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Cura님의 서재 (Cura 서재) &gt; 예술/문학/여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category/2618860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7 May 2012 14:26:56 +0900</lastBuildDate><image><title>Cura</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category/2618860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Cura</description></image><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재즈는 살아있다 - [재즈문화사]</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5456</link><pubDate>Tue, 13 Dec 2011 1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75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TPaperId=527545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77/48/coveroff/89921146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TPaperId=5275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즈문화사</a><br/>이원희 지음 / 말글빛냄 / 2010년 09월<br/></td></tr></table><br/>재즈평론가도 그렇다고 음대를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일개 감상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사람이 쓴 재즈책을 보게 된 이유는 그런 저자가 썼음에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씩’이나 되었다는 의외의 결과때문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xml:namespace prefix = o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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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어렵다. 적당히 멜로디라인만 따라갈 수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팝과 다르기 때문이다. 클래식만 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무슨 코드인지 알아듣고 복잡하게 변주된 모티브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며 조바꿈이라든지 변박자등을 알아챌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보다 후에 성장한 재즈는 그보다 훠~~얼씬 복잡하다. 하다못해 기타라도 칠줄 알아야,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의 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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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배경과는 동떨어진 저자가 쓴 이책이 정부의 추천씩이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책이 자신의 소개대로 감상자로서의 의문에 답하는 저자 자신의 탐색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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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에 익숙해서인지 군데군데 대책없이 비워놓은 듯한 사운드에 당혹했다. 동양화도 아니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듯했다. 그랬던 재즈가 조선시대 색시처럼 내게 다가왔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조용히 흐르던 음이 부드럽게 내 마음을 녹였다.” 그러나 재즈는 다가가면 갈수록 얼굴을 바꿔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음으로 가득 찬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재즈의 속도에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나는 말 많고 독똑한 여자의 또렷한 대응에 쉽게 토라져버리는 속 좁은 조선시대 남자였다. 재즈는 현학적 취향을 지닌 학구파 여성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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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는 오기로 버틴다. 열번찍으면 넘어간다. 그렇게 버틴 저자는 또 얼굴을 바꿔댄 재즈를 만난다. “이 음악에 과연 여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무리 양보해도 선이 굵고 거침없었다. 그건 남성의 소리였다. 당시까지 내게 재즈는 록과 달랐다. 그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여성일 뿐이었는데 학구파 신여성으로 돌변하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의 남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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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결론은 그 모두이다. 어떤 이름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재즈는 정의하려 덤비면 그 정의를 하는 순간 바뀌어 버리는 살아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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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재즈 입문서를 보면 스윙을 느낄 수 없으면 재즈가 아니라 한다. 스윙의 정의는 복잡하다. 들으면 안다, 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불가능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들으면 손을 까딱이고 몸을 흔들고 싶은 느낌이 있다면 스윙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예는 Emily-Claire Barlow의 Tribute 앨범 1번 트랙이다 스윙 외에도 고전적인 재즈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좋은 보컬 재즈곡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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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윙을 느낌으로가 아니라 말로 정의하자면 난감해진다. 권위있는 책인 “재즈북’에서조차 스윙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음악가와 비평가 혹은 음악학자들이 정의한 스윙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그 정의의 부족한 면을 지적할 뿐이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스윙에 대해서조차 일관되게 규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은 블루노트, 엇박자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의 정의조차 애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볼 때마다 재즈의 얼굴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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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로 연주되지 않은 재즈는 재즈라 말할 수 없다. 이토록 중요한 블루노트는 유럽음악의 기준으로 반음화된 3도와 7도를 말한다.” 문제는 이 반음이 반 정도이지 딱 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음악에서 보자면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연주해야만 블루노트는 제대로 연주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재즈의 본질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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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이런 모호함이 생겼는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접근한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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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흑인음악을 서양음악체계에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은 가해자의 음계를 바탕에 두고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해야 햇다. 흑인노예들이 그들의 5음계를 서양의 7음계에 적용해야 했을 때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음 내려야 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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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맞춰졌기에 블루노트는 엄밀할 수 없었다. 그 부정확은 미학의 지위로 올려진다. 악보로 표현할 수 없기에 “연주자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블루노트 감각을 익혀야 한다. 그 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의 재즈를 표현할 수 없다. 이런 미묘함을 재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훌륭한 재즈 연주가는 블루노트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가면 약간씩 빗나가는 아슬아슬한 연출을 통해 음악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재즈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까다로우며 훌륭한 연주다. 이를 유럽음악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가급적 정확함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부정확해질 뿐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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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의 특징처럼 저자는 재즈를 모순의 미학이란 말로 정리한다. 블루노트가 태어난 이유처럼 재즈는 흑인노예와 백인이 만났을 때의 긴장감에서 태어났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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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음악에 억지로 끼워 맞춰 만들어진 재즈는 서양음악도 아프리카 음악도 아닌 미국의, 흑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미학은 음악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정의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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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흑인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 끼어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햇다. 빌리 홀리데이는 ‘44년의 짧은 생애동안 굶주림, 노동, 성폭행, 매춘, 인종차별, 수감생활, 이혼 등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블루스 여제 베시 스미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흑인이라는 이유로 앰불런스를 얻어타지 못해 죽어야만 했던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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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노예의 후손이 사는 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사회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춰가야 했던 그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죽어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게 이상적인 미래는 멀기만 했고 “당장 살아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백인의 견고한 사회에서 버텨야 햇다. 타협이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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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노트란 말은 블루스의 음계란 뜻이었다. 블루스를 정의하는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이다. ‘블루스는 흑인노예들과 그 후손들의 한을 잘 담아낸 음악으로 그들의 아리랑이었다. 지금도 블루스의 음인 블루노트는 재즈의 핵심음적이며 블루스 정서는 재즈인들이 체득해야 할 중요한 감성이다. 재즈 3대 디바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사라 본 중 빌리 홀리데이느,ㄴ 기술적인 면에서 자신을 강렬히 드러낼 장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캣의 현란함을 자랑하는 엘라 피츠제럴드나 폭넓은 음역의 사라 본보다 높은 위상을 지닌다. 그것은 독보적이라 할 블루스 감성 때문이다. 그녀는 블루스 특유의 끈덕지고 미묘한 느낌을 곡 전면에 갈면서 재즈의 묘미를 연출한다. 마치 자신의 슬픔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노래했다. 그 노래는 묘한 흥과 한이 있는 마성을 띠었다. 빨려든다고 해야 할까. 블루스 감성은 빌리에게나 다른 미국흑인들에게나 자연스럽게 체득된 삶 자체였다.” (블루스 감성의 요즘 예로는 Otis Taylor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야도 치에가 추천할만 하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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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예의 음악은 주인의 음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재즈의 긴장감은 아프리카적인 감성이 유럽적 이성을 만나면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재즈에는 두 문화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묘한 긴장과 생동감이 살아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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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일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에게 음악가는 ‘성공’이었다. 1급 운동선수에 흑인이 많은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흑인이 특별히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인일 뿐이었던 흑인에게 음악가는 출세였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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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흑인인 재즈인들도 사회의 주변인어야 했다. 흑인이 예술을 한다는 자체가 저항일 수 밖에 없었다. 초기재즈인들은 주로 백인전용 술집에서 연주를 했지만 늘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다. 백인이 사용하는 술잔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빌리 홀리데이도 인기에 걸맞지 않은 부당한 대우에 동료와 고용주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카운트 베시 악단과 같은 거물급 집단조차 12장의 음반에 대해 그들이 받은 돈은 선불금 750달러가 전부였으며 그돈조차 밴드 멤버 26명이 나누어 가져야 했다. 백인악단을 이처럼 부당하게 대우하는게 가능했을까. 재즈의 씨앗은 인종 간의 긴장을 에너지로 삼아 발아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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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음악인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더해졌다. “원래 재즈는 흑인 빈민층을 대변하는 가난한 음악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초기재즈는 길거리 음악으로 대중과 함께 진흙탕을 뒹굴었다. 비록 흥행을 위해 춤곡으로 치장되어 화려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고 이론과 지성까지 버무러져 고급화되었지만 재즈의 본질은 그 ‘삼류성’에 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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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창가의 음악이었던 재즈가 시카고와 뉴욕으로 흘러갔을 때 재즈는 술집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댄스음악이 되었다. 20년대 금주법의 시대에 ‘재즈는 손님들의 여흥을 돋우는 춤곡에 불과했다ㅓ. 또한 불법인 주류업의 호객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범죄에 이용된 오락거리였다. 술집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편성 악단을 고용했고 재즈 음악가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시대는 재즈에 여흥의 역할을 주엇고 재즈 음악가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3류성이 재즈의 긴장을 만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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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재즈가 대성공을 하면서 대편성이 재즈가 갈 방향인 것처럼 보였다. 너나할 것없이 현란하고 커다란 음을 내기 위해 단원을 늘렸다. 큰 것이 아름다운 시대였다. 스윙에는 빅밴드가 제격이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음의 물결을 타며 사람들은 춤의 서핑을 즐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강렬한 춤곡이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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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음악가에겐 불편했다. 주류백인사회에선 3류 딴따라일 뿐이지만 흑인들에게 허용된 몇안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그런 3류성은 참을 수 없었다.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런 분위기는 개성적이고 복잡한 연주를 하고 싶은 바람과 상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음악가에게 그것은 족쇄와도 같은 작용을 했다. 사실 젊은 스윙재즈 음악가들 중ㅇ 일부는 관객의 춤에 반주를 넣는다는 자체에 불만을 품엇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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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의 전시상황은 유흥가의 쇠퇴를 불렀고 스윙재즈도 쇠퇴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밥이 탄생한다. “비밥음악가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춤추지 못하는 음악을 연주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완벽히 성공했다. 그들은 스윙재즈 악단에서 연주하면서 당시의 음악유행을 좇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음악도들 중 일부가 당대음악의 문제점에 통감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밥이 탄생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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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재즈는 ‘까다로운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는’ 음악처럼 들린다. &nbsp;:당시의 비밥은 마치 요즘 스래시메탈이나 데스메탈 같은 과격한 음악이 받아야 할 평가를 받았다. 물론 비밥의 소리는 메탈의 금속성 굉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무수히 제시되는 현란한 비트와 즉흥선율의 음표들을 잘게 부순 후 관객의 귀를 향해 ‘밥풀 묻은 이쑤시개’를 날리듯 ‘음표’를 소아댔다. 게다가 비밥은 주제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즉흥연주를 선보인 최초의 장르였다. 심한 경우 원곡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대중에게 폭력이었다. ‘삐리리’ 사운드로 들리는 비밥의 불친절한 선율은 사람들의 귀를 고문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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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재즈는 딴따라가 아닌 ‘예술’의 길을 간다. “소수의 음악이 될지언정 소비되지 않겠다는 비밥 혁신가들의 열망이 비밥을 전위음악으로 이끌었다. 비밥은 자의식 과잉의 음악이었다. 비밥의 혁신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고 그에 걸맞은 표현양식을 고민했다. 예술가로 대접받고 싶던 피 끊는 젊은 혁신가들을 만족하는데 스윙재즈는 부족햇다. 비밥을 연주하는 연주하는 흑인이라면 누구나 천대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이려는 욕구를 지녔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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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자체가 모순의 음악이지만 특히 비밥은 재즈의 중요한 미학이 확립되어 모순이 극대화되엇다. 또한 그것은 모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온전히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우선 음악외적으로 그것은 흑인으로서 백인과 동화되기를 바라는 타협적인 자세와 흑인이고자 하는 열망이 상존하는 장르이며 음악내적으로 유럽고전음악에 크게 빚을 지면서도 흑인감각을 극대화한 음악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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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경박하게 인식되는 춤곡을 지양하면서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없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 연주는 분명 흑인적이엇다ㅓ. 그들은 흑인감각을 극대화하면서도 유럽적인 의미의 예술가를 꿈구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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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내적으로도 비밥은 모순의 음악이다. 화성적인 면을 살필 때 비밥은 분명 흑인의 음악이 아니다. 비밥의 화성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다. 비밥 음악가들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인 화성에 깊이 천착했다. 찰리 파커 등은 늘 유럽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화성을 세밀히 발전시키는 단계 후 그것에서 탈피하는 순으로 재즈화성학은 변화했다. 그리고 재즈화성의 무게중심이 화음에서 선법(모드)과 자유조성으로 얾겨가면서 재즈화성학은 더욱 발전했다. 재즈음악가들은 단 한 세기 동안 수세기에 걸쳐 화성개념을 발전시킨 유럽음악의 성과를 흡수했다. 그들이 당대음악의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음악을 철저히 고민하지 않았다면 재즈는 그저 흑인만의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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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자는 비밥이 쿨, 하드밥, 소울재즈로 발전하고 그 논리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돌파구를 찾는 노력으로 프리재즈와 모달재즈가 발전하고 프리재즈가 다시 극한에 도달해 자멸한 다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을 나머지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인 입문서에 나오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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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특징은 위에서 본 것처럼 재즈의 발전사를 음악내적논리에서 파악하면서 그 논리를 자극한 사회사적 맥락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다른 재즈책들과는 구분된다. 이책에서 스윙이 무엇이고 블루노트가 무엇이고 등 기초적인 입문내용을 기대한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재즈가 왜 그렇게 발전했는가, 살아있는 재즈로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정부에서 추천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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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77/48/cover150/899211460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0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종이로 즐기는 미술관 - [아트, 도쿄 - 책으로 떠나는 도쿄 미술관 기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4435</link><pubDate>Thu, 08 Dec 2011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2644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TPaperId=526443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380/64/coveroff/89560555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TPaperId=52644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트, 도쿄 - 책으로 떠나는 도쿄 미술관 기행</a><br/>박현정.최재혁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1월<br/></td></tr></table><br/>이책의 부제가 말하듯 이책의 주인공은 도쿄의 미술관들이다. 이책의 목적은 도쿄여행을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으로 잡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내용은 도쿄에 볼만한 미술관이 어떤 곳이고 그 미술관에서 볼 것은 무엇인가로 채워진다. ‘아트 도쿄’란 제목만 보고 이책이 일본미술의 현황을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하면 잘못이란 말이다.<!--?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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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솔직히 아무리 가까운 일본이라고 하지만 해외로 미술관 여행을 올 수 있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결국 이책은 많은 여행서들이 그렇듯이 “좀처럼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한 여행서가 되어버렸’다. 책 한권으로 여행을 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상여행서’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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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종이뭉치가 실제 여행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가상여행서’란 말이 어울리게 잘 만들어졌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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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미술관을 간다는 것은 단순히 미술품을 보러 가는 것만 말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미술품을 모셔놓은 공간 자체가 포함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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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오페라 공연을 보러간다고 하자. 