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Cura님의 서재 (Cura 서재)</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0 Feb 2012 21:16: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Cura</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Cura</description></image><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라그나로크 - [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86556</link><pubDate>Mon, 30 Jan 2012 0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865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30005&TPaperId=53865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89/76/coveroff/89509300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30005&TPaperId=53865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a><br/>대니 로드릭 지음, 고빛샘.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1년 06월<br/></td></tr></table><br/>세계체제론의 핵심논지는 자본주의는 세계체제로서 존재해왔고 세계체제로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시장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세계체제론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브로델이 보여주었듯이 자본은 시장을 그리고 시공간을 재편한다. 시공간을 재편하는 하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 한다. 자본은 권력이기에 시장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체제론의 요점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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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대한 중상주의자의 담론은 국가와 기업이 서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기반으로 한다. 경제가 정치의 도구요, 정치는 곧 경제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거래비용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非시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가 시장을 위한 ‘게임의 규칙’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애플과 중국의 하청업체가 협력하려면 먼저 쌍방이 엄청난 양의 약속이 담긴 두툼한 계약서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하청업체가 아이폰 디자인을 경쟁업체에 넘긴다든 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피해를 입은 편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거래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경제학자들의 말로 하자면 거래비용이 꽤 높은 무역이하 할 수 있다. 제도, 특히 적어도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는 그러한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합의다.” 이러한 제도는 “시장이 대체로 국지적이고 규모가 작을 때 그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분명하고 폭넓은 규칙과 더 믿을만한 강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부유해진 곳은 시장을 다스리는 ‘공식’ 제도를 만든 나라들뿐이다. 국방과 기반시설 같은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세금 체제, 재산권을 확립하고 보호하는 법적 제도, 계약 집행을 강제하는 법정, 경제학자들 말로는 ‘제3자의 강재’ 제도들이다. 시장은 튼튼한 정부 제도의 뒷받침을 받을 때 더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며 결과적으로 부를 창출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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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국가의 권력과 연합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논점을 제기한다. “1870년대 오늘날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국가들의 정부지출비중은 약 11%였다. 그러다가 1920년까지 이 비중은 거의 두배가 되어 20%가 된다. 1960년에는 한층 더 늘어 2*%에 이르렀다. 지금은 40%가 넘었으며 정부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무역의 비중이라 말한다. “국제 시장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의 정부규모가 가장 컸다. 경제가 국제 경제라는 강력한 힘에 노출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리스크에 보상을 요구하는 법이다. 리스크와 불안정한 시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시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정부는 필요하다. 실업수당,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노동시장 개입, 건강보험, 가족수당 등의 장치를 마련해놓아 이제는 높은 관세 장벽 뒤로 자국시장을 숨기는 식의 서툰 보호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복지국가는 개방경제의 이면이다. 시장과 국가는 여러 면에서 서로 보완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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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는 무역에 대한 보호비용이란 말이다. 그런 비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들은 일정한 지역에 한정돼 있으며 국가에 따라 편차가 가 크다. 그 결과 국제무역과 금융은 국내거래보다 훨씬 높은 거래비용을 유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제도적 틀의 부재와 국가별로 상이한 제도의 지배를 받는 시장이 발생시키는 긴장은 경제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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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무역의 근본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제무역과 금융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아리기는 이 문제를 보호비용의 문제라 말하며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이 보호비용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말한다. “National economy-making brought to perfection on a greatly enlarged scale the practice of making wars pay for themselves by turning protection costs into revenues, which the Italian city-states had pioneered three centuries earlier. Partly through commands to state bureaucracies and partly through incentives to private enterprise, the rulers of France and of the United Kingdom internalized within their domains as many of the growing number of activities that, directly or indirectly, entered as inputs in war-making and state-making as was feasible. In this way they managed to turn into tax revenues a much larger share of protection costs that the Italian city-states, or for that matter the United Provinces, ever did of could have done.” (Arrighi 1994)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다. 거래비용을 보호비용으로 바꿔도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 경찰력, 사법권 형식의 보호비용이 아니라 war-making, state-making(식민지건설이 예이다)을 보호비용에 결합한 것이다. “What was happening was that wars were ‘paying for themselves’”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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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oese and Dutch cycles must be completed by a brief examination of the ‘organizational revolution’. The Dutch regime of accumulation ‘internalized protection costs.’” 대표적인 예로 아리기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든다. 그 클론인 영국의 동인도회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회사의 활동은 단순한 무역 이상이었다. “그들은 상비군을 갖추고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으며, 조약을 맺고 화폐를 주조했으며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굴제국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역별 통치자들과 연합하며 권력을 인도전체로 넓혀갔다. 이러한 기업들은 그들만의 깃발, 군대, 판사, 화폐가 있었지만 고국의 주주들에게 배당금도 지불했다. 무역과 통치가 그리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과 국가의 이분법은 옳지 않다. 시장거래 특히 장거리 무역은 누군가 정해놓은 규제와 제약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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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개 회사가 국가와 같은 권력을 가져야 했을까? 더 구체적인 예를 보자. 1680년 영국 노예무역회사인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는 자신의 독점권을 변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노예 무역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 서부해안을 따라 세운 요새들에는 개인 무역상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 무역을 하려면 다른 국가들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며 요새와 군함의 유지와 관리에는 독점적 통제가 필요하다.” 국내시장이건 국제시장이건 거래를 위해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무력이 뒷받침된 법률과 규제가 필요하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실제 무역이 발생하기까지 교통, 물류, 통신, 신뢰, 법과 질서, 계약 이행 같은 거래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했다.즉 ‘상인-모험가들’은 국가 못지 않은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지 않으면 무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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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회사나 노예 무역회사의 예는 “권력과 경제교역의 밀접한 고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신과 교역하고 싶으니 내가 정한 규칙을 따르라!’ 이 시기 이후의 세계화는 국가규제나 권력에서 조금 분리되어 있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권력은 행사되어야 한다. 다만 조금 다르게, 그리고 조금 덜 눈에 띄게 행사되어야 한다. 세계화에는 반드시 규칙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규칙이 무엇이냐 그리고 누가, 어떻게 그것을 정하느냐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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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g self-sufficient and competitive in the use and control of violence, these companies ‘produced’ their own protection.” war-making, state-making는 규칙을 정해 공간을 재편하는 문제이다. 세계화란 그 규칙을 정하는 문제가 일개 국가가 아닌 세계로 확대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확대의 결과 하나의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그 공간 자체를 만드는 war-making, state-making이란 폭력이 개입되어야만 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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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폭력으로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폭력이 표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19세기의 세계화가 가능했다. 그 세계화를 떠받친 것은 두 가지 제도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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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신념 체계의 수렴이다. 경제 자유주의와 금본위제는 서로 다른 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을 연결해주었으며 무역과 금융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관행을 중심으로 그들을 연합했다. 두번째는 바로 제국주의였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국주의는 무역에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제국주의는 또한 강대국 정부가 집행자 역할을 하는 일종의 ‘제3자 강제집행’이라 할 수 있다. 강대국들은 필요한 때면 언제든 제국주의 정책을 이용하고 정치적, 군사적 힘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나머지 국가들을 조종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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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모두 영국과 관련이 있다. 네델란드가 그랬듯이 패권국으로서 영국은 세계체제의 규칙을 정했다. 이 체제를 아리기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부른다. 유럽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이란 이데올로기는 강요되지는 않았다. 단지 영국의 것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쉽게 받아들여졌을 뿐이며 강자의 것이기에 증명은 끝났다고 이해되었을 뿐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랫듯이. 그러나 “나머지 국가에서는 대부분 외부의 압력으로 자유무역이 성립했다. 아시아에서는 유럽 제국주의 때문에 외국인의 권리가 보호되고 계약집행이 강제되었으며 분쟁이 생기면 유럽 국가의 규칙에 따라 판결이 났다. 국제무역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거래비용이 무력화된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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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했던 제국주의와 공통의 신념체계란 제도는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지탱하는 데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햇다. 자본의 경우 그 신념체계는 금본위제였다. 이것 역시 영국의 것이란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공통의 기준이 마련되면서 “자본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었고 금과 동가로 정해진 고정환율에 따라 다른 나라 화폐로 바꿀 수 있었다.” 달리 말해 금본위제는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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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금본위제에서는 국가별 여건을 이리저리 조정할 재량권이 각국 정부에 부여되지 않는다. 순전히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금과 자본으로 국가별 통화공급량이 결정되”고 이자율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는 분명하고 보편적이며 독단적인 원칙이었다.” 금본위제가 가능하려면 “신축적인 임금으로 뒷받침된 개별적이고 분산화된 노동시장이 있어야 한다. 국내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으면 임금과 다른 비용들이 감소해 이 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되찾도록 도울 것이다. 저렴한 노동력은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노동자가 조직화되고 노조의 힘이 세어지면서 훨씬 더 환상에 가깝게 변해버렷다.” 그리고 “1930년대 중앙은행과 정치가들은 경제불황과 높은 실업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더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이제 투표권을 가졌다. 대량실업의 결과로 정치적 재앙을 맞느냐 금본위제를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금본위제와 함께 자유무역도 끝났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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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가 끝장난 이유는 이렇다.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듯 무역에는 엄청난 혜택이 있다. 그러나 “무역으로 얻는 이득에는 소득 재분배라는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을 실시할 경우 일부 집단은 반드시 장기적인 소득감소를 겪는다. 미국처럼 부유한 국가에서는 고교중퇴자처럼 숙련기술이 없는 노동자가 이런 집단에 속할 개연성이 높다. 무역은 같은 사람에게 반복해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기술이 부족하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기동성도 떨어진다면 국제무역은 평생 당신에게 악영향만 미칠 것이다. 무역은 첨예한 분배갈등을 초래한다. 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그리고 무역의 자유도가 높아질 수록 무역의 혜택은 빠르게 체감하지만 비용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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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역정책과 정치는 언제나 같은 말일 수 밖에 없다. “조건 없는 자유무역은 획일적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된 엄격한 기술관료 사회에서만 실행할 수 있다. 국민의 요구가 국제경제기준과 충돌할 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쪽은 국내적 요구였다.” 대공황은 “각국 정부가 개방경제체제에서 경영자, 노동자, 농민들의 불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공황을 경험한 “케인스와 화이트는 현실을 무시한 채 전면 붕괴를 맞이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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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설계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제질서를 유지하면서 무역자유화를 진전시킴으로써 국제교역을 활성화”하면서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국정부가 “자국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엇다. 각국의 대외경제정책은 완전고용 실현, 경제성장 목표달성, 빈부격차 해소, 사회보험과 복지제도정비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국의 목표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닌 적정수준의 세계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목표는 전반적인 자유무역이 아닌 제한된 자유무역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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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한된 자유무역은 오히려 세계경제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엇고 세계화를 촉진했다. “1948~90년 국제 교역량은 연평균 7% 증가했다. 그 어느 시기와 견주어도 유래없는 성장세였다. 총생산 또한 선진국, 빈곤국 할 것없이 전례 없이 확대일로를 걸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금본위 시대, 19세기 자유무역 시대를 뛰어 넘어 폭얿은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ㅎ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배하던 시기는 세계화의 황금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공은 국가 경제가 건전하다면 약간의 무역 제재나 통제가 있어라도 세계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자유무역은 각국의 분배정책, 경제정책, 가치와 상충하지 않을 때만 실현가능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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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0년 무렵 금융세계화가 시작되면서 WTO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추구했던 바와 상반되는 새로운 세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그것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성립하려면 각국 정부는 국제무역과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 세계화 즉 (노동시장을 제외한) 재화와 자본시장의 국제통합은 최종목적으로서 국가별 정책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정책 논의에 이러한 변화가 점점 반영되기 시작했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그것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또 모든 국가가 법인세를 낮추고 긴축재정정책을 펼치고 규제를 완화하고 노조를 약화시키는 등의 세계화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엇다. 브레튼우즈 체제처럼 얕은 통합을 추구하는 무역체제는 각국의 내부 정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깊은 통합을 추구하는 체제에서는 각국의 내부 정책과 무역정책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내부 정책이나 규제를 임의로 변경한 경우, 거래 비용을 상승시켜 국제무역을 방해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즉 국제 규범은 곧 각국으 내부 규범이 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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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를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라 요약한다. “우리에게는 세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이따금 세계경제로 비롯되는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무시하고 국제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둘째, 국내에 민주적 정통성이 확립되기를 기대하며 세계화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셋째 국가주권을 희생하면서 세계화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잇다. 이 세가지 대안은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즉 우리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 민주주의, 민족자결권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 잘해야 두가지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과 민주주의를 잡으려면 민족국가를 포기해야 한다. 민족국가를 유지하면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을 추구하려면 민주주의를 잊어야 한다. 민족국가에 민주주의를 결합하고 싶다면 깊은 세계화에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세가지 대안이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서로 상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령 세계경제가 완전히 세계화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거래비용이 사라지고 국경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교환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이런 세상을 버텨낼 수 있을까?민족국가들은 경제적 세계화와 상인 및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만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국내규제와 조세정책은 국제표준에 일치시키고 가능한한 세계경제통합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조화될 것이다.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는 국제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이 세계경제의 요구에 휘둘리면 국가경제에 관한 정책결정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합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글로벌 경제의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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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브레튼우즈 체제의 제한된 세계화에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제한된 세계화의 성공 자체가 세계화의 심화에 대한 증명이 되엇다는 점이다.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신념체계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이었다. 자본 이동의 자유를 위해선 얕은 통합이 아닌 깊은 통합이 필요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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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1996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타이에 유입된 민간 자본은 총 930억 달러였다. 그러나 1997년 들어 120억 달러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서 기업회생을 위해 단 한 해 만에 1050억 달러가 필요했다. 이것은 다섯 나라 GDP 총합의 10%를 넘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 축격이라면 제아무리 견실한 국가다로 쑥대밭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경제위기는 다른 지역국가들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던 러시아와 아르헨티나가 각각 1998년과 1999-2000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국가에 만연한 비리와 정경유착으로 과도한 대출과 비효율적 투자가 나타났고 이로써 경제위기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토록 기적적인 경제성장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리고 “1998년 이후 신속하게 경제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세 국가의 경제기반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금융위기는 아시아국가들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 금융시장에 내재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국가는 bank run에 “당했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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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강경식도 회고록(‘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같은 말을 한다. 그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주력했던 일은 금융개혁법안이엇다. 당시 한국경제는 10년마다 터졌던 거품이 붕괴하던 상태엿다. 그런 시점에서 그가 주력한 것은 채권자들, 즉 외국인들에게 한국정부는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잇다, 그러니 너희 빚을 떼먹는 일은 없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엇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는 선거정국에 들어가 마비된 상태에서 이익집단의 알력을 조정할 능력이 사라진 상태엿다. 정치권의 조정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면서 한보와 기아 사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금융개혁법안에 관련된 이익집단인 한국은행노조의 실력행사에 끌려다니면서 외국에 보여주기 위해 마련했던 금융개혁법안도 무산되면서 신뢰를 잃었고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강경식은 설명한다. bank run에 당했다는 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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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글로벌 시스템의 변방에 있던 나라들이 위기로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들 탓ㅎ이라고, 그들이 이 세계의 준엄한 법칙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고 나서 금융 세계 중심에 있는 국가들이 비슷하게 쓰러졌을 때는 체제 자체를 비난하며 이제 이것을 고칠 때가 되엇다고 입을 모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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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금융세계화는 바보짓이었다고 결론내린다. 2차대전은 “자본통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입장변화는 양차대전을 거치는 동안 겪은 국제금융시자으이 불안과 혼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20-30년대에 민간자본흐름은 금융시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케인스는 근본 문제를 지적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금융시장의 안정성뿐 아니라 거시적 균형을 저해한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거시경제의 가지조정능력 덕분에 특별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없어도 된다는 대공황 이후 암흑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케인스는 고용 및 생산 부문과 금융시장이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금융시장은 도박장에 가까우며 경제적 복지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동자유화는 버림받고 자본통제가 득세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각국정부에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추구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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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통제를 거부하고 자본이동자유화를 옹호하는 담론이 득세한다. 이후 “전 세계는 금융위기 124차례 외환위기 208차례, 국가부채위기 63차례를 겪었다. 1800년 이후 발행한 모든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금융위기 시기와 자본이동 시기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익히 잘 알고 있는 1990년대의 금융위기 때뿐 아니라 그전에도 국제자본 이동성이 높아질 때마다 국제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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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미국과 IMF는 금융세계화를 밀어붙였던 것일까? 아리기는 자본축적의 사이클 때문이라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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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시공간을 재편하는 논리는 축적의 논리이다. 아리기는 축적의 사이클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축적의 사이클은 trade expansion부터 시작된다. 시장의 확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의 공간은 쌓여가는 자본의 양에 비해 좁아진다.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아리기의 해석이다. trade expansion에선 이윤이 자본으로 재투자된다. 그러나 자본의 절대량에 비해 공간이 좁아지면서 자본의 이윤율은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경쟁이 치열해진다. 경쟁은 경쟁자를 제거하여 좁아진 공간을 넓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도시국가들간의 치열한 전쟁(이탈리아 100년 전쟁이라 불린다)과 19세기말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를 아리기는 이 단계로 해석한다. 말 그대로 cut-throat competition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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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e expansion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축적의 논리는 방향을 바꾼다. 더 이상 실물로는’적정’ 이윤을 올릴 수 없다. 이때부터 financial expansion이 시작된다. 돈을 물건으로 바꿔 물건을 다시 돈으로 바꾸는 축적의 논리는 돈을 바로 돈으로 바꾸는 금융의 논리로 바뀐다. “The diminishing returns and increasing risks of its employment in trade and production engender the overabundance of money capital and this drives the world-economy comes into the phase of finanacial expansion.” 메디치 가문이 그 좋은 예이다. 메디치가 돈을 불린 시장은 전쟁터였고 그들은 high finanace를 창조했다. 메디치가가 개척한 이 시장에 스페인 제국을 고객으로 제노바인들이 뛰어들었고 스페인제국과 제노바인의 연합은 대항해시대를 열어 시장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 주기의 trade expansion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이클의 trade expansion은 스페인-제노바 연합이 아닌 네델란드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 넓은 공간을 재편할 논리는 기존의 패자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a systemic cycle of accumulation.’ First established by the Genoese capitalist class in the 16th century, it was repeated three more times under the successive leadership and dominance of the Dutch, British and US capitalist classes. In this succession, financial expansions have always been the initial and concluding moments of systemic cycles.” (Arrighi 1994)<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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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그런 순간이었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아리기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독일 간의 경쟁은 과잉축적, 또는 이윤율저하 경향의 증상이었고 그 이후 미국의 산업공동화 역시 동일한 증상이었다고 해석한다. “Its very unfolding resulted in a major intensification of competitive pressures on each and every governmental and business organizat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and in a consequent massive withdrawal of money capital from trade and production. The switch occurred in the critical years of 1968-73. It was during these years that deposits on the so called Eurodollar market experienced a sudden upward jump followed by twenty years of explosive growth. By the mid-1970s the volume of purely monetary transactions carried out in offshore money markets already exceeded the value of world trade many times over. From then on the financial expansion became unstoppable.” (Arrighi 1994)<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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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영국의 Belle Epoche와 너무나 닮았기에 아리기는 70년대 이후의 금융확장기을 미국의 Belle Epoche라 부른다. 그러나 금융확장기의 문제는 축적 사이클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보류될 뿐이라는 것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위기의 해결보다는 위기의 심화 덕분에 가능했다. “The striking similarities can be detected between the cumulative influence of finance on the US in the 1980s, on Britain in the Edwardian era, on Holland in the periwig era, and on Spain in the Age of the Genoese. Excessive preoccupation with finance and tolerance of debt are apparently typical of great economic powers in their late stages. They foreshadow economic decline. The costs of financialization concentrated to the lower and middle strata of the economic power. Finance cannot nurture a large middle class, because only a small elite portion of any national population. Manufacturing, transportation and trade supremacies, by contrast, provide a broader national prosperity” (Arrighi 1994)<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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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양극화는 역사의 반복일 뿐이며 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것은 그 양극화를 이념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역진적 재분배에 의해 가능한 덧없는 아름다움이며 지속가능한 축적논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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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시대 즉 영국의 Belle Epoche처럼 레이건 이후 미국의 Belle Epoche 역시 세계화의 시대엿다. 그러나 그 세계화는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세계화였다. 금융화가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주도로 경제의 재편이 가능했고 그 재편은 경제의 생산성을 회복해 이윤율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그러한 재편은 다음 단계의 trade expansio을 가능하게 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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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은 역진적 재분배가 큰 이유였다. 금융은 생산하지 않는다. 분배할 뿐이다. 다시 trade expansion이 가능하려면 시공간의 새로운 조직논리가 필요하지만 금융은 그런 논리를 제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재분배는 무한하게 가능하지 않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분배할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해 제 무덤을 팔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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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ical record shows that in the phases of financ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two different kinds of concentration of capital have occurred simultanously. One kind has occurred within the organizational structures of the cycle of accumulation that was drawing to a close. As a rule, this kind of concentration has been associated with a final ‘wonderful moment’ of revival of the still dominant but increasingly volatile regime of accumulation. But this wonderful moment has never been the expression of renewed capabilities of that regime to generate a new round of mater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On the contrary, it has always been the expression of an escalating competitive and power struggle that was about to precipitate the terminal cirisis of the regim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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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89/76/cover150/895093000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3000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실낙원: 문명의 역사심리학 - [자아폭발 - 타락]</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75098</link><pubDate>Wed, 25 Jan 2012 08: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750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61404&TPaperId=537509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23/58/coveroff/89776614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61404&TPaperId=53750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아폭발 - 타락</a><br/>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09월<br/></td></tr></table><br/>“약 500년 전에는 따뜻한 날보다는 추운 날이 훨씬 더 많았다. 1500~1850년까지의 소빙하기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에 걸쳐 지속적으로 대단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 소빙하기는 태양흑점의 감소 때문이다. 태양흑점이 감소하면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복사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에 걸쳐(기본적으로 1645-1715년까지) 흑점의 활동이 대단히 분명하게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사라졌다.”&nbsp;(랜디 체르베니)<BR><BR>기후학에서 1645-1715년 사이의 기간을 마운더 극소기라 부른다. 흑점활동에 따른 기온의 냉각이 중요한 이유는 농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7세기 소빙하기 이전 흑점주기로는 1400-1510년의 슈뢰퍼 극소기, 1280-1340년의 볼프 극소기가 있다.&nbsp;<BR><BR>볼프 극소기 직전에 중세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2세기 르네상스가 있었다. 이 시기가 끝난 것은 보통 흑사병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랜디 체르베니는 흑사병의 유행보다 볼프 극소기로 들어선 것이 12세기 르네상스의 종식의 더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nbsp;<BR><BR>슈뢰퍼 극소기 역시 중요한 시기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경제의 장기순환에서 하강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낮은 이윤율에 시달린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로 돌려지지 않고 과시적인 소비에 돌려졌으며 그 소비가 르네상스의 자금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같은 전란의 시기였다.&nbsp;<BR><BR>마운더 극소기에 “지구의 기온은 오늘날에 비해 1.5도 정도 더 낮았다. 혹독하게 추었고 서구문명에서 전쟁과 혁명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와 맞물린’다.&nbsp;(랜디 체르베니)<BR><BR>당시는 대항해시대이기도 햇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폭력의 일반화 혹은 폭력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이전 시대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이상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군사기술과 무기가 더 발달하고 군사력이 훨씬 강력해졌으며 또 그렇게 강화된 군사력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맥닐이 말하는 ‘군사혁명’이 일어난 유럽의 근대는 전쟁의 시대였고 그 폭력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nbsp;<BR><BR>세계 여러 문명의 조우는 불행하게도 평화적이기보다는 대개 폭력적이었다. 유럽의 팽창 자체가 우선 무력 사용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대륙의 이질적인 문명권 안으로 뚫고 들어가기 위새서 무엇보다도 강한 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아에 거주했던 포르투갈 인의 보고에 의하면 1502년 바스코 다 가마가 캘리컷에 도착했을 때부터 벌서 가공할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는 무슬림 선단을 격침한 다음 800명의 귀와 코 손을 잘라서 캘리컷의 지배자에게 보내면서 카레라이스를 해먹으라고 말햇다고 한다. 그의 선단의 한 선장은 무슬림 상인을 채찍질하여 그가 실신하자 입에 오물을 넣고 돼지고기 조각으로 입을 막음으로써 종교적인 모욕을 가했다. 유럽인과 아시아 인 사이의 거의 첫번째 접촉부터 유럽 인들은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앞세워 그들이 찾아간 해외 지역의 현지인을 지배 정복하거나 약탈과 해적 행위를 통해 직접 부를 취하기도 했으며 교역 행위를 할 때에도 무력 위협을 통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여러 학자들은 전산업화 시대에 유럽 인들이 전 세계에 수출한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주경철)&nbsp;<BR><BR>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폭력적이엇을까? 지금의 유럽인들을 생각하면 떠오르기 힘든 이미지이다. 랜디 체르베니는 소빙하기가 그 일부를 설명할 수있다고 말한다. “소빙하기(1550-1850) 기간은 오늘날 보다 상당히 추웠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 걸맞게 당시 유럽 문명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요란하고 열광적이어서 식민지 확장, 혁명, 전쟁으로 얼룩져 있었다.”&nbsp;(랜디 체르베니)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근대란 폭력이 만들었다는 말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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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저자는 문명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문명을 만든 폭력 역시 유럽의 폭력처럼 기후가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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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00년경에 빙하시대가 끝난 이후 가장 중요한 환경 및 기후변화 중 하나가가 일어났다. 제임스 드메오는 건초화가 진행되어 그가 ‘사하라시아’라 부르는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름이 시사하듯 사라하시아는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건조한 땅으로 이루어진 고아대한 지대이다. 기원전 4000년경까지 사하라시아는 삼림에 가까운 초원이었으며 호수와 강, 인간과 동물로 가득차 있었다. 기원전 4000년 이전까지 사하라시아가 비옥했던 것은 아마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뒤 빙하가 물러나고 녹아내려 해수면이 상승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결국 빙하는 더 줄어들고 녹아서 사라져 버려 더 이상 수분도 남지 않았다. 해수면도 내려갔고 근동과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마르기 시작했다. 식물은 사라지고 기근과 가뭄이 심해졌다. 농업은 불가능했다. 