만 아이를 그동안 나라고 여겼다.

내가 문제라고, 다른 모두는 닮아서 이해하고 공통점이 있는데 나만 불편하고 어색하고 쉽게 입을 열기 힘들었던 관계가 모두 내탓이라고 생각했다.

고칠 생각을 하고 노력한 건 아니었지만 나도 그들과 정말 절실하게 닮고 싶었다. 차라리 그들을 닮아서 편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그건 아니라고 자꾸 부정되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살고 싶고 저렇게 서로 공감하고 편했으면 했다.

늘 내 선택은 틀렸다. 끝에 가면 뭔가 이상하게 뒤틀리고 어렵고 아니었다. 그때 그렇게 말릴 때 말을 들었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내 속에 가득하면서도 나는 허세가 가득했다. 나는 지쳐갔고 이제 두 손을 들고 나 좀 살려달라고 이제라도 어떻게 하면 당신들과 같아질 수 있느냐고 매달리고 싶으면서도 더 등을 돌리고 괜찮은 척 강한 척 못된 척 했다. 내가 한 선택이 틀렸다는 건 결국 그 결과를 오롯이 내가 안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틀린 문제는 내가 고쳐야지 두 손들고 남에게 치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만 안고 쌓아갔고 엄마는 내가 당신을 무시한다고 잘난 척한다고 단정하면서 너는 강하니까 괜찮으니까 하는 마음에 무심하게 돌을 던졌다. 물론 던지는 이는 그게 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쉽게 다쳤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진짜 괜찮고 강하고 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봐도 정떨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자기가 낳고 기른 자식도 모를 수 있다.

가장 친밀한 관계 엄마와 자식도 서로 모른다.

서로 잘 안다고 내가 아는 만큼 상대도 나를 안다고 믿으면 앞뒤 자르고 툭 뱉는 말들 행동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심함, 그런 것들이 서로에게 비수가 되어 오해가 깊어졌고 상처는 깊어갔다. 내 속의 여러 갈래의 마음들

내가 못되서 그들이 베푸는 선한 마음을 속물적인 시혜라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선한 마음을 베풀었음에도 그 마음은 어디다 갖다 버릭 그들이 주지도 않은 모멸감을 받아들고 부르르 떨었다. 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 모멸을 나혼자 받아들고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삐뚤어졌을까?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50년이 지나 나만 잘못 생각하는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는 없겠지만 선한 마음이라 믿었겠지만 받는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 짧은 생각이 모멸감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도착해 있는 자리가 있다. 아니 아닌가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을까 나도 모르게 둔감해졌고 안전만 추구하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누군가를 배재했을까?

이런 것이었나? 이런 것이었구나. 사실은 별 것도 아닌데 그래서 별 거였구나.

 

우리는 바이링궐이다. 우리 말은 반쯤은 자신의 것이지만 반쯤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싸우려다 싸울 대상을 변호하여 주저앉는다.

그리고 나서 성내고 괴로운 마음이 되어 자신을 때려 기어이 피를 내곤 한다. afl 싫어도 우리 입에선 자꾸만 아줌마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그런 말이.

<작은 마음 동호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건 이상한 말이었다.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는 말이지만 몹시 편리하게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말이었다. 너무도 불공평한 말이었다. 그러나 승혜에게는 한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 이전에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꼭 해야하는 칼질같은 말이기도 했다.

 

미오가 선어너럼 내뱉었던 너는 몰라라는 말에 담긴 무서움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인지 승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 말은 심연의 말이었고 그것을 똑바로 감당하기엔 승혜는 너무 젊었다. 나는 무엇을 모르는 것일까 얼마나 모르는 것일까 미오 또한 나를 얼마만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승혜는 무서웠다. 그래서 무서움의 크기만큼 유치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승혜만큼 미오 역시 무서워하고 있었다. 승혜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그 하나하나의 작은 행동들이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는 것은 또 아니어서 그렇게 젊은 두 연인은 서로를 물고 뜯고 눈이 빨개질 때까지 울음을 터뜨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야. 아마 그건 우리가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닐거야.