평소에는 입지 않던 드레스코드를 따라 ‘특별’하게 차려입는다. 집안에서 음반으로 또는 DVD 영상으로 오페라를 즐길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공연장에 간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복장은 그 다름이 요구하는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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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일상과는 다른 무언가이다. 그 다름을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도 포함된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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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술작품을 본다는 자체,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태도를 전제한다. 화장실 변기가 미술관 전시대에 놓이면 그것은 소변을 보는 용도가 아닌 감상을 위한 용도로 바뀐다. 같은 변기를 다른 태도로 대하게 만드는 것은 미술관이란 공간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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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 그런 힘을 갖는 것은 물론 미술관이란 제도의 힘이다. 그러나 그 제도가 힘을 갖게 하는 것은 미술관이란 물리적 공간의 힘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미술관들 중 도쿄국립박물관의 호류지 보물관은 그 좋은 예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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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야에 들어오면 압도적인 이미지가 이전의 기억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기묘한 힘을 가진 건물, 그 앞에 서면 재부팅되듯 잠시 움직임을 멈추게 될 정도다. 수많은 팬을 거느린 호류지 박물관은 결코 편안하다거나 안락함을 주는 건물은 아니다. 단정하다 못해 질서로 꽉 찬 공간은 오히려 끊임없이 미묘한 긴장감 속에 머무르게 한다. 건물 앞에는 연못이 지면과 같은 높이로 펼쳐져 있는데 너무나 반듯하고 평평해서 작은 바람의 움직임에도 파문이 도드라진다. 조그만 원에서 시작해 동심원을 그리며 커다랗게 퍼지는 물결은 보는 사람도 호흡을 가다듬게 만든다. 그렇게 숨을 맞추다보면 미약한 바람분 아니라 기의 움직임에도 반응하게 되는지 온몸의 신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를 잡아내는 안테나처럼 펼쳐진다. 그 순간은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가 이 건물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지금의 도쿄에서 귀중한 가치가 되어버린 정숙, 질서, 품격’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이 아니라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종교적인 건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은 건축가가 이곳에 소장될 보물 300여점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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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이 변기에 ‘샘’이란 이름을 붙여 고가로 팔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미술관이란 공간이 갖는 힘 덕분이며 오늘날로 치면 찌라시에 불과한 우끼요에가 대접받는 예술이 되는 것도 그런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이 구현하는 제도의 힘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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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일본보다 서양이 먼저였다. 우키요에가 그들 손에 들어간 것은 수출품인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우키요에에 싸서 보내졌기 때문이다. 포장지로 쓰였다는데서 알 수 있지만 에도의 우키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품이라는 관념과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비교하자면 오히려 서점 한쪽에 한가득 쌓여있는 패션잡지 속 모델의 사진이나 개봉영화 광고전단지가 그들과 더 가깝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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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우끼요에의 내용은 당시의 대중문화의 중심었던 유곽과 가부키 극장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소비자들이 그 장소에서 원하는 것이 그렇듯 우키요에의 내용은 현실과는 멀었다. “우키요의 원래 의미가 근심어린 세상(憂世)였다는 사실은 의외다. 실제 세계를 그렸던 우키요에의 매력이 현실을 긍정하는 힘이 아니라 현실을 살짝 부정해버리는 힘에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어차피 힘든 세상, 즐겁게 살아보지 않겠냐는 의미로 같은 발음의 우키요(浮世)로 바뀐 것이라 한다. 한지 앞을 볼 수 없는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약간 들뜬 채로 즐겨보자는 것이” 우끼요에의 미학이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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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불상이 실제 인간이 아닌 관상학적으로 이상화된 비현실의 인간을 표현하듯 우끼요에의 미녀는 현실의 미녀와는 상관이 없는 이상화된 미녀이며 그녀들은 쌍둥이 같이 동일한 얼굴로 그려졌다. 그 미녀들을 만나는 장소, 유곽 “요시와라는 서로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거짓이 진실인 세계, 현실의 계급관념이 힘을 잃는 가상세계였다. 돈으로 사랑을 사는 곳임에는 틀림없지만 어찌보면 멋과 풍류가 더 중요했던 세상, 거짓을 진실인 척 안아주는 건 가상세계 요시와라를 즐기는 약속이었다. 자신의 품에 안은 유녀가 상상 속의 이상향이었다면 그것은 우키요에를 통해 만나는 유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으리라. 어디까지나 상상이 현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라면 그리고 자신이 환상을 쥐락펴락하는 주인이라면 그림 속 미인들의 얼굴이 같다 한들 별 문제가 없었으리라.”<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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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파는, 환상을 보여주는 광고가, 패션사진이 예술이라 말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환상을 현실과 아무 상관없게 만들어주엇을 때 ‘찌라시’-였던 우키요에는 미술관으로 모셔질 수 있었다. 예술은 현실과 무관한 존재일 때 예술일 수 있으니까.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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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미술의 고민이다. 골치만 아픈 무용지물. 현대미술에 대한 통념이다. 그런거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고 그런거 없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한 것도 아니다. 사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도 없는 그런 골치덩어리 없이도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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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타로는 미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사람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자란 내 또래의 일본세대들은 오카모토 타로를 ‘좀 이상한 아저씨’로 기억한다. CF에서 ‘예술은 폭발이다;를 외치며 범종을 울려대거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뭐냐 이건’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일명 ‘노려보는 눈알의 폭발아저씨’. 그런데 나중에 커서 알고보니 위대한 사람이었다고 반성조로 고백하는 타로의 팬들도 적이지 않은데 이해가 간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 것인지 잔뜩 화가 난 표정의 그의 사진을 처음 대했을 때는 나 역시 좀 불편했다. ‘뭐 어쩌라고.’”<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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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의 예술을 저자들은 분노의 미학으로 정리한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태양의 탑’을 만든 것으로 기억되는 타로는 ‘당시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만 신경쓰는 일본인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과학의 발달로 삶은 풍족해지지만 질서와 규율에 묶여 빈곤한 일상을 보내는 왜소해진 현대인을 봤다. 고대에 만들어진 조몬 토기로부터 약동과 활력을 발견했던 타로는 만박의 테마인 ‘인류의 진보와 조화’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나섰다. ‘뭐가 진보냐, 조몬 토기의 뛰어남을 보라. 지금의 당신들이 만들 수 있겠느냐’라고 도밯ㄹ적으로 질묺파고 자신을 죽이고 서로 친해지는 조화는 비루할 뿐이라고 비판했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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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예술은 ‘투명한 폭발, 분노’였다. “타로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 자체, 그 어마어마한생명력이었다. 그 생명력에 맞지 않는 것에는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타협하지 마라, 불협화음은 클수록 좋다. 타협하지 말고 화낼 것에는 투명한 화를 내라.’ 화를 내라는 그의 주문은 그의 예술 자체였다. 그 분노는, 비타협은 그리고 폭발로서 예술은 “인산이 자신을 넘어서 세계로 우주로 무한하게 펼쳐나가기 위한 의지와 감정의 폭발이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투명하게 폭발해 무한대의 저편, 우주로 퍼져나가는 것, 타로의 대상은 언제나 우주였다.” 그에게 예술은 축제였다. 생명력을 옭아매는 “규제와 절도, 합리주의에 묶인 일상을 뛰어넘어 환상을 체험할 수 있는 열광의 도가니.”<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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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에 자리잡은 그의 기념관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부터 남다르다. ‘그들에게는 어느 미술관에서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심스러움이나 작품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없다.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줄을 맞춰 움직이지도 소곤거리지도 않는다. 대신 그 곳에서 웃고 떠든다. 마음에 드는 조각을 만져보고 그 위에 앉아보고 옆 관람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태양의 탑’으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은 활기, 활력을 깨우고 싶었다는 타로의 바람대로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사진촬영가능’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는 별난 미술관, 아니 미술관이라기보다는 흥겨운 유원지에서 보내는 화사한 비일상에 가깝다. 자신의 작품을 유리 케이스에 넣겠다는 말에 화를 내며 작품이 찢어지면 자신의 손으로 다시 이어주겠다던, 예술은 대중의 것이니 만지고 싶어하면 만지게 하라고 했던 타로의 말은 이곳 관람객들에게 여전히 큰 힘이다. 예술은 열도 빛도 무한적으로 주는 태양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평생 작품을 팔기 거부했던 오카모토 타로를 기념하는 이곳은 1970년 만박 이후에도 여전히 축제중이다.”<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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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o:p></o: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380/64/cover150/895605554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55548</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이야기꾼 스님 - [스님의 흰죽 가게 - 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스제천 스님의 유쾌발랄한 영혼 치유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021108</link><pubDate>Tue, 23 Aug 2011 21: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0211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89116&TPaperId=502110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79/94/coveroff/89560891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89116&TPaperId=50211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님의 흰죽 가게 - 중국 최고의 이야기꾼 스제천 스님의 유쾌발랄한 영혼 치유서</a><br/>스제천 지음, 이경민 옮김 / 모벤스 / 2011년 08월<br/></td></tr></table><br/>이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스님이 썼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야기들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아마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을까 기대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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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서화를 기리는 글을 贊이라 하는데 일본문화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다음 일화도 그와 관련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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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한 폭의 그림을 가지고 다쿠앙 소호 선사를 찾아왔다. 두 눈이 번쩍 뜨일 아리따운 한 창녀가 그려져 있었다. 젊은이는 다쿠앙 선사에게 그 그림에 대한 찬을 부탁햇다. 화려하고 요염한 여인의 그림으로 선사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이미 불이 꺼진 재인지 아니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인지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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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앙 선사는 그림을 보고 “야 이거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로군. 이런 미인과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전혀 예기치 못한 말을 했다. 그리고 찬을 술술 써 내려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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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진리를 팔고 <br />
조사는 부처를 팔고 <br />
말세의 중들은 조사를 팔아 사는데 <br />
그대는 다섯 자의 몸을 팔아 <br />
중생의 번뇌를 편안케 하는구나 <br />
색즉시공 공즉시색. <br />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br />
달은 밤마다 물 위를 지나가건만 <br />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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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 말도 못한 채 자세를 바르게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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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승들의 일화를 모든 ‘다섯 줌의 쌀’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달리 별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짧은 이야기에서 그 선사의 인간적 깊이를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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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한 선종이 자리잡았던 동북아엔 이런 이야기들이 특히 많다. 그러면 이책도 그런가? 그렇지는 않다. 이책은 스님이 썼다는 것 이외엔 불교와 딱히 상관이 없다. 제목을 가리고 책의 내용만 골라 보여준다면 그냥 우화집이라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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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한 왕이 있었다. 그는 궁 밖을 나가 미행하기를 좋아해 정기적으로 백성이 사는 성에 가 민심을 듣곤 했다. 그날도 왕은 거리를 돌아다니다 눈에 띈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왕은 가게 문간에 앉아 제화공이 신발을 수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두 마디 주고받던 왕이 뜬금없이 물었다. ‘주인장 이 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겠소?’ 제화공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국왕 같습니다. 부족할 것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으니까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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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 생활이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왕은 제화공을 근처 술집으로 데리고 갔다. 제화공은 권하는 술을 한 잔 두잔 마시다 완전히 취하고 말앗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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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 지난 뒤 제화공이 눈을 뜨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크고 널찍한 방에는 화려하고 고운 비단 주렴과 귀한 등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제화공은 이게 무슨일인가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수많은 궁녀들이 자신을 에워싸며 외쳤다. ‘대왕마마, 어제는 몹시 취하셨습니다.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처리하실 일이 산더미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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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상했다. ‘내가 환생이라도 한건가?’ 거울을 찾았다. 매일 보던 그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했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이 재미있기도 햇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왕이라니 좀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 왕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햇다. 며칠은 정말 즐거웠다. 먹어보지도 못한 맛있고 귀한 음식을 먹을 수있고 보지도 못한 것을 가지고 놀 수 잇었다. 아리따운 궁녀들은 보고만 있기 아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슬슬 지겨워졌다. 매일 아침 조회를 하는 것도 괴로웠다. 듣는 것이라고는 무슨 말인지 알수도 없는 얘기들 뿐이었다. 호화로운 음식과 놀이도 싫증이 났다. 가장 끔찍한 일은 설핏 잠이 좀 들만 하면 대신들이 찾아와 끝도 없이 보고를 하는 것이엇다. 불면증에 걸렸고 예전이 그리워졋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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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말 오후, 제화공은 방문을 잠그고 혼자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화공은 뽀개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안으며 일어나 모든 것이 되돌려진 것을 보았다. <br />
<br />
며칠 뒤 왕이 다시 제화공을 찾아왔다.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겠소?’ ‘제가 보기에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저 자신같습니다.’” <br />
<br />
별 설명이 필요없는 그 자체로 분명한 우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솝우화책이 편집될 때처럼 이책에는 이야기가 있고 짧은 코멘트가 따라오는 것이 전부인 편집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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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책의 제목에 스님이란 말이 들어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유는 있다. 이책의 이야기들은 저자의 창작이 아니다. 위에 인용한 이야기는 육도집경이란 불경이 출처이다. 저자는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불가에선 널리 읽히는 책들에서 이야기들을 모아 다시 편집해 이책을 썼다. 시간의 검증을 거친 이야기들이란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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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한 일이라면 그런 이야기들을 뽑아 요즘 사람들의 감각에 맞게 다시 쓴 일이 전부라 할 수잇다. 예를 들어 “옛날에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사내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아내를 어찌나 엄하게 대하는지,” “사람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 헐떡이는 나귀에게 응급치료를 하며 심장 마사지를 해주었다. 젊은이는 나귀에게 인공호흡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 모양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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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검증을 거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고른 것만으로도 읽을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요즘의 감각에도 재미있게 고치는 저자의 솜씨가 재미있다. 위에서 인용한 제화공의 행복 이야기는 사실 원 분량의 1/3 정도이다. 인용을 위해 가지를 쳐냈지만 원문은 앞의 나귀 인공호흡 같은 잔가지들이 많다. 사실 불경의 이야기들은 늘어지지 않는다. 간결하게 상황을 정리한다고 보면 된다. 예수가 말했던 우화들과 문체가 비슷하다. 물론 그런 간결체는 이야기의 긴장감을 만들고 핵심을 명료하게 한다는 장점이 잇지만 집중해야 한다는 단점이 잇다. 요즘같이 마음이 바쁜 세상엔 인기있기 어려운 문체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간결체의 문체를 바꿔 읽는 재미를 더하는 솜씨가 좋다. 그것이 이책이 중국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 불리는 이유일 것이며 이책의 장점이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79/94/cover150/8956089116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89116</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보고 사고 맛본다 - [뉴욕 100배 즐기기 - 2011년~2012년 최신정보 수록 / 뉴욕 22개 &amp; 근교 9개 도시]</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5013061</link><pubDate>Sat, 20 Aug 2011 15: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50130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3389&TPaperId=501306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256/2/coveroff/89255433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3389&TPaperId=50130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뉴욕 100배 즐기기 - 2011년~2012년 최신정보 수록 / 뉴욕 22개 & 근교 9개 도시</a><br/>홍수연.홍지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7월<br/></td></tr></table><br/>“본드 가만큼 런던의 화려함이 잘 드러나는 곳은 없다. 고급 보석상인 그라프의 특대형 다이아몬드, 파텍 필립의 명품 시계, 샤넬 정장, 루부탱 신발, 그리고 소더비 경매품 등 고가의 물품들을 가득 채워놓고 파는 이곳 상점들은 런던의 과거를 우아하게 재연해 놓았다. <br />
<br />
본드 가는 세계의 위대한 도시 유원지 중 한 곳으로 보고 사고 맛보고 배울 것으로 가득 찬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면 본드 가 오른쪽에 있는 고급 호텔 클라리지에 머물면서 아르 데코 미술품을 감상하고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세계적 요리사 고든 램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다. <br />
<br />
물론 런던에서는 이 외에 더 고매한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린니언 학회, 왕립천문학회, 왕립예술아카데미 등 런던의 지적인 장식품이라 할 수 있는 건물들은 벌링턴 아케이드 바로 옆에 있는 멋진 팔라디오풍 맨션 내에 있다. 런던 택시를 타고 몇분만 가면 웨스트엔드 극장 공연이나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된 보물들을 볼 수 있다. “런던이 싫증 난 사람은 인생이 싫증 난 사람이다. 런던에는 인생이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 했던 사무엘 존슨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br />
<br />
도시의 고용은 도시의 성공을 결정한다. 인재는 계속 이동하면서 생산하고 소비하기에 좋은 장소들을 물색한다. 런던의 오락 시설들은 런던이 32명의 억만장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런던에 사는 이런 엄청난 부자들 중 절반은 영국인이 아니다. <br />
<br />
런던과 뉴욕, 파리가 사람들에게 그토록 즐거운 도시로 변한 한 가지 이유는 이들 도시에 수세기에 걸쳐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박물관,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한 도시를 근면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인간의 창의성을 극대화시켜 주는 도시의 능력으로부터도 혜택을 받는다. 도시의 혁신이란 단순히 새로운 유형의 공장이나 금융상품뿐 아리나 새로운 요리와 놀이도 의미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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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왜 성공하는지 그리고 도시가 미래에도 계속해서 번성할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생활 편의 시설들이 어떤 작용을 하고 소비 도시들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에드워드 글래이저) <br />
<br />
그리고 이책은 소비도시로서 뉴욕이 어떻게 성공적인가를 잘 보여준다. 이책의 내용을 한줄로 말한다면 ‘보고 사고 맛본다’ 이다. 이책은 뉴욕에서 무엇을 어디에서 사고 먹고 보는가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정보들을 보다보면 왜 뉴욕이 정상의 글로벌 시티로 군림하는가를 알 수 있다. 런던이 싫증 날 수 없는 것처럼 뉴욕 역시 싫증 날 수 없기 때문이다. <br />
<br />