물이 없으므로 사냥을 나가도 짐승을 잡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정신이라는 양면에서 엄청나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변화를 저자는 타락이라고, 성서는 에덴에서의 추방이라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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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 이전에 대한 기억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각색되어 민담이나 신화가 되었다. 에덴동산에는 이란의 파이라대자처럼 강과 아름다운 생명나무가 있었다. 아담과 이브는 거기서 벌거벗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화합하여 살았다. 그런데 뱀이 이브를 유혹하여 선악과 열매를 먹도록 하였다.” 저자는 이란의 낙원 신화와 성경의 신화는 동일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본다. “두 이야기 모두 따듯한 고향이 사막으로 변하여 추방되지 않을 수 없었던 사하라시아인들의 경험에 대해 언급하는 것같다.” 그리고 낙원에서의 추방된 인간의 정신은 타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타락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폭력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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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 이외의 다른 동물의 왕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이 어느 정도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영장류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인간처럼 호전적이지는 않다. 그것들은 타고난 행동양식이나 서식지가 침해받을 경우에만 낮은 수준의 호전적 행동을 나타낸다.” 그러나 방어적인 동물의 공격성과 달리 “인간의 공격은 악의적이다” 저자는 인간의 악의적인 공격성을 타락의 결과라 말한다. “전쟁은 단지 기원전 4000년경에 시작된 듯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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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서 기원전 4000년 전 이전 그리고 수렵채집인들에겐 전쟁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원전 4000년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분수령을 타락, 즉 자아폭발 때문이라 말한다. 건조화란 환경재앙때문에 사하라시아인의 정신을 파괴되었기 때문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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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그들의 환경이 변화하면서 집단들은 새로운 난관들에 직면하게 되자 틀림없ㅎ이 새로운 종류의 지능과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이 필요해졌다. 그들이 생존해 나라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하고 미리 생각하고 해결책을 신속히 발견하고 새로운 실용적 조직적 능력들을 발달시켜야만 했다. 예를 들어 땅이 매우 건조해지면 산출물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사냥법이나 농경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물 공급원을 찾아내거나 이전에 쓰던 수로를 더 길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하라시아인들은 더 많이 생각하고 자성능력을 발전시키고 추론하고 머깃속에서 자신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 대한 더 강한 인식을 발전시킴으로서 이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본 대로 자성이란 내 머릿속의 ‘나’가 자기 자신에게 수다를 떠는 것이다. 당신이 창의적이길 원하고 심사숙고하고 싶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싶다면 당신은 생각할 ‘나’를 가져야만 한다. 이러한 종류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환경과의 분리와 ‘개인적이고 예리하고 공간적으로 결정되는 의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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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여 곡물수확이 줄어들고 사냥하려는 동물들도 죽어 없어지고 물도 마르는 등 인간집단의 생활이 매우 곤궁해지면서 이기심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고무시켰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전체 공동체의 관점보다는 그들 자신의 필요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자신들의 필요를 공동체의 필요보다 먼저 생각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공유는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렵채집인들은 자원이 부족해도 다른 집단에 더 공격적이거나 경쟁적으로 대하는 등의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다른 집단들과 합친다. 그러나 사하라시아인들은 농업으로 살았다. 경작지가 부족할 때에 단지 새로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자원이 너무나도 희귀해져서 같은 집단 구성우너들조차 먹일 수 없게 된 집단들은 새로운 구성원을 받으들일 것같지 않았다. 한 집단이 자원에 대한 접근을 확보하려면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힘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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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새환경이 개인과 공동체의 분리, 마음과 몸의 분리, 개인과 자연의 분리를 촉진했다. 그리고 자성과 합리성의 더 큰 능력이 필요해졌다. 몇세대의 사하라시아인들이 새롭게 예민해진 자아인식을 가지고 살게 되자 그것은 그들의 일부로 고착되어 모든 개인들이 어른으로서 자연적으로 발달시키는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되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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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를 저자는 자아폭발이라 부른다. 저자는 자아폭발은 “우리에게 발명, 창조성, 합리성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선사했다. 자아폭발을 뒤따른 시대가 지적으로 놀라운 진전을 이룩한 시대엿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시기적으로 청동기 시대와 일치하는 이 시대에 “글쓰기, 수학, 그리고 천문학이 발견되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지식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마음이 갑자기 새로운 차원을 드러낸 것 같았다. 금속 가공술의 개선, 건축기술, 바퀴, 쟁기, 달력, 수로체계 등의 모든 기술혁신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사하라시아인들에 의해 불과 수세기만에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문명은 사하라시아인들로 인해 가능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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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하라시아인들이 처음 문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은 그들 이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하라시아인들 이전의 문명은 “흔히 높은 기술수준과 강력하게 중앙집권화된 권위를 포함한 사회조직, 사회적 계급분화 그리고 전쟁” 같은 특징이 없엇다. 사하라시아인들 이후의 문명은 새로운 문명이라 보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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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아폭발의 선물은 정신적 불화란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얻은 것이었다. “정신적 고통 단지 타락과 함께 존재했다. 타락은 인간의 생활양식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체험하는 방식과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에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인생은 고통’이라는 붓다의 말씀은 타락 이전 세상에서는 분명 틀린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락 이후의 세상에서 그것은 모든 말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진실이엇고 모든 인간이 자신들의 존재의 핵심에서는 친숙해진 언급이었다. 인생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부담으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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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아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좌뇌의 인식이다. 콜린 윌슨은 자아의식을 좌뇌인식이라 부른다. “좌뇌인식은 거울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듯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능력이다.” 좌뇌와 달리 “우뇌는 비자아중심적 세계관이 특징이며 좌뇌처럼 세계를 해석하고 통제하려는 충동이 없다. 문제는 뇌의 두 반구가 상호배타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우뇌 특징이 더 강하면 좌뇌 특징은 더 약해진다.” 타락 이전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우뇌지향적이었다.” 우뇌지향적이었던 타락 이전 사람들이 느꼈던 세계는 타락 이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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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증으로 좌뇌가 파괴되었던 질 테일러는 우뇌로 살아야 햇던 동안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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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과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던 끊임없는 노의 수다가 잦아들자 그 자리에 평온한 행복감이 밀려와 나를 포근하게 감쌌다” 몸과 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했다. 좌뇌의 분석적 판단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축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서둘러 밀어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햇다. 그저 한가롭게 해변을 거닐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빈둥거리듯, 좌뇌의 ‘행하는’ 의식을 우뇌의 ‘존재하는’ 의식으로 바꾸었다. 아주 사소하고 늘 고립되어 있다고 느꼈던 내가 이제 거대한 존재가 되어 주위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것같았다.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 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단일하고 견고한 실체였던 나의 자아상이 완전히 바뀌어 스스로가 유동체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우뇌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즐거워했다. 나는 더 이상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은 우주만큼이나 거대했고 드넓은 바다에서 흥겹게 장난치며 놀았다. 내 눈은 더 이상 사물을 구별하여 지각하지 못했다. 에너지가 서로 뒤섞여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에너지 흐름 속에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엿다. “내게 사람들은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덩어리 같았다.” “우뇌가 나를 지배하면서 타인의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여러분의 에너지가 주위의 에너지와 섞여들면서 늘어나고 스스로를 우주만큼이나 거대한 존재로 느끼게 된다. 여러분이 누구이고 어디에 사는지 일깨워주던 머릿속의 작은 목소리는 침묵한다. 여러분을 예전의 감정적 자아와 연결해주던 기억이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의 풍성함만이 여러분의 인식을 사로잡는다. 모든 것이 순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질 테일러)<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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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너지를 호피족은 마사우, 라코타족은 와칸탄카로 포니족은 티라와, 폴리네시아에서는 마나라 불렀다. 와칸탄카는 “모든 사물을 움직이는 힘이다. 포니족의 한 사람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티라와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티라와는 모든 것 내부에 있는 힘으로 생각하며 어둠 위에서 움직여서 밤이 새벽을 낳게 한다. 그것은 갖 태어난 새벽의 숨결이다.” 영어로는 spirit 즉 영혼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들은 힌두교에선 브라만이라고 도교에선 道라고 부른다. 브라만은, 도는 모든 것에, 생명이 있든 없든 우주의 모든 것에 있다. 타락 이전의 사람들은 자연을 영혼의 현시라고 보았고 그들 자신들도 영혼의 현시라고 “보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과의 연대감 및 연관성을 느끼며 자연과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느낀다. 이는 우리가 보통 경험하듯 자연계에 대하여 타자성을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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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아폭발은 ‘나’와 세계와의 연결을 끊었다. 자아폭발의 문제는 “예민하게 발달된 우리의 자아인식이 우리가 머릿속에 갇혀있다는 인식, 우리가 두개골 안에 있는 하나의 ‘나’이며 우주의 나머지 및 다른 모든 인간들은 다른 편에 있다는 인식을 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독’을 인식한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이나 다른 살아 있는 것들과 연대감을 갖는 것은 그들이 절대 혼자임을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항상 세상과 연관되어 있다고 느낀다. 이 고독에 대한 인식은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을 동반한다. ‘자아분리’는 우리가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체 우주의 일부인 반면 우리는 전체로부터 깨져나와 고립된 조각들이다. 그 결과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떤 불충족 인식, 우리 자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인식을 갖는다. 그것은 정신적 추방이며 유배이다. 그것은 우리의 집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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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인식은 고독만 선물한 것이 아니라 권태도 선물했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굉장히 ‘사실적인’ 장소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바위, 강, 산과 같이 ‘생명없는, 무생물적’ 사물도 살아 잇다. 그들에게는 창조의 경이와 환상이 모든 나뭇잎과 돌, 모든 가시와 싹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우리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세계는 따분하고 지루한 장소이다. 하도 지루하여 실제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는 다만 과제들과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수다에 집중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바위나 강, 나무들에 내재하는 생명, 그것들이 (애보리진의 용어로는) ‘꿈꾸고 있다’는 인ㅅ힉을 상실했다. 마치 3차원적 인식이 아닌 2차원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같다.” 타락 이전 사람들에겐 명백한 현실이었던 브라만, 또는 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뇌의 수다이다. 뇌의 끊임없는 수다는 우리에게 분석력, 추리력, 예측력을 주었다. 그러나 그 수다는 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은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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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지 않은 우리 조상들은 정신적 행동이나 집중적 노력에 매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정보처리에 특히 주위의 현상세계를 인지하는데에 사용할 정신적 에너지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자아폭발과 함께 이 균형은 극적으로 이동했다. 자아는 매우 강하고 능동적이어서 훨씬 많은 의식 에너지를 사용했다. 동시에 사람들의 생활도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와 주의를 집중적인 노력에 투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제3의 기능 즉 정보처리 특히 주위의 현상세계를 인지하는데에 들어갈 의식에너지가 줄어들었다.” 저자는 이를 “둔감화기제’라 부르며 정신 에너지의 재분배의 한방식이라 부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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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감화기제는 우리 자신 밖의 것을 배경으로 처리해 잊혀지게 한다. 그렇게 절약한 에너지를 분석하고 추리하고 예측하는 좌뇌의 수다를 듣는데 써버린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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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선 번뇌라 부르는 이 수다는 마음의 폭군이며 불교식으로 말하면 우리를 무지하게 만든다. "무지는 교양이 없다든가 머리가 나쁘다는 듯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스스로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사고가 소용돌이 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의 일부를 혹사하며 생각을 많이 할수록 신체와 마음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알기 어려워지고, 무지해진다. 상대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를 확실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늘 같은 얼굴이군, 지루해...'라며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개념과 망상만 쌓이게 되고, 현실과 의식의 실제 흐름에 무지하게 된다. 무지라는 번뇌는 마음을 실제적인 현실에서 뇌 속의 생각으로 도피시키는 것이다. '이 일을 실패하면 어쩌지?'라든가 '실패해서 저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어쩌지?'하는 잡념이 연쇄적으로 재빠르게 일어나며 마음속에 들끓게 되고 마음의 메인 메모리는 헛된 잡념으로 가득찬다. 1초동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0.1초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0.9초는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나 과거의 잡음이 남긴 메아리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될까? 10초 중 9초는 현실감이 사라지고 한 시간에 54분은 멍청히 있게 된다. 현실 그 자체에 직결되지 않는 망상에 탐닉한 결과, 현실감이 사라지고 행복감도 사라진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과거로부터 엄청나게 축적되어온 생각이라는 잡음이 현실의 오감을 통해 느끼는 정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코이케 류노스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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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센트미하이는 뇌의 수다를 정신적 엔트로피라 부른다. “고독에 대한 인식의 결과로서 우리의 마음은 걱정에 사로잡힌다. 수다 떠는 자아는 우울한 사람과 같아서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곤경을 이야기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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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곤경의 으뜸은 죽음이다. “자아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신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 자신의 잠재적 부재도 알게 되었다. 우리와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 간의 한가지 중요한 차이는 그들이 죽음에 대해 덜 두려워하는 것같다는 점이다. 그들의 특별한 개인성이 그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자연이나 공동체 또는 그들이 속한 종족의 존재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개인으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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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은 우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켰다. 그 분리로부터 태어난 첫번째 결과가 폭력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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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시아인의 대표적 종족인 인도유럽인과 셈족은 어느 시대의 기준으로 보나 극단적으로 폭력적이었다. 셈족의 경우를 보자. “유월절 축제는 예리코 공격에서 시작된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성전을 준비하는 행사였다. 예리코의 성벽은 기적적으로 허물어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야훼는 전쟁의 신이었다.” (카렌 암스트롱)<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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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가축까지 돌 하나 남기지 않고 즐겁게 ‘신의 축복’을 받으며 살인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남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 “자아폭발은 인간들 사이에 공감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전쟁의 중요한 원인이다. 공격성은, 보통의 경우에조차도, 단지 공감능력이 줄어들었을 때에만 발생한다. 당신이 만약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까에 마음을 쓴다면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할 수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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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쟁은 단순히 타인에 대한 무감각만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저자는 전쟁이 둔감화기제 때문에 생긴 권태와 비현실감을 해소하려는 방법으로 발전했을 것이라 말한다. “전쟁은 권태와 무목적성의 공포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오락 내지는 운동으로 그리고 인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중요해졌다.” 파스칼은 “권태와 전쟁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유일하게 좋은 일은 그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에서 다른 데로 생각을 돌리는 것이다. 그것이 도박과 사교계, 전쟁과 고위관직이 매우 인기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1차대전에 유럽인들이 열광했던 이유라고 에른스트 융거는 주장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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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녀야 할 청년이 젊은 군인의 고귀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책가방 대신에 무기를 든다. 청년은 비가 내리고 화염이 진동하는 황혼의 전선에서 육중한 화약상자를 두 손에 들고 말없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순간 그 청년이 고독하게 짊어진 책임의식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을 그 청년은 청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 타오르는 꿈으로 극복한다. 바로 여기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용사들에 대한 조용한 미사가 진행된다. 이러한 영웅적인 믿음의 화음이 울려 퍼질 때 인간은 자신을 희생한 인간들에 의해서 구현된 고귀한 형제애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화혐의 지옥에서도 영혼은 숨쉬기 시작하며 청년은 내면의 날개를 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오른다.” (융거 1929, 박찬국 2001에서 재인용)<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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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적 근대주의자라 평가되는 융거는 전장의 경험을 ‘모험정신’이라 요약한다. 총탄과 폭탄이 뇌우처럼 쏟아지는 전장에 뛰어든 인간이 목숨을 건 대가로 얻는 것은 “강력한 내적인 고양”의 경험이라 융거는 말한다. “융거의 반동적 근대주의는 파시즘의 미학과 통한다. 파시즘의 미학은 자기 희생을 통한 죽음,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행동에서 최고의 삶의 고양이 일어난다고 보는 죽음의 미학이다.” (박찬국) 융거가 말하는 전장의 경험은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말하는 전장과는 판이하다. 그러나 노리로르와 같은 역사사는 융거의 분석에 동의한다. “그들은 건너편 참호의 적을 증오하지 않았다. 혹독한 생을 이어가지 위해서 사람들은 보다 훌륭하고 보다 고결하며 보다 정신조국에 대한 신앙에 의지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진정한 국민은 저 멀리 참호 속에 있었다고 말하고는 했다. 틀림없이 영국과 프랑스의병사들도 비슷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보다 아름다운 생활, 새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조국, ‘영웅이 사는 나라’에 돌아가는 꿈이었다. 전쟁터의 정신을 고향에 이식해 생을 변혁하는 일은 불가능한가? 모든 에고이즘이 제거된 생활은 불가능한가? 이 전쟁에는 그 빡에 더 많은 것이 있었다. 희생과 영웅적 용기, 살벌하고 가공할 전쟁 속에서 의무를 수행하려는 의지, 이런 것들이 많은 독일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구현하고자 한 정신이었다.” (노이로르 1956)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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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거는 전쟁을 억압되엇던 야성적인 생명력의 폭발적인 분출이라고 해석했다. 전쟁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광적인 도취와 고통, 그리고 냉혹함, 피와 용기와 동지애와 적개심과 같이 평소에 억눌려 있던 야성적인 감정과 힘이 거리낌 없이 발산된다. 그리고 전쟁은 새로운 인간을 길러내는 훈련장으로 해석했다.” (박찬국) 융거는 자신의 해석을 니체의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란 개념에 근거해 제시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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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ll to Power names what constitutes the basic character of all beings. ‘Will to power is the ultimate factum to which we come.’ As the name of the basic character of all beings, the expression ‘will to power’ provides an answer to the question ‘What is being?’ All Being is for Nietzsche a Becoming. Such Becoming, however, has the character of action and the activity of willing. But in its essence will is will to power.” (Heidegger)<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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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란 무엇을 있게 하는 힘을 말한다. 힘으로서 자신을 파악하는 존재자, 자신을 being이 아닌 becoming으로 이해하는 존재자는 타락 이전 사람들에겐 낯설수 밖에 없다. Being이 아닌 becomng이란 선언은 존재의 불완전성을 의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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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 제2부에서는 세계를 빈틈없이 지배하는 권력으로서, 인간적 자유의 유희 속에도현존하는 것의 이름이 명확히 진술된다. 기초적인 사상은 이제 권력의 의지라는 교설이다. 변화한 인간, 즉 어린이가 된 인간은 창조아이다. 이 자는 본래적, 본체적인 인간이다. 창조적으로 유희하는 자, 가치들을 정립하는 자, 자기에 대하여 하나의 목표를 세워 하나의 새로운 투기를 감행하는 어떤 큰 의지를 의욕하는 자를 말한다. 창조자에게는 받아들여서 단지 그것에 순응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이미 완성된 의미의 세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대처한다. 그는 모든 척도와 저울을 새로이 정한다. ‘너희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너희들에 의해 창조되어야 한다.” (오이겐 핑크)<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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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로서의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적인 불완전성을 폭로한다. 그것은 자아분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존재자이다. 그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그의 창조물은 부와 권력이라 불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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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타락한 사람과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가장 놀라운 차이 중 하나는 물질적 재화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산이나 땅을 갖거나 소지품을 모으려는 욕망이 없다. 수렵체집인 집단에선 사적소유는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간주된다. 세계의 타락 신화들 일부는 분명히 ‘소유에 대한 애정’이 타락의 부정적인 결과 중 하나임을 웅변한다. 애버리진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소유에 대한 애착’이라는 유럽인들의 질병에 매우 당황했다. 인디언들은 땅의 한 부분을 판다는 관념을 어리석은 농담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땅을 형편없이 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세네카족의 족장이 말한 대로 ‘사람이 바다와 그가 숨 쉬는 공기를 팔 수 없듯이 땅도 팔 수 없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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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질주의는 우리 내면의 정신적 불화를 넘어설, 또는 환화할 행복의 원천을 찾으려는 욕망에서 분출한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신적 불화로 고통받지 않으므로 물질주의적이지 않다. 재산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위협적인 장소로 체험하며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우리의 위치가 허약하고 임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재산이 우리에게 일종의 영속성과 보호받는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다. 강한 분리 인식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핍인식을 남겼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내면의 구멍을 메우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다. 돈과 물질적 재화를 축적하는 것이 이일의 한 방편이 되리라.”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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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신적 불화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당신이 ‘자아기반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성공하고 유명해짐으로써 다른 사람의 존경과 찬사를 받음으로써 행복을 발견할 수있다고 믿는다. 전쟁, 가부장제, 그리고 사휴ㅚ적 계급분화는 모두 이 욕구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은 ‘중요한 인물’이 되려는 욕구가 없는 것같다. 이는 그들 사회에 사회적 계급 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위에 대한 욕망은 이것보다 훨씬 더 나가서 미친듯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으로 변하여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아마도 그들은 날 때부터 자아인식이 보통 사람들보다 강한 탓에 그들 내면의 정신적 불화의 수준도 높았을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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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의 고전적인 예가 소위 영웅이다. “호메로스는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더 강렬한 삶을 산다고 말하는 것같다. 만일 영웅의 명예로운 행위가 서사시에서 기억된다면 그는 죽음의 망각을 극복하고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불멸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명성은 생명보다 소중하며 시는 명성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전사들을 보여준다. 이 영광의 탐구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위해 나선다. 영웅은 명예와 지위의 문제에 시달리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며 시끄럽게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고 자신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전체의 이익을 언제든지 희생한다.”&nbsp;(카렌 암스트롱)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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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정복자들은 전세계를 정복하여 불멸의 신과 같은 지위를 얻으려 했다. 루퍼트 머독과 같은 현대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은 권력에 대하여 이와 같은 종류의 극단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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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아의식이, 즉 자아분리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 공감능력의 결핍이 심하다는 점이다. &nbsp;“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nbsp;(대니얼 네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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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자아폭발의 다른 결과인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과 공감의 결여를 한데 묶으면 우리는 지난 6000년의 인류역사를 형성한 대부분의 사회병리현상의 근본적 원천을 확보한 셈이 된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면 모든 타락한 사회들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이른바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에 의해 사회에 강요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정신의 한 부분인 부와 지위에 대한 욕망의 필연적 결과였다. 공산주의는 타락 이전 시대에 속한다. 공산주의는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비정상적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사유재산, 경쟁, 권력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섹스나 음식을 포기하고 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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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이책에서 저자는 가부장제의 기원, 환경파괴의 심리학, (신을 섬기는) 종교의 기원, 축의 시대에 대한 타락의 관점에서의 재해석, 인류의 멸망을 피할 가능성 등에 대해 타락이란 관점에서 일관된 설명을 제시한다. 그러나 리뷰가 너무 길어진 관계로 여기선 이것으로 줄이고 다른 리뷰에서 기회가 되면 다시 다루기로 한다.<o:p></o:p>
”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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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23/58/cover150/897766140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7661404</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게임과 비교한다면 현실을 망가져 있다.” - [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75093</link><pubDate>Wed, 25 Jan 2012 08: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750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748&TPaperId=537509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50/52/coveroff/89255457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748&TPaperId=53750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구나 게임을 한다 -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게임에 대한 심층적 고찰</a><br/>제인 맥고니걸 지음, 김고명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01월<br/></td></tr></table><br/>“나는 비행기 타기를 끔찍이 싫어하지만 1년에 150시간 이상을 그렇게 끔찍하게 보낸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비행기에서 먹고 자고 일하진 못한다. 절대로 ‘즐겁게’ 비행기를 탈수가 없다. 거의 항상 불안감으로 안색이 안 좋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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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2,500만 명 이상이 비행을 두려워하고 상용 고객 중 52%가 항공기 탑승에 가장 어울리는 말로 ‘답답함’을 꼽았다. 통제권의 부재는 본질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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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게임을 하고 게임에 몰두하는 이유가 통제의 문제라 말한다. 세상일이라는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종잡을수도 없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이코노미 좌석에 붙잡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와 비슷하다. 우리를 괴롭히는 스트레스의 정체는 통제의 문제란 말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상태에서보다 수명이 짧다. 객관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고 먹이가 더 풍족한데도 그렇다. 그 이유는 심리적 스트레스이다. 선택권이 없다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짧아진다.&nbsp;<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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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력을 행사하면 기분이 좋아지며 그러지 못하면 불쾌한 기분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반응은 동물에게 스트레스의 근원을 제거하고 통제력을 되찾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야생의 단기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생존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스트레스의 근원이 지속된다면 다시 말해 피하거나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면 스트레스 반응이 지속되어 결국 신체는 탈진 상태에 이른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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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정성껏 자신들을 보호해주지만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삶을 거의 통제할 수 없으르모 죽음의 함정에 빠졌다고 느낄 수도 있다. 동물 우리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해자와 벽, 그물, 유리벽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동물이 탈출을 시도하는데 그중 일부는 성공하기도 한다. 2004년 베를린동물원에서는 마치 안경 쓴 것처럼 눈 둘레에 백색테가 있는 안데스 산 안경곰 후앙이 통나무를 이용해 서식지의 해자를 건넌 다음 벽을 타고 넘어가 자유를 쟁취했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후앙이 동물원의 회전목마를 한 바퀴 돌고 미끄럼을 몇 차례 탄 뒤에야 허둥지둥 진정제를 쏘아 체포할 수 있었다.” (쉬나 아이엔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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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자유를 찾아 우리를 탈출하듯 인간도 자유를 찾아 숨쉴 곳이 필요하다. 자신이 현실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현실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한다. 저자는 게임이 그런 곳이라 말하낟.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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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들은 이제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게임 세계에서는 전력을 다해 충실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대체 어디에서 그런 느낌을 찾을 수 있을까? 능력을 발휘해 동료와 함께 장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당성했을 때 찾아오는 감격스러운 성취감은? 개인적인 성공과 더불어 팀에서 함께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은? 물론 현실에서도 이따금 그 같은 즐거움을 경험하긴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는 그야말로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그러니 게이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임과 비교한다면 현실을 망가져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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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69%가 컴퓨터, 비디오 게임을 즐긴다.<o:p></o:p>
젊은 층의 97%가 컴퓨터, 비디오 게임을 즐긴다.<o:p></o:p>
게이머의 40%가 여성이다. <o:p></o:p>
게이머 4명 중 1명이 50세 이상이다.<o:p></o:p>
게이머의 평균 연령은 35세로 평균 12년 간 게임을 즐겼다. <o:p></o:p>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앞으로도 계속 게임을 할 생각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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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계이지만 이런 수치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현실보다 게임이 더 현실감을 주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게임을 하면 통제권을 되찾는데 도움이 된다. 진정한 게임은 언제나 자발적이기에 게임 플레이는 자유를 행사하는 행위이다. 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실력을 기르는 과정에서 유능감과 지배감도 생긴다.” 간단히 말해 게임을 하면 자신이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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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임에는 목표, 규칙, 피드백 시스템, 자발적 참여라는 4가지 본질적 특징이 있다. <o:p></o:p>
