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때때로 “나 말이야,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어”라든가 “진짜 나를 되찾고 싶어”라는 대사가 드라마에 등장하곤 하는데, 이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나’ 또는 ‘자아 찾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잠깐 시점을 바꿔서 생각해봅시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보는 겁니다. 

장례식도 끝났고 이것저것 뒷정리도 다 마친 어느 날 밤 문득
 ‘우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당신의 뇌리를 스쳤다고 해봅시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정말로 알고 있는 걸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유년기를 보내고 있었을까? 결혼하기 전에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회사에 가서 어떤 동료들과 일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고 어떤 실패를 한 사람이었을까? 우리 가족들이 모르는 어떤 생활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당신은 ‘진짜 아버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아버지의 친척이나 오랜 친구, 동료를 찾아다닐 겁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축적해서 ‘아버지 상像’을 형성해갑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보통 그렇게들 하니까요. 


이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진짜 나’를 찾고자 생각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가족, 급우, 담임선생님, 선후배, 동료—부터 한 명씩 인터뷰를 해서 “나는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다니겠습니까? 

설마요.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짜 나’를 찾으러 가는 곳은 뉴욕, 밀라노, 발리 등 당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당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야만 ‘진짜 나’와 만날 수 있다니요. 하지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짜 나’라는 것은 전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짜 나’와 만나게 되는 순간은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는 말이라곤 모두 거짓말뿐일 테니까요.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라면 우리는 가족들이 들으면 ‘거짓말을 참 잘도 한다’라며 어이없어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 놓을 수 있습니다. 

자크 라캉은 ‘우리의 과거 기억은 전前 미래형으로 말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자기 역사’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가 끝났을 때 상대방이 나를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여겨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유리한 내 모습을 상대방 안에 심어놓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예컨대 ‘나는 비열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지면 얼마든지 과거로부터 비열했던 기억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친구를 배신한 일, 책임으로부터 도망친 일,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일…… 떠올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반대로 ‘나는 마음이 맑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역시 얼마든지 떠올리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일, 불행한 사람을 위해 신에게 기도한 일, 더 받은 거스름돈을 돌려준 일……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비열한 사람’인지 ‘맑은 사람’인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의 기억 속에 ‘진짜 나’를 어떤 사람으로 남기고 싶은지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앞에 두고 있다면 조금 곤란하겠지요. 

우리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엄밀하게는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선택적 회상이 이루어졌을 뿐’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고, 그런 것도 필요합니다. 때때로 ‘지어낸 이야기’를 함으로써 과거를 리셋하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깨에 힘을 빼자 다른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표 지성이 들려주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인생을 위한 몸과 마음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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