 

그렇게 궁금하면 네가 누나에게 나중에 다시 물어볼 수도 있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렇지만 네가 나중에 다시 물었는데 누나가 대답을 할 준비가 안 되있거나 대답을 전혀 하고싶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면 억지로 물어보면 안되는 거야.

 

이런 맛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심심하고 슴슴하고 대단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맛이었다. 그 아무렇지도 않음 때문에 실망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별 것 아님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승혜와 미오>

 

 

나는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아우성을 속에 품은 채 진짜와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고 듣고 짐작하고 취급하는 세상 속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괴리감과 말하고 싶은데 입을 다물어야 하는 수두룩한 순간들과 그런 고립 상태와 엄마와 재윤은 내내 싸워왔던 것이다. 나는 어떤 것과도 그런 식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거대하고 절박한 질문들은 아니어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떤 막막한 심정은 내게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치부터 밤까지 그것의 조각들이 내 몸속을 작은 반딧불처럼 날아다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꺼지는 광경을 느리게 느리게 지켜보곤 했다.

<마흔셋>

 

 

누가 옳고 그런지 판단과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할 능력도 자격도 없어요.

내게 온 그 사람은 말을 듣고 공감하고 편들면서 온전히 그가 나를 믿고 말하는 그 순간 그 동안은 그 사람 편이 되어 주고 싶어요. 어쩌면 본인이 가장 잘 알거예요. 이건 전적으로 그 사람 잘못만은 아니다. 내가 빌미를 주었을 수도 있고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져서 내 마음이 달라져서 미움 때문에 이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모든 마음을 뭉뚱거려서 나는 그 사람편이 되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오롯이 존중해준 내 마음 그 경험이 본인이 앞으로 발을 내디딜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며 욕심이라면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그냥 그 순간 내가 이용당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 편을 들고 싶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딱 이정도밖에 안되니까요. 더 이상은 나도 무섭습니다.

 

알고 있는 사람의 성폭력 피해사실 앞에서 나는 왜 도리어 망설이게 될까

그 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누군가 편을 들어준다는 것 설령 그가 아주 가깝고 친밀하고 믿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전부를 걸어야 하는 일 일수도 있다. <피클>

 

 

믿어야겠죠. 선한 마음에는 아무 힘이 없다고 그건 아주 작고 연약한 거라서 어떤 무서운 일도 일어나게 할 힘이 없다구요. 그래서 우리가 지켜줘야 하는 거라고요.

 

위기에 처한 타인을 보면 사람은 미래같은 것과 상관없이 구하려고 몸을 던지게 마련이고 그는 그 본능에 충실한 뒤 자신 안에서 어떤 일관성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을 뿐이다.

지금 이 세상은 너무도 병들어서 우리는 타인의 선의 뿐 아니라 자신의 선의까지 의심하고 그것을 망상의 위치까지 격하시킨다. 그런 지경까지 온 것이다. 정말이지 그래서는 안되는 지경까지.

<이웃의 선한 사람>

 

약속해 어떤 가정법도 사용하지 않기로

그때 무언가를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로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해

가정법은 감옥이야. 그걸로는 어디에도 닿을 수 없어.

나는 현재를 살거야. 과거의 형벌을, 잘못 내린 선택의 총합을 살지 않을거야. 기억이라는 보석속에 갖혀 빛나는 과거의 잔여물을 되새김질만 하지도 않을거야. 오직 한 번뿐인 현재를 살거야 지금을.

 

 

세상에 수 많은 준이 존재하고 그 많은 준을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까지 간 상황은 내가 기억하고 또 기억해서 그를 존재하게 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분열증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모든 존재가 준이 되어야만 내가 견딜 수 있는 상황이다. 준을 기억하고 존재하게 해야만 하는 것.