목표는 플레이어가 성취해야 하는 구체적 결과다. 규칙은 플레이어가 쉽게 목표를 이루지 못하도록 제약을 만든다. 확실한목표 달성 방법을 없애거나 제한하여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로써 창의력이 발휘되고 전략적 사고가 활발히 일어난다. 피드백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목표에 얼마나 다가섰는지 알려준다. 실시간 피드백은 목표달성이 분명히 가능하다는 약속으로서 플레이어가 계속 게임을 하도록 의욕을 불어넣는다. 자발적 참여는 게임을 하는 모든 사람이 목표, 규칙, 피드백 시스템을 선뜻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한다. 이러한 자발적 수용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게임을 할 공동기반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마음대로 게임에 참여하고 끝낼 수 있는 자유가 있기에 플레이어는 어렵고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게임에서 안정감과 재미를 느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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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4가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런 말이 된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골프를 예로 들어보자. “골퍼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다른 사람보다 공을 적게 쳐서 조그만 홀에 집어넣는 것이다. 게임이 아니라면 식은 죽 먹기다. 그냥 공을 잡고 걸어가서 홀에 떨어뜨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클럽으로 공을 치기로 정했기 때문에 골프는 게임이다. 즉 모든 사람이 과제 어려운 방식을 통해 해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골프에 열중한다. 믿을만한 피드백 시스템도 있다. 그래서 공이 홀에 들어갔는지 그리고 스트로크 몇번 만에 들어갔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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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4가지 특성은 우리가 상황을 통제하고 잇다는 느낌을 준다. 저자가 말하는 4가지 특성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며 인간 행위의 본질이다. 그러나 게임과 달리 현실에선 4가지 중 어떤 것도 분명하지 않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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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생활에서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는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다. 먹고살기 위해, 출새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니면 그저 남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그런식으로 해야 하는 일을 혐오한다. 스트레스만 잔뜩 받고 가족, 친구와 보낸 시간도 빼앗긴다. 게다가 싫은 소리는 왜 또 그렇게 많이 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왠만해서는 노력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좀처럼 만족을 못 느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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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놀이보다 재미있다.’ 사람은 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것이다. 생리적으로 일은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일을 하려면 어쨌든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도 긍정적인 것이 있다. 현실과 달리 우리의 심리메커니즘에 맞게 설계된 게임을 할 때 우리는 긍정적 스트레스, 유스트레스를 받는다. “유스트레스는 부정적 스트레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유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며 두뇌의 통제 충추로 가는 혈류가 증가한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에는 튼 차이가 있다. 유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두려움이나 비관에 빠지지 않는다. 일부러 스트레스 상황을 만들었기에 자신감이 생기고 태도가 낙관저으로 변한다. 자발적으로 힘든 일을 택했을 때 우리는 자극과 활성 상태를 즐긴다. 어서 달려들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끝내고 싶어진다. 이렇게 낙관적이고 기운찬 상태가 휴식보다 훨씬 기분을 좋게 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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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트레스를 사람들이 즐기는 이유는 그것이 ‘힘든 재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든 재미에서 사람들이 얻는 보상을 ‘피에로 fiero’라 게임업계에선 부른다. “피에로는 역셩을 극복하고 느끼는 기분이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직접 느껴보면 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피에로를 느끼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피에로를 표현할 때 하나같이 두팔을 높이 쳐들고 소리를 지르니 말이다. 피에로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신경화학계의 최고조 상태다. 피에로는 다른 감정격발상태와 다르고 장애를 힘들게 극복할수록 강렬해진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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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게임에 매혹되는지 알겠다. 그런데 그것은 도피가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길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업임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업무 중에 짬짬이 게임을 즐긴다고 밝였다. 임원 대다수가 날마다 15분에서 1시간 정도씩 게임으로 휴식한다는 말이다. 많은 임원들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즐긴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한 말이다. 현실의 일이라는 외적 압력 즉 부정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게임 속 일이라는 내적 압력 즉 긍정적 스트레스로 주의를 돌인다. 이들은 잠깐 컴퓨터 게임을 하고 나면 자신감과 활력이 생기고 집중력이 증가한다고 했다. 모두 유스테스의 특징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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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외에도 여러가지 예를 든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소셜게임은 게임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같이 보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구실을 제공한다. “렉슈러스는 2007년에 출시돼 페이스북 최초로 거대 사용자층을 형성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말잊기 놀이라 할 수 있다.&nbsp;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려고 일부러 렉슐러스를 한다. 연락할까 말까 망성이던 사람은 렉슐러스가 계기가 된다. 내가 말한 ‘차례’가 됐다고 일러주니 능동적인 연결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소셜 네트웤 게임을 하면 우리가 사랑하지만 평소 잘 만나지 못하거나 대화가 부족한 사람과 끈끈하고 능동적인 연결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더 쉽고 재미있어진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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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가 이책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그 이상이다. 게임이 세상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게임 디자인의 논리로 세상을 디자인한다면? 그 좋은 예로 저자는 게임처럼 디자인된 학교를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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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의 ‘퀘스트 투 런’은 6-12학년 학생을 위한 자율형 공립학교이다. 세ㅐ계최초의 게임 기반 학교로 전 세계 학교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 설립자들의 바람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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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교 학생의 일과는 이런 식이다. “오전 9시 영어 시간 지금 라이는 레벨 업에 온 정신 쏠려 있다. 이야기하기 수업에 참여해 벌써 5점을 받았다. 이제 7점만 더 받으면 이야기의 ‘달인’ 반열에 오른다. 오늘은 작문 미션도 완수해 점수를 더할 생각이다. 레벨 업은 정규 곡선에 따라 A에서 F로 점수를 매기는 체계보다 평등하다.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레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퀘스트에 실패하더라도 성적표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 남지 않는다. 더 많은 퀘스트를 수행해 원하는 만큼 점수를 얻으면 그만이다. 이 같은 성적 체계는 부정적 스트레스가 아닌 긍정적 스트레스를 일으켜 학생이 수행평가가 아니라 학습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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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라이는 집에서 베티라는 가상 인물과 이야기하고 있다. 베티에세 대분수 나눗셈을 가르치는게 목표다. 베티는 교육 가능체라는 것으로 아이들이 디지털 캐릭터에게 특정한 문제 해결 방법을 가르치게 하는 평가도구다 다시 말해 라이보다 더 적게 알도록 디자인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라이가 할 일은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것. 교육가능체가 쪽지시험을 대신하므로 압박감 속에서 문제를 풀 때 생기는 불안감을 줄인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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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50/52/cover150/892554574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748</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수신/심리</category><title>我? 無我! - [나, 마이크로 코스모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61262</link><pubDate>Tue, 17 Jan 2012 0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612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527585X&TPaperId=536126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9/37/coveroff/89752758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527585X&TPaperId=53612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 마이크로 코스모스</a><br/>베르너 지퍼.크리스티안 베버 지음, 전은경 옮김, 손영숙 감수 / 들녘(코기토) / 2007년 10월<br/></td></tr></table><br/>“어느 날 혜능 스님에게 남악회양이라는 스님이 찾아왔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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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왔는가?’<o:p></o:p>
‘숭산에서 왔습니다’<o:p></o:p>
‘무엇이 이렇게 왔는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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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남악 스님은 답하지 못했다. 그 후 대답을 찾기 위해 8년 동안 뼈를 깍는 수행에 전념했다 한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이 질문에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분명히 이렇게 찾아온 자는 남악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얼핏 보아선 제대로 답한 것처럼 보여도 정답은 아니다. 아마 틀림없이 ‘그 나는 누군가?’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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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스님은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데 8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대답을 꺼냈다. ‘한 물건이라도 들어서 설명한다면 그 순간 진실에서 멀어지고 만다.’” (나카무라 하지메)<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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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질문 역시 혜능 조사가 물었을 ‘그 ‘나’는 누군가?’이다. 얼핏 그 답은 자명한 것같다. 눈 앞에 있는 바로 ‘이’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나 과연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책은 그 답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장황하게 보여준다. 먼저 이책은 뇌손상으로 정체성이 산산이 부서진 예들을 보여주면서 사람의 자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지부터 시작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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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량 손상 때문에 일어나는 외계인 손 증후군은 기이하기 그지 없다. 한 환자는 “난폭한 왼손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 ‘그 환자가 한번은 왼손으로 아내를 난폭하게 흔들었는데 그동안 오른손은 공격하는 왼손을 잡고 아내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지요.’ 또 다른 사례는 다른 환자의 집 뒤뜰에서 던지기 놀이를 할 때 벌어졌다. 그, 환자가 왼손으로 벽에 세워진 도끼를 잡은 것이다. ‘공격적인 우반구가 주도권을 잡은게 거의 확실했기 때문에 나는 살그머니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이 사회가 뇌의 어느 쪽 반구를 처벌하거나 없애려하는지 알아보는 시험 케이스의 희생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런 질환을 겪는 환자들이 사지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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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손 증후군은 교량이 손상, 또는 절단되면서 좌반구와 우반구가 분리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을 이전의 그와 같은 사람으로 보아야 할지, 그 사람을 한 몸에 두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보아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뇌의 작은 손상 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런 경우들을 보여주면서 저자들은 불교의 무아론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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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나’란 선천적인 핵심이 없으며, 언제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깨지기 쉬운 구조”이다. 정신병원이나 신경과에는 “인간의 파괴될 수 없는 인력의 중심이 ‘나’라는 직관적인 가정과는 달리 우리의 자아가 얼마나 복잡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증명하는 환자들과 서류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자신을 경험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경험으로 얻은 고유의 생각과 느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뇌에 있는 다양한 네트웤 때문이다. 특정한 뉴런들이 우리가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을 때 동시에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없다고 인식하게 하며 우리의 ‘나’에 대해 생각할 가능성을 준다. 기억은 한정된 뇌 영역에 저장됐다가 ‘자서전적인 나’를 구성하는데 이런 자서전적인 나에게서 기억을 뺀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된다. 우리가 균현잡힌 몸으로 살고 있고 그 몸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육체적인 나’라는 느낌 또한 노의 활동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파괴될 수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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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 초기에 나타나는 자아 인식 장애를 보자. “계약직으로 일하는 21세의 로버트는 발병하기 전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더 이상 온전하게 살아 잇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또한 자기 내부의 사람을 자신이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1년 넘게 받았다. ‘일인칭이던 내 삶이 사라지고 삼인칭 인물의 삶이 시작됐어요. 난 이제 내 몸에 없어요. 다른 사람이에요. 내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말소리는 다른 곳에서 오는 것 같아요. 난 기계처럼 움직여요. 움직이고 말하고 펜으로 뭔가 쓰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환자는 ‘나’의 육체적 경계는 어디인지 궁금해 하고 ‘나와 세상 사이의 유동적인 통로’에 대해 생각한다. 정신분열증이 되기 전 단계의 사람들은 점차 자기 자신의 생각도 잃어버린다. 환자는 가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생각을 하는가? 내가 생각한다고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이 여기 전혀 없으므로 나는 내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이들은 ‘나’라는 의식을 점차 잃어간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낀다. 일반적으로 자아의 일부분으로만 인식되던 현상들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객관화되어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기 인식’이 약해지면 정신분열증 증세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나’의 구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사람들을 정신착란으로 이끈다는 경악할만한 가설이다. 이성의 각성은 괴물을 낳는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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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나’는 왜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진화론적 이유가 타당할 것이다. “사냥할 때 다양한 역할을 나누어 맡았을 원시인들은 분명히 분화된 의사소통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사냥 집단은 적어도 사냥감의 이름을 부르고 사용할 전략에 대한 의견일치를 보고 개별적인 구성원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에게 다양한 의무를 지워줄 수 있어야 한다. 사냥이 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집단은 그 정보도 알아야 한다. 이때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가리킬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것도 가정할 수 있다. ‘나’라는 생각이 도구를 제작하고 사냥하고 계획하고 싸우고 속이고 화해하고 자신의 종말을 걱정하는 원시인들의 머릿속에 퍼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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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언제 출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 시작하는지는 말할 수 있다. 18-24개월부터 사람은 ‘나’란 개념을 갖기 시작한다. “22-24개월이 된-많은 아이들이 거울에서 자기를 알아본지 한 달쯤 지난 뒤부터- 아이들은 나, 나한테, 나를, 너, 가지 이름 등 가기와 관련된 어휘를 자주 사용한다.” &nbsp;그리고 “자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자서전적 기억이 형성되기 시작하고 이로써 아동기 기억상실 단계가 끝난다.” ‘나’란 느낌, 자의식은 나와 남을 구분할 수 있고 남도 나와 같은 의도와 동기, 느낌을 갖는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하며 동정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18개월 정도의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이 고장 나면 도와주려 하지만 더 어린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하거나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다. 이 시기의 아이득ㄹ은 다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할 수 있다. 예를들어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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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몇 개월부터 등장한 ‘나’는 평생 만들어져 간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은 최근까지도 사람의 성격이 늦어도 세 살 때까지는 완전히 확립되고 사춘기에 이르면 본질적인 것은 미이 모두 지나갔다고 믿었다. 성격이 두 살이나 세살에 이미 형성된다는 프로이트와 그 계승자들의 주장이 심리학에 널리 파고들었다.” 그러나 “성격은 평균적으로 쉰살이 되어야 안정적이 된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발혀졌다. 정부에 비판적인 슈폰티의 일원이었던 요쉬카 피셔가 탁월한 외무장관으로 재사회화된 일은 성격 단절 없이는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야릇한 모습이었던 미국 가수 프린스가 얼마 전 미니애폴리스에서 집집마다 다니며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전도활동을 하거나 예전에 무대에서 박쥐의 머리를 뜯은 충격적인 록 가수였던 오지 오스본이 이제는 고루한 미국 가정의 가부장으로서 꽃무의 소파에 앉아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은?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예전에 슈타이어마르크에서 포즈를 취해9ㅆ던 근육질의 남자와 동일한 사람인가?”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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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가변성은 뇌의 가소성 때문이다. 뇌는 평생 새로 조직될 수 있으며 성격은 뇌의 재조직화에 따라 바뀐다.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가 될 수 있는가’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건설현장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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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계에선 그 변화를 5대 특성으로 기술한다. 아무리 바뀌더라도 그 바탕이 있게 마련이고 그 바탕은 뇌의 구조이며 그 뇌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감정저긍로 더 안정되고 믿을만하며 더 편안한 성격이 되지만 새로운 경험을 향한 개방성은 서서히 줄어든다. 평균적으로 볼 때 외향성에서만 별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부끄러움을 타는 사람이 언제나 그런 성격으로 머문다는 뜻은 아니다. 조사대상의 절반이 사는 동안 자기 성격을 바꾸었다. 다른 50%가 변하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게 그 사람들이 변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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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뀌는 ‘나’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짐 모리슨은 1969년 마이애미 무대에서 즐겁게 들떠 있는 관중 앞에서 성기를 꺼내 자위를 잠깐 하고 그 결과 한동안 검찰에게 쫓기게 된 자신의 행위를 ‘나’의 진정한 표현으로 보았다 60년대와 70년대의 고전적 로큰롤과 팝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진정성이 중요햇다. 음악가들은 사운드와 스타일의 변화를 고통스러운 자기 발견 과정이라고 말했는데 이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마약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러나 그 진정한 ‘나’는 있는 것일까? 오히려 진정한 ‘나’는 처녀, 창녀, 디스코 여왕, 스트립쇼 무희, 에비타를 연기하는 진지한 음악가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마돈나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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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 교리는 서구에서 역설적으로 개인주의의 발전을 촉진했고 그 발전은 극적으로 빠르게 진전되었다. “’나’라는 기준은 특히 교회의 감독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하며 등장한 인문주의자들과 학자들의 명확한 성격이 되었다. 그러나 지위가 낮은 계층 역시 자아를 발견하기까지는 수백년이 더 걸렸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이때도 인쇄기술의 극적인 발전과 같은 새로운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게 확산된 개인주의의 물결은 문학작품을 통해 보편화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당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작품에서는 난파를 당한 개인이 자기 계층의 질서와 종교와 국가와 가족에서 해방되어 카리브해의 섬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이 세계 안에서 삶을 잘 꾸려나간다.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책들은 실생활에서도 생활방식이 개인화하는데 기여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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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개인주의가 찾으려는 ‘개인’은 뜬구름과 같다. “패션이든 세계관이든 전공이든 배우자 선택이든 모든 결정에 늘 존재하는 변경 가능성은 현대 개인주의의 본질에 속한다.” 나란, 자아란 별 것 아니다. 하루 하루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자아이고 나이다. 그러나 쉴새 없이 변해가는 ‘나’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 나일까? “수천년 동안 억압받던 ‘내’가 오랜 투쟁을 거쳐 스스로를 해방하고 ‘자아’를 찾다가 그 자아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이는 역사의 희비극이자 포스트모던한 정체성의 딜레마이다. 전통이 더 이상 구속력 있는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강압이 사람들에게 자리를 지시하지 않는 곳에서 자기실현의 기회는 오히려 노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의무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강박적으로 찾아 헤매고 실현하려는 자아는 무엇인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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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시간은 뇌의 산물이다. “기억은 윤곽뿐인 끝없는 강물처럼 보이는 사건들을 정리하고 한 사람의 행위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눈다. 기억은 우리에게 ‘배’가 이런 모든 경험을 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이 현상은 “뇌의 처지에서 그렇게 간단한 임무가 아니다. 스키 여행을 다녀온 걸과 운전을 한 것과 TV앞에 앉아 있던 것이 다른 사람이 독립적으로 행한 행위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의 ‘내’가 그것도 같은 사람인 ‘내’가 한 행위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서전적인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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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듯 기억은 그리 신뢰할만한 것이 아니다. 우선 기억은 감정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인간은 기분 속에 존재한다. “감정에 의해 분비되는 행복한 호르몬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기억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쁜 일들은 도파민과 세로토닌과 신체 고유의 마취제를, 부정적인 사건들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극단적인 양쪽 감정의 결과는 똑같다. 호르몬 분비는 뇌가 경험한 인상들을 뚜렷하게 기록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특별히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 일들을 기억한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감정은 뉴런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하면서 끝없이 흘러오는 정보의 강물 속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기억해야 할 것과 가치가 없어 지나치는 정류장의 구별기준을 만들게 한다.” 그 기준을 만드는 것은 감정이며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관심(sorge 영어로는 care)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감정 또는 관심을 통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이 만드는 기억을 통제할 수도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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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그 기억의 내용은 변한다. 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기억을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그 불러내진 기억이 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학자들은 이 현상에 ‘재공고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미 완성된 기억의 내용을 불러내는 일은 이를 새로 저장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미 확고하게 저장된 정보를 불러내는 과정은 이 정보를 다시 사용하게 할 뿐 아니라 다시 ‘녹인다’ 어떤 사실이 머릿속의 극장에서 새로 상영되듯이 정보는 반죽되고 달라질 수 있다. 기억이란 금방 만들어진 새로운 경험과 똑같이 불안정하고 영향을 받기 휩다. 기억은 이루 말 할 수없이 역동적이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자아의 이야기를 우리가 반복해 꺼내면 실제 연대기적 진실과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점차 농후해진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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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떠들석하게 했던 유아기 가족에 의한 성학대 신드롬이나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기억은 그런 경우이다.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변한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이 어릴 때 성적으로 자신을 학대했다며 갑자기 부모들을 고발했는데 이런 성적학대는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는 본인들도 모르던 일이었다.”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은 외계인과 밤에 만났던 일을 직접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납치를 당했었다는 기분 나쁜 느낌으로 잠에서 깬다. 그런 다음 심리상담사의 암시적인 질문을 받으면 외계인에 의한 ‘유명한’ 납치 야기를 기억해내는데 아마 다른 문화적 조건 아래서는 마녀나 유령 또는 사탄에게 납치당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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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인생 전체가 기억들로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네가 거의 느낄 수 없는, 현재라는 순간을 제외하고 말이야, 정말 모든 것은 기억이야 하지만 지금 막 지가나는 그 순간은 아니지’ (테네시 윌리엄스) ‘나는 나야’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기억이다. 이 기억은 사람을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에 고정시키고 그에게 스스로를 의식하는 지식, 예를 들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있었다고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기억하는 것을 준다. 그러나 이제 인간의 기억이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딜레마 하나가 얼른 떠오른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할 때 어떤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경험한 인생? 아니면 기억된 전기? 자서전적 기억의임무는 우리의 모든 과거가 지금 기억을 하고 있는 나의 현재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바꾸고 배열하는 것이다. 진화는 과거에 대해 숙고하라고 우리에게 기억을 준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풀라고 주었다. 기억은 ‘나’의 위대한 쇼다. 기억은 교정하고 검열하고 자르고 희석하며 머물러 있는 모든 것들을 과거가 의미를 지니도록 새로 연결한다. 기억되는 전기는 나라는 무대에서 언제나 새롭게 펼쳐지는 연극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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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라는 느낌 즉 자아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내용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나’에 집중하고 ‘나’에서 출발하는 관점을 지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의식 영역의 중심이 언제나 ‘나’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중추 안에 잇는 모든 상황은 경험상 자신의 상황이다. 나의 세계에는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은 나 자신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프톨레마이오스적인 세계상은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직관적인 ‘나’의 관점을 지구와 우제에 투영한’ 것일 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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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가지 큰 문제는 우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나’와 ‘자아’ 또는 ‘주관’과 같은 개념을 정의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 개념과 관계가 있을법한 대상이 이 세상에서 관찰되지도 않는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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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라는 현상은 나에게는 확고부동한 현실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에겐 그렇지 않겠지만 대다수에게 Cogitio ergo sum은 증명이 불필요한 공리이다. 그러나 그 증명이 불필요한 현실에는 물리적 근거가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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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칭 시점은 뇌의 전기적인 활동에서 어떻게 주관적인 인식이 생기는지 검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뇌는 붉은 색을 보는 게 아니라 눈에 있는 감각세포의 신호에 의해 자극을 받아서 붉은색을 위한 신경패턴을 활성화한다. 뇌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듣게 아니라 음악과 함께 오는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신경패턴을 활성화한다. 뇌가 이날 ‘나’에게 통증을 의미하는 신경패턴이 통증을 느끼고 뇌가 아니라 행복을 담당하는 신경패턴이 행복을 안다.” 뇌가 통증을 우선 지각해야 통증이 생긴다. 그러나 “통증에 대한 주관적 느낌이 없다면 통증도 없다. 통증은 척수의 신경신호나 뇌에서 전달이 연결되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현상이 의식에 떠오름으로써 생긴다.” 그렇다면 통증은 다시 말해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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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시점에서 한 가지는 의심이 여지가 없다. 지금 나는 매 순간 ‘실제의 전체’를 경험한다. 데카르트가 인식했듯이 우리는 의식을 하나의 통일체로 경험한다. 그런데”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지적했듯이 감각자료는 제각각으로 제멋대로 뇌에 입성한다. 사과를 보는 아주 단순한 인식을 생각해보자. 빨갛다, 둥글다, 만지면 딱딱하다, 향기가 난다 맛을 보면 시면서 단 맛이 난다. 이런 데이터는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제각각의 정보들이 사과라는 하나의 물건에 속한다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의식(칸트가 통각이라 부른)이 사과하는 통일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데이터에서 어떻게 하나의 사과라는 통일체가 나타나는가 더 나아가 우리가 우리의 의식을 하나의 시공간으로 통일체로 인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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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전체 조직에 널리 퍼져 있는 중추들에서 이 모든 물리적인 정보를 분리하여 분석한다. 모든 분류가 흘러들어가고 이들이 다시 통일된 형태로 완성되는 최고사령부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물체 자체가 여러 분석으로 나누어지리라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는다. 표면이 없는 윤곽만 춤을 추지도 않고 형태보다 앞서서 색깔만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신경생물학은 의식이란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아니면 ‘아직’이란 말을 넣는 것이 좋을까?”<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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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주관적으로 확실하게 의식의 단일선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뇌가 ‘나’라는 무대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는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일하는 많은 부분들이 의식에 기여한다. 우리의 뇌는 ‘왕이 없는 제국’이다. 세상에는 자아와 비슷한 그 무엇인가는 없다. 자아는 삭제할 수 없는 진실의 기본 구성요소에 속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경험한 ‘나’라는 느낌,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뀌는 다양한 자의식의 내용이다. 철학자들은 이를 ‘현상적 자아’라 부른다. 이 말은 자아라는 구상이 해체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뇌는 실제나 실제 속에 있는 자아가 아니라 그것의 모델과 함께 일을 한다. 이 모델은 뉴런의 복합적인 활성화 패턴과 이들의 일시적이고 역동적인 연합으로 만들어지낟. 이 모델은 육제 및 육체 움직임의 상이 있는 공간적인 영역, 우리가 느/낌을 의식하고 이를 행위의 기본으로 삼는 감정적인 영역, 문화 및 함께 사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ㅅ최적 영역이라는 다양한 소단위로 분류된다. 이 모델들은 우리가 외부 세계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하고 의견을 전하게 하며 우리 자신을 향한 관심과 생각을 통일된 하나로 조종하게 한다. 자아라는 느낌은 신체 내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내부 감지기들이 전달하는 전류에서 싹이 튼다. 자아 모델은 내부에서 발행한 입력이라는 부단한 원천을 통해 뇌에 고정된 유일한 표현적 구조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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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뇌와 같은 지각 장치가 자신의 모델을 더 이상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을 ?대에야 비로소 나타난다.” 다시 말해 모델들의 시스템은 의미론적으로 투명하다. “이들이 자기가 모델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스템은 자신의 표상적인 구조를 ‘통과’해서 본다. 우리는 자신의 뇌에 의해 활성화된 자아 모델의 내용과 자신을 끝없이 혼동한다. 이런 끝없는 혼동을 통해서 그 누구도 아닌 존재는 비로소 어떤 존재가 된다. 혼동을 텅해서 비로소 우리가 우리 자신-자신의 육체를 지니고 있으며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깊게 생각하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며 어쩌면 죽은 다음에도 피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어떤 사람-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사실이 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우리에게는 확고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핵심이 없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아트만은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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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트만은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순진하고 연실적인 ‘자아의 오해’라는 조건 아래에서 작업한다. 우리의 순진함은 우리가 마치 자신과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접촉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하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사고 기관에는 일단 기본적인 ‘나’라는 느낌, 해당되는 시스템이 없는 현상적 자아가 생긴다.” 현상학에선 이를 지향성이라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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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적인 자아는 그저 되도록 의미 있는 생각을 하고 부딪치지 않게 움직이며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지각한다., 이를 가능한 한 사용자에게 편리한 외관을 제공하여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하기 위한 진화의 기교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우리의 의식에 떠오르는 내용들을 컴퓨터 OS에 비유한다. 인터페이스에 나타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실제가 아니라 그 실제의 상징을 뿐이다. 하드 디스크 어디에도 폴더는 없다. 그것은 그저 다루기 쉽게 만든 상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바다와 하늘의 모든 색갈과 물결의 속삭임은 그저 상징일 뿐이고 던져준 막대기 뒤를 쫒아가는 개도 역동적인 상징이며 바람 대문에 얼굴에 와 부딪치는 머리카락도 생선 굽는 냄새도 상징이다. 그 아래는 복잡한 뉴런의 흥분 패턴이 숨어 있다.”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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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의 레오가 그랬듯 이런 결론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킨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거대한 우주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기 힘들어 한다. 우리가 그 누구도 아닌 존재로 세상에 왔다가 그 누구도 아닌 존재로 죽으며 그 사이에는 포괄적인 혼동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누군가로 착각한다는 가설은 지나치게 냉정하고 인간을 경멸하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불교에선 그 느낌 너머로 나아갈 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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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9/37/cover150/897527585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527585X</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당신의 집, 안전합니까? - [아파트의 몰락 - 내 집 마련이 절실한 3040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61254</link><pubDate>Tue, 17 Jan 2012 0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612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667&TPaperId=53612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38/40/coveroff/89255456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667&TPaperId=53612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파트의 몰락 - 내 집 마련이 절실한 3040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a><br/>남우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br/></td></tr></table><br/>“필자가 보기에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 시작은 “코앞까지 다가온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일 것이다.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우리나라 부동산의 미래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난 7년의 부동산 잔치는 끝났다. 그 동안의 불패신롸는 완전히 잊힐 정도의 극심한 7년에 걸친 흉년이 시작될 것이다. (최윤식, 정우석)<?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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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시장이 바닥을 기고 있다. 언론에선 지금이 바닥이니 다시 오르기 전에 사두어야할 절호의 기회라 한다. 그러나 그럴까?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자본은 일찌감치 빠져나간 상태이다. 배가 침몰하기 전 쥐들이 알아차리듯 언론이 뭐라 떠들건 그 바닥의 프로들은 손을 털었다.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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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의 몰락은 몇 년전부터 부동산 전문가들이면 예견하던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단지 그 시점이 언제인가, 시작이 어떤 식일까가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몰락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본의 버블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마찬가지로 버블을 키웠던 부채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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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뚜렷한 소득증가는 없었다. 오히려 양극화가 시작되면서 소득은 감소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은 잔치판이었다. 이유가 뭔가? 단순하다. 일본도 그랫고 미국도 그랬듯이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은 대출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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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가계대출은 166조원으로 GDP 대비 33% 수준이었지만 1998년 이후 가계대출이 계속 증가해 2010년에 4.5인 746조원으로 늘어 64%까지 증가했다.” 빚잔치는 가계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부채 역시 “1997년 6조3000억원에서 2009년 359조6000억원으로 500%나 증가했다.” 대출이 증가하면 물가는 당연히 오른다. 그런데 통화량 증가는 일반소비재보다 자산의 가격을 더 크게 끌어올린다. 부동산의 7년 호황은 단순한 이유였다고 저자는 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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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그렇게 돈이 풀렸던 것일까? 저성장때문이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엇다. “국가부채의 GDP 기여도를 계산하면 약 4.8%가 된다. 결국 국가부채의 GDP 기여도를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 자력에 따른 GDP 성장률은 -1%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난 10년간 양적으로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 채무 증가에 따른 것일 뿐 경제 자체의 성장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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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게 된 메커니즘이나 한국의 지난 10년동안 부동산 호황을 겪은 이유나 마찬가지라 본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은 이번 금융위기로 죽을 쑤고 있지만 한국은 그 위기를 견뎌낸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엇다고 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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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응으로 ㅅ건진국들과 공조해 공적자금 투입 외에도 금리를 사상 최저로 인하해 개인의 대출 확대를 유도했다.” 그러나 미국등 선진국은 버블의 붕괴기에 있었지만 한국은 형성기에 있었다는 차이점 때문에 한국은 위기를 비켜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완화 정책은 거품이 빠진 이후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대출 축소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엇다. 그러나 국내의 금융완화정책은 이미 금증하고 있던 대출에 기금을 부었고 이 정책의 실행으로 거품이 더욱 팽창했다. 이것이 2009냔 우리나라만 금융위기를 비캬갈 수 있었던 이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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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한국도 버블 붕괴기에 들어섰다고 저자는 말한다. 버블붕괴기에 나타나는 거래량 축소가 그 증거이다. 거래량이 축소되면서 더 이상 버블은 커지지 않고 시장은 정체된다. 그리고 가격도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은 이미 붕괴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집값 하락에 다른 대출축소, 그리고 대출축소가 다시 집값 하락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본격화되지 않았을 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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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것은 그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인데 그 시작은 일본과 미국에서 그랫듯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될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저자는 본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 등의 출구전략때문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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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금리를 올렸는데 우리나라가 낮은 금리를 유지할 경우 국내에 있는 달러가 미국으로 유출된다. 