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뜨시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들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했다.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려 한다면 여성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유색인 여성들이 서로를 배우려고 함께 노력할 때 자매애를 구축해야하는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연대를 위해 백인 여성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은 기회주의적인 관심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반인종차별주의자 여성들과 단결할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연대와 페미니즘 운동으로 하나되어 단결할 수 있고 자매애라는 개념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회목시킬 수 있다.

 

1. 흑인여성 .페미니즘 이론 형체 만들기

 

 프리단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페미니즘 담론을 지배하는 백인 여성들도 여성들의 현실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모든 집단의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경험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의문을 거의 품지 않는다. 또한 최근 몇년 동안 비록 편견에 대한 지각이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그들의 시각에 인종적 계급적 편견이 어느 정도까지 반영되었는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배 체제로서 성차별주의는 제도화 되었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의 운명이 한가지 절대적인 방식으로만 정해지지 않았다. 억압바든다는 것은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억압받은 사람들은 비록 조직화된 저항에 참여하지 않고 저술을 토해 억압의 본질을 분명히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억압받은 사실을 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칠고 가차없는 비판은 페미니즘 투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며 해방 이데올록를 함께 만들고 해방 운동을 함께 하자는 의도였다.

 

2. 페미니즘 .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하기 위한 운동

페미니즘은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특정한 여성 집단이나 특정한 인종이나 계급의 여성에게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이 생활방식도 아니며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성의 정체성이나 역할도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과의 사회적 평등에 촛점을 맞추어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결과적으로 차별대우 남성의 태도 법적 형태등을 강조하게 되다. 반면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으로 페미니즘을 정의하면 지배체제에 그리고 성 인종 계급의 억압의 상호연관성에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앞으로 페미니즘의 투쟁의 토대는 성차별주의및 여타 형태의 지반 억압의 문화적 기반과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지하는 것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다져야 한다. 억압 철학의 구조에 도전하여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페미니즘적 개혁은 영햐력을 오래 발휘할 수 없다.이 운동은 남성과 평등해지자는 운동이 아니라 사회에서 성차별적 억압적 상황을 종식시는 것 을 의미하는 것이다.

 

3.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성

 

성차별적 지배는 다른 형태의 억압과 다르게 사람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실제로 목격하거나 체험했다. 우리는 대체로 가정을 떠나 넒은 사회에서 인종차별이나 계급 차별을 목격하거나 체험한다. 남자가 없는 가정에서 조차 어머니나 다른 어른들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성차별적인 역할형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권위적 지배를 중시 여기도록 학습한다.

각각의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저항하도록 투쟁이 필요하다고 인식해야만 정치의식은 중요한 발달 단계로 도달한단. 성차별적 억압에 저항하는 투쟁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4. 자매애 .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우리는 우리들만의 언어를 정의해 사용해야한다. 함꼐 피해자가 되어 이를 바탕으로 유대를 맺거나 공통된 적에 대응하려고 유대를 맺는것이 아니라 성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운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는 의식을 바탕으로 유대를 맺어야 한다 서아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페미니즘 우동에 정치적으로 참여한다면 남성과의 평등이라는 이슈 혹은 남성 지배에 대한 투쟁에 만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착하고 남성은 나쁘다는 성차별ㅈㄹ적 억압구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설명은 더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남성 지배에 저항할 수 있으려면 우선 성차별주의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야 하며 여성의 의식을 변화 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여성들은 서로간에 성차별적 사회화가 된 것을 노출시키고 살펴보고 제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서로의 힘을 키워주고 지지하며 정치적 연대를 발전시키기 위해 견고한 기반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다르며 그 다른 점은 타인의 우리에 대한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요인이 될지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를 존중하도록 끊임없이 일꺠워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이 각기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요구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며 정치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도 단 한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연대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전략을 세밀하게 세움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한다. 저이적 연대를 발전시키려면 여성들은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들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탐색해야 한다.