기억하는 한 나는 존재하는 거야... 그런거다.

<님프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연약한 존재여

 

이게 내 사랑이야. 이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이 방식이라고

 

내가 인식하는 사랑의 방식을 아무런 주저없이 주장하고 요구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건 힘이다.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이다.

그 힘은 대상에게 닿지 않는다. 사랑은 사라지고 치욕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로봇들

그들은 왜 여자의 형상을 가졌을까 상반신은 여자이면서 하반신은 확실한 기계의 형상이다.

인간을 완벽하게 닮은 순간 느끼게 될 불쾌감은 줄이고 인간이 만족할만큼 본인의 의사는 전혀 상괂없이 너를 위해 너를 존중한다는 수아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과 행위들이 과연 수아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평등한 입장에서의 존중이 아니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흘려보낸 시혜였다.

내 입장에서 시혜가 그에게는 모멸이라는 것

몰랐고 이해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기까지는...

<수아>

 

 

 

같은 입장, 같은 부류로 나뉘어 한 무리로 묶여있어도 개인은 각각 다르다.

사람은 개인적인 존재이고 저마다 특별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이 우선이다.

성별은 같아도 입장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상황이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로 묶일 수 있고 다시 나뉠 수 있다.

함께 묶여서 함께 소리내고 목적을 향해가더라도 다음 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를 수 있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때 우리가 같은 생각 같은 방향이었다는 것이 위선이 되거나 그냥 아무것도 아닌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가치가 있고 지금은 지금 이대로 의미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물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고 그때 그렇게 믿고 친밀했던만큼 멀어지면 배신감과 미움이 커지겠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딱 그만큼 거리를 용납할 수는 없을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작은마음동호회에서 그걸 본다.

 

이성애 커플이든 동성애 커플이든 인간이 가지는 갈등과 고민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편안하고 그래서 이상하고 이물감이 든다.

나랑 분명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나랑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한다는 건 위안이 될까 두려움이나 분노가 일게 될까. 승혜와 미오는 그냥 연인이었다. 사랑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함께 했지만 이제는 또 그 사랑이 걸림돌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한다. 유치하게 삐지고 미워하지만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그만큼이다. 나는 아직 그들을 모르지만 그가 가진 마음은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리고 모르는 만큼 알 수도 있을거같은 마음

그들은 그냥 보통의 커플일 뿐이다.

 

가족이지만 가장 깊은 마음은 서로 말하지 못한다. 타고난 내가 나로 살지 못한 삶을 그만두고 성별을 바꾸고 싶어하는 둘째,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외롭고 강하지 않은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첫째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내 이해범위 밖에 있는 아이들을 어쩌지 못해 병을 가진 엄마는 서로의 가장 깊은 상처는 결국 드러내지 못한다. 더 깊은 상처가 있다는 걸 짐작하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리고 나도 아파서 남의 상처를 관여하고 싶지 않고 제발 상대는 저절로 나아서 무탈하길 바라는 이기심도 있고 그렇다.

가족이어서 멀어지고 싶어도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가깝지만 언제 멀어져도 괜찮을 수 있는 조금 외롭지만 견뎌야 하는 마음이 마흔 셋에 담겨있다.

 

선한 의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인데 그 선한 의지는 의외로 아니 당연하게 강하지 않다.

이런 선한 이웃을 만난다면 나도 겁을 먹을 거고 방어할 것이고 불편할 거 같다. 그래서 선한 이웃을 만나는 건 너무 어렵다.