“프리첼: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프리챌은 대표적인 거리 음식이기도 하다. 얇고 가늘게만 반죽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튀겨낸 후, 소금을 뿌려 머스터드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 하지만 벤더에서 파는 것은 맛이 없으니 가게에서 갓 구워낸 것을 꼭 구입하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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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조카에게 줄 양말과 모자 세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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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스퀘어에서 M14D 버스를 타면 첼시 마켓 근처로 갈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첼시의 명물이자 까다로운 뉴요커의 입맛을 사로잡는 유명 브랜드들이 모여 있어 한자리에서 뉴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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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용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뉴욕 같은 소비도시의 관광은 결국 쇼핑이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편들과 마찬가지로 이책 역시 입국절차, 준비물, 교통편, 예산짜기, 추천코스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발리나 푸켓 같은 관광만을 위한 관광지와 달리 뉴욕과 같은 글로벌 시티의 안내는 다를 수 밖에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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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같은 목적성 방문이 아닌 한 뉴욕에서 보내는 시간은 쇼핑하고 먹고 자는, 돈 쓰는 일이 대부분일 수 밖에 없고 이책은 돈을 어떻게 유용하게 쓸 수 있는가를 소개하는데 중점을 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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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책은 돈 쓰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을 뉴욕답게 만드는 장소들과 문화들에 대한 소개도 나름 충실하다. 이책의 4/5는 장소에 대한 소개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소개도 2페이지에 4곳씩 명소, 음식, 쇼핑의 순서로 소개된 것을 보면 이책의 목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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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책의 용도가 ‘쇼핑 뉴욕’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책을 택한 것은 관광 가이드북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뉴욕에 대한 지도가 필요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관광가이드만으로 용도가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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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책의 대부분은 장소에 대한 소개이다. 자동차가 없으면 시민권이 없다고 봐야 하는 LA와 달리 걸어다니는 것이 정상인 뉴욕이기에 이책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다니면서 관광할 것이라 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구성은 지도에 따라 보행자의 동선을 고려해 장소들을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뉴욕 구석구석의 분위기를 알기에 좋은 구성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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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광명소만이 아니라 쇼핑장소, 음식점, 클럽, 공연장, 박물관 같은 곳도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뉴욕의 생활을 같이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책의 장점이다. 간단히 말해 이책의 용도는 읽기 나름이며 원래 편집의도와 다른 목적에도 충분히 활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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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256/2/cover150/892554338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3389</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편집광의 사진 - [유진 스미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913834</link><pubDate>Mon, 11 Jul 2011 1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9138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92&TPaperId=491383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9/9/coveroff/89301003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92&TPaperId=49138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진 스미스</a><br/>샘 스티븐슨 지음, 김우룡 옮김, 유진 스미스 사진 / 열화당 / 2003년 01월<br/></td></tr></table><br/>"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한 말이다. '언젠가 스미스가 사진 대학에서 강의할 때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가으이 마지막에 가서 학생이 항의했다. 사진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고 강의 시간 내내 음악 얘기만 했다. 스미스는 한 인간에게 아주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말로 학생을 진정시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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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스에게 음악은 중요했다. 2차대전 때 종군사진가로 일할 때도 음악을 들어야만 했던 그에게 음악은 사진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는 종종 그의 사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음악이엇다고 말햇다. "음악적 질서를 불어넣기 위해 내가 음악을 의도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간단히 말해 음악은 나의 스승이다."고 말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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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관점이다.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아니더라도 공간의 예술인 사진에 시간의 예술의 관점을 접목한다면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사진 강의에서 사진은 말하지 않고 음악만 말한다는 것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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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것은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이 대개 그렇듯 자신의 경력이 끝났을 때였다. 1960년대 내내 스미스는 대학과 강연회에서 강의를 했다. 그 당시 이미 스미스는 대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직 사십대 중반의 스미스는 애가조의 회고를 거듭하면서 마치 그의 경력이 이미 끝나 버린 것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학생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라이프'에서 박하고 나오고서도 포토에세이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스미스는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 '글쎄..., 흠..., 그건 나도 잘 알 수가 없어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스미스 특유의 유머엿다. 학생들은 예상 밖의 이 대답에 크게 웃었고 스미스도 웃었다." 그러나 그의 유머는 그의 진실이었고 그의 웃음은 텅 빈 웃음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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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의 촉망받는 사진기자였지만 스미스는 편집진과 갈등이 많았다. 물론 사진작가와 잡지사의 갈등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스미스 만의 문제도 아니다. 라이프 등의 유력 잡지사들과 일했던 베르너 비숍은 잡지사와의 작업을 "끔찍했다"고 말햇다. "비숍은 자신이 생각한 바에 따라 문제를 최대한 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잡지사는 이익을 올리고 싶어햇다. '편집진과 다른 구매자들이 사진 속의 불쾌한 진실에 손질을 가하고 별 신통치 않은 이유로 톤을 약화하고 독자들에게 영합하기 위해 그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그는 아주 기분 나빠 했다.' 사진에 대한 해석을 오도하는 왜곡된 설명과 기사, 엉망으로 잘리고 뒤집힌 사진들, 정치적 편향과 멜로 드라마적 이미지를 요구하는 취재지시 등, 편집과정에서 그의 사진과 관점에 가해지는 모욕에 비숍은 몹시 괴로워했다." (클로드 쿡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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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스미스와 라이프 지의 갈등 역시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리고 그 갈등은 비숍처럼 투덜 투덜 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편집권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스미스가 라이프의 잘 나가는 지위를 박차고 나온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비숍과 달리 스미스의 도전은 도가 지나쳤다. 스미스의 경우엔 잡지사로선 참을만큼 참았다고 두둔할 수 밖에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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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방식은, 언제나 첫 사진을 찍기 전 며칠 또는 몇 구간 그 지역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곳 사람들과 섞여 지내는 등 대상에 대한 사전 이해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엇다. 촬영할 대상과 아주 친근해지는 한편으로 그 대상과 배경에 아예 녹아 들어감으로써 거부감이 없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태도였다. 객관적 태도를 냉정히 견지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엎고 스미스는 어떤 경우에라도 대상과 자신의 거리감을 없애려 애를 썼다. 개인적 거리감이든 직업적 거리감이든 그에게는 없애 버려야 할 적일 뿐이었다. 스미스에게 한 장의 사진은 그가 보고 느끼고 겪었던 바로 그 이미지엿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보았던 그 순간 그대로를 생생히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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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진가이니 유명해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대학 졸업장도 없는 그가 라이프 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전쟁사진 때문이엇다. 그의 전쟁사진은 간결하면서 요점이 분명하면서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의 작업 방식은 병사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얻은 것으로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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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작업방식이 문제엿다. "'라이프'에 있는 동안 쉰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스미스와 잡지사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잡지의 편집진은 사진가의 역할이 네거티브를 만드는 것에서 끝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엇다. 스미스는 그 네거티브로부터 제대로 된 프린트를 만들고 그것을 지면에 배치하는 것까지 사진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어떤 편집자가 시인에게 묻지 않고 시를 뜯어고칠 수 있단 말인가. 사진이 시와 달리 취급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편집진에게 요구했다. 기사 하나가 나갈 때마다 격렬한 갈등과 최후통첩의 말이 오갔고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타협이 있은 후에야 겨우 지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진은 감동적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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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였으면 어떻게 타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미스의 집념 나쁘게 말하자면 편집증이 더 큰 문제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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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952년의 작업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1953년 작업인 ‘미시간 주의 이주 노동자’의 경우 스미스는 수개월을 들여 수백 점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잡지가 필요로 하는 것, 또 청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엇고 비용은 모두 ‘라이프’가 지불했다. 두 작업 모두 겨우 잡지의 몇 페이지를 채울 기사엿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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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은 놀라웠지만 그 작업의 뒤에는 인간의 폐허가 있었다. “라이프의 강력한 채널을 통해 스미스야말로 함게 일하기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져났다. 당시의 스미스는 잡지사가 기다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린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 휴식 없이 며칠을 매달리곤 했다. 나아가 사진에 대한 이런 강박적 몰두와 약물 의존으로 일상생활 역시 황폐해졌다. 갈수록 작업실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지고 네 아이들과 아내가 잇는 집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1950년 9월 그의 불후의 명작 ‘스페인 마을’ 작업 도중 지친 스미스는 팬티 바람으로 작업실 앞길을 돌아다니다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몇주간 치료를 받아야 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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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팽개치고 나와 살던 맨해튼의 로프트에 자주 들렸던 드러머 로니 프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마치 미친 과학자 같았다. 그가 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앉아 잇는 것마저 본 기억이 없다.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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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완벽주의 또는 강박증을 잘 보여주는 예는 ‘불타는 코크스와 춤을(1955)’일 것이다. “피츠버그 작업에서의 걸작 인화인 이 사진에서 “한 노둥자가 코크스 가마 위에 두껑을 덮고 잇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문명 사이의 의문 가득한 관계성이 이사진에 드러나 잇음을 본다.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 사진의 압도적인 충격은 스미스 사진 인화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완벽주의자 스미스는 프린트 하나를 위해 버닝, 닷징, 블리칭을 평균 백오십 회가량 햇다고 한다. 때론 프린트 하나에 수일이 걸렸다. 이 사진을 보면 전설은 사실일 것같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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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를 박차고 나와 매그넘과 손을 잡은 후에도 그의 극단성은 도를 더해갔다. “매그넘에서 첫 작업은 피츠버그 시를 촬영하는 일이었다. 역사가이자 저명한 편집자인 슈테판 로란트가 피츠버그 시 이백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되는 대형 간행물을 시민 대표 자격으로 맡았다. 스미스는 이 간행물 가운데 현대 피츠버그 시에 대한 한 대목을 맡아 삼 주간의 예정으로 백 점의 사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그의 작업방식대로 “첫 한달을 이리저리 도시를 배회하고 그 역사를 찾아 읽고 가능한 모든 것을 입력하는데 보냈다. 그리고 거의 한 해를 피츠버그 시를 찍는데 바쳐 만삼천 점의 네거티브를 얻었다. 라이프에서의 싸움과 다를 바 없는 전쟁을 로란트와 치른 후 스미스는 수백점의 프린트를 넘겨주고 작업을 마무리짓는다.” 그러나 피츠버그 프로젝트는 스미스 자신의 과업이 되어 이후 3년을 바치고도 마무리 짓지 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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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아무리 그가 대가임을 알아도 그에게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고 스미스는 가난과 싸워야 했으며 60년대에 들어서면 과거의 영광을 되씹으며 대학 강의실을 떠도는 보따리 장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진기를 평생 놓지 않았다. 돈이 되건 안되건 알아주건 말건 찍고 또 찍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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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2월에 스미스의 주치의가 그의 상태에 대해 써 놓은 한 통의 소견서가 남아 잇다. 쉰일곱의 스미스는 이때 ‘당뇨병, 간경화, 심한 고혈압, 정맥류, 울혈성 피부염, 심혈관질환, 관상동맥질환 그리고 심장비대증’을 앓고 있었다. 주치의는 ‘금주’하라는 명령으로 자신의 소견을 맺는다.. 스미스가 의사의 소견을 마움에 두엇는지는 의문이다. 친구들은 스미스가 뉴욕을 벗어나 보다 안정되고 건강한 환경으로 옮기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잇었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광적으로 일하는 습관, 알코올과 약물의존, 그리고 다른 여러 위험한 강박 상태가 그의 몸을 근 삼십년 동안 짓눌렀다.” 친구들의 주선으로 애리조나 대학의 강사직을 맡아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일년을 넘지 못했다. 1978년 편의점에서 고양이 먹이를 사던 스미스는 심장마비로 급사한다. 쉰아홉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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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갤러리<br />
http://www.magnumphotos.com/Archive/C.aspx?VP=XSpecific_MAG.PhotographerDetail_VPage&amp;pid=2K7O3R139C2T&amp;nm=W.%20Eugene%20%20Smith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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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9/9/cover150/893010039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92</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상상적 소유 - [외젠 앗제]</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911202</link><pubDate>Sun, 10 Jul 2011 1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9112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49X&TPaperId=491120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5/7/coveroff/893010049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49X&TPaperId=49112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외젠 앗제</a><br/>게리 뱃저 지음, 정재곤 옮김, 외젠 앗제 사진 / 열화당 / 2003년 11월<br/></td></tr></table><br/>“오스망의 업적은 근대 도시계획의 위대한 전설이 되었다. 황제의 지원을 업고 자본과 노동의 잉여를 광대한 공공사업계획으로 흡수하는 수단으로 무장한 그는 수도의 사회적 경제적 삶의 공간적 틀을 재조직할 일관성 있는 계획을 고안했다. 오스망은 ‘다양한 지역적 상황을 충분히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잇도록 상세하면서도 전반적인 계획’을 추구햇다. 도시공간은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되고 다루어지며 그 안에서 도시의 상이한 구역과 상이한 기능들은 상관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전체를 형성한다. 도시공간의 전체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때문에 오스망은 대도시 지역 내 공간질서의 합리적 진화를 위협하는 불균등한 개발이 진행되던 근교를 병합하기 위해 격렬한 투쟁을 벌여야 했다. 1860년대에 그는 끝내 승리했다.” (데이비드 하비)오스망의 승리 덕분에 우리는 모두가 아름답다 말하는 오늘날의 파리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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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파리(Vieux Paris)’는 회화적인 한 장르일 뿐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19세기 내내 산업혁명으로 프랑스에서는 변화가 불가피했으며 따라서 사진이 발명되기도 전부터 과거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시각자료 목록을 시큽히 마련해야 한다는 범국가적 과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오스망 남작의 도시계획으로 위협받는 지역을 기록하는 일이 급선무였는데 그 계획은 부르주아 계급의 신거주 지역 건설을 위해 옛 시가지 전체를 철거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초조함은 19세기 말 ‘옛 파리’ 운동이 생겨나면서 절정에 달했으며 급기야는 1860년대 오스망의 급진적인 재개발에서 살아남은 역사적 지역이 파리 시내 지하철 건설로 입게 될 피해를 최소호하하기 위한 위원회까지 설립도이ㅓㅆ다. 파리 시립역사도서관, 카르나발레 박물관, 국립도서관 등의 공공기관은 파리의 과거 모습을 담은 드로잉, 판화, 사진 또는 다른 형태의 자료들을 수집하려고 서로 경쟁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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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주인공인 외젠 앗제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는 공공기관을 고객으로 ‘옛 파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한 많은 사진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된 작업은 어디까지나 건축물과 풍경을 찍는 것이었고 이 같은 작업 결과물은 십여장씩 개인 고객들에게 백여장씩 공공기관에 팔려나갔다.” 직업사진가로서 앗제는 당시’옛 파리’를 주제로 한 다른 사진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앗제의 사진은 특별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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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인 공공기관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었다. 사라질 건물과 거리의 객관적인 초상을 원했다. 그러나 앗제는 “건물 정면을 찍을 때도 마치 거리의 동상이나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들 같은 불필요한 요소까지 화면에 등장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고객인 공공기관의 신경을 자극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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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 드라공 거리, 렌가 50번지 (파리, 1899)’엔 전경에 고객의 입장에선 불순물인 삼륜거가 전경에 끼워져 잇다. 그러나 그 불순물 덕분에 앗제는 “동시대의 틀에 박힌 사진가들을 뛰어넘는다. 앗제는 ‘주제가 돋보이도록 화면을 고정시키되 그 주제가 놓여 있는 삶의 문맥을 배제시키지 않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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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리니 후작 저택, 샤를로가 83번지 (파리, 1901)’ 역시 앗제의 그런 재능을 보여준다. “마레가나 탕플가, 생 제르맹 등 현대화의 물결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던 귀족들의 저택을 촬영하면서 앗제는 건축양ㅅ힉, 건물의 높이 및 중량감, 건축물을 장식하는 디테일 등에 역점을 두엇다. 이들 작업의 대부분은 상투적이다. 실제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로지 명확하고 중립적인 묘사만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앗제는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는 건축사진을 많이 찍었다. 앗제는 이 같은 작업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때때로 부주의하고 서툰 사진을 찍기도 햇다. 그러나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라 할 수 있는 이 사진의 경우 정면에서 약간 비켜선 각도에서 대상을 촬영하는 그의 경향이 우아하기는 하지만 단조로울 수 있는 건물에 한층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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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록을 뛰어넘는 앗제 사진의 성격은 평론가에게 ‘앗제의 문제’라 부르는 화두를 던진다. “그는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기록자료로 관심있는 개인이나 공공기관에 팔앗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사진들은 작가명으로 분류되지 않고 주제별로 분류되었다.” 그러므로 맥락주의적 경향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상업적인 사진장이일 뿐인 인물을 위대한 예술가로 보는 것은 고의적 오류라고 주장한다.” ‘앗제의 문제’는 앗제를 예술가라 부를 수 잇느냐의 문제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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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는 “20세기 사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진가들 자신이 사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진가들이 앗제의 작품에 대해 실망했다. 