달러가 급속히 유출되면 지난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원화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을 유지가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국가는 정책자유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부는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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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오르면 서브프라임 사태와 동일한 메커니즘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가계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진 빚의 원금과 이자를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으로 감당해내지 못한 데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펼쳤고 동시에 은행이 공격적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은행들 역시 미국과 동일한 정책을 취했고 국내 가계 역시 대출을 받아 아파트 투자에 열을 올렸다. 이 열기는 결코 미국에 뒤짖 않았다. 문제는 가계가 부채를 상환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에 있다. 이 수치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작 시점인 2007년 말 미국은 136%였는데 2010년 우리나라는 무려 146%를 기록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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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 정부는 금리인상의 시동을 걸지 않았다. 이유는 선거때문이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재정적자의 상당부분은 부양효과가 좋은 건설업으로 흘러들어가 부동산시장을 떠받친다)를 버틸 수 밖에 없고 금리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틴다. 그러나 이미 한계다. 본격적인 버블 붕괴는 선거 이후일 것이라는 게 보편적인 예상들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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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거품이 터진 후이다. 거품 붕괴 후 한국의 상황은 아마 일본 못지 않을 것이다. 이책에선 그런 논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논의는 앞에서 인용한 ‘부의 정석’이 좋은 예이다) 이책에선 아파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한다. 한마디로 아파트의 몰락이 저자의 결론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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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파트는 부동산의 꽃이었다. 선진국에선 저소득층을 위한 별볼일 없는 주거가 왜? 이유는 정부가 아파트를 밀었기 때문이지만 ‘헌집 줄게 새집다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재개발 때문에. 아파트가 재개발되면 용적율을 올리면서 더 넓은 새집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엇다. 그러므로 아파트 가격에는 그 미래가치가 반영되었고 다른 주거형식보다 아파트의 가치는 더 높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몰락한 후에는 그런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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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버블이 터진 시점이나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점은 인구의 고령화 시점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주택수요층의 감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수요층의 감소는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더 심각해지고 고착화될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미래가 없는 시장에서 헌집 줄게 새집다오가 가능한가?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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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현재 입주한 아파트가 재개발되어야 하는 시점이 문제이다. 과거처럼 공짜로 새집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분담금을 내고 사야된다. 아마도 현재 집값보다 더 비싸게 먹힐 것이다. 그럴 때 아파트가 여젼히 주도적인 주거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아파트의 몰락이다. 그 시점은 일산등에 1차 신도시에 건설된 아파트들이 재건축 연한에 들어갈 때가 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38/40/cover150/89255456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66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선비, 얼치기 근본주의자들 -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49800</link><pubDate>Thu, 12 Jan 2012 0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498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19376&TPaperId=534980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17/5/coveroff/89931193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19376&TPaperId=53498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a><br/>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br/></td></tr></table><br/>“먼 옛적 어버이를 장례 지내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어버이가 죽자 바로 들어 골짜기에 버렸다. 다른 날 그곳을 지나다 보니 여우와 이리가 뜯어먹고 파리와 모기가 빨아먹고 있었다. 이마에 진땀이 나고 흘겨는 보나 차마 바로 보지는 못했다. 땀이 난 것은 다른 사람의 눈 때문이 아니었다. 마음의 중심이 얼굴과 눈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와 흙과 풀로 덮었다” (맹자, 등문공 上)<?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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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하나인 장례가 어떻게 생겼을가에 대한 맹자의 추리이다. 맹자의 상상이 사실일리는 없고 옳은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맹자의 이야기가 그렇듯 이 이야기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맹자가 말하는 것처럼 장례가 없던, 장례라는 관념 자체가 없던 옛사람들 마음의 구조는 어떠했을까? 부모의 방치된 시신을 보더라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우리 주변의 동물들이 지금도 그런 것처럼,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마에 땀이 나고 차마 정면으로는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 분명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엄청난 충격, 혼란, 죄의식이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다. 살아 있는 부모가 바로 곁에 느껴졌을 것이다. 들판 쑥덩굴에 버렸던 그 몸뚱이, 죽은 어미… 자기도 모르게 이마와 등줄기와 손에 진땀이 흐르고 괴로웠을 것이다. 갑자기 내면에 발생한 이상한 감정에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죽은 어미? 죽은 아비? 어디에? 분명히 죽고 없는 부모가 ‘여기 이곳’에 느껴진다. 기억의 단순한 잔영이 아니다. 땀과 충격, 희미한 죄의식이 그를 흔들었다. 감관적, 물리적 세계 밖의 또 다른 차원이 인간의 의식 안에 불쑥 출현한 것이다. 맹자의 땀 이야기는 종교성의 근원을 생생한 몸의 반응으로 설명한 아주 특출한 사례이다. 우리 도덕의 기원은 몸에서 우리 몸의 땀에서 시작되었다. 축의 시대에 탄생한 보편윤리, 세계종교의 공통적 핵심은 무엇인가? 그 바탕에는 맹자의 땀에서 시작된 종교성의 원형이 있다. 그 종교성은 감관세계, 물질세계를 상대화햇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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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가 종교인 이유는 초월에 있다. 지금 여기에선 죽은 어미를 흙으로 덮어주어야 할 어떤 이유도 나오지 않는다. 장례의 이유는 지금 여기를 넘어선 초월, 성(聖)에서만이 만들어진다. 물론 초월은, 성은 축의 시대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성의 탄생이 보편윤리, 세계종교를 출현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의 위기 때문이었다.” 카렌 암스트롱이 말하듯 축의 시대에 등장한 세계종교들의 공통점은 폭력에 대한 반감이었다. “기독교의 에덴동산이나 노자의 소국과민은 모두 고대도시, 고대국가가 출현하기 어전의 상황을 말한다. 도시와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고도의 인위와 작위의 산물이다. 착취와 전쟁이 체계화, 대규모화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방법론들이 고도화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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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 시대에 등장한 세계종교들에는 모두 그 당시 세상에 만연했던 폭력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기독교는 사랑으로 불교는 자비로 말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유교를 정치종교로 만들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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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땀은 철저한 타자, 가고 없는 존재자에 대한 윤리적 부채감이다. 여기서 폭력과 전쟁에 대 한 철저한 반대가 나온다. 폭력의 주인인 군주에 결연한 비판과 견제의 마음이다. 아울러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지키려는 강직한 태도다. 천하게 바르지 않게 될까 걱정하는 天下爲公의 마음, 우환의식이다. 마음에 그치지 않았다. 근심하고 있지만 않았다. 현실의 중앙에서 천하위공을 실현하려고 했다. 여기에 유교의 핵심이 있다. 군주와 대면하고 국가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유교는 국가의 폭력성을 밑으로부터 통어하려 했다. 국가의 주인인 군주를 윤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군주주권을 내파 즉 안으로부터 해체했다.” 그 내파의 논리가 성왕론이었다. “성왕론은 유교이념의 핵심일 뿐 아니라 유교정치체제의 근간이다. 윺교의 예란 이러한 이념과 체제를 작동시키는 행동원리이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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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인류가 최초로 윤리적 감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주어진 현세의 현상과 힘 자체를 회의하고 초월하는 반성력이다. 이러한 윤리적 각성은 현세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이러한 각성 이후에는 현세적 사실과 윤리적 초월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한다. 유교의 창건자들은 ‘폭력에 대한 윤리적 혐오감’이라는 전혀 새로운 감성을 중국 문명에 최초로 이념적으로 체계화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인식에는 무엇인가 부당하고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부당하다는 의식 자체에 초월적 계기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옥이라는 초현세적 계기를 구성하여 현세의 불완전성을 초월적 논리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유교에서 이러한 초월적 조정 놀리는 어디에 있는가? 유교는 이 문제를 두가지 축으로 풀었다. 첫째는 성인 군주라는 이념의 창출이고 둘째는 예의 강조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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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는 유교란 정치종교의 사제였다.”겉으로 보면 유교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된 교회가 없고 타 종교에 비할 사제 신문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유교의 그러한 특성들이 오히려 정치와 윤리(종교)간의 갈등을 유교정치 내부로 끌어들여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유교는 정치와 윤리 간의 갈등이 유독 강했던 특이한 정치종교였다. 유교정치에서 고도로 발전한 간쟁의 전통은 강력한 정치적 윤리종교로서의 유교의 특징을 잘 표현한다. 정치적 행위 자체 특히 군주에게 윤리적 이상을 간하는 정치 행위에 종교적 사명을 걸었던 종교는 유교가 유일하다. 죽음을 불사했던 유교 간쟁의 전통은 종교적 현상으로 다만 고도의 정치적 윤리종교로서 유교를 이해할 때만 설명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유자가 타 종교의 사제 역할을 수행했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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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조선에서 그 사제 역할을 했던 선비에 대한 품인론이다. 선비를 평가하려면 그들이 목숨을 걸었던 그 신념체계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그들의 신념인 유교는 당대의 보편적 세계관이기도 했으므로 선비를 평가할 때 적절한 기준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선비들의 성적표는 낙제라 저자는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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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국시로 내건 조선의 건국은 국가의 폭력, 전쟁과 착취를 뿌리뽑자는 이상에 따랐고 한국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세계사에 유래가 드문 이념에 근거한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유교의 말로 하자면 천하위공의 실현이 그 목적이었다. 그 혁명을 주도한 유학자들, “선비는 사회의 주도층으로서 그에 따른 책임의식을 느끼는 자들이며 그들의 최대 관심은 개인적 욕망을 이겨내고 자신과 타인이 다 함께 생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선인 공적 의로움 즉 공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선비의 모든 덕목은 공의, 즉 천하위공의 각론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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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의 실제는 어떠했을까? 그 선비들이 만든 조선은 차별의 나라(노비, 서얼, 여성), 특권층의 나라, (작당하는) 소인배의 나라, 가난한 나라, 사대주의의 나라, 허례허식의 나라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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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차별의 나라를 보자. 君君臣臣 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공자의 정명론이다. 유교에서 올바른 사회란 이름이 이름다운 것 즉 명과 분이 일치하는 명분론에 맞는 세상이다. 김시습의 말을 들어보자. “명분이란 사람에게 중대하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서 건곤이 정해졌고 (인간세상도) 높고 낮음이 펼쳐져 귀천의 위계가 정해졌다고 했다. 그러니 명분은 누구도 범할 수 없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명이라 이르는가? 천자, 제후, 공경대부, 사, 서인이 그것이다. 무엇을 분이라 이르는가? 상하, 존비, 귀천이 그것이다. 이미 이름(명)과 구분이 있는데 또 그것을 예로써 절제함이 없으면 기강과 법도가 저절로 유지될 수 없으며 명분의 실상도 한갓 빈 그릇이 되어 다스릴 수 없다. 이로써 천자는 제후를 제어하고 제후는 공경대부를 제어하고 공경대부는 사와 서인을 다스린다.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부리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따른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은 마치 눈과 머리가 손발을 움직이는 것과 같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나무밑둥과 뿌리를 호위하는 것과 같다. 이런 후에야 상하가 서로 돕고 본말이 서로 지지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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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평등이란 가치를 들이대고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세계의 현실에선 그리 이상할 것 없는 논리이다. 문제는 선비들의 나라 조선은 그 명분론 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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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정명론을 말했을 때 군과 부는 신과 자에 대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신과 자가 떠받들 가치가 있을 때 그 상하관계는 명실상부하게 되며 이름에 걸맞는 관계가 된다. 그러면 선비들은 지배계급으로서 이름에 걸맞았는가? 저자는 아니라 말한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명분론이엇지만 그 명분은 자신들만을 위한 차별의 나라를 만드는데 악용되었을 뿐이라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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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말을 들어보자. “신이 엎드려 생각하니 인재를 얻기 어렵게 된지 오래입니다.. 온 나라의 영재를 다 모아 발탁해도 오히려 부족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영재의 8,9할을 버리다니요? 온 나라의 인민을 육성시켜도 오히려 인재가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그 8,9할을 버리다니요? 상민이라고 버리고 중인이라서 버리고 평안도와 함경도라서 버리고 황해도와 개성과 강화도라서 버립니다. 강원도와 전라도에서도 절반을 버립니다. 서얼도 버립니다. 북인과 남인은 버리지 않는다지만 오히려 버리는 셈입니다. 버리지 않는 것은 벌열집안 수십뿐입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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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얼의 차별은 밥그릇 싸움과 관계가 있다. 유교의 본산인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서얼 차별은 원래 주자가례를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되었지만 끊임없는 서얼 허통 운동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지속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파싸움과 마찬가지로 결국 밥그릇 싸움이 아니었을까?<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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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노비는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까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조선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노비였다. 이런 특이한 노비제도와 너무 많은 노비인구는 같은 동아시아에서도 유독 조선에서만 나타난 기현상이엇다. 선비들은 노비제도의 유용성을 역설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정당화를 넘어 조선의 선비들은 노비 보유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노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전통과 유교가치 사이에 충돌이 있을 경우에는 늘 노비 소유주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농업만이 유일한 산업인 조선에서 토지와 노비만이 생산재였고 노비와 땅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러면서 양반들은 ‘우리나라의 노비법이 비록 중국하고는 다르지만 예의와 염치를 중시하는 우리라나의 풍속은 사실 이 노비법 때문에 가능합니다’라고 합리화했다. 예의와 염치는 차치하고 노비제의 비인간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노비가 늘면 양반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국가의 재정은 파탄날 수 밖에 없다. “16세기에는 상민보다 노비가 더 많아지는 현상이 심해져 16세기 초부터 이미 조선 조정에서는 세금을 징수할 대상으로서 양인인구 곧 수세원을 심각하게 상실하기 시작햇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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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이 다 그렇듯이 양반도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세금이란 언제나 아랫것들이나 내는 것이니. 그런데 그런 무임승차는 대다수가 세금을 낼 때나 가능하다. 그러나 토지와 노동력이란 생산재를 축적하면서 양반들은 그 대다수를 소수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무임승차 자체를 위태롭게 했다. 버티다 못한 국가가 양반도 세금 좀 내라면 양반 체통에 그런 것을 어떻게 하냐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고 별의 별 논리를 동원해 자신들의 무임승차를 정당화했다. 전형적인 기생귀족의 모습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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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위공이란 말의 어디에도 그런 정당화는 가능하지 않다. 결국 어느 종교의 사제들이든 부패해갔던 것처럼 양반들도 부패해갔을 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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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권력을 장악한 조선은 부유한 양반들에게는 병역 면제와 감세의 특권을 주고 가난한 농민과 천민에게 갖가지 의무를 지운 나라였다. 그럴지라도 외부로부터 경제적 잉여가 유입되는 경제구조라면 나라도 재정이 넉넉하고 민생도 안정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시종일관 국내에서 생산해 국내에서 소비하는 자급자족 국가였다. 이렇다 할 해외무역이 없는 탓에 물화의 입출입이 미미한 조선에서는 특권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조적으로 총체적 가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개항직전 청나라와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량은 청나라 상대로 약 300만원, 일본을 상대로 약 12만원 정도였는데 이 무역총액은 당시 조선의 국내총생산의 2%^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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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파이 자체를 키우는 방향의 경제 관련 개혁안이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저 하늘이 내려준 유한한 물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조선시대 내내 조정에서 벌어진 경제관련 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부에서 생산한 재화만으로 배분을 한다면 그것은 제로섬 게임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이전보다 더 많은 배분을 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누군가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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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 와 저지른 패악은 왜군보다 더 심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원인 중 하나는 당시 일본이든 중국이든 동남아이든 동아시아 어디서든 통용되는 은을 가지고 와도 조선에선 살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굶지 않으려면 약탈할 수 밖에.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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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의 일본만 보더라도 조선보다 더 부유했다. “1624년에 일본을 다녀온 강홍중 역시 에도에 이르는 거리 풍경의 묘사를 통해 국가의 경제력과 관련 인프라에서 이미 일본이 조선보다 크게 앞섰음을 글로 남겼다. 조선은 이미 17세기 초부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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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한심한 상태를 내버려두었는가? 그 이유는 여러가이이겠지만 상업을 말리(末利)라 경멸한&nbsp; 유교의 이념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크다. 상업이 안된다면 “조선이라는 전체 파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었을까? 민생을 책임져야 할 사대부라면 당연히 이런 고민을 했어야 마땅한데 조선의 사대부 선비들은 벌로 그렇지 않았다. 선비들이 권력을 독점한 예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조선의 경우가 유일한데 바로 그 조선이 가장 가난한 나라였으니 이게 우연일까? 특히 15세기까지만 해도 조선과 일본의 거리 풍경과 경제력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16세기를 지나면서 그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은 이른바 사림 곧 선비들이 권력을 장악한 바로 그 시기였다. 이런 타이밍은 우연일까?”<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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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먼저 부유하게 할 것이라 햇다. 그 다음 예를 가르칠 것이라 햇다. 배가 고픈데 예를 지키라 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재력가인 양반들이야 안빈낙도하는 시늉을 하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곶간에서 인심난다. “가난하고 배고픈 백성들에게 밥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가난하고 배고픈 것을 감수하고 그저 예로서 참으라 할 뿐이었다. 맹자도 맹자 백성을 먼저 배불리 먹인 후에야 예법을 가르칠 수 있다고(항산항심) 했음에도 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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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치인(治人)은 낙제를 면치 못한다고 저자는 총평한다. 그럼 왜 이런 한심한 성적이 나왔을까? 중이 고기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의 지배계급들도 모두 양반들과 별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그들이 기생귀족이 되었을 때 그 국가와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은 거기서 한가지를 더 보아야 한다. 그들은 정치종교의 사제들이었다. 그들을 평가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면 종교적 측면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선비들이 그렇게 추앙했던 조광조를 예로 들어보자.<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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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는 타고난 자질이 정말로 아름다웠으나 학문의 힘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시행한 바가 너무 지나쳤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이 끝내 실패하고야 말았다. 만약 학문의 힘이 이미 갖추어지고 덕성의 도량이 완성된 뒤에 벼슬길에 나와 세상일을 맡았더라면 이룩한 바를 쉽게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nbsp;<BR><BR>퇴계의 조광조에 대한 평이다. 실제 조광조의 문제가 뭐였는지 에두르는 이 말만으로는 퇴계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퇴계가 지적한 것은 책상머리 관념론이었을 것이다. 조광조는 실제 그런 사람이엇다.&nbsp;<BR><BR>“중종 13년 '오랑캐의 수장인 속고내가 국경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와서 사냥중.' 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속고내는 원래 조선에 투항을 하였던 여진족 추장인데 그 뒤에 변심하여 갑산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당시 혼란을 틈타 다른 여진족 역시 공격에 가담해 변방이 어지러웠다. 보고를 들은 조정은 소수의 정예 병력으로 속고내를 잡아들이기로 결정했다.&nbsp;<BR><BR>그런데 당시 부제학이었던 조광조는 중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왕의 움직임은 신중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치에 맞은 뒤에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속고내가 공격하려는 마음이 없고 다만 사냥하러 왔을 뿐인데, 기습하여 사로잡는단 말입니까? 도적처럼 행동하여 기습한다면 의리에 맞겠습니까? 속고내가 죄가 있다면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nbsp;<BR><BR>영의정 정광필이 조광조의 말은 유학의 도리에는 맞지만 변방의 일은 해결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조광조는 “군주가 오랑캐를 대하는 데는 변경을 충실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하여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고, 저들이 먼저 변경을 소란하게 하여 적이 우리에게 침범하면 부득이 대응하되, 서서히 죄를 묻는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본디 사리에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우리의 병력을 살피고 헤아려야 하며 가벼이 움직여서는 불가한데, 하물며 명분 없는 일까지 해야 합니까? 신은 변방의 일만 일으키고 국가의 체면만 크게 상하게 될까 염려됩니다.”&nbsp;<BR><BR>병조판서 유담년이 화가 나 중종에게 말했다. “ 밭을 가는 일은 남자 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를 짜는 일은 여자 종에게 물으라는 옛 말처럼 이번 일에는 소신의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중종은 훈구파를 무시하고 조광조의 사림파 편을 들어주었다.&nbsp;<BR><BR>그리고 중종 때 조선의 변방은 편할 날이 없어서 조정에서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국경을 지키는 조선군은 번번이 패배하였고 중종 18년 여진정벌전을 계획하였으나 허공교전투에서 조선토벌군이 패배하였다.”&nbsp;<BR style="mso-special-character: line-break"><BR style="mso-special-character: line-break"><o:p></o:p>
조광조의 궤변은 성왕론이란 이론으로 보면 말이 된다. 공자가 모든 별들이 븍극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왕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의 덕이 높다면 저절로 정치는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가 그런가? 성왕론의 요점은 사실 그런 글자에 있지 않앗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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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임금이라는 교의에는 강한 역설이 배어 있다. 어떻게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현세의 군주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 잇는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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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세존께서 조용히 명상하고 계실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죽이지 않고 죽이게 하지 않고 승리하지 않고 승리하게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슬퍼하게 하지 않고 법에 의해서 통치할 수는 없는가?’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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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악마가 이렇게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여! 세존이 직접 통치하십시오.” (쌍윳타 니카야)<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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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비폭력은 붓다의 기본적 가르침이다. 성자의 길과 정치의 길은 언젠가는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이지 않고 죽이게 하지 않고 승리하지 않고 승리하게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슬퍼하게 하지 않고 법에 의한 통치’는 붓다가 꿈꾼 이상적인 통치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인류의 비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전쟁은 벌어지고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다. 붓다는 이런 세상의 모습에 사무치게 슬퍼하였으리라. 그런 비장한 슬픔이 이 짧은 일화에서 전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정법으로 통치한다면 이런 비참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붓다의 심중에 오갔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성자가 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 게다가 이런 장애물은 성자의 길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런 장애물을 넘어서 갔다. 정치의 길은 대체로 혼탁한 길이다. 붓다의 청정행과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었을 것이다. 붓다는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나카무라 하지메)<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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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도 불가능한 길을 누가 갈 수 있을까? “성인이라면 현세의 권력관계를 초탈한 사람일 것이고 군주라면 현세의 권력관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유교의 예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른 방향과 바른 자세와 바른 순서에 따른 움직임, 우주의 숨결에 따른다는 순전히 자동적인 절문(節文)의 행위만으로 도대체 상쟁하는 폭력적 현실이 어떻게 다스려진다는 것일까? 이 질문 그리고 이 질문에 내포된 역설에 대한 숙고는 우리를 곧바로 유교의 핵심으로 끌어들인다. 모든 심원한 교의의 중심에 안티노미가 있듯 유교 교의의 중심 즉 성왕과 예의 이념에도 역설이 존재한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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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론의 근거는 요순우 3대이다. 유자들이 3대를 성스럽다고 했다. “그들에게서는 한 점의 분노도 한 점의 폭력도 한 점의 허영도 한 점의 증오도 없다. 그들은 한없이 선하고 한없이 부드럽고 한없이 검약하고 한없이 백성과 혈육을 사랑한다. 이것이 유교의 창건자들이 바라던 군주의 모습이다.” (김상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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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 가능해도 효과는 없다. 정조의 한탄을 들어보자. “지금 나는 君師의 지위에 있으므로 사도(師道)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유학을 밝히고 세상에 가르침을 부식시키며 깨우치게 하고 이끌기를 부지런히 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습속은 점점 어그러지고 선비들의 기풍은 옛날만 못하며 크게 변화되어 가르침을 따르는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어찌 개탄스럽지 않겠는가?” 결국 정조는 헛되이 과로사했다. 정조가 성왕이라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유교의 기준으로 근접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런 정조도 성왕론을 실현할 수는 없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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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가능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는 성왕론은 왜 유교의 중심에 버티고 있는가? 그것이 유교의 성(聖)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고 그렇기에 유교는 종교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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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론의 근거라는 3대는 사실 조작되었다. “한 흥미로운 연구는 시경, 서경, 춘추의 오리지널 텍스트가 현재 남아 있는 그것보다 훨씬 더 방대한 자료였고 이 오리지널 텍스트들은 원래는 결코 유교만의 경전이 아니라 다양한 학파들의 공동재산이었음을 설득력있게 입증했다.” 유자들은 “그것을 유교의 ‘윤리적 가르침의 시각에서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한 부분들을 잘라내고 버리고 지웠”다. 그 기준의 핵심은 “폭력의 탈색, 그리고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이 남게 된 폭력에 대한 정당화”(김상준)였다. 유자들은 역사를 술이부작해 성왕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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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공자의 데미안이었던 무왕이 은을 정벌할 때 기록은 유자들의 편집에는 이렇게 나온다. “은나라의 ‘앞의 변정들이 뒤로 돌아 달아나니 그 창끝이 뒤의 병사를 찔렀다. 피가 흘러 방패가 떠다닐 정도였다.’ 그 피는 폭군의 병사들이 달아나면서 서로 찔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피는 성스럽고 정의로운 무왕과 그의 군사의 창에 찔려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강처럼 흐른 피를 닦아내는데 텍스트의 저술자들이 겪었을 당혹감”(김상준)을 짐작할 수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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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학파들의 저술에 남은 단편들로 미뤄보면 실제 역사는 유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판이하다. ‘시자’가 전하는 무왕을 보자. ‘무왕은 친히 주왕의 간신인 악래의 입에 활을 쏘았고 또 친히 주왕의 목을 칼로 쳐 손을 피로 적셨고 그 피를 벌컥대며 마셨다(또는 그 살점을 생으로 먹었다) 그 순간 무왕은 한 마리 맹수와 같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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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팩트가 아니었다. 그들은 폭력이 범람하던 그들의 현재와 긴장을 일으킬 기준점이 필요했다. 그들은 천국을 역사 속에 창조했다. “이 긴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다.” 부당하고 잘못된 현실에 대한 ‘초월적 조정 논리’를 만들기 위해 유자들의 초월적 조정 기관은 “이 세계 밖의 어떤 곳이 아니라 요순우탕이 살았던 바로 이 세계내에 존재하며 요순우탕의 그 완벽한 모습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유교에서 예란 성왕들이 세상을 다스렸던 행이 양식을 말한다. 예란 우주의 질서 또는 도의 무의의 결에 맞게(節文) 행위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예란 이 불완전환 세계의 배경에서 항상 살아 실현되는 우주의 올바른 질서에 자신과 나라를 맞추어 나가는 행위양식이다. 유교에는 현세와 내세라는 구분은 없었지만 불의가 존재하는 무질서의 우주와 어떤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 질서의 우주라는 ‘두개의 우주, 두개의 현세’가 병존했다. 두개의,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줄로 연결된 우주, 유교에서의 윤리적 긴장은 이 두개의 우주 사이에서 발생한다.” 유자들의 성왕론은, “그들의 군주를 성왕에 가깝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엄숙하고 신성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이행하는 일은 현실과 당위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다.” (김상준)<o:p></o:p>
<BR>“뭐 좀 안다는 놈들이 세상을 위한다며 나서지 못하게 하라.” 노자의 말이다. 조광조의 학문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조광조는 군사문제에 괘변을 늘어놓기에는 전략적 식견이 모자랐다. 그는 성(당위)을 속(현실)과 구분해 읽지 못했다. 그가 꿈꾸었던 이상인 왕도정치도 그러했다. 그는 성과 속이 만날 때의 긴장을 읽지 못했고 그 긴장의 전위차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를 보지 못했다. 그가 그 스파크에 타죽은 것은 당연하다. <BR><BR>퇴계가 조광조를 평하면서 하고 싶었던 말하려던 것은 조광조는 스승이 없이 혼자 책만 보다 망했다는 것이다. 유교는, 주자학은 책을 통해 수입되었다. 그러나 장자가 말했듯 책이란 성인의 똥찌꺼기일 뿐이다. 그 책에서 읽어야 할 것은 글자가 아니라 행간이다. 행간을 읽는데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은 전통을 따라 내려온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face to face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스승이 없었다. 스승이 없이 종이 위의 까만 것만 읽었을 때 그것은 근본주의가 된다. 무슬림들처럼.<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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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무슬림에게 아랍어는 제2언어이지 모국어가 아니다. 모국어는 언제나 실제 삶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아랍어란 ‘신성한 언어’는 현실에서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아랍어를 제2언어로 하는 무슬림은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현실과는 무관한, 언어로만 구축된 텅 빈 허공을 떠도는 추상적인 사고의 지배를 받게 된다. 우리에게는 발을 딛고 설 땅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의미는 그 땅 위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무슬림들의 종교는 그렇게 될 수 없기에 관념적인 극단주의가 피어났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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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가 아닌 한문으로 생각해야 했던 선비들 역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들의 관념적 근본주의의 예로 저자는 사대주의를 든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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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까지만 해도 조선 사대부의 명나라 인식은 현실적이자 조건부였다. 명나라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는 항상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익 여부를 조목조목 따지고 나서 이익이 있다고 판단이 될 때에만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사림들, 선비들이 집권한 후 사대주의는 관념론이 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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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임진왜란 때 자발적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의병 활동을 조국과 민족을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 사회에서는 의를 위해 일어난 의병을 난신적자를 처단하기 위해 일어난 무리로 정의했는데 난신적자란 바로 尊尊의 의리를 저버리고 (명나라) 천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었다. 따라서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국시로 삼아 출범한 조선왕조에서 춘추의 의리는 곧 천자가 주재하는 천하질서에 순복하는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임란때 의병은 중국 천자를 위해 일어난 것이지 조선의 왕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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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을 치기 위한 명나라의 파병 요청을 거부하려는 광해군에게 비변사 당상관들이 ‘차라리 전하게 죄를 범할지언전 천자에게는 죄를 범할 수 없다’는 말을 버젓이”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청나라에 끌려가 죽은 3학사는 “불사이군’을 외치다 죽었는데 여기서 군은 조선왕이 아니라 명나라 천자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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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논리상으로는 조선 선비들의 생각이 맞다.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은 것은 중국의 천자이고 조선의 왕은 그 천자에게서 인정을 받았을 뿐이지 천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면 논리상으로는 의의 대상은 조선 왕이 아니라 중국의 천자가 되어야 한다. 후금군에게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척화파들이 나라가 망할지언정 의리를 저버릴수는 없다고 말한 논리는 그런 것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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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리의 대상이 중국천자였던 예는 조선이 유일하다.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그런 예는 없었다. 조공을 받는 중국도 조공을 바치는 명목상의 제후국도 그 관계를 명실상부한 실제로 보지는 않았다. 오직 조선만 말과 현실을 혼동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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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근본주의자들이 만든 나라 조선, 그 나라가 차별의 나라, 특권층의 나라, (작당하는) 소인배의 나라, 가난한 나라, 사대주의의 나라, 허례허식의 나라가 된 것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을까?<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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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17/5/cover150/899311937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19376</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세계화의 정당성 상실 - [2012 메가트렌드 인 코리아]</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32766</link><pubDate>Thu, 05 Jan 2012 09: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327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99616&TPaperId=53327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413/47/coveroff/89966996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99616&TPaperId=53327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12 메가트렌드 인 코리아</a><br/>한국트렌드연구소 엮음 / 중요한현재 / 2011년 12월<br/></td></tr></table><br/>연말연시가 되면 트렌드 서적이 쏟아진다. 이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 책들이 다 그렇듯이 이책도 경제경영서로 분류되고 이런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바라는 내용대로 주로 경영관련 트렌드가 주내용이다. 소셜익스피리언스와 다이렉트 서비스(디지털과 모바일에 관한 내용), 신뢰(기업의 사회적 책임), 칩시크(소비층의 성향변화) 등은 이름은 다르지만 다른 트렌드 서적에도 나올만한 내용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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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책은 다른 트렌드 서적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우선 다른 책들보다 거시적이고 세계적인 트렌드에 더 비중이 가있다. 앞에서 예를 든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령화라든가 아시아 중산층, 철도 르네상스 등이 그런 예이다. 이책이 다른 트렌드 서적들과 다른 점은 그런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예가 사회적 소요의 세계화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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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시끄러웠던 반값 등록금 시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위의 의미는 런던 폭동과 반월가 시위, 그리고 아랍권을 뒤흔든 민주화 바람과 연결해 볼 때 분명해진다. 