 

작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그 입장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섬세하고 예민한 그 촉수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지는 않을까

그의 책을 더 이상 보고 싶은데 더 볼 수 없다는 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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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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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조용조용한 이야기

이십년은 무탈하게 잘 맞는 퍼즐조각처럼 살아온 남편이 어느 날 다른 여자를 임신하게 하고 나를 떠나 그 여자에게 가려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결혼생활 내내 남편은 조금씩 바람을 피웠고 아내는 그냥 모른 척 하고 살았다. 어머니와 애착이 심한 남편은 늘 여러 여자에게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늘 쉽게 빠지고 쉽게 돌아왔으니까. 그러나 이번엔 이야기가 다르다. 오랜 친구의 딸이자 이제 갓 스무 살은 넘긴 여자아이는 당돌하게 임신을 했고 결혼을 요구했고 남자의 모든 것을 요구한다. 남자는 이번에 아빠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젊고 육감적이고 적극적인 여자에게 끌린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했고 이젠 모든 것이 잘 맞는 편안하고 다정하고 우아하기까지 한 아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갈 거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살인을 계획한다.

그냥 죽여버리는 게 나을 때가 있다. 그냥 내 삶에서 그 남자만 도려내는 걸로.. 그리고 나는 조용히 우아하게 삶을 지속시키는 걸로,,,,

어쩌면 뻔한 클리세에 그렇고 그런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스릴러나 미스테리한 이야기에 대사가 많이 나오면서 떠들썩하게 사건이 전개되는데 반해 이 소설은 정말 제목처럼 조용하고 고요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번갈아 기록되면서 그 속내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남자는 아내를 잘 속이고 있다고 믿고 자기의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며 이 정도는 남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탈이라고 여긴다. 여전히 우아하고 조용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주는 편안함과 안온함을 버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사로 일하는 아내는 어쩌면 첫눈에 반한 남편의 매력이 거칠고 대담하고 행동이 앞서는 모습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남편은 참 흥미로운 내담자이며 좋은 분석대상이다. 연구할 가치가 있다.

한눈에 파악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파악되고 관찰당하고 섬세하게 분석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이십년을 평온하게 살아온 부부의 내면은 정말 다른 곳을 향한다. 서로는 상대방의 보이는 모습을 믿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자신하며 다른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남자의 시선에 남자의 장담이 다음 여자의 시선에서 하나하나 헤집어지고 쪼개지고 분석된다. 그리고 여자가 예측하고 판단한 남자의 심리는 다음 남자의 시선에서 전혀 엉뚱한 곳으로 튄다.

그래서 부부일까?

진실을 알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롭고 잔잔하다.

보이는 것만 믿고 조금도 더 깊이 따지지 않고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지도 갈등하지도 않고 이렇게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살 수도 있겠구나.

 

그 여자 조디는 어떻게 지낼까. 이제 남편은 없고 안온한 삶은 유지되고 있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주위의 동정과 배려속에 잘 살고 있을까. 자기의 트라우마를 깊이 묻어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원치않은 것은 그대로 침묵으로 가라앉히고 그렇게 평안하고 고요하게 지금 이순간의 과업을 하나하나 이루며 그렇게 조금 매끈하게 뜨뜨미지근하게 살고 있을까?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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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인기 작가 토르디스 엘바와 호주에서 청소년지도사로 살아가는 톰 스트레인저가 아이슬란드와 호주의 중간 지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일주일간 만나 과거의 시간을 돌아본 이 책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전례 없는 책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영구적인 폭력으로서 강간이 일상화된 오늘의 현실을 아프게 일깨우면서, 남녀 모두가 깨어 있는 의식으로 이 문제에 동참할 것을 뜨거운 체험의 언어로 설득한다.