모더니즘 사진이 지니는 형식미적 기준에 따르면 그의 작품에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앗제는 기록사진의 기준에 따라 작업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형식미에서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예술사진가를 판단할 때 내세우는 기준, 즉 의도적인 형식미의 성공과 실패 여부, 스타일 전개 방식, 개인의 자발적 창작품인지 고객으로부터 주문받은 작품인지의 여부 등을 앗제에게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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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혼이 없는 상업사진이라 치부하기엔 “그의 작품의 아름다움은 당혹스럽다. 앗제의 이미지들을 보는 사람은 상업적 의도에 전혀 손상되지 않은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그의 작품을 좀더 세심하게 관찰하면 지극히 단순한 목적과 단조로운 작업방식이라는 한계 속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볼수록 단순히 상업적 이유에서 시작된 작업이 시간이 가면서 더욱 광범위하면서도 개인적인 관점을 지닌 작업으로 발전해 나갔음을 느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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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는 대체로 거리를 매우 서정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거리를 관찰하는 훈련이 되어 있고 오래 된 것들에 대해 특별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디테일을 찾아내는 눈을 지녓다. 그리고 이 모든 특성은 ‘거리의 서정’이나 ‘파리의 서정’이 아닌 앗제 자신의 서정이라고 불러야 할 시적 감수성 안에 하나가된다. 요컨데 너무 막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앗제의 파리’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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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의 파리는 “동적이며 만져질 듯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앗제의 이미지를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그 안으로 빨려드는지 관찰해보라. 우리는 사진의 공간을 소유하고 이를 되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들게 하는 사진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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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의 서정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우선 앗제 사진에서 무엇을 느끼는지를 말해야 할 것이다. “앗제 작품세계의 큰 특징은 대부분의 사진들이 눈 높이에서 지극히 평범한 시점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시점 때문에 앗제 작품의 상당 부분은 보행 경험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개 비교적 한가롭고 명상적인 산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비슷한 이유로 앗제의 이미지에서 보이는 공간감 역시 비록 막힌 공간을 묘사하고 있을지라도 관람자들이 시각적으로 그 공간 속에 들어가거나 빠져 나오는 길을 택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제한적이라기보다는 확산적이다. 또한 심리적으로 편안하고 내밀한 느낌을 제공하므로 그 공간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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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앗제의 사진은 “위안과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하기는 하지만 좀처럼 매혹시키는 법은 없다.” 앗제는 무대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만 찍었기 때문이다. 앗제에게 도시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소비하며 정신적인 휴식을 찾는 공간’이엇다. 그러나 앗제가 찍은 사진은 그 도시의 드라마 자체가 아닌 드라마의 배경인 미장센이었다. 건물에 사는 사람과 그들의 삶보다는 그 배경인 건물을 찍엇고 사람들이 사고 소비하는 자체보다는 그 대상인 상품들과 그 상품이 놓인 진열장을 찍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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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그런 배경에 몰두하게 했을까? 더군다나 앗제의 사진작업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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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다루는 영화에 보면 커다란 삼각대 위에 올려진 카메라에 고개를 쳐박고 천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찍는 사진사를 보았을 것이다. 앗제가 들고 다닌 사진기는 그런 사진기엿다. 건물을 찍기 위해선 그런 커다란 사진기가 필요했다. “큼직한 뷰 카메라와 그에 딸린 올망졸망한 가방들을 끌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일이 얼마나 힘든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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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을 찍는 데 알맞은 그런 장비 때문에 그의 사진은 공간의 깊이감과 가파른 원근감을 갖게 되었고 그의 주제처럼 건축적인 구성을 만든다. 앗제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허리가 휘도록 작업하러 다녀야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는 길을 닥치는대로 누비며 ‘無’에서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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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가 무심하게 버려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 들 중에 유난히 걸작들이 많이 잇다. 앗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진가들 같으면 이상하다고 여겼을 방식을 직관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받아들여 작업했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사진적으로 말한다면 항상 ‘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꽃내음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존 사고우스키는 여러 차례에 걸친 앗제의 샤티용 방문을 두고 그가 기차역에서 간선도로를 따라 곧장 도심으로 걸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경치가 좋은 우회로인 페로탱가를 택함으로써 ‘페로탱가 (샤티용, 1915-1919)’ 사진에서 보이는 멋지게 굴곡 진 벽과 신비로 가득 찬 비밀의 문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 밖의 많은 일급 이미지를 찾아냇다고 말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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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장 잘된 작품 몇 점을 찍은 곳으로 왠지 모르게 그를 항상 잡아끄는 도시 파리를 내려다볼 수 잇는 생클루 공원 언덕, 그곳 연못까지 무거운 촬영 장비를 끌고 올라갔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여덞이었다. 앗제가 그 나이에 헤라클레스 같은 괴력을 요하는 일을 기꺼이 하게끔 이끈 원동력이 무엇일지는 짐작할 밖에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렇게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는 것이다.” 편집자는 그 원동력이 소유욕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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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옛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소유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옛 파리의 모습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고? 사실과 다르다. 앗제의 파리는 보행자. 노동자 계급, 좁고 지저분한 안뜰을 감추고 있는 전기 산업화 단계의 별볼 일 없고 미천한 파리엿다 ‘다른 사람들’의 파리가 아니더라도 그저 보통 사람들의 파리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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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찍은 보통 사람들의 파리는 “오스망과 황제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위험한 계급’과 불건전한 가옥과 산업을 도심에서 추방하는 일”(데이비드 하비)때문에 밀려나 사라져 버릴 운명에 놓인 것들이었다. 오스망이 만든 “널찍한 거리를 거니는 부르주아의 파리나 부르봉 왕조의 파리는 앗제의 진정한 관심 밖이었고 그의 거대한 계획과는 무관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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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에게 사진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상상적 소유였다. “그것은 프루스트적인 의미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자’하는 개인적인 추구이고 두번째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소유, 즉 자기가 속한 계급에게 프랑스의 문화를 되찾아 주고자 공공 문서 봐관소에 조심스럽게 자기만의 소리를 불어넣는 행위를 가리켰다.그러므로 앗제의 광범위한 테마는 여러 평자들이 결론지었듯이 단지 프랑스 문화유산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이 지닌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뛰어난 감수성과 감각있는 눈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앗제의 작품이 지니는 정령숭배적 경향이나 우울증, 사랑스러움 등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해줄 인물, 그의 삶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이다. 이점이 앗제가 지닌 진정한 가치이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시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사진작업을 해온 모든 작가들에게 그가 남긴 유산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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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제가 왜 그다지도 중요한지를 묻자 찰스 하벗은 다음과 같은 명답을 남겼다. ‘그가 서 있던 장소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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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br />
http://www.atgetphotography.com/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5/7/cover150/893010049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49X</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사냥꾼의 사진 - [에드 반 데르 엘스켄]</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901269</link><pubDate>Wed, 06 Jul 2011 13: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901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52X&TPaperId=490126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5/7/coveroff/89301005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52X&TPaperId=4901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드 반 데르 엘스켄</a><br/>흐립시메 피서르 지음, 이영준 옮김, 에드 반 데르 엘스켄 사진 / 열화당 / 2003년 11월<br/></td></tr></table><br/>﻿에드 반 데르 엘스켄이 세계적인 사진가가 된 것은 ‘Love on the Left Bank ‘(참고 <span para_style="true">http://www.guardian.co.uk/artanddesign/2011/feb/10/van-der-elsken-left-bank&#160;)&#160;사진집 때문이엇다. 이 사진집은 20세기 최고의 사진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사진집이라기 보다는 영화에 가깝다.&#160;이 사진집의 스토리는&#160;앤이란 인물이 이국적인 댄서가 되고 술&#160;마시고,&#160;추파를 던지고, 싸우고, 자고,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환멸하는&#160;것이 전부이다.&#160;그러나 이 사진집은 실제를 찍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것으로&#160;사진 소설(photo novel)로 분류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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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사진 소설의 스토리는 앤을 연기한&#160;밸리 마이어스(Vali Myers)의 실제에 가깝다. 전설적인 보헤미안인 그녀는 콕토, 즈네와 친구였고 2차대전 후 파리로 도피한 보헤미언들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집이 다루는 것은 엘스켄 자신이 속해있던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세계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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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나라에서 모여든 그들은 이러저라한 이유로 전쟁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바, 카레, 식당을 떠돌며 술과 마약에 취해 있었고 깊은 상처로 절망에 빠져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엇다. 반 데르 엘스켄은 이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에 매료되어 사진을 찎었다. 간혹 그들이 내켜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 섞여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찍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는데 인공조명, 연기, 반사 등이 분위기를 지배하는 그런 것이었다. 그는 열광적으로 춤추고 논쟁하고 식사하는 모습을 찎었고 덧없음 혹은 절망을 드러내는 듯 서로 껴안은 채 잠에 빠져 있는 모습도 찎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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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든 타의든 주류에서 밀려난&#160;주변부의 문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엘스켄은 낸 골딘(낸 골딘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전 리뷰 참고)과 자주 비교된다. 실제 "낸 골딘은 엘스켄의 작품을 대단히 좋아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기록하는 세대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낸 골딘과 엘스켄의 작업은 다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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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골딘의 작업은 자신의 대상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따듯함이 있다. 엘스켄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그렸고 그 공동체를 그리는 것은 자신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선 따뜻함이, 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엘스켄의 사진을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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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진을 찍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인식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에 나오는 인물과 상황은 항상 그의 감정을 반영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이라기보다 자기비하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엘스켄은 진정성을 추구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카메라에서 자신을 찾았고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을 찍었다.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강렬하다. &#160;"그의 사진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의 시선이다. 초기 작품 속의 인물들은 멍하니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젊은 사진가는 꿈과 외로움,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남자, 여자, 어린아이를 관찰한다. 그들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고 오로지 '당신 자신을 보여 달라'고 하는 감독의 지시를 받는 배우가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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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켄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우연이 지배하는 세계와의 수동적인 만남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진 찍는 방법이 사냥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멀리 있는 사냥감-인상적이고 아름다운, 혹은 기이한 사람들-을 점찍은 후, 망원 렌즈나 줌 렌즈로 천천히 따라가다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마지막에 광각으로 포착한다고 했다. 렌즈를 교체하는 일을 포함해서, 이 방법은 영화적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간간이 영화를 실험하고 있었고 영화는 그의 두번째 표현매체가 되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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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그를 관음증 환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는 자신의 사냥감에게 언제나 '당신 자신을 보여달라'고 강요한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관찰자로 머물 수 없었고 무대를 지배하는 감독이 되어야 햇다. 그의 이름을 알린 첫번째 사진집이 영화에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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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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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_style="true">http://www.edvanderelsken.nl/index.php?page=fotos<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5/7/cover150/893010052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52X</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인간을 보라 - [베르너 비숍]</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898844</link><pubDate>Tue, 05 Jul 2011 15: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8988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25&TPaperId=489884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9/8/coveroff/89301003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25&TPaperId=48988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베르너 비숍</a><br/>클로드 쿡맨 지음, 이영준 옮김, 베르너 비숍 사진 / 열화당 / 2003년 01월<br/></td></tr></table><br/>﻿베르너 비숍의 삶은 우연이 지배했다. 사진하게 된 것도 사진작가에서 기자가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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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하고 지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베르너 비숍은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화가가 아닌 산업디자인을 선택해 1933년 취리히 응용미술학교(the School for Arts and Crafts)에 들어간다. 그러나 “응용미술학교에서 상업미술 수업은 이미 자리가 찼기 때문에 사진을 하기로 했다. 카메라라는 새로운 매체의 끝없는 가능성이 나를 사로잡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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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진을 선택한 1930년대는 모더니즘의 시대였고 파리와 함께 유럽 사진의 중심지인 베를린에선 사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뉴 비전 운동(참고: http://www.metmuseum.org/toah/hd/nvis/hd_nvis.htm) 이 한창이었다. 뉴 비전이란 말을 만든 모홀리 나기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뉴 비전)로 사진을 정의했다. “낡은 비전은 189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 꽃을 피웠던 픽토리얼리즘이었다. 모더니스트 사진가들은 회화주의자들의 부드러운 초점과 톤의 효과를 거부햇다. 그들은 다른 예술을 흉내내는 대신, 매체 자체의 독특한 능력을 탐색하면서 순수성을 고집했다. 모홀리 나기는 스스로 빛을 그리는 화가라 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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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비숍의 사진은 뉴 비전 운동의 일부였다. “초기 십 년간의 사진에 대해 회상하면서 비숍은 ‘나는(계란, 식물 등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 썼다.” 졸업 후 그의 작품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 당시 비숍의 작업태도를 완벽주의라 말한다. “한 예로 조개껍질은 비숍이 광고사진 일을 하던 시절 계속 나타나던 소재였다. Argonauta(취리히, 1941)란 사진은 자연에서 발견한 바닷가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데 비숍이 얼마나 극도의 완벅주의를 추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스튜디오에서 직은 이 정물사진은 조개의 뿔들이 배경에 비해 희게 보이고, 앞쪽에서 떨어진 그림자는 모래에 비해 검게 보이도록 세심하게 배치되고 조명된 것이다.&#160;그런 효과를 얻기 위해 비숍은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조개껍질을 자르고 사포질하고 윤을 내는 데 썼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은 사진에 그려진 사물이어야 한다. 사진이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보이도록 하가 위해선 사물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매체의 성격에 맞는 것이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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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이 피사체가 될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160;'뒷 모습 누드' (취리히, 1937)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사진을 찍는 비숍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비숍은 모델의 등을 톤에 대한 연구로 바꿀 정도로 빛을 아주 잘 다뤘다. 진한 검은색의 넓은 영역과 좁지만 강한 하이라이트 사이에 잘 조절된 회색의 영역이 있다. 비숍은 또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보이는 공간적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배경으로 보여야 할 왼쪽의 검은 부분은 모델의 앞에 있는 평면처럼 보여서 마치 모델이 오른쪽의 검은 평면 앞쪽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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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건만 아니었다면 베르너 비숍은 독창적인 빛의 작용과 형식에 대한 순수한 연구를 통해 예술계에 뛰어난 사진작업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은 비숍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를 떠나게 만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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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란 2차세계대전과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유럽의 황폐, 식민주의ㅏ의 해체와 냉전이었다. 격동의 세계를 맞아 비숍은 예술 사진가로 남아 있을 수 없엇다. 그는 인간과 그 문제에 대한 열렬한 증언자로 변신했다.” 덩굴, 민들레 씨앗, 누드, 레이스를 대신해 그의 사진에는 갑자기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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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은 스위스의 노동자들, 맹아학교, 이탈리아의 티치노에 있는 난민수용소, 그리고 스위스의 이탈리아어 사용지역을 찎었다. 평화주의자 로맹 롤랑의 열렬한 독자인 그는 이 사진들과 이후 작업들에서 휴머니즘과 사회주의를 받아들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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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노의 수용소에서 찍은 이 사진은 텅 빈 시선이 깊은 심리적 상처를 암시하는 난민 어린이를 보여준다. 비숍은 전쟁이 그의 '상아탑'을 파괴해버렸다고 썼다. 그리고 '그 후로 나의 관심은 고통받는 인간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집에서는 전쟁 전에 찍은 섬세한 사진들을 생각에 잠긴 채 연구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나는 나날의 공포로 감각이 마비되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십만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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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6년간 유럽 가로지르며 그가 많은 "사진들이 불에 타 버린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부터 수많은 도시의 벽돌과 돌무더기들까지 물리적인 폐허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진들은 상징적인데, 구멍나고 짖어진 병사의 철모가 폭격 맞은 독일 국회의사당 앞 물웅덩이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사당' 베를린, 1946) 불에 타 버린 차와 트럭의 잔해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감싸고 있다. 돔은 부서졌지만 건물의 독특한 외양은 알아 볼 수 있다." 비숍은 폐허의 도시적인 스케일을 배경으로 인간의 스케일을 사진의 전경에 배치한다. 그러나 그 역시 도시의 폐허와 마찬가지로 "파편들이 뚫고 지나간 철모가 물웅덩이에 녹슬어가는, 폐허"로 상징할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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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숍이 전후에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첫번째 여행에서 발견한 주제를 나타낸다. 