연대는 지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연대를 경험하려면 공통된 관심사와 신념을 가진 공동체여야 한다. 즉 자매에를 구축하고 하나로 뭉치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이런 일치됨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자매애를 구축해야한다. 지지는 부차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지지는 쉽게 얻고 쉽게 철회된다. 그러나 여대는 지속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우리가 성장하려면 다양성과 의견 불일치와 차이가 필요하다. 연대감을 느끼려고 굳이 차이를 없앨 필요는 없다. 억압을 종식하려는 투쟁에 동등하게 임하기 위해 동일한 억압을 겪을 필요는 없다. 여자끼리 결속을 위해 반 남성적 정서를 가지기 보다는 풍부한 경험과 문화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5. 남자 .. 투쟁을 함께 하는 전우

 

분리주의 이데올로기는 여성 홀로 페미니즘 혁명을 할 수 있다고 미도록 부추겼지만 실상 여성 홀로는 불가능하다 성차별적 억압을 유지하고 지지하느 ㄴ주된 행위자는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의 의식과 사회 전체의 의식을 변혁시킬 책임을 맡아야만 성차별적 억압은 사라질 수 있다. 남성들은 주된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는 남성들도 저항 투쟁에서 똑같은 몫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남성들은 동성 동료들의 성차별주의를 폭로하고 대항하고 반대하고 변혁하는 식으로 공헌할 수 있다.

 

6.권력을 보는 시각 바꾸기

권력이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지배및 통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된다.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이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 남성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면 남성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을 안다. 그리고 남성집단은 권력세계로 진입한 여성들이 기존 상태를 고수하고 유지하려 할 때만 남녀의 평등한권리를 보장해주었다. (남성형 권력을 동일하게 준수하고 따르기를 바란다) 권력에 들어간 여성들은 가부장주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권력의 개념이란 지배와통제라고 인정하고 그런 권력을 행사한다.

여성이 성차별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려면 권력을 지녀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한다. 가장 억압받는 여성조차 분명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다. 가장 약하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집단이 쥐고 있는 권력은 자신에 관한 정의를 권력자가 강요하는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권력에 의해 정의된 자신의 현실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처럼 근본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저항행위이며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권력이 없다고 믿도록 조장해서는 안된다. 여성들이 매일 행사하는 권력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며 그 권력들이 성차별적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데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7.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

 

페미니즘이 일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여성 노동자의 경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심리적 착취에 저항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임금을 받든 무임금이든 여성이 하는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여성에게 새로운 자아개념과 자기 정의를 제공한다.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전문직과 출세에만 집중했기때문에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마치 다른 모든 노동 특히 저임금 노동은 가치가 없는 듯 행동했다 페미니즘은 민중여성들이 하는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태도는 남성들의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8. 여성 교육. 페미니즘 어젠다.

 

읽기 쓰기에 기본을 두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본이다

 

9. 폭력을 종식하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

 

폭력은 권력의 문제이며 사회 가정에서 권력이 남성에게 몰린 구조에서 권력이 있는 남성이 물리적 정서적 억압을 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력을 가진 지배력이 폭력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성차 인종차 계급 차 모든 경우 폭력이 유발될 수 있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권력을 많이 가진 쪽에서 적을 쪽으로

사회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남성들은 그곳에서 억눌려 있던 폭력성을  통제상황이 필요 없는 경우 즉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처벌의 위험이 없는 상황에 행사한다. 가정은 대게 통제가능한 상황이며 대상은 여성이나 어린 아이다 남성은 자기가 가진 감정적 고통을 여성에게 배출하고 투사한다.

남녀간의 사랑과 폭력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성별이 아니라 물리적 관계이다.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가졌고 누군가는 선천적으로 수동적 성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든 폭력에 관대해지거나 익숙해져서는 안된다.

가족내의 폭력 에서 군국주의적 전쟁  아동에 대한 통제와 교육이라는 이름하게 행해지는 폭력등 약자에 대한 자연스러운 통제등 모든 폭력을 낯설게 바라보며 재 정의해야한다.