 

나는 너를 강간범이라고 적어도 나를 강간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돼. 그렇지만 그 말이 곧 너를 말하는 건 아니야. 절대 아니지. 그 말로는 네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십 분의 일도 나타낼 수가 없어. 난 기억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신 적이 있어. 하지만 그게 날 알콜 중독자로 만들 수는 없어. 난 가끔 거짓말을 하지만 그게 날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난 강간을 당한 적이 있지만 그게 날 희생자로 만들진 않아. 사람은 평생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나쁜 일도 해. 요지는 나는 사람이라는 말이야. 딱지표가 아니고 나라는 사람이 그 날 밤 일어났던 일로 축소될 수는 없어. 그리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p178

 

먼저 사회에 여성 혐오가 얼마나 광범하고도 일상적으로 펴져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례들을 열거했어. 성폭력 강간에 관한 농담 여성의 대상화따위 말이야. 그리고 나서 네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어. . 가부장제가 너에게 일어났어. 그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났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너는 그날 밤 선택의 여지가 있었어. 아무도 너에게 그러라고 강요하진 않았잖아. 성범죄자는 타고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아. 그게 만일 남성이 타고나는 본능이라면 세상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강간범이거나 성희롱자라는 말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도 남성들에게 가하는 모욕이라고 생각해. 나는 내 아들이 성범죄 성향을 타고났다고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아 반대로. 난 그 애가 가치관이나 믿음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걸 잘 정립시켜주는 것이 부모로서 나의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애는 외부의 영향도 받게 되겠지. 남자가 왜 여자를 범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사회구조.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 안에서 찾을 수 있어. 너는 그날 밤 그래도 되는 권리가 네게 있다고 느꼈겠지. 이건 네가 직접했던 말이야.‘ 179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그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으려면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걸.

 

아닌 척해 봐야 소용없어. 그런 멍청한 작전은 효과가 없어. 긴장될 때 통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리 내서 말하고 웃어 넘기고 그리고 그냥 다시 살아가는 거야.“

 

네가 왜 나를 고소하지 않았는지 가끔 궁금해

글쎄 난 그때 열여섯 살짜리 애였고 머리엔 강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가득했어. 그런 건 으슥한 골목에서 칼을 든 미치광이나 저지르는 짓이라고 알고 있었어. 내 방에서 강간이 일어나리라곤, 특히 내 남자친구에게 당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 몇 년이 지나 내가 당한 게 강간이었다는 사실에 눈뜨게 됐을 무렵에는 딱 너처럼 나도 진실을 외면했어.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에게 그런 일을 당하게 됐다고 믿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나는 내가 사람들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어. 건강한 연애 관계를 맺기 바랐고 육체적으로 교감하는 순간에 애인에게 거리를 두거나 무시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어. 교미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나누길 바랐어. 게다가 내가 너한테 미쳐 있는 걸 세상이 다 알고 있었어. 너한테 내 동정을 줬잖아. 우리 부모님한테 널 인사도 시켰잖아. 그날 밤 난 짧은 드레스를 입었어. 술도 많이 마셨고 그랬으니 넌 그런 짓을 안했다고 말만 하면 됐을 거야.“ 228

 

사람이 사람에게 왜 해를 입히는지 오랫동안 열심히 들여다봤더니 몇 가지 촉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첫 번째는 분노야. 예를 들자면 네가 나를 애먹였으니 내가 너를 엿 먹일 거야. 그 다음에는 두려움이야. 네가 나한테 위험한 사람이니까 너를 엿 먹여야겠어. 무지도 해당돼. 너를 엿 먹이면 내 병이 나을 거야. 욕심도 내가 원하는 걸 네가 가지고 있으니 널 엿 먹여야겠다. 위급함. 너를 엿 먹이지 않으면 내 일이 꼬일 거야. 마지막으로 정신병이나 중독이 해당돼. 내 머릿속에서 널 엿 먹이라는 소리가 들려. , 네가 그날 밤 어떤 이유로 날 강간해는지 나는 몰라. 내 생각에는 욕심과 무지 때문이었던 것 같아. 너는 네가 원하는 걸 취해버렸어.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나도 그랬어. 나도 욕심을 부려서 내 필요를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삼은 적이 있어. 내가 다른 사람을 강간한 건 아니지만 내 중심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 것을 취하는 게 어떤 건지 나도 해봐서 잘 알아. 네가 나한테서 가져간 건 나한테 정말 가치 있는 거였어.