그것은 인간의 불굴의 용기이다. 몬테 카시노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새집을 짓기 위해 큰 돌 두개를 머리에 이고 간다. 그리스의 지로스에서는 넝마 같은 바지를 걸친 사람들이 전쟁고아를 위한 시설물의 뼈대를 올린다. 비숍의 어린이 사진도 그것들만큼이나 복합적이다. 그는 천장도 없는 교회에서 줄넘기를 하는 여자 아이, 그리고 폐허 속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통해 그들의 활기를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의 텅빈 시선과 말 없는 눈물에서 그들이 받았을 상처를 회상하기도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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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즘으로 전향한 비숍은 '초기의 심미주의와는 분명히 단절을 했다. 에든버러의 성당을 찍고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이 죽은 것을 찍으려고 몇 시간 동안 조명과 삼각대와 씨름하는 일은 이제 정말 매력 없다. 차라리 사람들이 오가는 혼잡한 철도역에 서 있는 것이 낫겠다.' 그는 곧 훨씬 더 생생한 곳을 경험하게 된다. 1951년 2월 그는 인도로 갔고 극동에서 거의 이 년을 있었다. 거기서 그의 이후 사진 경력을 채워 줄 자신만의 주제를 개발해낸다. 서구화가 옛날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을 휩쓸었을 때 비숍은 보통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느꼈다. 그는 현대의 경제적인 힘의 공세에 대항해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싶어했다. 인도, 일본, 한국, 홍콩, 인도차이나,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그는 도시를 벗어나 모더니즘의 침범에 해를 입지 않은 마을들을 찾아 다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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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이' (비하르 주 인도, 1951)는 그의 전후 유럽을 다룬 사진들과 연속선 상에 있다. 인도를 덮친 대기근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라 할 만한 이 장면에서 비숍은 낮은 앵글을 써 도움을 청하는 이 바싹 마른 여인을 기념비처럼 보여준다. 아이도 어머니의 제스처를 흉내내고 있는데 마치 가난과 배고픔이 미래의 세대에게도 되풀이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비숍이 찍은 인도의 대기근 사진들은 미국의회가 인도원조안을 통과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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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제3세계 사진들 역시 그의 전후 유럽 사진들처럼 복합적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을 다룬 사진들처럼 전쟁의 파괴를 다루기도 했지만 그런 폐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와 삶의 진정성을 보여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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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본 제3세계는 그가 겪은 뉴욕의 대립항이었다. "그는 뉴욕의 멈출 줄 모른 에너지를 '요부같이 흥분되고 매력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뉴욕의 '일상의 공허함과 메마른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강한 느낌을 받앗다. 맨해튼의 거리를 메운 얼굴들의 홍수 속에서 그는 '성공한 사람들, 환멸을 느낀 사람들, 살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 생기를 잃은 사람들, 포기햇지만 아직 불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크고 멋지지만 차갑고 무자비한 달러의 세계에서 서서히 쇠퇴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의 사진에서 뉴욕이란 도시는 억압적이고 비개성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익명적이고 눅눅한 길거리를 서둘러 걷고 있거나 가게 진열장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며 걸설용 철근 더미 속에 갇혀있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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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리엔탈리즘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제3세계에 자신의 환상을 그리는 대신 제3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으려 노력했다. 가령 '바닷가에서 (트리반드룸, 인도, 1951)'에서 '소년들이 바다와 모래의 경계에서 발가벗고 뛰놀고 있다. 인도에서 많은 서구 사진가들이 그랬듯이 대상을 이국적으로 보이게 하기보다 오히려 비숍은 자유와 즐거움이라는 보편적인 순간을 포착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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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3세계에서 보려 했던 것은 그의 대표작이며 이책의 표지로 쓰인 '쿠스코로 가는 길' (페루, 1954)에 잘 나타난다. "피리를 불며 홀로 걸어가는 이 소년은 또 다른 인간적 보편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음악을 만들려는 충동이다. 자기가 만든 구조물에 갇혀버린 뉴욕의 노동자와는 달리 이 이미지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편안하게 살아가는 곳에서 볼 수 잇느,ㄴ 전통문화의 인간적 진정성을 찬양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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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을 찍고 얼마 후 비숍은 페루의 어느 계곡에 차가 추락해 죽는다. "아흐레 후 비숍의 동료인 로버트 카파는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군인들을 찍다 지회를 밟아 죽게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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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비숍의 유산은 그 아름다움과 인간적 상황에 공감하는 묘사로 돋보이는 사진 수백 점을 포함한다. 인간의 슬픔을 담은 얼굴에서 활력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 전통문호의 단순한 진정성까지 비숍은 그의 시대를 용기와 사랑으로 찍었다. 비숍은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과 참여하는 증언자로서의 유럽적 저널리즘의 전통을 결합하여 사진의 명확한 기준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미지에서 이루고 잇는 것이었다. '깊이있게,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온 마음으로 싸워 얻어낸 작업만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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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갤러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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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_style="true">http://www.magnumphotos.com/C.aspx?VP=XSpecific_MAG.PhotographerDetail_VPage&amp;l1=0&amp;pid=2K7O3R14WSNQ&amp;nm=Werner%20Bischof<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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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9/8/cover150/893010032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2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범선의 시대 - [혼블로워 1 - 해군 사관 후보생]</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807943</link><pubDate>Mon, 23 May 2011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8079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6907X&TPaperId=480794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1/5/coveroff/898936907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6907X&TPaperId=48079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혼블로워 1 - 해군 사관 후보생</a><br/>C.S. 포레스터 지음, 조학제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4년 08월<br/></td></tr></table><br/>“만일 누군가 나에게 육전의 명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삼국지’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삼국지를 능가하는 해전의 명저는 없을까? 나는 그 해답을 이 책 ‘혼블로워’에서 찾았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혼블로워는 리얼리티 면에서 삼국지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에 가까울 뿐 아니라 근대 서구사를 꿰뚫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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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혼블로워를 만났을 때 나는 박진감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밀한 항해묘사, 함상 생활의 애환, 리더십, 세계사를 좌우한 해양력의 운용, 나폴레온 전쟁은 물론 애틋하고 진실한 사랑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는 혼블로워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독자들을 즐겁게 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뒤늦게나마 한국판으로 출간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윤광웅 제독)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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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표지 뒤에 인쇄된 추천사이다. 개인적으로 이 추천사보다 이 시리즈에 대해 더 잘 말할 능력은 없다. 단지 간결하고 명쾌한 추천사에 사족을 붙이는 것 밖에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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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에 언급되듯이 이 방대한 시리즈의 매력은 리얼리티에 있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는 삼국지와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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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블로워는 해가 저물어 가는 프랑스 해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프랑스 혁명 정부를 전복하려는 그의 조국 영국의 시도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결국 패하고 말앗다. 파리의 신문은 미쳐 날뛸 것이며 런던의 관보는 이 사건에 대해 냉정한 다섯줄만 ㅎ할애할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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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블로워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는 이 사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20년이 지나면 아니 20년이 지나면 완전히 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 뮤질락 시 광장의 목 없는 사체, 분쇄되어 버린 붉은 코트의 영국 병사들, 4파운드 포의 산탄 작렬로 흩어져 버린 저 프랑스 병사들… 그들은 전부, 마치 이 날이 역사가 뒤바뀐 하루인양 알고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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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대상은 프랑스 혁명기 영국해군이다. 총이라고 해봐야 전장식 머스킷에 불과하고 전함이라해봐야 범선에 불과한 시대이다. 물론 그 시대는 근대에 보기 드문 영웅이 활약한 시대이기도 했다. 나폴레옹이라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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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웅의 이야기는 이름없는 병사와 장교들 그리고 그들이 싸운 이름없이 잊혀져 버린 전투들이란 노이즈를 배경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나폴레옹이란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러시아 침공이라든가 워털루 전투 같은 굵직한 이름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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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거대한 이름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책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름도 없는 전투들이며 그 전투에서 분투한 이름없는 병사와 장교들일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런 이름없이 잊혀져간 사람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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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인공 혼블로워가 장교도 아닌 장교후배생으로 전함에 배치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귀족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닌 열일곱 견습사관의 자리는 밑바닥부터일 수 밖에 없고 그 자리는 녹녹치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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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실의 식사를 책임지는 선입 장교로서 그는 광범위한 공무상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말은 영악하게 잘했으며 나쁜 꼼수에 관한한 그는 도사였다. 저스티니안 함에서 그를 통제할 군기담장부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어떤 꾀를 부릴지 구분하기는 어려웠을 터이앋.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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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견습사관이 두어 번 심슨의 횡포에 반항했지만 그때마다 심슨은 반항자를 집어 던지고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상대를 기절시켜 버렸다. 심슨은 상대에게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으며 상대는 언제나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입술은 맞아 터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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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견습사관실은 행동으로 폭발시킬 수 없는 노여움으로 들끓고 있었다. 견습 사고나 중에는 그에게 아첨하는 자나 추종자도 있었지만 그들도 내심 이 폭군을 증오하고 있었다. 문제의 뿌리는 깊었고 분노를 불러일으킨 원인은 보통 이런 횡포로 끝나지 않는데 있었다. 깨끗한 셔츠가 필요하면 동료들의 옷장에서 강제로 빼앗아 입는다든지, 식탁에 나온 고기 가운데 가장 맛있는 부분을 독차지한다든지, 모두가 간절히 기다리는 술 배급을 가로채는 것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을 가진 자라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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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일을 벌여 방해를 하는 것이엇다ㅓ. 고전을 공부한 혼블로워는 심슨에게서 마치 로마 황제들의 폭군 모습을 연상할 정도엿다. 심슨은 클리브랜드에게 그의 관록을 나타내는 구레나룻을 강제로 잘라버리게 했다. 또 해스터에게는 매킨지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30분마다 깨우라는 임무를 부여하여 두 사람 모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헤스터가 그 임무에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욕설을 퍼부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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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매력은 이런 사소한 디테일에 있다. 그런 디테일은 함상 생활의 디테일 뿐 아니라 마스트, 톱 세일, 커터, 프리깃, 전열함, 풍상, 풍하와 같은 범선 시대의 낯선 용어들로 채워진 항해 장면과 전투 장면들까지 포함한다. 이책은 잊혀져 사라져 버린 시대의 모습을, 역사책에도 나오기 힘든 소재들을 종이 위에 살려놓는 리얼리티가 매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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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매력은 이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쟁 장면들에도 해당된다. 이책을 메우는 전투들은 거창한 전투들이 아니다. 1권의 전투들은 영국해군의 대륙봉쇄작전의 일환으로 치뤄지는 전투들이다. 대함대가 서로 격돌하는 일은 볼 수 없다. 단지 적의 상선을 공격해 나포하고 군항에 정박한 적함 한척을 빼앗으러 잠입하고 나포한 상선을 모항으로 몰고 가는 작디 작은 해군의 일상에 불과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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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주인공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전도유망한 사관후보생이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겪는 고난에 자살할 생각을 하고 처음 맡은 배를 부주의로 침몰시키고 포로로 잡히기까지 한다. 연전연승하며 승승장구하는 영웅이 아닌 약간 재능이 있지만 평범한 장교에 불과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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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다루는 모든 것은 거창하지 않다. 평범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평범함의 모자이크가 실제 전쟁의 현실에 가깝다. 바로 그렇게 쌓아올린 모자이크이기에 이책의 리얼리티는 매력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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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1/5/cover150/898936907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6907X</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진실의 고통 - [낸 골딘]</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780875</link><pubDate>Wed, 11 May 2011 17: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7808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41&TPaperId=478087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9/8/coveroff/89301003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41&TPaperId=47808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낸 골딘</a><br/>귀도 코스타 지음, 김우룡 옮김, 낸 골딘 사진 / 열화당 / 2003년 01월<br/></td></tr></table><br/>이 사진집의 표지는 방콕 게이클럽의 여장남자를 찍은 사진이다. 이책에는 뉴욕의 게이바의 여장남자들, 트랜스젠터, 호모 또는 가끔씩 레즈비언들의 초상과 그들의 성교장면이 등장한다. 그 사진들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모두 사진작가의 친구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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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뭔가 어긋났다고 말해지는 그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며 그들에게 공감을 숨기지 않는다. 사진집의 처음에 놓인 사진은 강가에서의 소풍을 찍은 것이다. 그 사진에는 케이크를 먹으며 즐겁게 웃고 잡담을 나누는 여장남자들과 여성이 담겨져 있다. 작가가 퀴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사진처럼 따뜻하다. 이성애자들이라면 역겹다고까지 생각할 동성애자들의 성교장면도 비정상이란 느낌을 갖기 어렵다. 그녀는 그 사진들에서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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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그런 시선을 갖게 된 것일까? 물론 그녀가 동성애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레즈비언이 된 이유는 많은 레즈비언들이 그렇듯 남성과의 관계에서의 환멸때문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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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출세작인)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가 출간되었을 때 표지에 쓰인 ‘침실에서의 낸과 브라이언(1983)’을 보자. 이 사진은 “책 전체의 시상을 대변하는 결정체라 할 만하다. 친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존재하는 두 사람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영속저긍로 존재하는 변증법을 완벽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화면에 나타난 빛의 구성조차도 두 존재간의 거리감과 차이점을 강화한다. 골딘의 표정에는 남자와 좀더 접촉하기를 원하는 욕망과 함께 어떤 두려움이 동시에 나타난다.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암시해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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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 안에 존재하는 끝없는 거리감’은 ‘The Ballad of Sexual Dependecy’의 중심주제이다. ‘침실에서의 남녀(1977년) 역시 같은 주제를 다훈다. “이 이미지에서는 남녀가 섹스 후 종종 느끼게 되는 기묘한 소외감과 소원한 분위기가 드러나 있다. 골딘은 이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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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녀관계에 대해 골딘이 그렇게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섹스 중의 스킨헤드족(1978)’이나 ‘쿠키와 빗토리오의 결혼식(1986)’, ‘키스하고 잇는 라이즈와 몬티(1988)’는 섹스에서 드러나는 연인사이의 일체감을 잘 포착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일체감에 “이 에로틱한 마주함이 일시적인 것이며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어떤 불편한 느낌”을 숨기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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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딘은 섹스를 영혼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로 보았다. 그리하여 섹스를 사랑과 우정에 동반하는 고통과 기쁨의 보다 깊고 복합적인 관계성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 관계는 고독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없다. 그녀가 찍었던 친구들이 즐겼던 마약처럼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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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런 시선을 어떻게 얻은 것일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많이 언급한다. “얘기는 1960년대 초, 워싱턴의 별 특징 없는 한적한 마을에 살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아버지와 네 자녀가 있었고 그 네 아이들과 함께 민권운동 집회에 참가하곤 하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어머니가 잇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식상해 있던 전형적인 유태인 지식인 가정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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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를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한 장 남아 잇다. 어느 식당에서의 축하모임이엇던 것으로 보인다. 1964년이엇다. 바버라 홀리와 스티븐이 부모와 함께 앞불에 앉아 있고 그 뒤로 이제 갓 열살을 넘긴 낸시와 조나단이 서 잇다. 앨리스 밴드를 착용한 낸시는 가족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잇다. 당시 낸시의 꿈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엇다. 언니 바버라 홀리는 낸시에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이자 삶의 한 본보기엿고 재능있고 열성적인 피아니스트엿다. 나른하고 즐거운 시골 생활이 일년간 이어졌다.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 잇던 시간이엇다. 그런 후 어둠의 시기가 찾아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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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4월 12일 언니 바버라가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당시 열여덟이었다. 바버라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낸시의 부모들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청난 이 사실을 단지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엇다ㅓ.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버라의 죽음을 이웃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엇다. 낸시에게도 사고로 죽은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예민한 낸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었고 깊이 상처받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찾아내는 데 집착하고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불편함이나 따분함, 체면 손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태도는 아마 이 사건에 연원하는 것 같다.낸시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사물들을 대상으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그녀는 미국 정신의 어두움으로 존재하는, 그 ‘꿈’ 뒤에 감춰진 악몽인 당대의 거짓과 물질주의를 가장 미워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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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녀는 싸움에 지친 것 같다. 그녀가 사진경력을 시작할 때 주류는 미술계와 마찬가지로 추상적 구조가 지배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만의 싸움을 해나갓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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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진실만 보는데 지쳐간 것으로 보인다. ‘부두에 서 있는 귀도(1998)’을 보자. “이탈리아 친구 중 한 사람을 찍은 이 사진은 인물과 풍경 간의 대조를 담아내려는 골딘의 새로운 추구를 보여준다. 보다 묵상적이고 부드러운 것에 대한 골딘의 기호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특정한 작업 안에 들어가 잇지 않으면서도 골딘의 야외사진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자연광을 교묘히 이용해 사람의 몸을 순수 추상처럼 묘사해내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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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버 힐 병원의 골든 리버 다리 위에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1998)’를 보자. “최근의 이 사진은 골딘의 자화상과 새롭게 발견한 자연을 하나로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그 안에는 개인의 고독이 묘사되어 잇다. 골딘으로서는 매우 힘겨운 시기에 찍은 이 사진은 배경의 아름다운 금빛과 완전히 대조되는 고통스런 내면으로부터 만들어졋다는데 큰 의미가 잇다. 슬픔과 비밀을 간직하고 잇으면서 동시에 희망과 화해를 암시하고 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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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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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9/8/cover150/893010034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341</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역사의 진실 -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李陵)]</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772174</link><pubDate>Sat, 07 May 2011 15: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7721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782081&TPaperId=477217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19/coveroff/89747820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782081&TPaperId=47721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李陵)</a><br/>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07월<br/></td></tr></table><br/>이책에 대해 안 것은 이책을 감수한 신영복 씨의 책에서 이다. 논어를 다룰 때 이책에 수록된 ‘제자’를 언급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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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주자가 논어집주 첫머리에 인용한 “논어를 읽고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다.”는 정자의 말은 논어를 읽는 방법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말이다. <br />