저자는 작년 한해를 뒤흔든 그 소요들의 의미를 세계화의 정당성 상실이라 본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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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시위부터 보자. 천만원에 육박하는, OECD 2위의 등록금. 비싸다. 그러나 문제는 등록금의 액수가 아니다. 등록금을 내고 따는 졸업장의 가치가 문제이다. “대졸자의 취업률이 51%에 불과하다. 그중 28%는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전체 취업자의 40%는 월급이 150만원 이하이다. 이러니 졸업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88만원 세대의 현실이다. 말만 다르지 1000유로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란 말은 모두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런던폭동도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정부가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터졌다. 아랍권의 민주화바람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점 밖에 할 수 없었던 청년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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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들의 원인은 3가지이다. “첫째 세계화가 원흉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세계화와 함께했다. 모든 것을 시장 자율에 맡기자며 사실상 소수가 부를 독접하도록 밀어주는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전파에 힘을 실어준 것이 세계화 메가트렌드다. 소수는 부자가 되었고 나머지 대닷는 부뚜막 고양이가 나날이 살찌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볼 자유를 얻었다.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이 세계화라는 기치를 내걸면서부터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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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디지털화/자동화다. 1990년대 이후 모든 노동이 디지털 도구들로 자동화되었갔다. 디지털 기술이 노동과 고용을 대신하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노동력이 덜 필요해졌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스마트워크가 선진기업의 생산성을 20-30% 향상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는데 고용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인력이 덜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청년 세대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점점 줄어들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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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지금인가? 세계화와 정보화는 지난 한 세대를 지배한 메가트렌드였고 양극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화의 정당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1년 9월에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순식간에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라. 월가가 목표가 된 것은 하는 일도 없이(사회적으로 보면 금융은 부를 나눠먹지 부를 만들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열매를 폭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들이 그런 몫을 차지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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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정확히는 금융의 세계화)의 정당성이 흔들린 것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겪었던 그 위기는 유동성 위기였지 우리가 그렇게 떠들었던 것처럼 구조적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당시 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은 경기주기 상 거품의 붕괴기에 있었고 그 거품이 터지면서 불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국면이긴 했다. 그러나 그 불황을 위기로 키운 것은 금융자유화 때문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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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위기는 세계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일어났을 뿐이었고 금융세계화를 뒤흔들 위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중심에서 일어난 위기는 그 정당성을 완전히 날려버렷다.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위기에 대한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것이 문제이다. “진지한 모색이 가시화되지 않는 다면 2012년에 예상되는 상황은 하나뿐이다. 충돌! 분노와 좌절! 그리고 충돌!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받아도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하기만 한 시대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한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2012년 두 번의 선거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사회의 갈등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의사를 점검하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장이다. 이 기회조차 놓친다면 한국은 향후 몇 년간 그동안 응축되어온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고 폭력적인 해결책으로 치닫는 길고 긴 조정 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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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413/47/cover150/899669961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699616</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이론과 실천 -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28744</link><pubDate>Tue, 03 Jan 2012 2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287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8021&TPaperId=53287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8/20/coveroff/89701380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8021&TPaperId=53287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a><br/>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br/></td></tr></table><br/>‘예술에 관한 한 자명한 것은 없다는 것이 자명하게 되었다’ 아도르노의 ‘미학이론’ 첫머리이다. 서문도 없는 이책의 처음은 미학의 대상이 모호하게 되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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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it goes without saying that nothing concerning art goes without saying, much less without thinking. Everything about art has become problematic: its inner life, its relation to society, even it sright to exist.”<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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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가 문제인가? 딱 보면 아는 그런 예술이란 나이브할 뿐이다. 그런 예술을 잃어버린 것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얻지 않았는가? 얼핏 옳게 들린다. 20세기의 예술은 그 어느 시대에도 가능하지 않았던 다양성을 자랑하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해왔다. 실험의 한계는 생각의 한계일 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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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아도르노는 이렇게 반박한다. “What looked at first like an expansion of art turned out to be its contraction. The great expanse of the unforeseen which revolutionary artistic movements began to explore around 1910 did not live up to the promise of happiness and adventure it had held out. What has happened instead is that the process begun at that time came to corrode the very same categories which were its own reason for being.”<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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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예술의 자율성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다양성은 자유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사회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이 문제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예술은 청중 또는 관객을 전제로 했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예술은 더 이상 청중(또는 관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타자를 전제로 하는 예술은 대중예술이라 불린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차이는 타자로부터의 자유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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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얻은 예술을 난해해진 동시에 무가치해졌다. 자유로워지면서 즉 사회와의 관계가 문제가 되면서 예술은 이해받을 필요가 없어졌고 도대체 왜 있어야 하는지, 타자에게 자신의 존재할 이유를 주장할 근거도 없어졌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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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함이란 자유의 선언이다. 나는 너에게 이해를 구할 이유가 없다는 선언이다. 난해함은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20세기 예술은 대중을 잃었기에 예술되었지만 예술이 되면서 그 존재이유를 잃어버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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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존재이유를 잃어버린 것처럼 맑스주의도 대중을 잃어버리면서 존재이유를 잃어버렸다: “맑스주의 이론은 대중의 혁명운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라야 비로소 그에 적합한 지평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대중 혁명운동이 존재하지 않거나 좌절당하면 맑스주의 이론 역시 어쩔 수 없이 기형적이 되거나 퇴화한다.” NLR 편집장이었던 페리 앤더슨의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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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의 ‘서구 맑스주의 연구’란 책은 왜 이렇게 서구 맑스주의는 난해하게 되었는가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색깔이야 어쨌든 맑스는 사회과학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다. 그 아버지들 중 맑스는 특별하다. 그의 색깔이 아니라 문체에서. ‘그렇다고? 어디 그말이 맞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러 이러 하게 되는데 결론은 이렇게 되지 않는가?’ 맑스의 논쟁 스타일은 상대의 주장을 일단 받아들이고 그 주장에 따라 논의를 확장한다. 그리고 그 논리의 확장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가를 보여조는 식이다. 그 결론은 논쟁의 상대방도 웃게 만든다. 맑스의 문장은 읽는 재미가 있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알기쉬움은 서구 맑스주의에선 사라졌다. 앤더슨은 그 이유를 독자의 상실에서 찾는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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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론이나 정치이론에서 서구 맑스주의가 쌓은 지적 업적은 사실상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경제와 정치 어느 분야이든 중요한 저작이 출판되지 않았다.” 서구 맑스주의의 무게 중심은 “철학으로 근본적인 이동”했다. 루카치로부터 알뛰세까지, 코르쉬에서 콜레티에 이르는 전체 맑스주의 전통에서 가장 놀랄만한 사실은 그 전통 내에 전문적인 철학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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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 살아있던 1차대전이전 “제2인터내셔널 시기에 룩셈부르크와 카우츠키는 닫ㅇ에 참여하지는 않으면서 대학에서 사회주의를 떠드는 ‘교수 사회주의자’ 즉 ‘강단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경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들은 이론과 실천을 정치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학에 자리잡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대전 이후 맑스주의이론은 전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버리고 말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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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서 대학으로의 후퇴, 왜 후퇴했는가? 그 이유를 앤더슨은 레닌의 말을 빌려 정리한다. “올바른 혁명이론은 진정한 대중 그리고 진정한 혁명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때라야 비로소 최종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맑스주의 이론의 진보는 그 시대가 처한 물질적 생산조건-그 시대의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실천-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앤더슨은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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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맑스주의의 난해함 다시 말하자면 그 불모성은 혁명운동의 소멸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혁명운동이 소멸되었는가? 이책의 저자는 맑스주의의 지적 파산 때문이엇다고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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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1권이 나오고 독일 사민당이 창당될 무렵만 해도 사회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종말은 기정사실로 보엿다. 당시는 대공황의 시기였고 그것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장기불황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It’s hard time’이란 말을 인사말처럼 썼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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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그랬기에 “1890년대 초 맑스주의자들은 대략 10년 안에 자본주의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고 생각했다. 이렇게 10년 정도의 비교적 잛은 기간이라면 맑스주의 정당의 임무는 예견된 그날을 준비하며 노동자들을 조직화해 대비시키는 것”일 뿐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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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날은 오지 않았다. 1890년대 자본주의는 기사회생했다. 대공황의 원인은 1970년대 세계자본주의가 그랬듯이 이윤율저하경향이 문제엿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신을 재창조해냈고 부활에 성공햇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맑스주의자들의 대응은 초기기독교도들과 비슷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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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기독교도들은 정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그날을 미래로 미뤘다. 맑스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말로 올지 안 올지도 알 수 없는 그날을 막연히 준비하면서 하고한 날 맑스 책 세미나나 하는 집단이 종교집단이지 정당인가? 그럴 수는 없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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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반응은 맑스주의 역사에서 악명 높은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엿다. “당시 독일 사민당은 입으로는 ‘임박한 혁명의 그날’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에선 그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상에서의 소박한 정치활동을 할 뿐이엇다. 막상 투쟁목표로 내건 것을 보면 기껏해야 일반적 참정권의 보장, 8시간 노동제, 언론, 출판의 자유, 지방자치권 등 김빠지는 것들이다. 이런 ‘일반적인 민주주의’의 요구들이 도대체 거창한 사회주의 세계관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무 해명이 없다. 베른슈타인은 당의 이론과 실천의 어처구니없는 괴리를 지적하면서 이제 공염불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혁명주의’의 수사학을 걷어치우고 의회에서 다수석 점유를 통한 현실적인 권력 장악과 현실개혁에 집중하자고 호소한다. 그의 논점은 ‘자본주의의 운동에 대한 맑스주의의 예언이 현실을 빗나갔다’는 것이었다. 맑스주의 경제학은 더 이상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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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슈타인은 당시 유럽 사회주의정당의 현실을 공식화한 것에 불과했다. 사회주의정당에서 ‘혁명’은 수사에 불과햇다. 저자는 볼세비즘, 사회민주주의 역시 맑스주의의 지적 파산에 대한 대응이었고 베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수정주의였다고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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맔스주의의 지적파산에 대해 지적으로(맔스주의식으로 말하면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은 레닌이엇다. 그의 제국주의론은 왜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았는가를 설명해내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역사가 보듯 볼세비즘은 실패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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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 역시 실패였다. 1차대전 후 영국의 노동당,독일의 사민당 등 각국에선 좌파정당들이 집권당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방향을 알려주던 교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교조를 버리지도 못하고 교조를 대신할 무엇을 찾지도 못한 가운데 오로지 일상의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공허한 혁명이란 수사대신) 윤리적 이상의 차원을 강조하고 이것으로 사회를 설득해야 한다는 필요성만을 강조할 뿐, 윤리적 이상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이상을 사회 전체에 설득하는 구체적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운동이 힘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니 혁명이란 공허한 수사를 놓을 수는 없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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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조없는 실천과 실천없는 교조가 결합된 기묘한 꼴”당시 상황을 정리한 말이다(‘정치가 우선한다’) “이렇게 이론과 실천이 괴리하고 당의 이념적 지향과 현실적 정체성이 뒤죽박죽으로 모순된 상황에서는 국민 전체는 고사하고 노동자들이라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이 나올 턱이 없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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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당시 유럽 사회주의를 ‘무능’이란 한마디로 정리한다. 맑스를 대신 할 이론도 변해버린 상황에 맞는 실천도 실패한 말 그대로 맑스주의의 파산이엇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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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수정주의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로 비그포르스의 사민당을 말한다. 흔히 그렇듯 진정한 혁신은 변방에서 일어났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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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의, 좌파의 지적 파산에 대한 비그포르스의 혁신은 두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베른슈타인이 주장하듯 정당으로서 좌파정당의 힘은 도덕적 이상에서 나오고 그 이상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 좌파정당이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내용에 대해 베른슈타인은 분명하지 않았다. 비그포르스는 그에 대해 분명했다. “사회민주주의가 내걸어야 할 윤리적 이상은 추상적이고 애매한 ‘상식’이 아니라 바로 노동계급의 삶의 현실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윤리적 이상을 온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과정이 바로 노동운동이며 사민주의운동이다.” 좌파정당도 현실의 정당이며 현실의 정치를 해야한다. 현실의 정당으로서 현실의 정치로서 구체성을 말한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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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는 이상 역시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그포르스는 “사민당이 노동자들과 온 사회성원 들 앞에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었다. 베른슈타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맑스주의의 유토피아를 부정한 베른슈타인은 ‘사민주의 운동에 목표 따위는 없으며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끊임없는 운동뿐’이란 입장었다. 그러나 비그포르스에게 사민주의 운동은 노동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마음 속에서 간절히 열망하는 윤리적 이상을 추출해 모든 사회성원의 동의를 얻은 가운데 그러한 윤리적 이상을 담은 사회의 모습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최대한 총체적으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다. 그 모습이 궁극적인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노동운동과 사민주의가 주어진 현 상황에서 실현해내고자 하는 ‘잠정적 유토피아’는 될 수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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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혁신인가? 비그포르스가 본 것은 생산의 주체이면서 그 대접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이엇다. “노동자들은 도처에서 정신적, 육체적 궁핍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차별과 경멸을 받았으며 생산현장에서는 그저 자본가와 경영자의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존재로서 다루어진다.” 비그포르스는 그런 현실에 대해 산업민주화를 말한다. 이전까지는 산업국유화가 좌파의 구호였지만 1차대전의 국가통제경제는 국유화가 대안으로서 끔찍하다는 실증이 되었다. 더군다나 맑스주의의 지적 파산은 국유화에 대한 지적 정당화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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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스웨덴 사민당에선 당시 이론적 혁신이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소유권이란 사실 그다지 관계가 없는 혹은 전혀 관계가 없는 이런저런 권리들의 다발에 불과하다. 자본가가 기업에 대해 갖는 소유권 안에는 이윤을 챙길 권리, 경영자를 선임할 권리, 기업의 전략과 운영방침을 결정할 권리, 노동자를 고용, 해고할 권리, 가격을 결정할 권리 등 수많은 권리가 들어있다. 이 많은 권리의 다발인 소유권을 ‘사회가 일거에 빼앗아 온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 사회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별쭝난 인격체이기에 어느날 갑자기 이 권리들을 일사분란하게 행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민당의 소유권 개념에 대한 혁신은 “스웨덴 사민당이 좀더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인 사회민주주의적 경제 형태를 착상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소유권 다발을 조금씩 하나하나씩 제한하고 빼앗아 오면서 “경제와 사회에 대한 자본 권력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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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개념의 혁신은 비그포르스의 산업민주주의와 함께 이후 스웨덴 사민당의 방향을 결정한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얼마든지 유토피아는 가능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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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의 산업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노동자들이 생산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임노동의 폐지가 아니다. “그의 산업민주주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사가 협조하면서 노동이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의 구상에 가깝다.” 산업구조를 바꾸면 “노동자를 차별하는 온갖 사회제도도 사라지게 된다. 노동자를 사회의 가장 소중한 생산의 주체로서 대접하는 공동체가 회복되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평등한 사회성원으로 통합될 것이다.” 산업민주주의 덕분에 “스웨덴 사민당은 추상적 이론과 공상적 유토피아에 기대지 않고도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민주의 경제의 모습을 제시할 수 있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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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그포르스의 산업민주주의가 등장하고 현실정치에서 힘을 얻은 것은 대공황 덕분이엇다. 비그포르스는 산업민주주의를, 사민주의의의 이념을 ‘나라살림의 계획”이라 불렀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변함없지만 그 방향은 착취와 같은 자본주의의 비도덕성이 아니라 나라 살림과 산업 전체를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비효율성에 맞춰졌다. 그러자 사민당의 이데올로기적 딜레마도 풀렸다. 이러한 방향 전환 덕에 당이 이제까지의 무능력과 무정책의 한계를 벗어나 나라 살림과 산업 전체의 효율적 조직이라는 목표에 맞추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낼 있었다. 이제 사민당은 예전의 사민당이 아니었다. (1932년) 선거에서 정교한 경제이론의 논리와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책했으며 그 내용은 특정 집단이나 이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바람에 정확히 부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민당 당원들의 운동은 신바람이 났고 곳곳에서 돌풍이 일어났다. 이후 1976년까지 44년이나 이어진 사민당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o:p></o: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8/20/cover150/897013802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8021</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행동경제학, 빈곤을 말하다 - [빈곤의 덫 걷어차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28733</link><pubDate>Tue, 03 Jan 2012 21: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287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08973&TPaperId=532873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5/60/coveroff/89352089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08973&TPaperId=53287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빈곤의 덫 걷어차기</a><br/>딘 칼란 & 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1월<br/></td></tr></table><br/>이책은 전에 리뷰한 ‘세계 절반 구하기’와 같은 문제를 다룬다. “서구 세계가 지난 50년간 대외 원조로 2조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말라리아 치사율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12센트에 불과한 약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가난한 가정에 4달러짜리 모기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500만건의 어린이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3달러를 초보엄마 들에게 지급하지 못하고 잇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아마레치는 여전히 나무를 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선의의 동정심을 가지고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nbsp;(이스털리)<?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o:p>&nbsp;</o:p>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스털리는 그 이유를 원조계획의 패러다임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책은 원조 프로그램의 디테일이 문제라는 관점이다. <o:p></o:p>
<o:p>&nbsp;</o:p>
이스털리의 책은 이 분야에선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저자의 전공이 개발경제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계은행 고위직에서 오랜 실무를 거치면서 얻은 결론을 구체적이면서 체계적으로 말한다. 책 자체의 급으로 보자면 이책보다 몇수 위이다. <o:p></o:p>
<o:p>&nbsp;</o:p>
그러나 이스털리의 책은 내부자의 관점이다. 다시 말해 원조를 주는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한다. 원조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문제가 일어나는가를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책의 가치는 그 관점에 있다. <o:p></o:p>
<o:p>&nbsp;</o:p>
이책의 내용은 잡다하다 하겠다. 행동경제학 서적들이 원래 그렇듯이 다양한 사례들이 나열되지 그 사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시스템은 없다.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어 뭐가 있었지 뭐가 있었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어쩌다 책에서 읽었던 경우와 연결되는 일을 겪을 때 아 하고 떠오르면 다행인… 행동경제학 책이 원래 그렇다. 이책도 예외가 아니다. <o:p></o:p>
<o:p>&nbsp;</o:p>
그러나 이책은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을 어떻게 실제 현장에서 응용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책이 원조를 받는 입장의 시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은 행동경제학이란 관점의 힘이다.<o:p></o:p>
<o:p>&nbsp;</o:p>
이 책의 내용은 잡다하지만 기본 골격은 모두 동일하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실제 효과가 있는가? 효과가 있는가는 확인해봐야 할 문제이다. 그럼 어떻게? 현장에 가봐야 안다. 문제는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이다. 저자들은 그 답을 행동경제학에서 찾는다. <o:p></o:p>
<o:p>&nbsp;</o:p>
이책의 내용은 저자들이 실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데 참여했거나 프로그램을 검증해본 것들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지 그 검증의 방법론이 행동경제학이라는 것이 이책의 특징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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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말해봤자 이책이 무슨 내용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책이 말하는 프로그램의 검증방법은 굳이 행동경제학이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들이 하려는 말은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 모델에서 벗어나 실제 현장의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가를 가서 확인하자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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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의 의의는 주류경제학의 편협한 관점을 버리자는(또는 확장하자는) 것 이상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이 실제 말하는 내용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정치학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단지 그 연구자의 월급이 나오는 곳이 경제학과이기 때문에 경제학이란 말이 붙었을 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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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체적 내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사회과학 어느 과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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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의미는 사실 방법론에 있지 않다.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에선 새로울지 모르지만 다른 분과에선 언제나 하던 일일 뿐이다. 아마도 이책의 작업은 인류학자들이 더 잘했을 것같다. 이책의 의의는 저자들이 보여주는 프로그램 검증의 방법론보다는 실제 저자들이 해온 작업을 책으로 엮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이책의 반 이상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에 할애되는데 이책을 읽어가다보면 막연하게 ‘좋은 것’이라 알고 있던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제와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책의 의미는 저자들이 실제 했던 필드워크라는 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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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nbsp;평점 4.5</o: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85/60/cover150/893520897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08973</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우리는 아직도 ‘극동’에 사는가? - [맹자의 땀 성왕의 피 -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02552</link><pubDate>Sat, 24 Dec 2011 2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025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2073&TPaperId=530255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60/17/coveroff/89573320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2073&TPaperId=53025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맹자의 땀 성왕의 피 -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a><br/>김상준 지음 / 아카넷 / 2011년 07월<br/></td></tr></table><br/>‘세계 속의 한국’많이 들어본 말이고 많이 해온 말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난 한 세기 그말을 할 때 우리는 한 없이 작아졌다. 세계의 변방에 불과한, 별볼일 없는 나라. 세계지도를 펴놓으면 한 없이 작아질 뿐인 나라. 스스로는 호랑이라 우기지만 사실은 겁많고 별볼일 없는 토끼일 뿐이라 속으로 되뇌이던 나라.세계 속의 한국을 정의하던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지도의 중심은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이었으니까.<?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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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운데에 태평양이 그려진 세계지도를 보고 자랐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을 가본 사람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보는 세계지도는 영국 그리니치가 중앙에 온다. 세계의 중심은 대서양이다. 그런 지도에서 한국은 ‘쉬렉’의 대사처럼 far far far away (‘겁나 먼’이라 번역되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far east 어디에 처박힌 변방이라 부르기도 힘든 나라일 뿐이다. 그들로서야 당연한 지도이고 당연한 생각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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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끼는 것은 우리 스스로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야 우리는 far east에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왜 그말을 그대로 번역해 극동이라 말했는가? 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인정하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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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기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초가집도 없애고~~’ 과거는 부정하고 잊어야 할 무엇일 뿐이었다. 단군 이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자던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풍물놀이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그런 전통문화가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그런 과거를 부정하고 경멸하며 없어져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사라진 것은 초가집만이 아니라 초가집에 살던 문화도 함께였다. 그때 없어진 것이 식민지 시절 없어진 것을 월등히 넘어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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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이상 우리는 과거는 부정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시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이제는 떳떳하게 세계 속의 한국을 외치고 나아가 한국 속의 세계를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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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대 전만 해도 ‘Japan as No.1’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세계제일은 커녕 세계의 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흔히 비전의 상실을 말한다. No.1이란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따라가지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다 따라잡고(catching up) 나니 방향을 잃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비전을 잃어버렸기에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고 어쩌면 30년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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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성장동력이 바닥났다,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10년을 허송세월했다. 흔히 하는 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이겠지만 일본처럼 비전의 상실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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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서쪽을 보아봤자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을 때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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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가? 오직 동아시아만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따라갈 길이 남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근대화(솔직치는 서구화)의 길은 사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13세기 중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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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핵심어인 근대란 개념은 거의 베버의 정의를 따른다. 베버에 따르면 근대성은 합리성이며 근대화는 합리화의 과정이다. 베버가 여기서 말하는 합리화의 내용은 보통 도구적 합리성으로 이해된다. “한 마디로 집약하면 전 사회의 합리화이고 그 기본축은 1. 합리적 자본주의, 2. 합리적 법-행정체계 3. 합리적 사회분화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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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에 따르면 그러한 합리화는 ‘서구, 오직 서구에서만(in the West, in the West only)’만 일어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합리화의 과정으로서 근대화를 도구적 합리성이 관철되는 과정으로만 보지 않는다. 저자는 근대성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구적 합리성과 가치 합리성, 베버의 두가지 합리성 모두가 필요하다고 본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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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보더라도 근대화 과정은 ‘서구, 오직 서구에서만’ 일어난 것도 아니고 서구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구에서 근대화가 일어난 것은 먼저 송제국에서 일어난 합리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는 후발자의 이점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의 근대적 요소를 빠르게 흡수하였고 특정한 역사적 국면(여기서 저자는 ‘리오리엔트’에서 프랭크가 지적한 시점을 염두에 두는 것같다)을 이용하여 특정한 역사적 국면을 이용해 본격근대로 진입하는 계기를 앞서 포착하였을 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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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본격근대(High Modernity)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였다. 그러나 근대성의 시작은 서구가 아닌 13세기 중국이었다. 이 시기를 본격근대가 시동하는 장기16세기와 대비해 초기근대(early modernities)가 시동한 장기12세기라 부른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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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근대의 최초 표출양상은 서유럽이 아니라 중국 송원 연간의 사회경제적, 정치문화적 전개 양상에서 풍부하게 발견된다. 그 특징은 정대주의적 통치권의 확립과 비판적 권위를 확보한 학인-관료집단의 형성,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농촌수공업의 성장, 수력양수기, 수력풀무, 대형방적기 등의 기계발명과 코크스 (강철) 제련 등 철강 부문에서의 혁신 등에서 보이는 다양한 기술혁명과 초기공업화, 도시, 교통, 화폐 및 무역 영역의 인프라 발전이다. 그 기반은 송대에 이루어졌고 몽골제국은 그 성취를 흡수하여 당시로는 가공할 수준의 전쟁, 행정, 건설, 교역 역량을 갖춘 세계체제를 구축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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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제국과 함께 처음으로 실제적인 세계화가 시작된다. “’긴 16세기’의 결과 팍스 브리태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가 출현했다면 유라시아의 ‘긴 12세기의 결과는 몽골세계제국, 즉 팍스 몽골리카였다. 유럽의 긴 16세기가 그렇듯 송원 연간의 긴 12세기 역시 세계적인 변화의 시대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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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브리태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가 본격근대를 전 세계로 확장했듯이 팍스 몽골리카 역시 송조에서 시작된 초기근대를 전세계로 확장했고 그 바탕 위에서 장기 16세기가 가능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몽골리카는 분명 닮아있다. 몽골 전통의 초원의 군사력에 유라시아 세계 최대 ‘중화의 경제력’을 합체시키고 게다가 종래부터 몽골과 공생에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무슬림의 상업권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경제 지배하는 신방식이었다. 현대풍으로 말을 바꾸면 쿠빌라이의 신국가는 군사 초대국이며 경제 초대국임과 동시에 초대형의 통상입국이 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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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근대만 폭력으로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초기근대 역시 폭력으로 세계화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세계화가 그랬듯이 팍스 몽골리카 역시 하드웨어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시 강했기에 가능했다. 