그래서 분한 나머지 온 힘을 기울여 네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값진 걸 부숴버리려고 했어. 네 마음 말이야. 내 말 오해하지마. 우리 각자의 행동이 같은 무게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지난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나한테 다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다만 내가 그 어느 때보다 이해의 영역에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아.

 

복수로 내가 얻는 건 하나도 없어.

 

내가 여자라서 강간했잖아. 그렇게 다뤄도 되는 권리를 네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여자라서, 넌 어디선가 배웠을 거야. 네 즐거움이 내 동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내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것에도 동의할 수 없을 때였어도 말이야. 네가 왜 그랬는지 몰라. 하지만 난 이문제가 남자들이 사회 모든 층위에서 더 많은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고 봐. 몇백 년 동안 그래왔잖아. 아마도 오래된 이런 전통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남자가 여자보다 중요하다는 의식을 갖게 됐겠지. 너와 너의 욕망이 나보다 더 중요하다고 그날 밤 네가 느낀 건 아마도 이런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들이 보통 남자라고 부를 그런 사람이었거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사건이 좀 더 큰 그림의 일부분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가치가 없다는 생각의 일환이었을 거라고 믿어. 네가 불편하게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생각을 걸러버릴 순 없어.” 282

 

톰 같은 사람이, 즉 규범으로 보이는 것에 잘 순응해서 조사와 감시에서 제외되는 사회그룹에 속하는 사람. 안정된 배경과 각종 특혜를 누려온 사람이 강간을 저질렀고 그래서 후회한다는 고백을 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오래 기다렸던 성폭력의 근원적 이유에 대한 토론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강간을 더 잘 이해하려면 가해자를 2차원적 스테레오타입으로 봐서는 안되고 3차원적으로 봐야 했다. 그렇게만 되면 파급 효과가 클 것이고 가능성은 끝도 없었다. 진정 큰 그림이었다. 290

 

그러니 선례를 세우는 게 더욱 중요해지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야. 이 저울의 양쪽 끝에 선 사람들은 성범죄의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영혼 없는 괴물도 아니고 파손된 물품도 아니라고, 그냥 사람이라고 불완전하고 흠이 있더라도 너나 나처럼 온갖 종류의 생각을 하고 직업과 배경과 생활 방식과 신념을 가진 그런 인간이라고, 세금도 내고 가족도 사랑하고 실수도 저지르는 바로 우리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변에서 쓰레기도 줍고 말이야. 293

나는 깨달았지. 내가 그 범행을 저질렀고 내가 그 책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며. 넌 그날 밤에 대해 네 마음대로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걸 말이야. 그리고 내가 그걸 읽고 생생하게 되살려보고 인정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 미안해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야. 네가 그걸 공개하는 데 따르는 어떤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이런 경지에 이르고 나니 새로운 감정이 생기더라. 그건 일종의 안도였어. 내가 너를 끌어들인 지옥에 대해 네가 말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느낌, 너처럼 강인한 사람이 자기와 자기 시련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강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 짓인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느낌, 진실이 바깥 세상 어딘가에 나와 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진실을 덮을 수 없으니 다행이라는 느낌 너를 범한 사람으로서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느낌, 그런가 하면 내가 계속해서 익명으로 남아있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 드는 것도 다행이었어. 네가 말했다시피 오랫동안 두려움에 갇혀 사는 건 건강하지 않잖아.

 

 

내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만 유별나고 독특해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확신하니까. 난 수많은 경우 가운데 하나였어.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다들 아무 말을 안 해. 아마 더 깊이 들어가는 게 무섭겠지. 나는 뭔가 말을 하고 싶어. 네가 책으로 했듯이 말이야. 나도 목청 높여 세상에 알려서 우리 같은 사연이 되풀이 될 가능성을 줄이고 싶어. 402

 

 

 

 

*오랫동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다. 누구를 미워하는 일이 너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고 세상이 모두 내 편을 들지 그 상대를 변명하거나 변호할 리 없다고 하더라도 미움은 너무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미워하는 사람을 이제 영영 보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을까

늘 일상에서 부딪쳐야 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을 미워해야하는 일은 너무 힘이 들었다.