<br />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인(仁)이라든가 성(誠)이라든가 또는 충, 효 등의 추상적 개념이나 가치가 아니다. 공자라는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진실이다. 공자의 논술이 아니라 공자의 말을 기록한 논어는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했다. 그렇기에 논어의 말은 구체적인 상황이 있고 대화의 상대방이 있다.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누구에게 한 말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공자라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런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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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에 실린 ‘제자’는 그렇기에 논어를 읽는 사람에겐 공자를 이해하려는 사람에겐 가치가 높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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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제자’는 그리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한문고전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에겐 어디선가 읽은 말들을 이어붙인 글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원칙 때문이기도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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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나카지마는 ‘이능’뿐만 아니라 ‘산월기’ ‘명인전’ ‘제자’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술이부작이라는 절제된 필의로 역사의 사람들을 단지 현재에다 생환해 놓는데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해 둔다.” 그러나 그 술이부작은 문학적 상상력의 술이부작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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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좋은 것인가? 사마천은 자문했다. 이렇게 열띤 필치가 과연 괜찮은 것인가? 그는 ‘만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자신이 할일은 ‘논술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그는 논술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생기발랄한 논술 방법이가? 비상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기술이엇다. 그는 때때로 ‘만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이미 쓴 부분을 다시 읽어보고 그것이 있으므로 해서 역사상의 인물이 살아서 움직인다고 생각되는 자구는 지웠다. 그러면 인물은 분명히 생생했던 호흡을 먼춘다. 이로써 ‘만드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면 항우가 항우가 아니지 않은가. 항우도 시황제도 초나라 장왕도 모두 같은 인물이 되어 버린다. <br />
<br />
다른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기술하는 것을 ‘논술한다’고 할 수 있는가? ‘논술한다’란 다른 인간은 다른 인간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되면 그는 역시 지워버린 자구를 다시 살려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래대로 고쳐 다시 한 번 읽어본다ㅑ. 그제야 그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거기에 기록된 역사상의 인물들, 항우나 번쾌, 그리고 범증 등이 모두 이제는 제대로 각각의 자리에 안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br />
<br />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 어떤 고민을 했을지 저자가 상상한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 특히 열전은 역사이기도 하지만 문학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만 기록했다면 사기열전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역사적 사실만 기록하지 않고 그 인물이 되어 그 사람이 했을 법한 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었기에 인물은 더 진실에 가까운 인물이 되었다. <br />
<br />
저자가 이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하려한 것이 바로 그런 일이다. 술이부작하기 위해 창작하는 것. <br />
<br />
이책에 실린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위에서 인용한 사마천에 대한 ‘창작’도 사마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아니다. <br />
<br />
마찬가지로 ‘제자’에서 그리는 자로와 공자에 대한 저자의 인물분석도 새로운 것은 없다. 이책에서 읽는 자로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br />
<br />
“논어 전체를 통하여 자로는 가장 많은 단편에서 그 언행을 보여 주고 잇을 뿐 아니라 그의 두드러진 개성 때무누에 논어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를테면 그가 용기와 신의를 중히 여긴다던가 성격이 직설적이라던가 공자에 대해 종종 불만도 갖는 강한 의협심의 소유자라던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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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공자가 자신에게 하는 대부분의 말이 어떤 커다란 가르침의 일환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공자의 노선과 갈등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로 자신의 타고난 기질이 공자의 세계를 수용하기에는 늘 지나치게 견고하였기 때문이다. <br />
<br />
자로는 적어도 공자가 어떤 측면에서는 소극적이고 옹색하다고 불만스러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결코 그러한 현실적 조건들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했다. 그것은 그가 호방한 사람이엇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이전에 부귀와 공명 등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신념의 사람이었음을 말해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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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성적이고 자기중심이 강한 제자와 공자와의 사제관계는 특별했다. 공자는 자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르침에 있어서 바로 그의 여러 자기 자긍하는 부분을 정면으로 찌르며 그의 가르침을 시도햇다. 따라서 공자가 자로의 장점으로 인정하는 바는 다음 순간 어김없이 비판의 표적이 된다. 공자의 비판을 읽다보면 자로가 어떻게 공자와 각별한 사제의 인연을 유지하며 공문의 중요한 인물로 부각될 수 있엇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자로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미덕이 었었다. 그의 두드러진 미덕인 저으이감이라든가 신의 또는 용기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공자에 대한 아주 특이한 경외심이엇다. 이 경외심은 자로에 있어써 언제나 그 어떤 예감과ㅣ도 같이 늘 그를 사로잡고 있었지만 좀처럼 의식적으로 자각되지는 않았고 그만큼 논어 단편에서도 은미한 모습으로만 나타난다. 자로와 공자의 관계를 이해할 때 이 측면을 놓치면 자로는 거의 희화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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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는 공자라는 이 희유한 인물과의 만남을 그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전 생애를 걸고 이 인물을 돌보고 존중하고 또 그의 진실성을 끊임없이 시험하면서 그와의 이 인연을 유지해갔다. 그러나 정작 그는 위나라 대부 공회의 읍재로 있던 중 위나라의 정변에 휘말려 공자보다 한 해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비극적 최후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길고도 절실한 인연에서 끊임없이 이끌리고 또 끊임없이 달아났던 그는 역시 완전히 끌려들 수도 오나전히 달아날 수도 없었던 그 미묘한 인간적 거리에서 공자와는 크ㅜ게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이수태)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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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게 인용한 것은 자로에 대한 표준적인 이해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책의 ‘제자’는 위의 인용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논술’인 위의 인용에선 느낄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제자’만이 갖는 점이다. 그 느낌은 사기열전을 읽을 때의 맛과 같다. 그 느낌을 신영복 씨는 이렇게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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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하면서도 결코 과열하지 않는 그의 담담한 문장과 함께 그의 작품 도처에서 느껴지는 공간과 여백과 여유가 바로 그 점을 증거로 보여준다. 모든 문학작품의 여백은 곧 독자와 관객들의 창조적 공간이다. 독자들의 몫이고 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때와 장소를 초월해 생환한 역사의 사람들을 삶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이른바 ‘생환의 완성’도 어차피 당대 사람들이 고뇌해야 할 몫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사람들을 살려내는 작업은 곧 역사를 완성시켜 가기 위한 실천이고 또 하나의 창조이다.” <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19/cover150/897478208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782081</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스페이스 태즈메니안 - [유배 행성]</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754502</link><pubDate>Fri, 29 Apr 2011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754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25&TPaperId=475450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3/coveroff/89827390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25&TPaperId=4754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배 행성</a><br/>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06월<br/></td></tr></table><br/>“10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유지할 수 있는 도구는 일정한 수를 넘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도구의 생산과 소비, 양쪽에 모두 최소한의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은 집단의 구성원들은 한정된 종류의 기술만을 배울 것이고 어떤 희귀한 기술을 가르쳐줄 전문가의 수가 충분치 않다면 그 기술은 맥이 끊어질 것이다. 뼈, 돌, 줄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가 살아남으려면 수가 많아야 한다. 진보는 비틀러기다가 퇴보로 바뀌기 쉽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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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퇴보의 가장 두드러진 예는 태즈메니아, 세계의 끝에 있는 섬이다. 이곳에 5,000명도 안 되는 수렵채집인이 아홉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잇다. 이들은 정체하거나 진보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다.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보다 단순한 도구와 생활방식으로 퇴보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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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로지 기존의 기술을 유지할 사람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이들 원주민과 접촉했을 ㅜ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민드에게는 본토의 친척들이 가진 기술과 도구 중 많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늘이나 송곳을 포함해 골각기는 전혀 없었다. 추울 때 입는 의복, 낚시바늘, 자루가 달린 도구, 미늘이 있는 창, 고기잡이 통발, 투창기, 부메랑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기술은 차근차근 가차없이 버려졌다. 예컨테 골각기는 점점 단순해지다 약 3,8000년 전부터 완전히 포기되었다. 골각기가 없어지자 가죽을 기워 옷을 만들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도 거의 벗고 지내야 했다. 피부에는 바다표범 지방을 바르고 어깨에는 왈라비 모피를 걸치는게 전부다.” (매트 리들리)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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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 시리즈 둘째권인 이책에선 태즈메니아인에게 일어난 일이 우주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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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은 오랫동안 적에 맞서 싸울 준비를 했어요. 더 강한 세계들은 더 약한 세계들을 도와 무장을 하고 대비를 하도록 했지요. 지금 우리가 가알에 맞서기 위해 준비하려는 것과 약간 비슷할 겁니다. 마음듣기 역시 그들이 가르친 기술이었고 책에 따르면 온 행성을 다 태우고 별들마저 폭파할 수ㅜ 있는 불무기도 있었다고 해요. 내 동족들은 그 시대에 고향 세계를 떠나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어요. 그들은 당신네와 친구가 되고 당신들이 연맹의 일원이 되고 싶어할지 아니면 적에게 붙으려 할지 알아내고자 했어요. 하지만 적이 왔어요. 내 동족들을 태워온 배는 전쟁을 돕기 위해 왔던 곳으로 돌ㄹ아갔고 우리 중 일부는 세계에서 세계로 말을 전할 수 잇는 ‘멀리 말하기’와 함게 배를 타고 떠났지요. 하지만 일부는 이곳에 남았어요. 적이 올 경우 이 세계를 돕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고 그저 돌아갈 수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지요. 이유는 알 수 없어요. 기록에는 그저 배가 떠났다고만 하니까요. 내 생각에는 조상들은 배가 금세 돌아올 줄 알았던 것 같아요. 그게 10년(지구시간으로 1000년)전의 일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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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이 침략을 받으면서 탐사대가 원시행성에 고립된다. 고립된지 지구시간으로 600년. 탐사대는 멸종의 위기에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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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푸른 도자기 잔은 무척이나 오래된 물건이었다. 다섯 번째 해(지구 시간으로 500년)에 만든 물건이었다. 창문 아래 서가에 꽂힌 수제 인쇄물도 오래디었고 창틀에 끼운 유리마저 낡았다. 그들의 사치품, 그들을 문명인으로 만들어주는 물건, 그들을 알테라로 유지시켜주는 물건은 모조리 옛ㄱ덧이었다. 아가트가 태어난 이후는 물론이고 그 찬참 전부터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기술과 영혼을 지지해줄 에너지나 영ㅍ는 없어진지 오래엿다. 지금 그들은 고작해야 유지하고 지탱해 나갈 뿐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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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아니 문제의 근원은 인구감소였다. “한 해 한 해 최소한 열 세대에 걸쳐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주 완만한 속도로 줄기는 했지만 매번 조금씩 적은 수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들은 규모를 줄이고 한곳에 모였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옛 지식과 옛 관습을 가르쳣지만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삶은 점차 초라해졌고 정교함보다는 간소함에 분쟁보다는 평온에 성공보다는 용기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들은 퇴보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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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에서 온 종족에게 새로운 행성에 적응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생물학적으로. 원주민과그들은 유전자의 한두 분자가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그들은 그행성의 먹거리를 그대로 소화할 수도 없다. 효소를 정기적으로 먹어야 소화가 가능하다. <br />
<br />
“고향 세4계는 태양에 좀더 가까웠고 일년의 길이가 월기(지구시간으로 1년) 한번만큼밖에 안됐어요. 책에서는 그렇게 말하지요. 생각해봐요. 겨울을 다 합쳐서 90일밖에 안된다면 어떨지…” <br />
이말에 둘 다 웃음을 터트렸다. <br />
“불 피울 시간도 없겠는걸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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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행성에서 한 계절은 한 갑자와 맞먹는다. 임신이 되도 유산, 사산되는 비율이 높다. 생물학적인 부적응이 문제인 것으로 추정하지만 방법이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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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느끼던 두려움이 되살아났다. 그는 어른이 된 후 그 두려움에 이유를 붙였다. 그가 태어나고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그 조상들이 스물세 세대에 걸쳐 태어난 이 세계가 그의 고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종족은 이곳에서 외계인이었다. 그들은 마음 속 깊이 언제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먼 곳에서 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조금씩 조금식 장엄할 정도로 느리게 식물처럼 끈기 있는 진화과정을 통해 접지를 거부하고 그들을 죽여갔다. 그러나 배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질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 이 세계에서의 긴 유배와 투쟁도 사기 조각처럼 깨어져 사라질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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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다. 원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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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싫어 당신은 인간이 아냐 당신이 싫다고!” 후에 주인공의 아내가 되는 여자가 그에게 던진 말이다. 두 종족은 자신은 인간이라 부르면서 상대 종족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라고 부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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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프가 뭐죠?” <br />
“우린 당신들을 그렇게 불러요.” <br />
“스스로는 뭐라고 부르고요?” <br />
“인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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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하고 있지만 어쨌든 더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그들이 원주민을 다른 종이라 보는 것은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원주민이 그들을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원시종족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br />
<br />
“이 계획적인 진군은 힐프답지 않았다. 힐프들은 시간이나 공간을 아가트의 종족처럼 선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가하지 안항ㅆ다. 그들에게 시간이란 한 발짝 앞, 한 발짝 뒤에서 빛나는 등불일 뿐이엇다. 나머지는 분간할 수 없는 어둠이엇다. 시간이란 이날, 까마득한 일 년 중 바로 이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역사적인 어휘가 아예 없었다. 그저 오늘과 ‘지난날’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최대한이라고 해봐야 다음 절기밖에 내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바깥에서 시간을 보지 않고 밤의 등불처럼, 몸의 심장처럼 시간 속에 들어 있었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공간이란 경계를 지어놓은 어떤 표면이 아니라 영역, 자아와 씨족과 부족의 중심에 자리한 심장부였다. 영역 주위는 가까이 접근하면 밝아지고 떠나오면 희미해지는 지역들이었다. 멀면 멀수록 희미했다. 하지만 경계선이나 한계선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은 인간이고 그 밖에 있는 사람은 인간일 수없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단순했다. 더군다나 혼혈도 되지 않으니 그들이 서로 어울릴 이유는 없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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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동의 적을 만나면서 그들은 서로 가까워진다. 그리고 600년이란 시간이 그들의 유전자를 바꾸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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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가 뭐라고요?” <br />
“적응한다고. 반응하지. 변한단 말이야! 충분한 압력을 받고 충분한 충분한 세대가 흐르면 유리한 쪽으로 적응하게 되는 법…. 태양 방사선이 결국에는 이 생성에 적정한 생화학적 기준치까지 작용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사산과 유산은 모두 과잉적응이거나 어머니와 표준화된 태아가 서로 맞지 않아서… 이상하군 이상해 이상해…! 이건 이종 교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br />
“다시 듣겠어요.” <br />