 

10 혁명적 양육

 

 여성의 양육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며 페미니즘 운동가를 비롯한 사회 모든 구성원들은 이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모성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가하고 모성이 여성에게 강요된 경험이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경험이 되지 않도록 하며 여성 혼자서든 남성과 함께든 상관없이 여성의 양육이 훌륭하고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페미니즘의 맥락안에서 여성의 양육은 세롭게 인정받고 칭찬 받아야 한다.

어머니다운 돌봄과 아버지 다운 돌봄의 구분없는 효과적인 양육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11. 여성의 성적 억압종식시키기

여성은 자기 성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공통된 가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해야할 행동들은 하나일 필요는 없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는 지구의 절반 인구들도 저마다 인종 종교 계급 학력 지역에 따라 다른 특성을 가진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경험  생각 감정을 하나의 틀로 묶을 수는 없다. 성차별이 성 평등으로 가는 길에서 원하는 것이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처럼 어떤 기본값을 가진 여성들을 모델로 모두가 그렇게 하나로 묶여야 할 필요는 없다.

백인 여성들이 시작한 페미니즘이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맞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가치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경험하고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토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 토대에서 한계를 느끼고 욕망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한다.

하나의 가치만 내세우며 그 기준에 모두가 따르라고 한다면  그건  또하나의 차별이 된다.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라고 여성주의는 말한다.

내가 아니라 다른 타인이 겪은 차별 역시 차별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우리가 바꾸어야 할 과제가 된다. 여성이어서 차별받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로서 차별받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것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들간의 정치적 연대 그리고 남성들은 적이 아니라 함꼐 가야 할 동지라고 생각하는 것

폭력에 대한 생각들 바뀌기 위해 선행되어야할 교육의 문제 육아의 문제 그리고 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  어쩌면 페미니즘의 흐름이 긴 만큼 이제는 당연하게 이해할 내용들도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 <미스티>를 보며 누구나 부러워하고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고혜란의 남편 강태욱을 보며 참 많이 답답했다.

참 좋은 남자라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건 아니지 싶었다.

고혜란이란 여자는 최고에 대한 욕망이 있고 무엇보다 일이 우선이었고 그렇게 도전할만큼 충분한 능력과 배짱과 용기도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사귀었을때 고혜란은 충분히 그런 면을 드러냈다. 내숭떨지 않고 아닌척 하지 않으면서 나는 욕심이 많고 그걸 이룰거라고 그래서 결혼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멋지게 강태욱은 그런 그녀에게 명함이 되어주고 배경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니까 괜찮다고 까지 했다.기꺼이...

뭐 연애할때 무슨말을 못하랴... 하고 말한다면 할말이 없다만

고혜란이 충분히 욕망덩어리고 이기적이고 속물적이라는 것도 알겠지만 그녀는 그 본능에 늘 충실하고 정직하다. 모든 패를 드러내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인데

결혼후  변하지 않는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치열하게 싸우며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방에 쳐박혀서 꽁하고 삐진 그 남자 강태욱이 이해되질 않는다.

자기랑 달라서 좋아해놓고 자기와 너무 안맞다고 토라진다(말그대로 토라진다. 화를 내는게 아니라)

7년전 혼자 유산했다는 이유로 현재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고혜란인것처럼 꽁하다.

내 뜻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내 뜻대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정서적으로 냉대하는 것도 결국 폭력이 아닐까... 주인공이라서 멋지게 나오니까 모든 것이 덮이는 거지만 결국은 그도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그래픽 노블이다.

오사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멋지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고 기대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멋진 누구나 좋아하는 남자 닐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지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커플이 되었다.누구나 닐을 칭찬했다 멋지다고 젠틀하고 젊은 시절 내모습같다고 모두가 좋아했다.

그런 닐을 사귀게 된 오사는 뿌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닐이 이상하다.

아니 어느 순간 바뀐 건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내게 관심이없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싫어한다.