이렇게 미워하기만 하는 내가 옹졸한 사람인가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이 꼭 피해자가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처럼 느껴져서 절대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반이상을 차지하지만 한 구석에서는 내가 그냥 미워하는 걸 포기하면 모든게 편안해질텐데 내가 문제가 아닐까 하는마음이 또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분명 상대의 잘못과 폭력성으로 내가 상처를 입고 내가 피해를 당했음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상대를 보면서 계속 미워하고 저주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건 결국 나의 속좁음이 아닐까 하는 자책만 남겼다. 그러나 나의 미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의 사과와 반성이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건 먼저 시작해야 할 그가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살고 있다는 그것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이러이러한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고 몇 번을 묻고 대화를 청해도 묵묵부답이거나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걸 보면 용서따위는 개나 줘버려랴 할 일이었다.

나는 절대 잘못하지 않았다. 그 일에는 이유가 있고 상황이 있고 맥락이 있다고 모든 걸 상황탓으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탓으로 돌리는 말에 어떤 용서도 화해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일 없듯이 하하호호 할 수 있는 표정은 가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얼어있었고 점점 나는 속내와 겉모습이 다른 두 인격을 태연하게 지니는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용서는 사과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사과는 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반성은 진심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무수한 반성과 사과가 남발되면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도리어 돌을 맞고 편협한 사람이 되고 예민하고 상황파악이 안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얼마나 소금밭인지 타인은 모른다.

좋은게 좋지 않냐고... 계속 볼 사이지 않냐고 ... 가족이지 않냐고...

그래서 더 용서가 쉽지 않다. 계속봐야하고 가족이고 친밀한 사이여서 좋은게 다 좋지는 않더라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저자가 부러웠다. 그렇게 자기 상처를 드러내고 사과를 요구했을떼 이렇게 솔직하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상대가 있다는 게 진심 부러웠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는 말처럼

내가 용감하고 좋은 사람이면 비록 내게 상처를 주고 절망을 주었던 상대여도 이렇게 인간적이고 예의있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에 질투가 생겼다.

폭력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만연한 가부장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며

동시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쉽게 털어낼 기회를 가진 저자에 대해 두고두고 부러워미칠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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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돌봄노동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사이 느끼는 것 중 하나

개개인의 선한 의도 혹은 선한 행위에 기대는 것은 참 위험하다.

단순하게 작은 원안에서의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선한 개인에게 너무나 많은 짐을 부과하고 있다. 동시에 누구에게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선한 행위따위는 없다.

나는 좀 비관적이긴 하다.

사회에서 터지는 여러가지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혹은 복지정책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은 다양한 사각지대를 알게 되면서

선한 의지따위보다는 강한 정책과  처벌이 더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선한 의지들이 있다면....

사회구성원이 의식을 바꾸는 교육을 통해서...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누군가의 선함을 기대하기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어가는 시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애가 타고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고 있다.

인권이 좀  눌리더라도,  비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더라도 강한 정책으로 일단 누르고 강제시키는 일들이 필요할 때가 많다.

돌봄경제가 담당하고 돌봄 노동으로 치부되는 곳에서는 일단 모든 정책이 그리고 모든 대처가 일이 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폭력이 일어나 누군가 다치거나 해를 입기전에 미리 대처할 수 없고

누군가 나를 지독하게 따라다녀도 그가 칼을 들고 내 목을 긋지 않은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경찰이 해줄 것도 없다.

구속된 남편이 돌아오면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또 한번 폭력의 바람이 불게 뻔하지만 일단 그 남편이 돌아와 피바람을 일으키기전에 미리 준비할 대책이 없다.