‘인간과 힐프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잇다는 얘기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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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7/3/cover150/898273902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2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나는 왜 나인가 - [로캐넌의 세계]</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754492</link><pubDate>Fri, 29 Apr 2011 1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7544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17&TPaperId=475449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3/coveroff/89827390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17&TPaperId=47544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로캐넌의 세계</a><br/>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06월<br/></td></tr></table><br/>“우주에 헤인이라는 곳이 있다. 엄청나게 오래전부터 유지된 문명 세계이며 테라를 비롯하여 은하계 곳곳에 흩어져 잇는 인류 세계는 모두 헤인에 뿌리를 둔다. 수백만년 전에 흩어진 채 고립되어 각기 다른 진화와 적응을 거쳤기에 유전자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엔가 헤인은 다시금 예전의 식민지들을 찾아다니며 탐사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다른 문명과 이방인들기리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헤인 시리즈의 공통 배경이다. 그위에서 각각의 소설은 언제나 거대한 흐름 속에 있는 한 ‘세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배경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일을 겪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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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인 시리즈의 첫권인 이책 역시 그렇다. 이 소설의 무대는 아직 청동기 시대에 불과한 이름없는 행성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행성을 탐사하던 연맹의 조사단이 반란군의 공격을 받는다. 유일한 생존자가 된 로캐넌이 반란군의 위치를 연맹에 알리기 위해 대륙을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고 고난 끝에 연맹에 반란군의 좌표를 알려 소탕한다는 내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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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설의 매력은 그 뻔한 모험 스토리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 모험의 무대가 흥미롭다. 이 행성의 원주민은 세 종족으로 그들이 만드는 세계는 북구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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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인 지하종족은 드워프, 그들의 사촌으로 엘프(원래 북구신화에 나오는 귀여운 요정족에 가깝다)를 연상시키는 피아족, 그리고 인간과 거의 같은 전사종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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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를 떠올리는 피아는 언제나 유쾌하다. “’할라의 신부, 키리엔 레이디, 바람의 딸, 아름다운 샘레이 만세!’ 그들은 그녀에게 사랑스러운 이름들을 선사했고 그녀는 그런 이름을 듣는 것이 좋았다. 모두가 웃고 잇다는 데는 신경쓰지 않았다. 피아는 말을 하면서 늘 웃었다. 말을 할 때는 말만 하고 웃을 때는 웃기만 하는 건 그녀의 방식일 뿐. 푸른 색 긴 망토를 입은 그녀는 소용독ㄺ이치는 환영 속에 우뚝 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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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무해한 종족. 그러나 연맹의 입장에선 쓸모가 없다. 연맹은 그들의 사촌인 대장장이 두더지들, 그데미아르를 선택했다. 연맹의 목적에선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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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그런 종족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 행성에 왔다. 연맹의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모든 세계의 연맹은 이;런 식으로 결정적인 적과의 대면을 준비했다. 백여개의 세계가 훈련을 받고 무장을 했으며 천여개의 세계가 강철과 바퀴와 트랙터와 원자로의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 직업이며 확실히 뒤떨어진 세계 몇 곳에 살아본 힐퍼 로케넌은 모든 것을 무기와 기계 사용에 거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의심스러웠다. 켄타우루스, 어스(지구), 세티의 공격적인 도구 사용 인류들이 선도하는 연맹은 지성 생명체의 특정 기술과 능력과 잡재력을 경시했고 너무 편협한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해 왔다. 너무 많은 것을 훼손했고 그 결과 이제 반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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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피아를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은 유쾌할 뿐 무력햇다. “피아에게는 검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적도 없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도 서로에게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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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마을에 있는 다른 피아의 마음은 들을 수 있나?” <br />
“약간은요. 그들과 함께 산다면, 아마도요… 우리는 마을의 일원이 기억하는 것은 모두가 기억해요.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와 속삭임과 거짓과 진실을 알아요. 그중에 어떤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가 없지요.” <br />
<br />
“쿄, 동족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이름은 없었나?” <br />
“’목동’이나 ‘어린 형제’라고 아니면 ‘달리는 아이’라고 불렸지요. 달리기를 잘햇으니까요.” <br />
“하지만 그건 별명이잖아. 설명하는 말이지,… 올호르나 키에므리르처럼. ㅍ피아는 뛰어난 작명가들이야. 찾아오는 사람마다 별명으로 인사하지. 스타로드, 검을 가진 이, 태양의 머리카락, 언어의 대가라는 식으로…. 안기야르가 별명 붙이기를 젛아하는 건 피아에게서 배운 것같아. 그런데 정작 본인들에겐 이름이 없군.” <br />
<br />
내가 너가 너가 나이며 아버지가 나이고 할아버지가 나이고 증조부가 나인 존재.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듣는 존재. 그런 존재는 개인으로서 감정을 갖지 못한다. <br />
<br />
주인공은 마음을 듣는 능력을 얻으면서 피아들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엿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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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캐넌의 머리는 낯선 생각과 느낌들의 파도, 머릿 속에서 웅성대는 천여명의 이방인들로 빙빙 돌았다. 외부인들이 일컫는 말이엇다. 그가 ‘듣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긴장, 욕망,ㅡ 감정, 신경 체계를 엉클어놓고 이리저리 겹치는 수많은 사람의 실제 위치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감각의 방향, 무시무시한 공포와 질투의 회오리, 표류하는 만족감, 잠의 심연, 반즘 이해하고 반쯤 지각한 거칠고 괴로운 혼란 상태 같은 것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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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런 상태를 견딜 수 없다. 주인공의 후대에 그 능력이 전해지면서 그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론이 정립된다. 재능을 나고 난데다 훈련까지 받은 사람들은 머 거리에서도 상대방이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그 마음을 엿을 수 있었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누구든 그들의 두려움이나 기쁨을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죠. 마음듣기가 그보다 많은 것을ㄷ 알아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어를 동해 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면 보통은 뭔가 듣고 있다는 걸 알기도 전에 마음을 닫아버리;죠. 특히 들리는 말이 스스로가 ㅇ원하거나 믿는 게 아닐 떼에는 더 그렇고. 비전달자들은 보통 완벽한 방어막을 갖고 있어요. 사실 비언어소통을 배운다는 것은 주로 어떻게 방어막을 내리는가를 배우는 작업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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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능력을 얻은 주인공은 변했다. “’당신의 동족은 당신을 찾으러 오지 않나요?’ ‘올지도 모르지요. 8년 후에 말입니다. 죽음은 한순간에 오지만 삶은 그보다 훨씬 느리지요. 나는 산맥 속 샘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르기고 다시는 내 적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잇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군요.” 개인으로선 반쪽이며 그들의 감정 역시 반쪽인 피아만이 마음을 듣고도 멀쩡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나 유쾌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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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는 두려운 것ㄹ은 기억하지 않아요. 왜 그래야 하죠? 우리는 선택하지요. (그데미야르와) 둘로 갈라졌을 때 우린 밤과 동굴과 금속의 칼은 진흙족에게 남기고 푸른 계곡과 햇빛, 나무 그릇ㅎ을 택했어요. 그래서 우린 반족 인간이죠. 그리고 우린 잊어버렸어요. 너무나 많이 잊어버렷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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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고 파악하기 어려우며 아득하고 이상한 작은 사람들. 켜는 제 동족을 반쪽 인간이라 물렀다. 하지만 쿄 자신은 더 이상 완전한 그들의 일원이 아니었다. 그들이 준 새 옷을 입자 모습도 같아 보엿고 움직이는 것도 비슷했지만 그래도 그들 사이에서 쿄는 외따로 떨어져 서 있었다. 그건 그가 자유로이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이방인이라서였을가. 아니면 고캐넌과의 우정을 통해 그가 변했고 그래서 좀더 고독하고 좀더 슬프며 좀더 완전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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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지상을 지배하는 종족은 안기야르, 전사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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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적이 자식 없이 죽기를’ 할란의 안기야르 전원이 모여 억수 같은 비유와 격한 과장법을 쏟아내 가며 적을 파멸시키고 절멸시키겠노라 맹세하고 있었다. 안기야르, 그들은 허풍쟁이들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며, 자부심 강하고 완고하고 무식할뿐더러 ‘할 수 없다’는 동사에 해당하는 일인칭 표현을 아예 갖고 잇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전설 속에는 신이 나오지 않았다. 오직 영웅들만 있을 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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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을 타고 하늘을 나는 전사인 그들은 영웅시대를 살고 있었다. “차가운 분노에 휩싸여 사람을 죽이려다가 바로 다음 순간 친절하게 말을 걸다니 얼마나 묘한 존재인가. 오만함과 충실함, 무례함과 친절함. 그 지극한 부조화 속에서 모지언은 진정 군주다웠다.” 안기야르의 귀족만 그런 것은 아니엇다. 노예들 역시 자부심이 드높았고 그들 역시 영웅시대를 살고 있었다. 그들은 주인을 선택할 때 이렇게 맹세한다. “제 주인께 제가 살아 잇는 시간과 제 죽음을 바치나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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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운명이 중요치 않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두발로 서는 자인 안기야르는 모든 것에 당당하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두발로 걷기에 당당하다. 그렇기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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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나는 찾는 것을 평원에서 보았지요. 산맥을 넘기 위해 길을 찾는 중에도 두 번 보았습니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의 죽음이란 말입니까? 너의 것이겠느냐, 야한? 네가 두번째 검을 찬 군주, 안기야르였던가? 로카난ㄴ의 것일수도 없지. 그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으니. 사람은 어니서나 죽을 수 있지만 군주가 자신만의 죽음, 진정한 죽음을 만나는 건 오로지 자신의 영지에서뿐이야. 전장이든 홀이든 길 끝이든, 진정한 죽음은 군주의 영지에서 기다리지. 그리고 이곳은 나의 땅이다. 이 산맥에서 나의 동족이 왔으며 내가 이곳으로 돌아왔으니 나의 두번재 검은 싸우다가 부러졌지. 하지만 들으라, 나의 죽음이여. 나는 할라의 후계자 모지언이다. 이제 나를 알겠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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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7/3/cover150/898273901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73901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스페이스 베트남 - [영원한 전쟁]</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692633</link><pubDate>Mon, 04 Apr 2011 1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6926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71367&TPaperId=469263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9/65/coveroff/89895713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71367&TPaperId=46926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원한 전쟁</a><br/>조 홀드먼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1월<br/></td></tr></table><br/>“차라리 우울한 편이 나았을텐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따지고 보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한 파멸인 것이다. 우리들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한 번 이상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이었다. 전투당 평균 생존율이 34%에 불과한 전쟁에서 말이다. 만약 행운 따위를 믿는다면 옛날에 이미 다 써버렸다고 해야 옳지 않겠는가.” <br />
<br />
미래로 끝도 없이 뻗어진 전장에는 아무 희망이 없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오면 훌쩍 몇십년, 몇백년이 흘러가버렸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수백년이란 시간에 언어조차 녹아내려 영어는 영어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어 있고 문화도 달라져 있다. 인구를 조절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해 동성애자로 만들어놓고 이성애자는 변태가 된 세상, 더 이상 아이를 사람이 낳지 않고 기계가 낳는 ‘멋진 신세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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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알 수 없다. 천년을 넘은 전쟁을 치르며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전투와 전투 사이의 길고 긴 훈련과 대기, 짧고 무의미한 살육과 죽음, 그리고 또 대기. “전쟁은 어땠나, 친구?” “대부분 지루햇지. 지루하지 않았을 때는 두려웟어.”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어차피 아는 이도 없는 이 우주에서? “오 다이애나! 다음 항구에 닿을 때 최고급 스카치를 한 병 선물하게 해 다오. 700년 후의 얘기가 되겠지만.” <br />
<br />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인류를 토오란이란 외계인으로부터 지킨다고 하지만 전투는 태양계 밖에서, 지구에선 보이지도 않는 은하 구석 또는 마젤란 성운의 황폐한 혹성에서 치뤄지고 그 전투를 기억해줄 전우마저 적의 손에 상대성의 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무의미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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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전쟁을 하고 있었던 나라의 국민은 언제나 전쟁과 밀접한 접촉을 유지하고 있었다. 신문은 전쟁 기사로 가득 차고 제대 군인들은 전선에서 돌아왔다. 때로는 그들의 고향이 전선으로 변했고 침략자들이 자기집 앞을 행군하는 것을 보거나 밤중에 폭탄이 쉭쉭거리며 덜어지는 소리를 들어야 햇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를 향해 가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패배를 늦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적은 손으로 만질 수 잇는 실체엿고 선동가가 만들어낸 이해가능하고 증오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br />
<br />
그러나 이 전쟁은… 적이란 모호하게 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생명체엿고 악몽이라기보다는 만화영화의 중인공에 더 걸맞았다. 전쟁이 모국에 끼친 영향은 주로 경제적인 것이엇고 감정적인 영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금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나는 식이엇다. 22년만에 제대해서 돌아온 군인이라고는 27명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시가행진을 하기에도 모자라는 수였다. 절대 다수는 이 전쟁이 갑자기 끝나면 지구 경제가 붕괴하리라는 생각밖에는 하고 잇지 않았다.” <br />
<br />
무의미함에 질려 지구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곳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무의미한 전쟁에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위로해줄 고향은 거기 없었다. 결국 갈 곳은 익숙해져버린 무의미한 전장뿐. <br />
<br />
“필사적으로 즐겼던 것이다. 전쟁의 양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3년 후까지 우리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미에 가까웠다. 우리는 치명적인 병에 걸렸지만 놀랄 정도로 건강한 병자였고 일생동안 느낄 감각을 반 년 안에 경험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위안이 있기는 햇다. 남은 여생이 아무리 짧더라도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은 함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기억에만 있는 20세기를 공유하는, 우주에서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잇는 유일한 연인을 빼앗겨야 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취하는 것뿐. <br />
<br />
“괜찮아. 약을 먹었거든.” <br />
“그래. 나도 정말 행복해.” <br />
나도 아까 내 약을 삼켰다. 판단력을 잃는 일이 없이 낙천적이 되는 약이란다. 우리들 대다수가 조금 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왠일인지 그다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br />
<br />
무의미함을 견디고 전쟁의 끝을 보았다. 그러나 전쟁의 끝에서 본 것은 그 전쟁이 아무 명분 없는 농담이엇다는 것뿐. “1143년간 계속된 전쟁은 허위에 의해 시작되었고 두 종족 같의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했던 고로 계속되엇다. 처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을 때 제일 먼저 나온 질문은 “왜 너는 그런 일을 시작했지?’였고, 대답은 “내가?’였다.” <br />
<br />
전쟁의 이유는 있었다. 우주선이 사고를 당해 사라졋고 군인들은 적대적 외계인의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받은대로 돌려주었다. 그렇게 전쟁은 천년이 넘게 지속되엇다. 그 끝은 무의미일 뿐이엇다. 그러나 무의미의 끝에는 구원이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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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 />
“2878년 10월 11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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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에게, <br />
이 편지를 당신의 인사 파일 속에 넣어 둡니다. 하지만 당신 성격으로는 읽지도 않고 내버릴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 꼭 당신 손에 전해달라고 못박아두었습니다. <br />
<br />
보다시피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일 줄 압니다. 내게로 와 줘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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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보고 당신이 사데-128로 가 있고 몇 세기 후에나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문제없어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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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들 핑거라는 행성으로 갑니다. 그곳으로 가려면 콜랩서 점프가 두 번 필요하고 주관 시간으로는 10개월 걸립니다. 미들 핑거는 이성애자를 위한 일종의 도피처 같은 곳입니다. <br />
<br />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아요. 내가 가진 돈 전부와 다른 제대 군인 다섯 명의 전재산을 털어서 UNEF의 순양함을 샀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타임 머신으로 쓰고 있습니다. <br />
<br />
그래서 나는 상대성 이론적 셔틀을 타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유일한 목적은 매우 빠른 속도로 5광년을 나아간 다음 다시 미들 핑거로 돌아오는 일입니디ㅏ. 나는 십년에 한 달의 비율로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아직도 살아 있고 예정대로 돌아온다면 당신이 도착할 때 나는 스물여덞살이 되어 있을겁니다. 빨리 와줘요! <br />
<br />
지금까지 다른 남자를 만나지도 않았고 다른 남자 따위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아흔 살이건 서른 살이건 상관하지 않아요. 당신의 애인이 될 수 없다면 당신의 간호부가 되겠어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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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게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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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영향을 무위로 돌리려는 역습에는 역사를 다시 쓰는 일도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했던 것ㅇ른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미국의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겪은 일들이 그들과 유리된 채 뭔가 다른 것으로 변잴도앴다. 참전군인들은 위험하ㅣ고 폭력적인 존재라는 것이 헐리우드의 일반적인 묘사방법이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영화들이 ‘택시 드라이버’, ‘람보’, ‘커밍 홈’이다. 그리고 다른 수십편의 B급 영화들도 마찬가지로 참전군인들을 위험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그들은 정신과 의사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병을 발견하고 그런 사람들의 기억을 ‘환각 재현’이라고 부르기 훨씬 전부터 영화로 재현된 과거지사를 떠올리며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헐리우드의 선전 요지는 재향군인 병원 정신과 의사들의 선전 요지와 같았다. 사병들의 폭력적 욕구가 베트남 전쟁이 폭력으로 치달은 원인이라는 것이다. <br />
<br />
사병들이 명령을 받아 잔혹한 일을 저지르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았고 전쟁 전략이 소모전이었으며 마침내 사병들이 교전 행위를 거부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잔혹성을 사병들 탓으로 돌리며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다. <br />
<br />
미국인들이 그 전쟁을 잔인한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헐리우드는 전쟁의 잔혹성ㅇ에 대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햇다.” (조너선 닐)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9/65/cover150/89895713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7136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기억의 울림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630081</link><pubDate>Mon, 14 Mar 2011 14: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630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9015&TPaperId=46300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1098/1/coveroff/89509290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9015&TPaperId=4630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a><br/>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1년 03월<br/></td></tr></table><br/>레베카 피죤(Rebecca Pidgeon)은 가수보다는 배우로서 더 기억된다. 재미있게도 가수로서나 배우로서나 그녀의 분위기는 유사하다. 우아하면서 자연스러운 외모처럼 가수로서 그녀는 거부감 없는 특유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그녀의 미성은 고급 클럽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갖는다. <br />
피죤의 대표곡처럼 되어버린 'Spanish Harlem'은 오디오파일용 테스트 음반에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다. 그러나 그곡은 그녀가 쓴 것이 아니라 Ben E. King이 처음 부른 곡으로 끊임없이 커버되는 곡이다. <br />
<br />
이 곡의 주제는 거리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이다. 베니 킹이 부른 원곡은 삭막한 거리에서 장미를 발견한 순간의 놀라움과 기쁨에 초점을 맞추며 리듬은 정서에 맞게 밝고 동적이다. <br />
그러나 피죤은 가사는 그대로 두고 곡의 정서의 시제를 현재에서 과거로 옮긴다. 피죤의 커버는 살아있는 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책갈피에 박제된 장미를 보고 그 꽃이 살아 있을 때를 회상하는 것 같이 느껴지며 그녀의 건조하고 사색적인 쿨 재즈적 리듬처럼 정서적으로 정적이고 차갑다. <br />
<br />
두 곡 중 어느 것이 아름다운가 물으면 누구나 피죤의 곡이 월등히 아름답고 말한다. 왜일까? 정서의 승화 때문이다. <br />
<br />
피죤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가사가 아니라 우아하게 변형된 멜로디나 리듬과 같은 음악형식의 아름다움에 의해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주제의 간접화는 보컬 정서의 억제로 구현되면서 아름다움이란 주제는 현재가 과거로 옮겨진다. <br />
<br />
탐 맥크래( Tom McRae)는 음악이란 나비를 박제하듯 살아 움직이는 삶을 순간에 고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회상적이며 슬플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br />
<br />