그 소프트웨어는 송조에서 시작된 근대성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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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초기근대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장기 12세기와 장기 16세기의 결과인 세계화는 베버의 도구적 합리성 개념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 12세기가 왜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기 12세기를 설명하기 위해선 근대성이란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베버를 깨기 위해선 다시 베버로 돌아가야 한다. Return to Weber!<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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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지금까지 베버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고 본다. 베버 이론체계가 해결하려는 모순을 파악한 경우가 드물다고 저자는 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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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Z 이론에 따르면 혁신은 모순의 극복이다. 예를 들어보자. 90년대초 까지만 해도 하드 디스크의 용량은 80MB가 최대였다. 어느 업체에서 “200MB를 상용화하겠다고 했다. 3-4개월이 지난 후 연구원은 열심히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기록용량을 올리려면 기록이 정확해지지 않는다. 데이터 저장 시 에러가 너무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러를 줄여 기록의 정확성을 높이면 용량이 작아진다. 그래서 하드디스크의 헤드부분의 길이를 조절하거나 하드디스크의 기록 플래터 모양을 최적화 하는 등 각 부분의 개선과 최적화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해 8월 “IBM 왓슨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하드디스크 저장 원리를 개발하여 년말까지 1GB 하드디스크 양산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음 날 연구원은 인터넷에 발표된 IBM의 새로운 저장방식을 이해할 수있었다. IBM의 방식은 정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저장용량을 10GB까지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후 이 방식은 업계의 표준이 되었고 수많은 업체들이 로열티를 주고 그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원은 이렇게 되뇌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김효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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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방식은 플래터를 여러장 쓴다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러면 용량과 정확성의 기술적 ‘모순’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모순을 해결한 IBM의 방식이 업계 표준(dominant design)이 되었듯이 학계의 표준(dominant design) 역시 모순과 관련이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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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론은 공학과는 다르다. 공학의 현장이 모순의 해결이라면 이론은 모순의 파악과 관련이 있다. 현실의 근본 모순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이 이론이다. 그 모순이 근본적이고 화해불가능할수록 이론의 힘은 강력하다. 저자는 베버의 이론체계 역시 모순과의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모순이 무엇이엇는지 베버의 사후 잊혀졌다고 저자는 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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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사회적 행위이론의 핵심은 행위 동기의 이원성, 그 이원성의 화해불가능한 대립성을 강조한 점에 있다. 그 대립이란 행위의 수단합리적 성격과 가치합리적 성격 간의 대립이며 물질적 이해와 이념적 이해 간의 대립이다. 이러한 행위 동기의 적대적 이원성에 관한 이론은 베버 사회이론의 또 다른 특징인 정치와 윤리 간의 영원한 갈등이라는 문제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베버에게 물질적 이해(또는 수단합리성)와 이념적 히애(또는 가치합리성)는 근본적으로 화해불가능한 동기이다. 그 근원에서 볼 때 전자는 현세적 이해추구인 반면, 후자는 구원의 이해, 즉 피안적 이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경제-정치 영역과 후자는 종교-윤리 영역과 관렫된다. 이 양 가치의 대립이 화해부가능한 이유는 종교-윤리적 정의는 현세 존재 자체의 부정의한 성격과 근본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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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모순은 물론 베버가 발견한 것은 아니다. 이성과 오성을 분리한 칸트의 발견이었다. 칸트에게 도덕은 현실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요청되어야 한다. “베버의 이념적 이해 개념은 칸트가 말한 도덕적 이해관심 또는 실천이성의 진정한 동기에 준하는 개념이다. 칸트는 정념의 경향성과 무관한 요청인 도덕성이 또 하나의 이해관심과 옹기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철학적으로 풀이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주학의 理나 性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유학을 풍미했던 理氣論을 베버의 ‘전철수(switchman)’ 이론이나 칸트의 도덕동기론으로 풀이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왜 윤리적 요구인 理가 현세적 인과고리의 논리인 氣의 형상을 빌려 또는 기를 타고(乘) 나타나는가에 있었다. 칸트 역시 욕구능력이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성’의 원환에 갇힌 인간존재에게 도덕적 동기가 ‘경향성’으로 드러나는 난제를 풀기 위해 고심했다. 칸트에게 도덕동기란 기를 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와 기, 성과 속, 양자는 항상 얽혀 있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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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라면 떠오르는 말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일 것이다. 베버의 이론체계에서 그책은 종교사회학이란 거대한 프라젝트의 작은 사례연구일 뿐이었다. “베버 종교사회학의 주제는 다양한 가치합리성의 존재양식에 관한 분석이다.” 이는 기의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기의 초월이기 때문이다. 기 즉 속, 또는 차안에 대해 이 즉 성은 피안이다. 베버는 성이 어떻게 속의 세계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가를 파고들었고 속의 세계, 차안에서 태어난 피안, 성의 세계를 세계윤리종교라 불렀다. “세계윤리종교의 탄생과 함께 의식과 제도의 차원에서 세계성과 초월성이 출현하고 그 결과 현존 질서가 최초로 의문에 부쳐졌다. 이러한 점들은 세계윤리종교의 공통된 특징이다.”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는 베버의 종교사회학 연구에 기초한다. 저자는 축의 시대에 근대성의 원형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대는 성과 속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가의 문제라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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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축의 시대를 성이 속을 통섭(encompass)하는 세계로의의 전환이라 요약한다. “통섭이란 원리에 의한 통괄적 포섭을 의미한다. “유럽 중세 카톨릭의 교황정치, 유교의 성인 정치, 불교의 전륜성왕정치, 힌두교의 브라만-푸로히다 정치, 이슬람의 이맘-울라마 정치는 역사적으로 각각 다르게 현상하지만 성이 속을 통섭했다는 구조에 있어서는 상동이다. 성이 속을 통섭하는 세계질서의 기원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고대 ‘세계윤리종교’의 출현과 맞물린다. 세계윤리종교의 탄생과 함께 의식과 제도의 차원에서 세계성과 초월성이 출현하고 그 결과 현존질서가 최초로 의문에 부쳐졌다. 이러한 점들은 세계윤리종교의 공통된 특징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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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때 처음 종교가 출현한 것도 성이 탄생한 것도 아니다. 보편종교는 성의 위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 에덴동산이나 노자의 소국과민은 모두 고대도시, 고대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의 상황을 말한다. 도시와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고도의 인위와 작위의 산물이다. 착취와 전쟁이 체계화, 대규모화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방법론들이 고도화된다. 고대과학, 고대재정, 고대행정, 고대병참의 술과 학이 발전한다. 이러한 연상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세속화라 불러야 마땅하다. 마술적 힘으로 가득한 신화적 세계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세속적 힘과 이해관계, 욕망의 계량학과 함수관계가 새로운 군주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기축시대를 전후했던 상황은 근대가 출현했던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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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결과가 보편윤리, 세계종교엿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초월의 탄생이란 점에서 이 시기를 원형근대성이 태어난 시기라 말한다. 세속화, 즉 근대는 (내용은 다를지라도) 보편성의 합리화, 즉 기를 초월한 이가 기를 압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들어 기든스는 근대성의 본질을 구체성을 탈피한 추상체계의 운동으로 본다. 그가 근대성의 핵심으로 보는 시공간 거리화는 power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disembedding되는 abstraction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시공간 거리화로 나타나는 권력은 구체적 氣의 세계에서 추상된 理로서, 초월로서 작동한다. 기로부터 독립한 이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과정이다. “근대성이 해방시킨 과학기술과 물질적 생산력은 애초에 혁명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는 비전과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돌파가 없다면 불가능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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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고대 윤리종교에서 읽어낸 근대의 원형은 초월이다. 그리고 축의 시대에 탄생한 초월 즉 성의 본질은 폭력이 촉발한 윤리의식이엇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인류가 최초로 윤리적 감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주어진 현세의 현상과 힘 자체를 회의하고 초월하는 반성력이다(기든스는 reflecxivity를 근대성의 핵심으로 본다). 이러한 윤리적 각성은 현세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이러한 각성 이후에는 현세적 사실과 윤리적 초월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한다.” 칸트가 말했듯이 윤리는 현실에서 주어지 않는다. 윤리는 현실을 초월한다. 저자가 말하는 근대의“원형이란 눈 앞의 주어진 시공 안의 현실과 ‘시간 밖의 시간’, ‘공간 밖의 공간’에서 오는 이념 사이의 윤리적 긴장관계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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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유교답게 하는 근본적 안티노미는 “폭력과 성스러움의 화해할 수 없는 긴장”이었고 그 긴장의 집약은 ‘성왕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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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임금의 교의 즉 성왕론은 유교이념의 핵심일 뿐 아니라 유교정치체제의 근간이다. 유교의 예란 이러한 이념과 체제를 작동시키는 행동원리다.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교의에는 강한 역설이 배어 있다. 어떻게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현세의 군주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있는가?” 성왕론은 성과 속의 긴장이며 나쁘게 말해 반사실적인 픽션일 수 밖에 없다. 성왕론의 근거 자체가 픽션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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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론의 근거는 요순이다. “서경의 요임금 묘사에서 우리는 전쟁, 질투, 패륜, 음모, 갈등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한 점 폭력의 티끌조차 존재하지 않는 션세의 군주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유교적 안티노미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모아진다. 요순이 성스러운 이유는 신화적 영웅들의 성스러움과 정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한없이 선하고 한없이 부드럽고 한없이 검약하고 한없이 백성과 혈육을 사랑한다. 이것이 유교의 창건자들이 바라던 군주의 모습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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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폭력의 흔적을 유자들이 제거한 결과일 뿐 실제 역사는 어디서나 그랬듯 폭력의 역사였다. 고대국가가 성립하던 시절 중국 역시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영웅시대였고(영웅시대에 대해선 ‘축의 시대’ 리뷰 참조) 전쟁귀족의 시대였다. “회남자에서 요임금의 모습은 무인 군주에 가깝다. 여씨춘추에는 요임금의 모습은 여러 종족들 간의 치열한 투쟁의 존재와 이 투쟁에서의 최종적 승자로서 나타나고 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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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론의 요순은 조작된 이미지이다. “유교의 창건자들은 ‘폭력에 대한 윤리적 혐오감’이라는 전혀 새로운 감성을 중국 문명에 최초로 이념적으로 체계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념은 현실에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다. “공자는 요순을 주자는 공맹을 보았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아브라함을 보았고 루터와 칼뱅은 다시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았다. 인도의 개혁 사상가들은 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로 돌아갔다. 그들은 현재에 없는 현재., 즉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에 업는 것이므로 과거를 빌려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았던 까닭은 그들이 살고 잇는 현재가 너무나 많은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는 그들의 비전은 현존하는 시공의 인과 안에서는 탄생할 수 없다. 현실 질서의 인과의 밖, 시간의 밖의 시간의 차원이 없다면 인류문명의 결정적인 톨파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이념의 탄생이야말로 윤리적 각성, 초월적 긴장의 탄생을 말해준다. 무엇인가 부당하고 잘못되었다는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면 초월적 계기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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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윤리종교들은 성과 속의 대립 위에 태어났다: “불의가 존재하는 무질서의 우주와 어떤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 질서의 우주” 그러나 유교는 특이하게도 그 성과 속이 모두 현세에 있다. 다른 종교들이 내세적 초월주의였다면 현세적 초월주의인 유교는 정치종교였다. “유학자들은 정치현실을 떠날 수 없다. 그들의 성인 군주는 하늘이 아닌 현실에 있었던 것으로 상정되어 있고 그들이 살아가는 당대의 현실군주의 모습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왕응ㄴ 비현ㅅ길이자 당위적 현실이다. 그들의 군주를 성왕에 가깝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엄숙하고 신성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이행하는 일은 현실과 당위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다.” 그 긴장의 핵심은 “왕권의 폭력성과 비도덕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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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메버의 말마따나 “모든 국가의 본질은 ‘폭력의 합법적 독점’에 있다. 더 줄여 이야기하면 국가문제의 핵심은 폭력이다. 유교 성왕론 안에는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라는 유토피아적 신화가 감추어져 있다. 유교는 국가폭력의 주인인 현실 군주를 절대적으로 평화로운 ‘무결점의 요순 임금’이라는 신화로 꽁꽁 묶었다. 유교의 국가 이념이 잇다면 그것은 폭력 없는 구가다. 폭력 없는 국가체제, 그리고 국가간 체제가 가능한가? 그것은 이미 국가 너머의 국가요 국가 간 체제일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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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회가 그랬고 유교가 성왕론으로 그랬듯이 현실을 초월한 성의 이름으로 속을 컨트롤한 시기를 저자는 통섭 I의 시대라 부른다. “통섭 I의 세계에서는 성의 영역이 물적 현상계를 물샐틈없이 감싸면서 통섭하고 경고하고 계도하고 잇다고 믿었다. 물적 현상계는 그를 통섭하는 성의 영역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단계에서 성과 속은 비록 분별되지만 같은 거소, 같은 시공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물론 성의 압도적 위에서였다. 그래서 높은 곳, 하늘의 공간적 이미지가 어느 문명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햇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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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근대성은 통섭I의 세계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축의 시대와 함께 인류는 고등문명의 세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대성의 세계를 통섭II의 질서라 부른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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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I의 질서는 막대한 긴장을 수반했다. 그 진장의 근본적 원천은 베버가 통찰했던 바와 같이 현세적 질서가 초월적 질서에 의해 상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성속 통섭의 틀 자체가 강한 긴장의 원천이 되엇다. 그 긴장의 내가 결과 통섭II의 질서가 출현했다. 베버의 종교사회학과 역사사회학은 그러한 통섭관계에서 비롯한 역사적 제도적 긴장응ㄹ 강조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유럽에서 발생한 통섭 전환(통섭I에서 통섭II로의 역적)에 대한 하나의 뛰어난 사례분석이다. 통섭전환의 예는 유럽의 종교개혁이다. 중세 카톨릭 교황정치는 성이 속을 통섭하는 전근대 모럴폴리틱의 유럽적 표현형태였다. 개신교는 현세의 질서 자체를 신성화한 중세 카톨릭 교리에 반발했다. 예정설은 현세 인과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중립화했다. 그 결과 신성함의 근거는 내면화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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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러한 통섭전환이 중국에선 장기12세기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송원연간에 관찰되는 초기근대의 증거들은 이 시기가 한당으로 이어졌던 중구의 고대제국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던 시기였다는 점에 있다.” 위진남북조와 5대10국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세습귀족체제는 무너지고 사대부 계층이 등장한다. “성의 구현이었던 황실, 조정의 질서는 더 이상 절대적인 신성함의 지위를 독점하지 못한다. 조정만이 아닌 재야가 공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공 개념의 함의 자체가 현실 체제의 황통의 정당성을 초월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보편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기서 하버마스가 말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의 유교적 표현 형태를 읽을 수 잇다. 아니 근대적 公觀은 중국에서 일찍이 선취되었다” 공권력을 분점하던 귀족의 몰락하면서 “송 이래 중국에서 성립한 절대주의적 황권이란 바로 이러한 황제 아래 전 인민의 평등(月印千江 萬川明月)이라는 새로운 신분적 상황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 절대주의란 16세기경 유럽에 등장하는 절대주의 체제와 비견된다. 근대주권의 초기 형태 역시 동아시아에서 선행하고 있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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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은 이런 시대의 이념이었다. 주자학의 이기론은 이와 기를 나눈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한당 시기까지 중국적 사유에서 이 양자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 세계는 天(유교), 眞(불교) 道(도교)의 신성함 속에 잠겨 있었다. 즉 성이 속을 통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주학에서 세계는 기로 이루어지고 기에서 理가 분리된다. 정주학에서 이는 내면화된 윤리 개념이다. 이제 이는 기의 바다 속에서 힘써 탐구하여 찾아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자연과 사회질서가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으로 표상되지 않고 그 곳에서 작동되어야 할 이의 원리가 발견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신이 인간의 내면으로 숨었듯이(Hidden God) 이는 기의 바다에 숨어 버렸다. 숨은 신이 찾아야 할 대상이듯 이는 기의 바다에서 찾아내야 할 대상이 되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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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근대는 어느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장기12세기의 오랜 결과가 누적된 것이었다. “이슬람과 당 제국이 흥기했던 7,8세기는 주요 문명권을 연결하는 세계교역망이 사상 최초로 전면화된 시기다. 광대한 이슬람권의 형성으로 중국과의 교역통로가 안정되었고 동남아의 번영으로 바닷길 무역로 역시 안정되었다. 송대의 도약은 당대에 형성된 세계교역망의 임팩트에서 탄생한 것이다. 당시 세계화의 네트웤에서 당제국은 7세기 이후 번성했던 이슬람 제국과 함께 당대에 가장 거대했을 뿐 아니라 잘 조직되고 효율적인 정치체였고 대외문명교류에도 열린 태도와 자신감으로 적극적이엇다. 당시로는 최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구비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세계 도처의 최선의 주요 문명적 문화적 자양분들이 국제적 네트웤의 여러 매듭들을 따라 그 핵심 허브인 중국으로 모여들 수 있었고 그것이 송대에 집중적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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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양분이 뿌려진 토양이 귀족이 몰락한 신분적 상황이었기 송대의 초기근대혁명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제 아래 모두 평등한 상황은 “사회적 잠재력의 해방”을 불렀고 “이러한 변화는 후일 유럽의 15-16세기 초기근대와” 유사했다. 이 시대의 이념이었던 주자학은 대원제국이 과거의 필수과목으로 만들었다. 보편성을 갖춘 세계제국으로서 초기근대라는 시대에 맞는 주자학의 보편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nbsp;<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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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구치 선생은 북송 시대 정명도의 天卽理라는 언명의 혁명성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하늘(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초월적이거나 혹은 알 수 없는 힘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신의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는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사건’이라 했다.” 천즉리 이전 중국의 세계관인 “‘주재자적인, 운명론적인 하늘에서 법칙적인 하늘로의 변화였다. 송대 이전 고대의 중국인은 하늘을 도(天卽道)라고 생각했고 ‘그 도를 주재자적인 그래서 만물의 밖에 있는 초월적 실체로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은 각각 초월적인 그 도에 운명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고’고 한다. 반면 정명도의 천즉리는 ‘인간세계의 일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현상이 어떤 법칙성 가운데 있고 그 법칙성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보는 새로운 우주자연관이다’라고 풀이했다. 정주학은 기즉 속 우선의 교의였다. 따라서 정주학이 최초로 정립한 이기론은 통섭I이 아니라 통섭II와 원리가 같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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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주자학의 천즉리 또는 이기론이 태어나기까지의 배경을 이렇게 정리한다. “통섭II의 질서란 일종의 세속ㅎ솨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세속화한 통섭I의 질서가 뿌리에서부터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앞서 설명했던 유라시아의 세계화 상황이 그런 것이었다. 당연히 믿어왔던 신성한 질서의 체계가 흔들리고 이내 거침없이 무너져갔다. 이미 남북조시대에 천즉도의 확고한 믿음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와 쾌락주의, 허무주의가 만연했다. 천은 다만 물질적 세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 뿐이라는 사상도확산되었다 여기서 속을 물샐틈없이 통섭하던 성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이어 조각나기 시작한다. 속의 세계가 성의 통제를 벗어나 꿈틀러기고 올라온다. 이러한 혼란과 방황의 이행기에 다른 문명의 종교와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夷狄은 군주가 되고 세상은 蠻戎의 가르침을 따른다.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정주학은 정초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명은 조각나 흩어진 성의 체계를 다시 이어 보다 견고한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과업이엇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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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 하는 근대성의 재정의를 살펴보았다. 이후에도 저자는 유교적 근대성의 완성형으로서 조선후기의 유교정치를 자세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이책의 기본적인 요점은 이상에서 제시되었다고 보므로 여기서 줄일까 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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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책은 올해 읽었던 책중에서 최고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미있게 보았던 프랭크, 아리기, 암스트롱 등의 논의를 종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틀로 마감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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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60/17/cover150/8957332073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32073</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음반</category><title>やなわらば-: 음악의 정치학</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302541</link><pubDate>Sat, 24 Dec 2011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302541</guid><description><![CDATA[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을 보면 대개 3곡 중 하나가 들어간다. 브루흐(Bruch), 멘델스존, 브람스의 곡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EMI에서 발매한 사라 장(장영주)의 앨범은 브루흐와 브람스가 들어가고 그라마폰에서 발매한 안네-소피 무터의 앨범엔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들어가는 식이다. 세곡이 바이올린 협주곡에선 대표곡이란 말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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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많이 듣는 사람에게야 브루흐의 곡은 많이 알려졌지만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그게 누구야? 이런 말이 나올 것이다.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야 들어본 이름이지만 브루흐?<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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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매니아라도 바이올린 협주곡 외에는 브루흐의 곡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사람의 곡이 대가의 곡들과 나란히 대표곡으로 꼽힌다면 그곡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브루흐의 곡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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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op에서 나쓰카와 리미(夏川りみ)가 클래식에서 브루흐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가창력으로 보면 미소라 히바리 이후 최고라 할만큼 J-Pop에선 손 안에 꼽히는 사람이지만 리미의 곡으로 기억하는 것은 두 곡 뿐이다. (사실상) 데뷔앨범의 1번과 2번곡인 ‘淚そうそう’와 ‘童神’.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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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淚そうそう’ (눈물이 주루룩이란 뜻)는 원래 Begin의 곡이고 ‘童神’(오키나와의 전통 자장가)은 리미의 고향인 오키나와 민요이다. 리미만 부른 곡이 아니란 말이다. 특히 童神은 오키나와 민요의 대표곡으로 리미만 부르지도 않았고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리미의 버전이 강렬하기에 리미의 곡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리미만큼 두곡이 표현하는 오키나와 음악의 정신을 살려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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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를 들여다보면 오키나와 출신인 J-Pop 가수가 의외로 많다. 일본 전체로 따지면 오키나와 출신이 통계적으로 과대대표된 것을 알 수 있다. J-Pop을 들어봤다면 알만한 이름인 Kiroro, Cocco도 오키나와 출신이다. 일본 전체로 보면 작디 작든 섬이 과다대표된 이유는 음주가무가 일상인 오키나와의 문화 때문일 것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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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태양, 에머랄드 빛 바다. 일본의 천국이라 불리는 오키나와의 이미지이다. 오키나와의 축복은 풍경만 아니라 배고플 일이 없는 풍요에도 있다. 천국에서 삶을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 술과 음악, 춤이 생활이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의 음악의 첫인상은 '슬픔'이다. 그 슬픔은 역사가 만든 슬픔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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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는 한국과 제주도의 관계와 비슷하다. 차이라면 제주도는 한국에 합병된 지 오래되었고 오키나와는 독립국이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전이 아니라는 것 뿐, 착취와 차별의 역사는 다르지 않다. 그 역사의 정점은 제주도에선 4.3 사건이었고 오키나와에선 오키나와 전투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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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에게도 옥쇄를 강요한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 이상의 민간인이 죽어야 했다. 추정치에 따라서 민간인 사상자는 섬주민의 1/10에서 1/3까지 다양하다. 이중엔 군대가 강요한 집단자살도 포함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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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은 전쟁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과 강화를 맺는 조건으로 오키나와를 미국에 넘기면서 오키나와를 버렸다. 이후 오키나와가 반환될 때까지 일본 본토로 가기 위해 오키나와인은 여권을 가지고 가야 했다. 지금까지 오키나와인들이 미군기지에 대한 악감정을 갖는 이유는 미군범죄도 있지만 역사적인 피해의식도 크다고 하겠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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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키나와는 일본의 일부가 아니었다. 류큐왕국이란 독립국이었다. 일본에 강제병합된 후 외카와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20세기보다 더 심한 일방적인 착취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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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음악이 슬픔을 노래하는 이유이다. 흑인음악인 블루스가 우울한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현실을 노래에 슬픔을 담아 발산하는, 블루스 감성과 다르지 않다. 흑인 특유의 낙천성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다. 그들이라고 비참한 현실을 못보지 않는다. 단지 어쩔 수 없기에 내일은 행복할거라고 낙천적이 되야만 했고 우울한 블루스는 슬픔을 이기기 위해 슬픔을 노래했다. “Blues is happy music”이라 말했던 이유이다. 오키나와&nbsp;사람들에게&nbsp;음악은&nbsp;삶의&nbsp;비애를&nbsp;묻고&nbsp;위안을&nbsp;채우며&nbsp;고통을&nbsp;달관하는&nbsp;수단이었다.&nbsp;<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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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곡도 아니고 누구나 부르는 곡이 리미의 곡이 된 이유는 그 감성을 누구나보다 뛰어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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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미가 처음부터 오키나와의 음악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두곡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 그녀는 엔카 가수로 데뷔했었다. 오키나와 음악을 들고 나와봐야 특이한 음악으로 취급받을 뿐이고 매니아의 음악에 그칠 뿐이다. 그녀만 아니라 많은 오키나와 출신들이 그렇게 주류의 음악을 해야 햇다. 제주도 출신이 사투리를 숨기듯 통하지 않을 음악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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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nbsp;민요를&nbsp;말할&nbsp;때&nbsp;흔히&nbsp;아름다운&nbsp;'꺽기'를&nbsp;언급한다. '꺽기'는 단성음악인&nbsp;동아시아&nbsp;음악에서&nbsp;흔히&nbsp;볼&nbsp;수&nbsp;있는&nbsp;기법으로&nbsp;멜로디&nbsp;라인의&nbsp;직선운동에&nbsp;상하진폭을&nbsp;주어&nbsp;복잡성을&nbsp;더하는&nbsp;장식음을&nbsp;말한다.&nbsp;북이나&nbsp;사미센(三線)&nbsp;정도의&nbsp;단출한&nbsp;반주&nbsp;또는&nbsp;무반주로&nbsp;불리는&nbsp;판소리,&nbsp;시조창&nbsp;민요&nbsp;등의&nbsp;단성음악이&nbsp;다성음악에&nbsp;뒤지지&nbsp;않는&nbsp;깊이를&nbsp;갖는&nbsp;것은&nbsp;바로&nbsp;멜로디&nbsp;라인에&nbsp;더해지는&nbsp;장식음&nbsp;때문이다.&nbsp;오키나와 민요는 거기서 한단계 더 나아간다.&nbsp;장단에&nbsp;맞춰&nbsp;한 음절에&nbsp;여러&nbsp;음을&nbsp;할당하여&nbsp;분산화음과&nbsp;비슷한&nbsp;효과를&nbsp;내는&nbsp;오키나와&nbsp;민요의&nbsp;장식음&nbsp;기법은&nbsp;화려하고&nbsp;아름답다.&nbsp;그러나&nbsp;이러한&nbsp;기법은&nbsp;기본&nbsp;리듬과&nbsp;그&nbsp;변형을&nbsp;이해해야&nbsp;하며&nbsp;멜로디&nbsp;라인의&nbsp;움직임에&nbsp;집중&nbsp;할&nbsp;것을&nbsp;요구한다.&nbsp;다시&nbsp;말해&nbsp;그&nbsp;전통의&nbsp;작법을&nbsp;먼저&nbsp;이해해야&nbsp;즐길&nbsp;수&nbsp;있다.&nbsp;<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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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가 그렇듯 음악 역시 힘의 논리가 관철된다. 강자의 음악이 시장을 지배한다. 미국의 팝이, 미국의 클래식인 재즈가 세계의 음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의 헤게모니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약자의 음악인 오키나와 민요를 듣기 위해 누가 그 음악의 논리를 이해하고 배우는 수고를 하겠는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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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90년대 월드뮤직이 유행하면서 시장이 바뀌었고 오키나와 붐이 일어난다. 리미가 오키나와 음악을 들고 나온 시점이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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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nbsp;전후한&nbsp;오키나와&nbsp;3세대&nbsp;음악가들은&nbsp;오키나와&nbsp;민요의&nbsp;꺽기&nbsp;기법을&nbsp;멜로디&nbsp;라인을&nbsp;돋보이게&nbsp;하는&nbsp;수단으로&nbsp;재해석한다.&nbsp;다른 단성음악 전통의 문화들이 다 그렇듯이 서양음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시장의 귀가 그 음악에 익숙해졌기에 더더욱 그렇다. 전통의 재해석은 어디까지나 그런 시장의 상황을 전제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음악의 전통을 팝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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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도의 한 예로 하지메 치토세(元ちとせ)를 들 수 있다. 하지메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웃음’이다. 꺽기 때문이다. 그녀 음악의 수준은 웃음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너무 생소한 꺽기라는 기법 때문에 우선 낯설음을 느끼고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오키나와 민요를 들어보면 그녀의 꺽기는 원형에 더 가까운 각도를 갖는다. 단지 그녀는 장식음 기법인 꺽기를 멜로디 라인의 메인 라인에 통합해 움직임을 단순화했다. 그러나 그런 단순화 때문에 낯설음은 더 강해진다. 결국 하지메 치토세는 특이한 음악이란 반응을 넘지 못하고 서서히 잊혀졌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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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의 오키나와 민요 커버를 보면 민요라는 느낌보다는 팝이란 느낌이 더 강하다. 하지메 치토세가 겪어야 했던 난관 때문이다. 낯설게 들리지 않기 위해서. 대신 리미는 오키나와 음악의 감성을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오키나와 전통을 살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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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와라바(やなわらばー)의 음악은 형식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잘 보여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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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데뷔앨범인 ‘靑い寶’의 첫인상은 ‘아름다움’이었다. 이 아름다움은 멜로디 라인의 아름다움이다. 이들은 꺽기를&nbsp;멜로디&nbsp;라인에&nbsp;굴곡을&nbsp;만들어&nbsp;복잡하면서&nbsp;아름다운&nbsp;움직임을&nbsp;유도하는&nbsp;것으로&nbsp;재해석한다. 음악의 포커스는 멜로디라인의 운동이 되어야 하므로 반주는&nbsp;단순해야 한다.&nbsp;멜로디 라인의 움직임이 빠르고 복잡하므로 보컬의 운동성이 높아야 하고 보컬의&nbsp;음역이&nbsp;높을&nbsp;수록&nbsp;효과적이다.&nbsp;맑고&nbsp;자연스러운&nbsp;고음을&nbsp;구사하는&nbsp;나쓰카와&nbsp;리미의&nbsp;음색은&nbsp;이런&nbsp;기법과&nbsp;잘&nbsp;어울린다. 그러나 그녀는 내용을 선택하고 형식은 최소한으로 줄였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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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와라바의 편성은 기타와&nbsp;사미센(三線)이란&nbsp;최소한 편성이다. 음악의 초점을 멜로디 라인을 그리는 보컬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멜로디 라인은 꺽기의 재해석에 맞게 복잡하면서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복잡함은 미성의 소프라노와 알토의&nbsp;이중창으로 더 강화된다. 두 보컬이 교대로 멜로디 라인의 리드를 맡고 다른 한명은 화음을 넣는다. 단순히 백코러스에 그치지 않는 완벽한 화음이다. 서로를 오랫동안 알기에 서로를 잘 이해하는 팀만이 가능한 화음이다. 소프라노가 알토에 화음을 넣어주면서 이들 같이 자연스러운 경우는 드물다. 리드 보컬이 둘 이상인 경우의 좋은 예는 The Wailin' Jennys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곡마다 리드 보컬이 고정되지 한 곡 안에서 리드 보컬이 교대하지 않는다. 서로의 호흡이 완벽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런 복잡함을 곡의 형식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성의 복잡성은 음악의 형식을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멜로디라인의 복잡성을 더 강화해준다. <o:p></o:p>
<o:p>&nbsp;</o:p>
그러나&nbsp;나쓰카와&nbsp;리미와&nbsp;달리 야나와라바의&nbsp;음악엔&nbsp;오키나와&nbsp;민요의&nbsp;정서가&nbsp;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이 부른 ‘淚そうそう’와 ‘童神’을 리미의 버전과 비교해보면 평범하게 들린다. 감성의 무게가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슬픔보다는 형식미가 주는 즐거움에 초점이 맞춰지며 정서 역시 그런 아름다움이 주는 밝음에 기운다. 나름대로 좋은 방향이라 할 수 있으며 형식실험의&nbsp;가능성을&nbsp;극대화한&nbsp;예이다.<o:p></o:p>
<o:p>&nbsp;</o:p>
그러나 희한한 일은 리미도 그렇고 야나와라바도 오키나와 음악의 전통을 벗어나면 평범해진다는 것이다. 리미는 오키나와 3세대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nbsp;넓은&nbsp;청중을&nbsp;위해&nbsp;오키나와&nbsp;스타일에서&nbsp;멀어질수록&nbsp;그녀&nbsp;음악의&nbsp;질은&nbsp;낮아진다.&nbsp;첫&nbsp;앨범&nbsp;'南風'&nbsp;이후&nbsp;그녀의&nbsp;앨범은&nbsp;음악적으로는&nbsp;다양하지만&nbsp;그녀&nbsp;재능의&nbsp;반도&nbsp;살리지&nbsp;못하는&nbsp;어정쩡한&nbsp;곡들이&nbsp;많아진다.&nbsp;<o:p></o:p>
<o:p>&nbsp;</o:p>
야나와라바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고안한 형식실험을 벗어나 주류에 가깝게 갈 때 그들의 음악은 평범하다. 두번째 앨범인 ‘歌ぐすい’이 그러하고 J-Pop곡의 커버앨범인 泣唄 笑唄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우타다 히카루(宇多田ヒカル)의 First Love 커버를 원곡과 비교하면 왜 靑い寶의 정서가 밝음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 형식에는 감정의 깊이, 떨림을 담기가 어렵지 않은가 생각된다. <o:p></o:p>
<o:p>&nbsp;</o:p>
나쓰카와 리미와 야나와라바의 공통점은 전통의 무게와 깊이를 떠날 때 그들 홀로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전통의 일부만 가져왔을 때 그들이 보여준 한계에서 전통의 재창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준 음악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국악(또는 민요)의 재해석보다는 진일보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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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음반</category><title>﻿Beach House: 거리두기의 미학 - [[수입] Beach House - Teen Dream (2LP+1DVD)]</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80689</link><pubDate>Thu, 15 Dec 2011 17: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806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2622437139&TPaperId=528068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172/31/coveroff/26224371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2622437139&TPaperId=52806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입] Beach House - Teen Dream (2LP+1DVD)</a><br/>Beach House / Sub Pop / 2010년 01월<br/></td></tr></table><br/>
2000년대 후반 북미팝의 흐름 중 하나는 드림팝의 부활이다. 80년대 콕튜 트윈이 선봉을 서면서 등장한 드림팝이란 장르는 미국에선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nbsp;
<span _cssquery_uid="917">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span _cssquery_uid="918">우선 사운드스케이프를 중시하는 드림팝의 기법은 따라부를 수 있는 가사를 중시하는 주류팝의 소비자에겐 그다지 매력이 없다. 가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드림팝의 선구인 콕튜 트윈의 경우 아무 의미없는 단어를 만들어 가사에 나열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nbsp;
<span _cssquery_uid="920">더군다나 그러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집중해 들을 것을 요구한다. 그냥 딴일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즐기는 대다수 소비자의 청취태도에는 맞지 않는 요구이다. 더군다나 워크맨 또는 아이팝에 이어폰이나 꼽아 듣는 열악한 장비에서 드림팝의 사운드는 노이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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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22">그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드림팝을 선택한 아티스트들이 인디에 머물러야 했고 평단과<span _cssquery_uid="923"> 매니아<span _cssquery_uid="924">의 격찬을 받으면서 사라져야 했다. 그런 좋은 예가 <span _cssquery_uid="925">Trespassers Williams이다. 설득력있는 수준높은 음악을 선보였고 그에 걸맞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 실패를 이기지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겨우 앨범 3장을 내고 사실상 해체 상태이다. 