일단 터져야 도움을 줄 수 있고 피해가정으로 폭력가정으로 인식이 되고 시스템이 돌아간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햇병아리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건 참 하찮게 여겨진다는 거다.

그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뼈를 갈아서 삶을 갈아넣어서 그 자리를 채우고 지켜나가고 있지만

그가 떨어져나가는 순간 또다른 그가 다시 그 자리를 채워도 아무렇지 않다.

미묘한 돌봄의 섬세한 감각따위는 돌봄을 받는 대상이 느낄 뿐이지만 그는 아무런 힘이 없다.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아야 하는 취약층도 어떤 힘이 없다.

그걸 지시하고 감독하고 통제하는 기관이나 상부는 늘 그렇듯 습관적으로 일을 하거나 그냥 관행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쉬운 하찮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키는 순간

모성이 없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욕을 듣기는 참 쉽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누군가도 다른 일자리를 얻는다면 당연히 그만두고 싶어하는 일이지만 누구도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

그것이 돌봄노동이고 그것의 가치다.

 

이러면 안되지만 가끔 강력한 제제를 가할 수 있는 법령이나 제도가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인식의 전환은 그 다음으로...  강제하다보면 인식도 바뀌는 거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다.

 

책은 쉽게 읽히지만 쉽게 들어오진 않는다.

많은 예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게 미국 제도여서 그랬던거 같다.

뭐 우리라고 많이 다르진 않지만 보편적인 듯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미국적이어서....

그래도 읽을만하다. 경제문제에서 돌봄노동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건 당연하지만 획기적인 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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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4-25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력한 제제에 대해 저 역시도 더 많이 공감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인권을 지키느라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하는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고요.
복지 정책 역시 좀 더 강제적인 시행이 필요하고 기업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또 너무나 먼 일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푸른희망님^^
 
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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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가 나왔던 드라마 '추리의 여왕'도 생각나고...

남들은 보잘것 없다고 믿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도 누구든 꿈이 있고 열정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자기조차 몰랐을지라도...

그리고 공동지성은 무엇이든 이뤄낸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웃을 지키기 위해 돕기위해서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가치를 위한 움직임이 세상을 바꾸는거다.

거대한 공약이 결국 공약으로 끝나는 그런 구호가 아니라 ...

 

하루만에 다 읽을만큼 몰입이 잘 된다.

바바리맨이라는 어쩌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어봤거나 무서워했거나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본 경험이 있는 것을 소재로  익숙한 이웃들이 등장해 사건을 풀어나간다.

남자들로 상징되는 경찰은 대단한 사건을 뒤쫒아가며 우리 이웃 누군가의 실종은 그냥 가출이라고 치부하고 별 거 아니라고 하지만 모든 단서는 그런 별 거 아닌데서 나온다. 세상 어떤 일도 소소하지 않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네명의 탐정단도 매력있지만 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도와주는 맘약하고 귀가 얇은 우리의  광규씨도 너무나 매력있는 인물이다.,

다만.... 이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해치는데 아무도 죽지도 않고 며칠의 입원으로 멀쩡해진다는게  흔한 히어로물같아 싫었지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전혀 다른 종자가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악한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키우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반대로 기를 쓰고 악인으로 키우고 싶어도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람은 선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악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좋은 사람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범죄자를 악마니 뭐니 하면서 이름을 붙이지 말자

그들은 그 명칭조차 훈장으로 여길것이고 어딘가 약하고 삐뚤어진 누군가는 그것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어떤 스토리도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

그는 그냥 범죄자고 나쁜 놈이고 처벌받아 마땅할 뿐이다.

 

어려운 책을 읽느라 머리가 아프거나

일에 치여 쉬고 싶은 활자중독자거나

지금 이 시점에 너무나 무료하고 답답한 누군가에게 권한다.

단 너무 기대하진 말고... 사람마다 취향은 다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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