옷차림을 타박하고 화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며 니가 그래서 잘못이라고 모든 것이 니 잘못이라고 윽박지르고 따지고 소리지른다.

사랑하니까 그런거라고 믿었지만 자꾸자꾸 주눅들 수밖에 없다.

잘못을 지적당하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내잘못인것만 같다.

내가 화장을 이상하게해서 내가 그의 마음을 몰라주고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내가 칙칙한 옷을 입어서 옛날 남자친구에게 받은 엽서들을 정리하지 않아서

내가 무엇무엇을 하지 않아서  혹은 내가 무엇무엇을 했기때문에 그가 화를 내고 소리지른다.

이젠 그의 표정과 말투에 예민해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나올지가 중요하다. 내가 잘못한게 무엇인지 그의 심기를 건드린게 무엇인지 그것을 빨리 알아채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이다.

이것이 옳으냐 그러냐는 중요하지 않다

짙은 화장에 개성있는 옷차림에 활발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롭던 오사는 사라지고 칙칙하고 비슷비슷하고 평범한 오사가 닐 곁에서 전전긍긍한다.

어느 순간 이렇게 7층에서 뛰어내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지만 이렇게 죽을 수도 없다.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잔소리가 화가 되고 짜증이 되고 윽박이 되고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번지면서 오사는 생각한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맞고 당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고립되어 살수는 없다

내 모든 삶을 닐과 바꿀 수 없지 않을까

그러나 닐이 웃어주고 미안하다고 하고 안아주면 모든 것은 그저 녹아버린다.

그래 별일 아닐꺼야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내가 뭐라고.

오사는 점점 닐에게 길들여지고 스스로 무능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살지? 왜 그렇게 당하면서 한소리 못하고 나오지도 못하고 의지가 없이 끌려가는거지?

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아니라고.. 아니되라고 왜 말하지 않았나요?

근데 그 순간 이게 잘못된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하는 걸까? 그게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버리면 내가 이상한가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너는 못나고 못나고 못나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어리석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하고... 그렇게 되풀이해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다. 의존적이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책은 사람이 어떻게 길들여지고 어떻게 점점 약해지고 무능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현실을 용기있게 직면하는 순간 도움을 받을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길도 쉽지 않다.

다시 되돌아가는게 편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내가 과연 할 수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 한번 든 상처로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상담을 받고 진단서를 끊고 고소를 하고 재판을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결국 오사 역시 모든 과정을 겪고도 한 참 후에 닐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보고 안도한다.

미안하지만 .. 이제 닐의 관심대상은 저 여자가 되겠구나 이제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구나 하는 순간 안도한다.

폭력이 나쁜 건 사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약하게 만들고 믿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만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는 정의란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다.

타인을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  내가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만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마음

그것만 기억하고 있어도 적어도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이 폭력이 되어버리는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여기까지 페이퍼를 썼을 때 계속 미투  고백이 이어진다.

문단에서 연극계에서....

지금 드러난 분야 이외 다른 곳인들 당당할 수 있을까?

권력을 이용해서 지위를 이용해서 더럽고 추악한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뿐 아니라

내 일이 아니니까 나는 직접 행동하지 않았으니까

뭔가 여지가 있으니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거나

나는 그냥 침묵하고 말겠다고 그게 중립적인거라고 스스로 포장했던 모든 사람들

그들 역시 모든 비난과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폭력 당사자가 아니라 옆에서 침묵하고  객관적인 입장이 되겠답시고 중립이라고 도망가던 모든 이들 역시 방관자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건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애써 위안하고 나는 저만큼은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세상에 당연하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 다 그렇고 그런거 아니겠냐고  잊으면 되고 툭툭 털면 되는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깃털만큼 가벼운 말이 누군가에겐 바위처럼 무겁게 내려치는 고통이다.

사랑한다면 이해한다면 아껴주고 싶다면

그 상대가  NO!! 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게 먼저가 아닐까

그리고 당연히 받아들이는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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