&nbsp;
<span _cssquery_uid="928">Trespassers Williams 정도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없다면 드림팝이란 장르의 음악은 미국에선 발붙일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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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30">그러나 2008년을 전후해 이변이 일어난다. 일군의 드림팝 밴드들이 평단의 격찬을 넘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다. 이 리뷰에서 다루는 비치 하우스가 그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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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32">드림팝의 원동력은 안티락이다. 70년대 이후 사실상 음악운동으로서 락의 창조성이 남아있는가 의문이 제기되었고 드림팝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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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34">락이 무엇인가는 애매하게 되었다. 워낙 많은 분파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락의 사운드가, 대표적인 이미지로서의 사운드가 무엇인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전자기타의 리프이다. 대중음악의 장르가 다 그렇듯이 락도 10대들의 댄스음악으로 시작했지 감상용의 고급음악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락의 상징은 그런 시작을 반영하듯 춤의 리듬을 만드는 기타 리프이다. 그런 이미지는 지금도 락의 소비자들에게 유효하고 그런 소비패턴은 락의 창조성이 고갈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span _cssquery_uid="935">드림팝은 그런 락의 화석화에 저항하는 흐름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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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37">드림팝의 사운드를 규정하는 것은 리듬이 아닌 사운드스케이프의 텍스쳐이며 그 텍스쳐가 만드는&nbsp;무드이다. 귀로 스치는 소리에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사운드가 아니라 앉아서 차분하게 사운드를 찬찬히 뜯어보며 들어야 하는 감상용 음악이란 말이다. 클래식이 그렇듯 음악적 논리에 따라 사운드의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의 음역을 넓히려는경향이 있고 멜로디라인의 음역을 높게 잡을 수록 그 음역은 넓어진다.&nbsp;남성들이 장악한 락판과 달리 드림팝에선 자연스럽게&nbsp;여성보컬이 줄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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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39">그렇기에 드림팝은 모든 면에서 락과는 다른 길을 가려는 음악가에게 선택받는 장르가 되었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 역시 주류팝/락과는 대척점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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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41">우선 이들의 음악에선 보컬이 탈중심화된다. 감상용 팝의 경우 보컬이 중심이 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청자와 보컬의 감정적 동일시를 위해서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 자신을 일치시키듯이 팝의 문법은 보컬이 표현하는 감정이 청자의 감정에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팝에서 보컬이 모든 인기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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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43">그러나 비치 하우스는 그런 문법을 깬다. 고전이 된 콕튜 트윈의 Treaure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중심엔 보컬이 아닌 드럼이 놓인다. 보컬은 그 드럼 주위를 부유하는 유령이다. 더군다나 그 보컬이 부르는 가사도 별 의미가 없다. 비치 하우스는 데뷔 앨범에서 그런 기법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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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45">3번째 앨범인 Teen Dream에서는 그런 기법을 따르지는 않는다. 보컬은 무대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위치는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게 뒤로 또는 옆으로 샌다.
&nbsp;
보컬의 위치만 아니다. 보컬의 감정표현 역시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일치할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기질의 보컬이라 할까. 
&nbsp;
보컬의 위치와 감정은 보컬을 하나의 악기로 만든다. 그것도 주악기라기 보다 다른 악기와 공존하는. 이러한 장치의 목적은 콕튜 트윈과 같다. 보컬이 아니라 음악 전체가 그리는 사운드스케이프를 듣도록, 음악의 한 곳에 포커스를 줌인하는 것이 아니라 줌 아웃하여 사운드 전체를 보도록, 브레히트 식으로 말하자면 distanciating(거리두기)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nbsp;이들의 사운드는 앞에서 말했듯 새롭다고 하기는 힘들다. 단지 장르의 논리를 충실히, 타협없이 따를 뿐이다. 그러나 그 비타협 자체가, 그리고 그 비타협으로 만들어진 사운드 자체가 이들의 음악에서 훌륭한 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172/31/cover150/2622437139_1.jpg</url><link>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2622437139</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재즈는 살아있다 - [재즈문화사]</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5456</link><pubDate>Tue, 13 Dec 2011 1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5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TPaperId=52754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77/48/coveroff/89921146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TPaperId=5275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즈문화사</a><br/>이원희 지음 / 말글빛냄 / 2010년 09월<br/></td></tr></table><br/>재즈평론가도 그렇다고 음대를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일개 감상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사람이 쓴 재즈책을 보게 된 이유는 그런 저자가 썼음에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씩’이나 되었다는 의외의 결과때문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o:p>&nbsp;</o:p>
재즈는 어렵다. 적당히 멜로디라인만 따라갈 수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팝과 다르기 때문이다. 클래식만 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무슨 코드인지 알아듣고 복잡하게 변주된 모티브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며 조바꿈이라든지 변박자등을 알아챌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보다 후에 성장한 재즈는 그보다 훠~~얼씬 복잡하다. 하다못해 기타라도 칠줄 알아야,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의 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o:p></o:p>
<o:p>&nbsp;</o:p>
그런데 그런 배경과는 동떨어진 저자가 쓴 이책이 정부의 추천씩이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책이 자신의 소개대로 감상자로서의 의문에 답하는 저자 자신의 탐색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o:p></o:p>
<o:p>&nbsp;</o:p>
“록에 익숙해서인지 군데군데 대책없이 비워놓은 듯한 사운드에 당혹했다. 동양화도 아니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듯했다. 그랬던 재즈가 조선시대 색시처럼 내게 다가왔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조용히 흐르던 음이 부드럽게 내 마음을 녹였다.” 그러나 재즈는 다가가면 갈수록 얼굴을 바꿔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음으로 가득 찬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재즈의 속도에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나는 말 많고 독똑한 여자의 또렷한 대응에 쉽게 토라져버리는 속 좁은 조선시대 남자였다. 재즈는 현학적 취향을 지닌 학구파 여성이었다.”<o:p></o:p>
<o:p>&nbsp;</o:p>
결국 저자는 오기로 버틴다. 열번찍으면 넘어간다. 그렇게 버틴 저자는 또 얼굴을 바꿔댄 재즈를 만난다. “이 음악에 과연 여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무리 양보해도 선이 굵고 거침없었다. 그건 남성의 소리였다. 당시까지 내게 재즈는 록과 달랐다. 그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여성일 뿐이었는데 학구파 신여성으로 돌변하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의 남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o:p></o:p>
<o:p>&nbsp;</o:p>
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결론은 그 모두이다. 어떤 이름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재즈는 정의하려 덤비면 그 정의를 하는 순간 바뀌어 버리는 살아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o:p></o:p>
<o:p>&nbsp;</o:p>
스윙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재즈 입문서를 보면 스윙을 느낄 수 없으면 재즈가 아니라 한다. 스윙의 정의는 복잡하다. 들으면 안다, 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불가능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들으면 손을 까딱이고 몸을 흔들고 싶은 느낌이 있다면 스윙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예는 Emily-Claire Barlow의 Tribute 앨범 1번 트랙이다 스윙 외에도 고전적인 재즈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좋은 보컬 재즈곡이다)<o:p></o:p>
<o:p>&nbsp;</o:p>
그러나 스윙을 느낌으로가 아니라 말로 정의하자면 난감해진다. 권위있는 책인 “재즈북’에서조차 스윙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음악가와 비평가 혹은 음악학자들이 정의한 스윙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그 정의의 부족한 면을 지적할 뿐이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스윙에 대해서조차 일관되게 규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은 블루노트, 엇박자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의 정의조차 애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볼 때마다 재즈의 얼굴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o:p></o:p>
<o:p>&nbsp;</o:p>
“블루노트로 연주되지 않은 재즈는 재즈라 말할 수 없다. 이토록 중요한 블루노트는 유럽음악의 기준으로 반음화된 3도와 7도를 말한다.” 문제는 이 반음이 반 정도이지 딱 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음악에서 보자면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연주해야만 블루노트는 제대로 연주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재즈의 본질이다.” <o:p></o:p>
<o:p>&nbsp;</o:p>
그러면 왜 이런 모호함이 생겼는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접근한다.<o:p></o:p>
<o:p>&nbsp;</o:p>
“이러한 현상은 흑인음악을 서양음악체계에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은 가해자의 음계를 바탕에 두고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해야 햇다. 흑인노예들이 그들의 5음계를 서양의 7음계에 적용해야 했을 때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음 내려야 했다,”<o:p></o:p>
<o:p>&nbsp;</o:p>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맞춰졌기에 블루노트는 엄밀할 수 없었다. 그 부정확은 미학의 지위로 올려진다. 악보로 표현할 수 없기에 “연주자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블루노트 감각을 익혀야 한다. 그 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의 재즈를 표현할 수 없다. 이런 미묘함을 재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훌륭한 재즈 연주가는 블루노트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가면 약간씩 빗나가는 아슬아슬한 연출을 통해 음악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재즈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까다로우며 훌륭한 연주다. 이를 유럽음악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가급적 정확함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부정확해질 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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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의 특징처럼 저자는 재즈를 모순의 미학이란 말로 정리한다. 블루노트가 태어난 이유처럼 재즈는 흑인노예와 백인이 만났을 때의 긴장감에서 태어났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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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음악에 억지로 끼워 맞춰 만들어진 재즈는 서양음악도 아프리카 음악도 아닌 미국의, 흑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미학은 음악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정의했다. <o:p></o:p>
<o:p>&nbsp;</o:p>
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흑인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 끼어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햇다. 빌리 홀리데이는 ‘44년의 짧은 생애동안 굶주림, 노동, 성폭행, 매춘, 인종차별, 수감생활, 이혼 등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블루스 여제 베시 스미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흑인이라는 이유로 앰불런스를 얻어타지 못해 죽어야만 했던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o:p></o:p>
<o:p>&nbsp;</o:p>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노예의 후손이 사는 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사회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춰가야 했던 그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죽어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게 이상적인 미래는 멀기만 했고 “당장 살아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백인의 견고한 사회에서 버텨야 햇다. 타협이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o:p></o:p>
<o:p>&nbsp;</o:p>
블루노트란 말은 블루스의 음계란 뜻이었다. 블루스를 정의하는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이다. ‘블루스는 흑인노예들과 그 후손들의 한을 잘 담아낸 음악으로 그들의 아리랑이었다. 지금도 블루스의 음인 블루노트는 재즈의 핵심음적이며 블루스 정서는 재즈인들이 체득해야 할 중요한 감성이다. 재즈 3대 디바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사라 본 중 빌리 홀리데이느,ㄴ 기술적인 면에서 자신을 강렬히 드러낼 장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캣의 현란함을 자랑하는 엘라 피츠제럴드나 폭넓은 음역의 사라 본보다 높은 위상을 지닌다. 그것은 독보적이라 할 블루스 감성 때문이다. 그녀는 블루스 특유의 끈덕지고 미묘한 느낌을 곡 전면에 갈면서 재즈의 묘미를 연출한다. 마치 자신의 슬픔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노래했다. 그 노래는 묘한 흥과 한이 있는 마성을 띠었다. 빨려든다고 해야 할까. 블루스 감성은 빌리에게나 다른 미국흑인들에게나 자연스럽게 체득된 삶 자체였다.” (블루스 감성의 요즘 예로는 Otis Taylor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야도 치에가 추천할만 하다)<o:p></o:p>
<o:p>&nbsp;</o:p>
그러나 노예의 음악은 주인의 음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재즈의 긴장감은 아프리카적인 감성이 유럽적 이성을 만나면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재즈에는 두 문화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묘한 긴장과 생동감이 살아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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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일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에게 음악가는 ‘성공’이었다. 1급 운동선수에 흑인이 많은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흑인이 특별히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인일 뿐이었던 흑인에게 음악가는 출세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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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흑인인 재즈인들도 사회의 주변인어야 했다. 흑인이 예술을 한다는 자체가 저항일 수 밖에 없었다. 초기재즈인들은 주로 백인전용 술집에서 연주를 했지만 늘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다. 백인이 사용하는 술잔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빌리 홀리데이도 인기에 걸맞지 않은 부당한 대우에 동료와 고용주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카운트 베시 악단과 같은 거물급 집단조차 12장의 음반에 대해 그들이 받은 돈은 선불금 750달러가 전부였으며 그돈조차 밴드 멤버 26명이 나누어 가져야 했다. 백인악단을 이처럼 부당하게 대우하는게 가능했을까. 재즈의 씨앗은 인종 간의 긴장을 에너지로 삼아 발아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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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음악인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더해졌다. “원래 재즈는 흑인 빈민층을 대변하는 가난한 음악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초기재즈는 길거리 음악으로 대중과 함께 진흙탕을 뒹굴었다. 비록 흥행을 위해 춤곡으로 치장되어 화려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고 이론과 지성까지 버무러져 고급화되었지만 재즈의 본질은 그 ‘삼류성’에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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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의 음악이었던 재즈가 시카고와 뉴욕으로 흘러갔을 때 재즈는 술집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댄스음악이 되었다. 20년대 금주법의 시대에 ‘재즈는 손님들의 여흥을 돋우는 춤곡에 불과했다ㅓ. 또한 불법인 주류업의 호객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범죄에 이용된 오락거리였다. 술집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편성 악단을 고용했고 재즈 음악가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시대는 재즈에 여흥의 역할을 주엇고 재즈 음악가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3류성이 재즈의 긴장을 만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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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재즈가 대성공을 하면서 대편성이 재즈가 갈 방향인 것처럼 보였다. 너나할 것없이 현란하고 커다란 음을 내기 위해 단원을 늘렸다. 큰 것이 아름다운 시대였다. 스윙에는 빅밴드가 제격이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음의 물결을 타며 사람들은 춤의 서핑을 즐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강렬한 춤곡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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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음악가에겐 불편했다. 주류백인사회에선 3류 딴따라일 뿐이지만 흑인들에게 허용된 몇안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그런 3류성은 참을 수 없었다.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런 분위기는 개성적이고 복잡한 연주를 하고 싶은 바람과 상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음악가에게 그것은 족쇄와도 같은 작용을 했다. 사실 젊은 스윙재즈 음악가들 중ㅇ 일부는 관객의 춤에 반주를 넣는다는 자체에 불만을 품엇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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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전시상황은 유흥가의 쇠퇴를 불렀고 스윙재즈도 쇠퇴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밥이 탄생한다. “비밥음악가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춤추지 못하는 음악을 연주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완벽히 성공했다. 그들은 스윙재즈 악단에서 연주하면서 당시의 음악유행을 좇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음악도들 중 일부가 당대음악의 문제점에 통감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밥이 탄생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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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재즈는 ‘까다로운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는’ 음악처럼 들린다. &nbsp;:당시의 비밥은 마치 요즘 스래시메탈이나 데스메탈 같은 과격한 음악이 받아야 할 평가를 받았다. 물론 비밥의 소리는 메탈의 금속성 굉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무수히 제시되는 현란한 비트와 즉흥선율의 음표들을 잘게 부순 후 관객의 귀를 향해 ‘밥풀 묻은 이쑤시개’를 날리듯 ‘음표’를 소아댔다. 게다가 비밥은 주제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즉흥연주를 선보인 최초의 장르였다. 심한 경우 원곡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대중에게 폭력이었다. ‘삐리리’ 사운드로 들리는 비밥의 불친절한 선율은 사람들의 귀를 고문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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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재즈는 딴따라가 아닌 ‘예술’의 길을 간다. “소수의 음악이 될지언정 소비되지 않겠다는 비밥 혁신가들의 열망이 비밥을 전위음악으로 이끌었다. 비밥은 자의식 과잉의 음악이었다. 비밥의 혁신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고 그에 걸맞은 표현양식을 고민했다. 예술가로 대접받고 싶던 피 끊는 젊은 혁신가들을 만족하는데 스윙재즈는 부족햇다. 비밥을 연주하는 연주하는 흑인이라면 누구나 천대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이려는 욕구를 지녔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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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자체가 모순의 음악이지만 특히 비밥은 재즈의 중요한 미학이 확립되어 모순이 극대화되엇다. 또한 그것은 모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온전히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우선 음악외적으로 그것은 흑인으로서 백인과 동화되기를 바라는 타협적인 자세와 흑인이고자 하는 열망이 상존하는 장르이며 음악내적으로 유럽고전음악에 크게 빚을 지면서도 흑인감각을 극대화한 음악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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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경박하게 인식되는 춤곡을 지양하면서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없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 연주는 분명 흑인적이엇다ㅓ. 그들은 흑인감각을 극대화하면서도 유럽적인 의미의 예술가를 꿈구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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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내적으로도 비밥은 모순의 음악이다. 화성적인 면을 살필 때 비밥은 분명 흑인의 음악이 아니다. 비밥의 화성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다. 비밥 음악가들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인 화성에 깊이 천착했다. 찰리 파커 등은 늘 유럽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화성을 세밀히 발전시키는 단계 후 그것에서 탈피하는 순으로 재즈화성학은 변화했다. 그리고 재즈화성의 무게중심이 화음에서 선법(모드)과 자유조성으로 얾겨가면서 재즈화성학은 더욱 발전했다. 재즈음악가들은 단 한 세기 동안 수세기에 걸쳐 화성개념을 발전시킨 유럽음악의 성과를 흡수했다. 그들이 당대음악의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음악을 철저히 고민하지 않았다면 재즈는 그저 흑인만의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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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자는 비밥이 쿨, 하드밥, 소울재즈로 발전하고 그 논리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돌파구를 찾는 노력으로 프리재즈와 모달재즈가 발전하고 프리재즈가 다시 극한에 도달해 자멸한 다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을 나머지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인 입문서에 나오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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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특징은 위에서 본 것처럼 재즈의 발전사를 음악내적논리에서 파악하면서 그 논리를 자극한 사회사적 맥락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다른 재즈책들과는 구분된다. 이책에서 스윙이 무엇이고 블루노트가 무엇이고 등 기초적인 입문내용을 기대한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재즈가 왜 그렇게 발전했는가, 살아있는 재즈로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정부에서 추천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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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77/48/cover150/899211460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음반</category><title>통제의 문제 - [Kelly Sweet - We Are One]</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4546</link><pubDate>Tue, 13 Dec 2011 0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45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344801778&TPaperId=527454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9/80/coveroff/63448017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344801778&TPaperId=52745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Kelly Sweet - We Are One</a><br/>켈리 스위트 (Kelly Sweet)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07년 11월<br/></td></tr></table><br/>켈리 스위트란 가수를 알게된 것은 Best Audiophile Voices란 컴필레이션에서다. 10여년 동안 매년 발행되어온 이 시리즈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성의, 가창력이 뛰어난 여성보컬이 선정된다. 여성 보컬로서 이 시리즈에 등장한다는 것은 명예라 할 수 있겠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nbsp;</o:p>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첫번째 곡부터 그 명예는 허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Best Audiophile Voices에 편집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창력은 검증되었다는 말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음역이 넓다는 점이다. 팝에선 그리 흔하지 않은 제대로된 소프라노이며 제대로 다져진 기본기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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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능력만 아니다. 위키에 보면 아직 24살, 앨범 녹음 당시 2007년엔 이제 20살 정도 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감정표현이 능숙하며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타이밍이 뛰어나다. 오랜만에 발견한 제대로 된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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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앨범에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지 난감하다. 가수 자체로 보자면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앨범의 구성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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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싱어송라이터들을 좋아하는데 분명한 개성이 있고 자신의 세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관성은 하나의 앨범을 통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일관성과 수준의 일정함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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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켈리 스위트는 자신이 자신이 부를 곡을 쓰지 않는다. 이 앨범은 남의 곡을 부르는 가수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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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앨범의 긴장감이 뒤로 갈수록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곡에 의존하기 때문에 앨범이 하나의 단위로서 그리는 세계를 컨트롤할 통제력이 가수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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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수의 수준이 그런 통제 자체를 못할 정도인 경우가 잇지만 켈리 스위트의 경우를 보자면 그런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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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로듀서가 그런 통제력을 발휘한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이 앨범은 그런 통제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통제력의 부재는 편곡에서도 드러난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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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장점은 절제에 있다. 음 하나 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고 쓸데없는 중복이 없으며 장식을 기피한다. 그러나 팝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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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 음악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미 싱어송라이터 전통에선 그런 과잉의 문제가 덜한데 통제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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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음반의 경우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여분이 뒤로 갈수록 많아진다. 얼핏 듣기에는 즐거운 음으로 들리지만 음반을 여러 번 듣다보면 질리게 만드는 과잉이다. 이런 문제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음반을 만들 때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우선 띄워놓고 보자는 계산에서 그렇게 만들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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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정도 실력의 가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에 그런 문제들이 나타나도록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며 이 앨범의 제작에 통제권의 문제가 있었다고 짐작하는 이유이다. 위키에는 다음 앨범이 2012년에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5년의 공백이다. 긴 공백의 이유가 아마도 데뷔 앨범의 문제들이 나타난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다음 앨범에선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싶다. 앞으로 계속 들을 가치가 충분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br>&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9/80/cover150/6344801778_1.jpg</url><link>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344801778</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종이로 즐기는 미술관 - [아트, 도쿄 - 책으로 떠나는 도쿄 미술관 기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4435</link><pubDate>Thu, 08 Dec 2011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4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TPaperId=526443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0/64/coveroff/89560555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TPaperId=5264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트, 도쿄 - 책으로 떠나는 도쿄 미술관 기행</a><br/>박현정.최재혁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1월<br/></td></tr></table><br/>이책의 부제가 말하듯 이책의 주인공은 도쿄의 미술관들이다. 이책의 목적은 도쿄여행을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잡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내용은 도쿄에 볼만한 미술관이 어떤 곳이고 그 미술관에서 볼 것은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아트 도쿄’란 제목만 보고 이책이 일본미술의 현황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하면 잘못이란 말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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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솔직히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고 하지만 해외로 미술관 여행을 올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결국 이책은 많은 여행서들이 그렇듯이 “좀처럼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서가 되어버렸’다. 책 한권으로 여행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상여행서’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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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종이뭉치가 실제 여행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가상여행서’란 말이 어울리게 잘 만들어졌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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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미술관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미술품을 보러 가는 것만 말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미술품을 모셔놓은 공간 자체가 포함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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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오페라 공연을 보러간다고 하자. 평소에는 입지 않던 드레스코드를 따라 ‘특별’하게 차려입는다. 집안에서 음반으로 또는 DVD 영상으로 오페라를 즐길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공연장에 간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복장은 그 다름이 요구하는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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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일상과는 다른 무언가이다. 그 다름을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도 포함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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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술작품을 본다는 자체,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태도를 전제한다. 화장실 변기가 미술관 전시대에 놓이면 그것은 소변을 보는 용도가 아닌 감상을 위한 용도로 바뀐다. 같은 변기를 다른 태도로 대하게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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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그런 힘을 갖는 것은 물론 미술관이란 제도의 힘이다. 그러나 그 제도가 힘을 갖게 하는 것은 미술관이란 물리적 공간의 힘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미술관들 중 도쿄국립박물관의 호류지 보물관은 그 좋은 예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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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야에 들어오면 압도적인 이미지가 이전의 기억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기묘한 힘을 가진 건물, 그 앞에 서면 재부팅되듯 잠시 움직임을 멈추게 될 정도다. 수많은 팬을 거느린 호류지 박물관은 결코 편안하다거나 안락함을 주는 건물은 아니다. 단정하다 못해 질서로 꽉 찬 공간은 오히려 끊임없이 미묘한 긴장감 속에 머무르게 한다. 건물 앞에는 연못이 지면과 같은 높이로 펼쳐져 있는데 너무나 반듯하고 평평해서 작은 바람의 움직임에도 파문이 도드라진다. 조그만 원에서 시작해 동심원을 그리며 커다랗게 퍼지는 물결은 보는 사람도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그렇게 숨을 맞추다보면 미약한 바람분 아니라 기의 움직임에도 반응하게 되는지 온몸의 신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를 잡아내는 안테나처럼 펼쳐진다. 그 순간은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이 건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지금의 도쿄에서 귀중한 가치가 되어버린 정숙, 질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이 아니라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종교적인 건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은 건축가가 이곳에 소장될 보물 300여점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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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이 변기에 ‘샘’이란 이름을 붙여 고가로 팔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미술관이란 공간이 갖는 힘 덕분이며 오늘날로 치면 찌라시에 불과한 우끼요에가 대접받는 예술이 되는 것도 그런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이 구현하는 제도의 힘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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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일본보다 서양이 먼저였다. 우키요에가 그들 손에 들어간 것은 수출품인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우키요에에 싸서 보내졌기 때문이다. 포장지로 쓰였다는데서 알 수 있지만 에도의 우키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품이라는 관념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서점 한쪽에 한가득 쌓여있는 패션잡지 속 모델의 사진이나 개봉영화 광고전단지가 그들과 더 가깝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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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우끼요에의 내용은 당시의 대중문화의 중심었던 유곽과 가부키 극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소비자들이 그 장소에서 원하는 것이 그렇듯 우키요에의 내용은 현실과는 멀었다. “우키요의 원래 의미가 근심어린 세상(憂世)였다는 사실은 의외다. 실제 세계를 그렸던 우키요에의 매력이 현실을 긍정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을 살짝 부정해버리는 힘에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어차피 힘든 세상, 즐겁게 살아보지 않겠냐는 의미로 같은 발음의 우키요(浮世)로 바뀐 것이라 한다. 한지 앞을 볼 수 없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약간 들뜬 채로 즐겨보자는 것이” 우끼요에의 미학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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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불상이 실제 인간이 아닌 관상학적으로 이상화된 비현실의 인간을 표현하듯 우끼요에의 미녀는 현실의 미녀와는 상관이 없는 이상화된 미녀이며 그녀들은 쌍둥이 같이 동일한 얼굴로 그려졌다. 그 미녀들을 만나는 장소, 유곽 “요시와라는 서로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거짓이 진실인 세계, 현실의 계급관념이 힘을 잃는 가상세계였다. 돈으로 사랑을 사는 곳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찌보면 멋과 풍류가 더 중요했던 세상, 거짓을 진실인 척 안아주는 건 가상세계 요시와라를 즐기는 약속이었다. 자신의 품에 안은 유녀가 상상 속의 이상향이었다면 그것은 우키요에를 통해 만나는 유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리라. 어디까지나 상상이 현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라면 그리고 자신이 환상을 쥐락펴락하는 주인이라면 그림 속 미인들의 얼굴이 같다 한들 별 문제가 없었으리라.”<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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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파는, 환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패션사진이 예술이라 말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환상을 현실과 아무 상관없게 만들어주엇을 때 ‘찌라시’-였던 우키요에는 미술관으로 모셔질 수 있었다. 예술은 현실과 무관한 존재일 때 예술일 수 있으니까.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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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미술의 고민이다. 골치만 아픈 무용지물. 현대미술에 대한 통념이다. 그런거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고 그런거 없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한 것도 아니다. 사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도 없는 그런 골치덩어리 없이도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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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타로는 미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사람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내 또래의 일본세대들은 오카모토 타로를 ‘좀 이상한 아저씨’로 기억한다. CF에서 ‘예술은 폭발이다;를 외치며 범종을 울려대거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뭐냐 이건’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일명 ‘노려보는 눈알의 폭발아저씨’.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보니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반성조로 고백하는 타로의 팬들도 적이지 않은데 이해가 간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인지 잔뜩 화가 난 표정의 그의 사진을 처음 대했을 때는 나 역시 좀 불편했다. ‘뭐 어쩌라고.’”<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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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의 예술을 저자들은 분노의 미학으로 정리한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태양의 탑’을 만든 것으로 기억되는 타로는 ‘당시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만 신경쓰는 일본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과학의 발달로 삶은 풍족해지지만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해진 현대인을 봤다. 고대에 만들어진 조몬 토기로부터 약동과 활력을 발견했던 타로는 만박의 테마인 ‘인류의 진보와 조화’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섰다. ‘뭐가 진보냐, 조몬 토기의 뛰어남을 보라. 지금의 당신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도밯ㄹ적으로 질묺파고 자신을 죽이고 서로 친해지는 조화는 비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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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예술은 ‘투명한 폭발, 분노’였다. “타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 자체, 그 어마어마한생명력이었다. 그 생명력에 맞지 않는 것에는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타협하지 마라, 불협화음은 클수록 좋다. 타협하지 말고 화낼 것에는 투명한 화를 내라.’ 화를 내라는 그의 주문은 그의 예술 자체였다. 그 분노는, 비타협은 그리고 폭발로서 예술은 “인산이 자신을 넘어서 세계로 우주로 무한하게 펼쳐나가기 위한 의지와 감정의 폭발이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투명하게 폭발해 무한대의 저편,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 타로의 대상은 언제나 우주였다.” 그에게 예술은 축제였다. 생명력을 옭아매는 “규제와 절도, 합리주의에 묶인 일상을 뛰어넘어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열광의 도가니.”<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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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 자리잡은 그의 기념관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부터 남다르다. ‘그들에게는 어느 미술관에서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심스러움이나 작품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없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줄을 맞춰 움직이지도 소곤거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 곳에서 웃고 떠든다. 마음에 드는 조각을 만져보고 그 위에 앉아보고 옆 관람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태양의 탑’으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은 활기, 활력을 깨우고 싶었다는 타로의 바람대로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사진촬영가능’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별난 미술관, 아니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흥겨운 유원지에서 보내는 화사한 비일상에 가깝다. 자신의 작품을 유리 케이스에 넣겠다는 말에 화를 내며 작품이 찢어지면 자신의 손으로 다시 이어주겠다던, 예술은 대중의 것이니 만지고 싶어하면 만지게 하라고 했던 타로의 말은 이곳 관람객들에게 여전히 큰 힘이다. 예술은 열도 빛도 무한적으로 주는 태양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평생 작품을 팔기 거부했던 오카모토 타로를 기념하는 이곳은 1970년 만박 이후에도 여전히 축제중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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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o:p></o: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80/64/cover150/895605554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직장의 상식 - [회사의 속마음 - 직장인은 절대 모르는 연봉협상, 승진, 해고, 구조조정에 얽힌 비밀]</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2945</link><pubDate>Wed, 07 Dec 2011 16: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29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039&TPaperId=526294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74/88/coveroff/89255450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039&TPaperId=52629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회사의 속마음 - 직장인은 절대 모르는 연봉협상, 승진, 해고, 구조조정에 얽힌 비밀</a><br/>정광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br/></td></tr></table><br/>﻿이책의 제목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책의 내용은 경영자의 속내보다는 인사부서의 속내이다. 오랫동안 노동법 전문변호사로 일해온 저자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영자의 속내가 아니라 그가 다루는 일이면서 그가 만나야 하는 고객들의 입장이며 그들의 속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급쟁이의 입장에서 ﻿<span _cssquery_uid="913">﻿그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적어도 연봉, 수당, 승진, 전직, 해고 등 이책이 다루는 내용에 관해선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뻔하지 않은가? 남의 돈을 받는 입장에서 항상 신경써야 되고 쓸 수 밖에 없는 것들인데 이런 책씩이나 읽을 필요가 있는가? 그게 그렇지가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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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15">"'우리 회사에 재미있는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지난달에 연봉협상을 하는데 기분 좋게 회사로부터 얻어갈 것을 다 얻어가더라고요' 다른 직원의 경우 대부분 별 이유없이 연봉을 올려달라거나 근거로 적당하지 않은 자료를 내밀며 인상을 쓰는 경우가 많ㅍ은데 그 직원의 경우에는 달랐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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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17">'아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연봉협상은 연봉통지 혹은 연봉조정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요. 대개 직무5가치와 회사기여도 등을 토대로 회사의 예산범위 내에서 연봉을 책정하고 통지하는데 하는 그 친구가 먼저 면담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면4담에 들어갔는데 올해 우리 회사에 대한 신문기사와 재무상황, 수익현황 등을 어디서 구했는지 요약해왔더군요. 그리고 나서 자기가 한 직무와 연결시켜 회사에 이런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조목조목 요약해 말하더라고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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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19">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직원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고 되물으니 그 인사팀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직원들은 막연하게 열심히 했으니 좀 올려다라고 해요. 그런데 그 친구는 올해 자기가 수립한 직무계획과 자기계발 노력, 이것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주 구체적으로 제안했어요. 그래서 적극성에 일단 점수를 주고 싶더군요. 하지만 이미 책정된 연봉을 조정하기가 어려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추가적인 연봉이난이 어려울 경우 직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을 보내달라고 제안하더군요. 교육내용과 이런 교육을 받았을&#160; 때의 기여도까지 근거 자료를 꼼꼼하게 준비해왔더라구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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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19">이책의 내용이 짐작이 갈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직장인이 인사과와 관련되는 경우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직장인의 생사가 달린 문제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상식으로 알아야 하고 알고 있을 것같은 내용들이지만 의외로 그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정도를 넘어 과연 내 목줄을 쥐고 있는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책은 그 당연한 것들을 알려주고 그 당연한 것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를 저자가 일관계로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했던 사람들과 그 일의 내용을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책이다. 상당히 유용하다. 더군다나 그 내용이 한국 저자가 쓴 한국의 상황이기에 더더욱 유용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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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_cssquery_uid="919">평점 4.5<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74/88/cover150/892554503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5039</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수신/심리</category><title>絶學無憂 - [세계의 절반 구하기 - 왜 서구의 원조와 군사 개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59676</link><pubDate>Tue, 06 Dec 2011 10: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596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2185&TPaperId=525967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48/96/coveroff/89941421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2185&TPaperId=52596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계의 절반 구하기 - 왜 서구의 원조와 군사 개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가</a><br/>윌리엄 R. 이스털리 지음, 황규득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10월<br/></td></tr></table><br/>실험물리학자와 이론물리학자 그리고 수학자가 같은 감옥에 갇혔다. 세 사람은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그러다 나흘째 마침내 통조림을 공급받게 되었다. 그러나 통조림을 따는 도구가 없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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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물리학자는 통조림을 감방 벽에 집어던지고 발로 짓밟기를 거듭한 끝에 통조림을 열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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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물리학자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통조림의 모서리를 벽에 긁었다. 이윽고 통조림에 작은 구멍이 났다. 이론물리학자는 그것을 벽에 집어던져 단번에 통조림을 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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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수학자의 감방을 들여다보았을 때 수학자는 통조림을 앞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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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통조림을 열었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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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화장실 유머일 뿐이지만 책상물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절학무우란 말이 나오는 노자의 장을 보면 ‘뭘 좀 안다는 놈들이 설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나온다. 통조림을 열고 배를 채우기 보다는 통조림에 대한 가정을 세우고 논리를 건설하는 것이 우선인 수학자들을 너무 많이 보았고 그 수학자들이 세상을 위한다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문제는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똘똘이 스머프들은 멸종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멀리 갈 것없이 한국 사회과학계를 보면 똘똘이 스머프들이 사는 법을 질리게 볼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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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계는 맑스주의의 가짜비급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어느 정치학자의 글에 나오는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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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비급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학자의 말대로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맑스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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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파가 있고 다양한 접근이 있기 때문에 뭉뜽그려 말할 수는 없지만 맑스주의의 기본논리는 'Stupid, It’s economy!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로 정리된다. 경제적 소유에 따른 계급이란 개념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가 설명된다는 환원론 내지는 결정론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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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잡다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없는 문제를 변수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니 이 아니 기쁠 수 없다. 문제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매력은 바로 그 한계이다. 그리고 그 치명적 매력에 넘어간 한국의 사회과학계는 주화입마에 빠져 현실을 보는 눈이 멀어버렸다는 것이다. 똘똘이 스머프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논리에 맞아들어가는 것이니까. 수학자의 통조림 따는 법은 언제나 그러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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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맑스주의가 속류 또는 부르조아들의 가짜 학문이라 부르며 증오해마지 않는 주류경제학 역시 마찬가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Economics as Religion'이란 제목의 책이 기억난다. 밀튼 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를 공격하는 이책은 주류경제학을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 비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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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학은 학문으로서도 졸업생의 취직에서도 여왕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경제학이 그런 지위를 차지한 이유는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돈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이 학계에서도 여왕인 이유는 방법론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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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 경제학과를 갈까 생각하다 다른 과를 택했었다. 이유는 수학을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자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경제학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 논문을 보면 왠만한 수학지식으로는 이해는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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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제학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학 논문은 다른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썰'로 승부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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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효용이론은 경제학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경제학은 인문학이 꿈에도 바라마지 않는 '과학'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인간사회를 자연세계처럼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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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수학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계효용이론의 인간에 대한 가정 때문이다. 적어도 시장에서는 인간행위가 특정한 형식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손익의 결과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최소한 시장에서 거래할 때의 인간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손익의 결과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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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간은 시장에서 조차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이라도 계산기처럼 손익관계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기서 경제학의 모든 오류가 태어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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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 없지 않은가? 경제학에 대한 다른 사회과학자들의 공격은 항상 그런 전제를 깔고 있었고 경제학 내에서도 행동경제학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접근법이다. 이미 번역된 행동경제학 서적만도 많고 많고 그렇게 쌓인 세월도 많고도 많다. 그러나 언제나 강단의 경제학자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말은 맞겠지 그래서 뭔데(So what?)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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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로 쌓아올린 모델이지 그 모델이 현실과 맞는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자의 통조림 따는 법은 언제나 그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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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수학자들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덤빌 때이다. 그때 세상의 비극은 현실의 지옥이된다. 러시아는 그 지옥을 한 세기에 두번이나 겪어야 했던 억세게 운수 사나운 나라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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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역사의 예외이므로 언제나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혁명에 관한 책은 많고도 많다. 크레인 브린튼의 ‘혁명의 해부’는 그 많은 책 중에 고전으로 꼽힌다. 혁명은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다. 그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부터 혁명을 꿈꾸지는 않는다. 문제해결의 시작은 온건파의 개혁이다. 혁명은 온건파의 개혁에 불만을 품은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난다. 극단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이상에 현실을 두드려 맞추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이 관념에 맞아들어가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현실을 관념에 맞춰 재단해야 하고 혁명은 독재와 테러로 추락한다. 결국 혁명은 반혁명을 낳을 수 밖에 없다. 혁명의 테러는 테르미도르(혁명 이후의 안정)으로 이행한다. 브린튼이 말한 혁명의 예로 러시아 혁명은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20세기를 혁명으로 시작해 혁명으로 끝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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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과 공포정치가 아니더라도 혁명은 언제나 끔찍한 고통과 함께 온다. 혁명이 부정한 체제가 무너지면서 혼란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세기초에 그랬듯 세기말에도 극단주의자들의 관념론은 고통의 무게를 늘리는데 탁월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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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1992년 1월 1일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했다. 러시아인들이 오만한 서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가격통제를 철폐하고 곧이어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을 때 서구는 러시아가 최소한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했음을 인정했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1992년에 쓴 중요한 글에서 ‘몇 년 내에 러시아의 평균생활수준이 대폭 높아질 것’이라고 러시아인들에게 약속했다. 1991년 12월에는 그렇게 말했던 바로 그 경제학자가 러시아식 ‘충격요법’ 계획을 두고 ‘시장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위한 모든 필수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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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일어난 러시아의 혁명은 충격요법이라 알려진 자본주의 혁명이었다. 브린튼의 정의에 따르면 이 혁명은 혁명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체제의 부정, 부정 후의 카오스, 카오스 이후(혁명의 부정으로서의) 안정 등 이 혁명은 브린튼이 말한 혁명의 단계를 모두 밟아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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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것이 의도되지 않은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그 혁명을 기안한 하버드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경제를 개혁한다고 생각했지 혁명을 ‘계획’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시장이란 것을 ‘선포’하는 것만으로 러시아가 미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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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요법의 거대한 실패는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 ‘화폐전쟁’의 저자는 러시아를 재기불능으로 만들려는 로스차일드와 록펠러가의 음모였다고 까지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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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테라피의 쇼크로 러시아 경제가 쇼크사 한 후 어떻게 시장을 ‘선포’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존재하게 되고 하루 아침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바뀔 수 있으며 미국 같은 번영을 누릴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는지 어처구니 없어 할 뿐이다. 그 똑똑한 하버드 교수들이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는지… 음모론이 유력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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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음모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저자는 그 어처구니 없는 일을 설명하는데 음모론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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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은행에서 일했던 저자는 그 혁명모의에 참여했고 그 실패를 경험햇다,. “당시 나와 같은 경제학자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장의 하향식 강요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10여년이나 걸리는 실패를 감수해야 했다. 1990~1995년까지 세계은행과 함께 러시아 문제를 연구해왔던 나 역시 충격요법을 신봉했다. 러시아를 미국과 같은 모습으로 재구성하려는 공식적 개혁 운동이 시작된지 13년 후 환자와 같은 러시아는 아직도 투병 중이다.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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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요법이란 세계은행과 IMF가 말하는 ‘구조조정’이라는 방식을 러시아에 적용한 것이었다. 우리와 같은 충격요법 전문가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모든 개혁은 부분적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한번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모든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정책 결정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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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저자는 세계은행(그리고 IMF와 서방선진국들의 원조기구들)의 접근법은 모두 충격요법의 일종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러시아 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그 충격요법은 실패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지 러시아라는 사이즈 때문에 그 실패가 거대해 보일 뿐 다른 모든 경우에서도 충격요법은 언제나 실패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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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세계가 지난 50년간 대외 원조로 2조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말라리아 치사율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12센트에 불과한 약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가난한 가정에 4달러짜리 모기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500만건의 어린이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3달러를 초보엄마 들에게 지급하지 못하고 잇다, 서구 세계는 2조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아마레치는 여전히 나무를 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선의의 동정심을 가지고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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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되었는가? 문제는 단순했다. 저자의 러시아 경험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나는 모스크바에 몰려들던 다른 많은 서구 경제학자들처럼 러시아의 제도와 역사에 대한 가장 피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저자는 시장이 기능하려면 단지 시장을 선포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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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대한 찬사와 관련된 문제는 바로 시장이 잘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향식 탐색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제도와 규범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들 중 한 가지는 시장 참여자가 보통 ‘사기’로 알려진 ‘기회주의적 행동’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사회적으로 유익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이는 당사자 간의 상호 유익한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규범이 있을 경우에만 사실이 된다. 탐욕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부족은 시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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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시장은 사회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폴라니 식으로 말하자면 사회에 embedding되었기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는 경제는 언제나 시장이 돌아가게 하는 사회가 있다. 러시아에서 충격요법이 실패한 것은 시장을 떠받칠, 다시 말해 시장이 embedding될 사회가 러시아엔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2조 3000억 달러가 낭비된 이유 역시 그 돈이 의도한 ‘계획’이 받아들여질 사회가 정치가 피원조국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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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원조는 “시장이 작동하는 데 필요한 선의의 법률과 훌륭한 제도를 창안하기 위해 빈국들을 대신해 포괄적 개혁을 고안해낼 수는 없다.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규칙들은 사회규범, 관계망, 그리고 가장 큰 보상을 가져다주는 공식법률과 제도에 대한 복잡다단한 상향식 탐색을 반영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로한 규범, 네트웤, 제도는 변화된 환경과 그들 자신의 과거사에 호응하면서 변화해간다. 버크, 포퍼, 하이에크는 이러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너무 복잡한 나머지 모든 규칙을 단번에 바꾸려 했던 하향식 개혁은 상황을 더 좋게 만들기보다 나브게 만들 것이라는 기본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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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혁명은 실패했고 실패할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 실패를 ‘계획가’들의 실패라 말한다. 집을 지으려면 지형과 환경을 살피고 그에 맞춰 땅을 다지고 하나씩 하나씩 벽돌을 쌓아올려야만 한다. 저자가 모든 개혁은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고, 점진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세계은행을 떠나 대학으로 물러난 지금와 생각했을 때 저자는 자신이 ‘계획가’가 아니라 ‘탐색가’였어야 했다고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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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탐색가보다는 계획가가 되려한다. 그것이 거창해보이고 더 멋있어 보이니까. 더군다나 땅을 딛고 손을 더럽히며 티도 안나는 허드렛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이 지어질 땅에는 가보지 않고 표준설계도만 하청업자에게 줘어준 다음 집이 지어지길 바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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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도 경제도 ‘헤쳐나가는 과학(science of muddling through)’이다. 부유한 나라의 경제와 정치는 시행착오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탐색과정 없이 부유한 경제와 민주주의를 만들 설계도 따위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일한 대계획은 대계획을 중지하는 것이다. 유일한 대해답은 대해답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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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계은행에서 러시아의 대실패를 겪고 다른 많은 원조가 실패하는 것을 신물나게 경험한 후에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실패는 훌륭한 교사이다. 똘똘이 스머프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패를 경험한 패자의 자리를 언제나 그런 설계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똘똘이 스머프들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50년동안 실패가 반복된 이유이다. 그러나 저자는 희망을 본다. 원조기구들도 조직 차원의 학습을 해왔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은 공룡도 배우게 한다.&#160;<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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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48/96/cover150/899414218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14218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인문/사회/역사</category><title>도깨비를 찾아서 - [물리학의 최전선 - 지구의 극한으로 떠나는 실험 물리학 여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59582</link><pubDate>Tue, 06 Dec 2011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595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91&TPaperId=525958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2/11/coveroff/89586241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91&TPaperId=52595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리학의 최전선 - 지구의 극한으로 떠나는 실험 물리학 여행</a><br/>아닐 아난타스와미 지음, 김연중 옮김 / 휴먼사이언스 / 2011년 10월<br/></td></tr></table><br/>개인적으로 이책을 논평할 입장은 아니다. 이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책은 물리학의 첨단에 대해서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첨단이라는 것이 물리학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것이니 물리학 전공도 아니고 물리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기야 그것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조지와 그레이시는 기나긴 우주여행을 끝내고 드디어 지구로 귀환하여 오랜만에 휴식을 즐겼다. 이들은 술집에서 만나 우주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지구의 포근함을 한껏 누릴 수 잇었다.조지는 바텐더에세 자신이 늘 마시건 파파야주스를 달라고 하면서 그레이시를 위해 토닉워터를 탄 보드카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런데 조지가 막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이던 순간, 시가가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서도 시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조지를 보고 놀란 그레이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조지가 앉아 있던 의자 뒤편의 카운터에 문제의 시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가가 대체 왜 저지기 있지? 내 뒷머리를 뚫고 지나간 건가? 그러나 뒤통수에 구멍은 없었다. 

조지는 유리잔에 담겨나온 파파야주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떠 있는 얼음조각들이 마구 출렁대면서 서로 정신없이 부딪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레이시의 보드카 잔에 있는 얼음조각들은 더 격렬하게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둘이 잔을 바라보는 사이에 얼음조각 하나가 유리잔의 옆면을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졋다. 유리잔은 멀쩡했다. 

조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우주공간에 너무 오래 있었나봐.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이 보이다니…” 그들은 술집을 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술집에서 나올 때 통과한 문은 사실 진짜 문이 아니라 견고한 벽에 문처럼 그려놓은 그림이었다.”(브라이언 그린) 

이 해괴한 풍경은 양자역학이 연구하는 소립자의 세계를 의인화한 것이다. 에너지이면 물질이기도 한 소립자 세계에선 순간이동을 하거나 벽을 뚫고 지나가는 일은 일상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만은 이렇게 말햇다.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12명뿐이라는 기사가 뉴스로 보도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믿는다.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을 세상에 발표하기 전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단 한 명뿐어었던 시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논문이 공개되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12명은 분명 과소평가된 수치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나는 현재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잇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자신 잇게 말할 수 있다.” 

파인만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당연함은 이책이 소개하는 세계에선 더하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물리학의 표준이 된 이후 물리학의 과제는 두 표준이론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까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책이 다루는 것은 그 두 이론의 통합이란 물리학의 화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양자역학의 해괴한 세계가 우주론의 규모로 확대된 세계이다. 

초끈이론은 그 해괴한 우주를 설명하는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이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이 불평하듯이 초끈이론은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고 있다. 초끈이론은 우주의 통합이론이 되려는 야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끈 이론이 원하던 대단원은 그 기미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부 물리학자들의 경우 점점 우주의 모든 것을 몇 개의 방정식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있다. 끈 이론 자체는 실험적으로 증명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진지하게 끈 이론의 효과를 고려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결심을 한 것은 학회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이런 말을 했을 때였다.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현재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끈 이론입니다. 끈 이론으로 관측 가능한 과학을 만들 수 있을까요? 오직 실험만이 이 막다른 골목을 뚫고 나갈 것입니다.”

현재 물리학의 현실을 저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현재 무제한의 자유가 허락된 상태다. 아이디어는 넘쳐나고 어림짐작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다.” 물리학이 활력에 넘치던 시절, 멀리 갈 것도 없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태어난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 “물리학의 위대한 발전은 이론이 실험과 보조를 맞췄을 때 이뤄졌다. 때로 이론이 먼저 나오기도 했고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했다. 실험 물리학자들과 이론 물리학자들은 19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양자역학을 만들어 가면서 서로 경쟁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이론과 실험이 공동연구를 펼쳤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두 분야 모두에 풍요로운 때였다. 그러나 활기찼던 이 상호작용은 현재 고착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론과 실험이 따로 노는 현재에서 저자가 이책에서 물으려는 것은 이것이다. “우주론과 입자 물리학의 다음 세대 실험이 이론을 현실에 정박시킬 수 있을까? 이책은 그 답을 얻기 위한 도전이다.” 

저자는 그 답을 얻기 위해 실험물리학의 최전선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다. 이책은 저자가 지구의 북극에서 남극까지 찾아다니며 확인한 실험물리학의 현재를 기록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책의 저자가 찾아다니며 기록한 것은 현재 물리학에서 해결하려는 문제들을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저자가 어떤 답을 찾으려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기에 이책은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단순한 기행문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이책은 남극점의 절대적 고요와 바이칼호의 겨울, 폐광의 절대적 어두움, 사막의 적막함 같은 장소들에 관한 훌륭한 기행문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책이 전제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책을 따라 읽는 것 자체가 힘들다. 최소한 앞에서 인용한 브라이언 그린의 책 두권 정도는 읽었다면 어느 정도 이책을 따라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가 던지는 그리고 저자가 찾아가는 장소에서 만나는 실험물리학자들이 왜 그런 오지의 난관을 이기고 그런 실험을 하려는지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책은 권할만한 책은 아니다.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2/11/cover150/895862419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4191</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경제경영</category><title>잃어버릴 10년 - [부의 정석 - 한국인의 6가지 걱정에 답한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12677</link><pubDate>Tue, 15 Nov 2011 08: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126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322406&TPaperId=521267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56/56/coveroff/899332240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322406&TPaperId=52126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의 정석 - 한국인의 6가지 걱정에 답한다</a><br/>최윤식.정우석 지음 / 지식노마드 / 2011년 11월<br/></td></tr></table><br/>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리 덴트의 책은 한 권쯤 읽어봤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앗다 해도 많은 재테크책들이 그의 이론을 원용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그의 이론은 들어봤다고 생각하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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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덴트가 유명해진 것은 일본의 거품과 이번에 미국의 버블이 터지는 시점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예측에 사용한 논리는 간단했다. 경제는 인구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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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덴트의 이론은 물론 그보다는 복잡하다. 그러나 간단하게 그의 이론을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일본과 미국에서 거품이 터진 시점은 정확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한 때였다. 주택과 주식과 같은 자산의 최대 수요층이 퇴장하면서 거품이 터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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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마찬가지 논리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에도 베이비붐 세대가 있고 그 세대의 은퇴는 이미 1,2년전부터 시작되었다. 당연히 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요즘 부동산시장이 붕괴한 것은 보통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금융사정의 직격탄으로 설명하지만 저자는 그런 논리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베이붐세대의 은퇴와 함께 붕괴만이 남았다고 저자는 본다. 지금 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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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동산의 붕괴 다음이다. 앞으로 거품이 터지면 부동산의 가치는 2008년 정점에서 40~60% 하락할 것으로 저자는 본다. 알다시피 한국인의 자산구성은 부동산이 압도적이다. 그 자산이 반토막이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제의 붕괴가 시작된다. <br />
<br />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추가적인 소비여력이 상실되고 동시에 금융권의 자산상각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주택소유자들의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소비를 급격하게 위축시킨다. 그러면 내수경기가 침체하고 경기가 침체하면 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매출이 줄어 소득이 감소하게 되고 소득의 감소는 가계빚의 증가와 부실을 가속하하고 이는 다시 경제의 장기적 침체와 기업의 투자부진, 높은 실업률을 만들어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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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터진다면 이런 연쇄반응이 보편적이다. 문제는 그것이 (일본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 일본식으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거품붕괴와 함께 한계상황에 있는 한국경제의 시스템이 붕괴하기 때문이라 저자는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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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한국도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시기는 (노동)인구팽창의 시기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베이붐세대가 노동시장에 뛰어든 시기와 고도성장기는 일치했다. 경제성장은 자본량*노동량*생산성으로 계산된다. 세 변수 중 노동량이 증가했으니 그 증가분만큼 경제성장이 폭증한 것은 당연하다. 경제학에선 이를 인구배당효과라 한다. 문제는 이제 그 노동량이 줄어들면 어떻게 되는가이다. 세 변수 중 나머지가 동일하고 노동량만 변한다면 경제는 성장이 아니라 축소된다. 해리 덴트의 논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미래가 그렇다고 말한다. 거품 붕괴는 단지 경제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일뿐이며 그 근본 메커니즘은 경제의 붕괴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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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붕괴를 막을 수는 없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기를 놓쳤다고 저자는 말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세 변수의 나머지를 조정하면 된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나머지 두 변수가 노동의 감소를 완전히 상쇄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어느 정도 완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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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같은 인구학적 변화는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다른 말로 하면 저출산고령화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당장의 단기적 결과에만 시스템을 맞추느라 그런 문제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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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출산이 나타나는가? 애를 낳기 힘들고 키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왜 힘든가? 부부가 아둥바둥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계를 유지하기 힘든 소득분배 때문이다. 예전엔 한 사람만 벌어도 되던 구조에서 이젠 둘이 벌어야 겨우 적자를 면할까 말까 하는 소득분배에서 하나 낳는 것도 장하다. 더군다나 청년층의 실질 실업률이 20%이고 실업이 아니라도 상당수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가 힘들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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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분배의 왜곡은 저출산이란 문제만 낳은 것이 아니라 소비시장의 붕괴를 가져온다. 지금까지는 미국처럼 개인의 빚을 늘려주는 식으로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가려왔다. “2008년 전까지 약 10년 동안은 부동산 버블 덕분에 소비를 늘린 40~50대, 적게 벌지만 소비중독에 걸린 20대, 빚을 내면서까지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을 유지해왔던 30대로 인해 소비시장이 버텨왔다.” 그러나 거품붕괴와 함께 이번에 미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개인부채라는 폭탄이 터질 것이며 시장의 붕괴로, 경제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 저자는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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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를 2만달러까지 끌고 왔던 IT, 전기전자,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건설 등 기존의 산업들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글로벌시장에서 넛크래커 현상에 빠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부의 불균형분배가 가속화되면서 소비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불어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영시스템 때문에 그나마 벌어들인 순이익은 근로자의 임금을 올리거나 추가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활용하는 대신 고스란히 주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결국 기업의 매출이 늘어다로 근로자들이나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는 셈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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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경제의 불균형이 지나치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한국은 “대기업이 전체 경제의 60~70%를 차지한다.” 이런 불균형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비중은 높은데 “고용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18.%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80%를 다른데서 메워줘야 한다. “대기업의 일자리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져 전체의 60~70% 정도 되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지난 50녀녀간 대기업 위주로 흘러오면서 기업의 건전한 생태계가 망가져 버려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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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붕괴와 함께 일어날 시장붕괴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며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붕괴는 경제붕괴로 이어질 것이며 거품붕괴 이후 침체는 일본처럼 장기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56/56/cover150/8993322406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322406</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수신/심리</category><title>Social Jetlag -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12663</link><pubDate>Tue, 15 Nov 2011 0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126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55742&TPaperId=521266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48/33/coveroff/89923557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55742&TPaperId=52126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a><br/>틸 뢰네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0월<br/></td></tr></table><br/>이책의 성격은 입문서이다. 구체적으로는 시계생물학에 관한 입문서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 이책이 무슨 내용을 다루는지 짐작할 사람은 많지 않다. 시계생물학이란 말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계생물학이란 말 대신 바이오리듬이라 한다면 쉽게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br />
<br />
지금이야 바이오리듬이라면 쉽게 누구나 아는 말이 되었지만 그 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 말을 다루는 분야인 시계생물학의 역사 자체가 짧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2차대전 직후가 이 분야의 탄생시점이었다. 그러다보니 서점을 뒤져보면 수면, 바이오리듬에 대한 책은 꽤 있지만 학문적인 기초개념으로서 바이오리듬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책은 드물다. 역사도 짧고 그 분야의 학자도 적은 마이너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책은 그 드문 책 중의 하나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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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면 아마 지레 겁이 날지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면 생물학, 과학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책은 과학책이다. 그러나 겁낼 필요는 없다. 학부생을 위한 교과서나 전문가 동료들을 위해 쓴 책이 아니라 교양서적이라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br />
<br />
이책이 다루는 내용은 사실 우리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점심 후 노곤할 때마다 누구나 경험하는 것들이다. 이책을 읽고 나면 왜 누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누구는 반대인가, 왜 밤을 새면 피곤이 몇배가 되는가, 규칙적으로 자고 식사하는 것이 왜 건강에 (최소한 컨디션에) 좋은가 같은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경험적으로 그렇더라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사람이 어떻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답을 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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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성 역시 교과서처럼 기본개념을 설명하고 학설을 소개하는 식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런 실생활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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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가장 일찍 일어나는 직업군을 들자면 학생과 교사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시간표가 바람직한가? 저자는 아니라 말한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에게 맞지 않는 시간표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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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청소년기에는 올빼미형이 대다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뭔가 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그 나이 때이다. 학교의 시간표는 올빼미들에게 종달새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란 말이다. 저자는 오전수업은 시간낭비라 말한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시간에 억지로 책상에 붙들어 놔봐야 졸기만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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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학교시간표처럼 생물학적 인간의 리듬과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강요된 리듬이 차이가 날 때 일어나는 문제를 사회적 시차증이라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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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시차증의 다른 예는 섬머타임이다. 섬머타임은 강제로 생물학적 리듬을 교란하는 것으로 제트기를 타고 다른 시간대로 간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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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언제 자고 언제 먹을 것인가 언제 쉴 것인가 최상의 컨디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생활에서 누구나 결정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책은 그런 결정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기본원칙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드물면서 재미있고 유용한 책이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48/33/cover150/899235574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355742</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