이상하게도 좋은 음악, 뛰어난 음악은 압도적으로 회상적이다. 시간이 박제된 음악. 그런 음악의 매력은 듣는 이를 끌어당기는, 깊은 내면에서 끌어올려진 정서이다. 그러나 기쁨은 깊이 가라앉지 않는다. 내면의 깊이에 잠긴 감정은 슬픔이 대부분이며 그렇게 끌어올려진 감정은 깊은 울림을 갖는다. <br />
<br />
(요즘도 교과서에 실리는지 모르겠지만) 황순원의 소나기는 문학에서 그런 울림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그 단편을 아름답게 만들고 정서적 울림을 갖게 하는 힘이다. <br />
<br />
이 단편집은 그런 울림을 갖는 기억을 이야기한다. “마음은 그 주인이 마음먹은 대로도, 마음먹고 싶은 대로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놓아버리고 싶어도 놓지 못하고(구멍), 버티려고 해도 무너지고(코요테),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아술), 잘하고 싶어도 잘되지 않고(아술), 곁에 남고 싶어도 떠나게 되고(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어렵고(강가의 개), 잡을 수 잇는데 잡아주지 못하고(외출), 입으로 말을 해도 귀로 듣지 못하고(머킨), 나아가고 싶은데 뒤돌아보게 되고(폭풍), 안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고(피부), 보며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코네티컷).” <br />
<br />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잃어버린 것들과 그 상실의 기억을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특별하지 않다. 어릴 적 죽마고우의 죽음, 무능력한 아버지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어머니의 결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결핍의 대리만족, 두 남자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햇던 여자의 상처, 용기가 없어 떠나보낸 어릴 적 사랑에 대한 후회, 어릴 때 죽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방황. <br />
<br />
있을 법한 왠만한 사람이면 하나쯤은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이 단편집에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극적인 스토리가 없다. 죽으면서 관속에까지 가져가야할 아름다운 기억도 없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평범하다. <br />
<br />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갖는다. 피죤이 베니 킹의 드라마틱한 원곡을 평범하게 바꾸었기에 더 아름답게 되었고 더 깊은 울림을 갖게 된 것처럼. 이 단편집의 이야기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것이기에 울림을 갖는다. <br />
<br />
평점 4.5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1098/1/cover150/895092901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901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거리두기의 시선 - [셰익스피어 인간학 - 셰익스피어, 인간의 본성을 그리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563986</link><pubDate>Fri, 25 Feb 2011 16: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5639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48&TPaperId=456398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58/93/coveroff/89921146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48&TPaperId=45639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셰익스피어 인간학 - 셰익스피어, 인간의 본성을 그리다</a><br/>오다시마 유시 지음, 장보은 옮김 / 말글빛냄 / 2011년 01월<br/></td></tr></table><br/>브레히트의 무대는 특이하다.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든가, 날카롭고 밝은 조명으로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든가 액션 중간 중간에 노래를 집어넣어 흐름을 끊는다든가 리허설 중에 대본의 말을 삼인칭이나 과거시제로 바꿔 쓴다든가 연출이 배우보다 더 큰 소리로 지시한다든가 등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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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무대의 이런 특이함은 의도적이다. 브레히트는 예술을 위한 예술에 반대했다. 그는예술은 정치적 행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현실을 보여주어 관객이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연극의 전통은 그런 생각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브레히트는 생각했다.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면서 감정적이 된다. 그래서는 이성적으로 현실을 볼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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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무대와 관객을 띄워놓기 위해 기괴하달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기법을 거리두기 효과(소외효과로 잘못 번역되기도 하지만 거리두기가 맞다)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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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이 되면 브레히트는 그저 사실적 리얼리즘으로 남는다. 즉 일상생활을 2시간만 잘라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점을 가진다. 이때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는다. 현대극은 바로 거기에서 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을 전부 바라보려는 입장이었다. 인간을 전부 바라보고자 한 시점에서 이미 셰익스피어는 현대적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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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무엇이 현대적이라는 것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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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의 시선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시선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눈, 당사자가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자유의 눈”이라 저자는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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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말을 들어보자. “유대인은 눈이 없고 손이 없소? 오장육부가, 사지가 감각, 감정, 정열이 없단 말이오? 예수쟁이들하고 뭐가 다르오? 같은 음식을 먹고 칼로 찌르면 상처가 나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으로 치료하면 낫고 똑같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데,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오? 찌르면 피 한 방울도 안나고 간질여도 웃지 않고 독약을 먹여도 우린 죽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아무리 심한 짓을 당해도 복수란 하면 안 된다는 것이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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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이 자신의 정당성을 외치는 말이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보면 샤일록 역은 그 극단에서 가장 관록있고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맡는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며 극중에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고 비중이 커진 것은 셰익스피어가 극본을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위의 대사처럼 유대인의 진실을 담았기 때문이다. 샤일록이 주인공이라면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비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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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반유대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셰익스피어 역시 유대인에게 동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면 셰익스피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올 수 있었고 샤일록 같은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는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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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한 인물을 표현할 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묘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주인공은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물이고 악역은 그 반대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인간을 그려내는 방식은 샤일록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도 기독교인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고 그의 내면에서 외치는 절규까지 묘사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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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무대에선 “그 어떤 조연이건 악역이건 간에 대사를 하고 있을 때는 주인공이라는 의식, 즉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극작가들은 주연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단역에게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왕이건 시민이건, 정원사이건 대사를 할 때는 세상의 중심에 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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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셰익스피어의 시선을 저자는 한발 물러서서 보는 눈, “리얼리즘의 눈”이라 말한다. “그 반대는 이상주의이며 인간의 좋은 부분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며 “부정적인 면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도 포함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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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사실주의는 그의 작품에 “인간미가 넘치는 따듯함과 재치”를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얼리즘과 유머의 일체화는 셰익스피어가 가진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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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헨리 4세’에 나오는 폴스타프를 예로 든다. 헨리 5세가 되기전의 왕자 할의 술친구이다. “나쁜 짓이라면 워든 좋아하는 주제에 한편으로는 겁쟁이다. 그는 반란군과 맞서 싸워야 할 때 ‘술자리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지만 전쟁터에는 가장 마지막에 가지.’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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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는 가장 마지막에, 술자리에는 가장 먼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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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겁쟁이 무사와 식충이를 유지하는 비결이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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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당대의 연극을 지배했던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기사에게는 전쟁터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으로 그려진 기사 폴스타프는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인물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다. 왜일까. 바로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하는 말만 들어서는 허황된 소리만 하는 것같지만 그의 전체적인 삶을 보면 바로 같은 면이 많아도 결국엔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진면목이다. 인간은 이상적인 모습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식의 유머이다. 한발 물러서서 그 모든 걸 바라보면 사람이 다 이런 거지 하고 느낄 수 잇는 따뜻함, 바로 거기에서 유머가 생겨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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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얼리즘은 그의 삶과 그의 시대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읍장을 지낸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기에 부잣집 도련님으로 유년기를 보낸다. 그러나 소년기에는 아버지의 파산과 함께 모든 것이 달라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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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셰익스피어가 마을을 걷고 있으면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웃음을 보였다. 사람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년기가 되어 집안이 몰락하자 갑자기 모든 이들이 외면하고 등을 돌린다. 겉으로는 웃고 잇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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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에 내재된 인생관과 인간관은 ‘인간에게는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다. 인간에게는 겉모습이 잇으면 속마음도 있다’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런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을 “겉보기와 진실의 문제’라고 부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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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의 경험에서 셰익스피어가 배운 것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교훈이 아니었을까 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교훈은 종교개혁으로 신앙이 흔들리던 시절,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흔들리더 시절의 분위기로 더 깊어졌을 것이다. 선과 악의 절대기준이란 없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선과 악이 떠도는 셰익스피어의 무대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저자는 짐작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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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자신이 놓인 구체적 상황 속에서만 생각한다.그것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의 철칙이다.” 셰익스피어의 무대에선 셰익스피어는 사라진다. 오직 대사를 가진 등장인물만 잇을 뿐이다. 그의 무대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필자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는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며 새로운 철학을 설명하는 자도 아니다.” 그저 있을 법한 인간을 보여주면서 “공감하기 쉬운 내용으로 ‘나도 그렇다’라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처럼 슬퍼하고 잇는 사람이 주변에도 많다고 위로를 해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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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셰익스피어는 그런 시선을 가졋었기에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극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셰익스피어의 세일즈맨’이 되기로 했”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58/93/cover150/899211464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114648</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가을의 판타지 - [더 송 이즈 유 The Song is You]</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482575</link><pubDate>Sun, 30 Jan 2011 19: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4825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4870&TPaperId=448257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46/79/coveroff/89727548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4870&TPaperId=44825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더 송 이즈 유 The Song is You</a><br/>아서 필립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2월<br/></td></tr></table><br/>카펜터즈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곡은 아마도 '슈퍼스타'일 것이다. '슈퍼스타'는 순회공연 중인 팝 스타와 팬의 하루 밤 불장난이란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노래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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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의 음악을 당시 평론가들은 아이스크림 음악이라 불렀다. 쉽게 듣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카펜터즈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평이다. 그러나 그런 평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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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의 경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리차드는 그 곡에 밝고 장난스러운 피아노 반주를 입혔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리차드의 편곡은 캐런의 깊게 가라앉은 보이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곡의 편곡에서도 캐런의 우울한 보이스는 무시된다. 진부하고 맥 빠진 단조의 바다에서 과묵한 캐런의 탄식은 묻혀버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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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의 내면과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잡아낸 것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슈퍼스타' 커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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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란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캐런과 소닉 유스는 알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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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타는 이렇게 달콤하고 맑게 울리는데 당신은 여기 없고 라디오만 있군요." 캐런은 한 때의 불장난을 배신감으로 해석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의 드라마로 바꾸었다. 소닉 유스의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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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톱을 긁는 것 같은 전자기타의 비틀린 피드백, 신디사이저의 화이트 노이즈, 고음과 저음을 거세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에 대고 말하는 유령 같은 보컬은 (팝스타라는 환상을 쫓는) 스토커의 불길한 갈망을 그린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코러스를 무어가 부를 때면 섬뜩하다. 소닉 유스가 보여주는 것은 카펜터즈 음악의 진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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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당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캐런이 잡아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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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50을 바라보는 늙은 팬과 팝스타의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를 다룬다. 자기 나이의 반에 불과한 여자와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 사이의 관계는 결핍의 관계이다.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보는 것은 젊음의 활기이다. 젊은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보는 것은 또래에게는 볼 수 없는 어른의 안정감이다.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 보는 관계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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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관계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케이트가 줄리언에게 본 것은 이런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얼굴이 있었다ㅓ. 아주 멋진 얼굴, 세상을 아는 남자의 얼굴이엇다. 그의 얼굴과 자세에서는 어쩐지 자신감에 넘치는 힘이 느껴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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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연상/연하의 함수에 이 소설의 관계는 팬과 팝스타라는 변수가 더해지고 그렇게 더해진 변수 때문에 그들의 방정식은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팬과 팝스타의 관계는 판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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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노래했다. 어떤 감정이든 주문만 하면 또렷한 윤곽선의 반짝반짝 윤나는 축소모형으로 제조하고 전시해낼 수 있었다. 실연을 회상하고 나서 회상을 순수하게 증류한 노래를 불러, 결국 줄리언(과 백명도 훌쩍 넘는 남자들과 여자들)으로 하여금 그 아픔의 근원을 혼쭐내주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차라리 자신이 아픔의 장본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케이트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청중이 느끼게 하고 이미 느껴보고도 모르는 감정을 실감하게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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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은 팬과 팝스타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이어준다. “그녀는 딜레마를 맞았다. 성공하려면 그녀와 그녀의 감정들이 진실로 공명해야 하고 군중들로 하여금 말 그대로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지게 해야만 한다. 그녀의 밥벌이라는게 그런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안에 의존하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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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들과 비현실적인 미모를 광고 이미지로 박제하는’ 환상을 다루는 CF 감독으로서 줄리언은 그런 팬과 스타의 관계 역시 자신의 직업 만큼이나 무의미한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캐런 카펜터가 포착한 ‘지독한 상실감과 무의미와 단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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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년도 저물어가는 줄리언에게 삶은 ‘상실과 결핍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던 아들이 떠나면서 행복한 결혼도 끝나고 왕성한 성적 활력도 잃어버린 초라한 자신. 상실과 결핍을 직시하기에는 무의미에 시달리는 줄리언. 그는 끔찍한 현실을 환상에서 해소하려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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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트의 목소리는 “줄리언 속에서 진하게 버무려져 굳은 정서-회한, 희망, 슬픔, 흔들리는 야망, 갈망-를” 휘저어 “그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그 목소리 없이는 차마 이렇게 응축된 감정이 이토록 넘칠 수는 없었다. 이제 나이 든 줄리언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인지 잘 알고 잇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묵 속에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밝혀주는 그 목소리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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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케이트인가 케이트의 목소리인가? 그녀에게 다가가길 망설이는 이유다. “지금쯤은 알 만도 한데 또 한번 음악의 미망에 이끌려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만” 것은 아닌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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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은 한때 스타엿으나 이제는 몰락한 눈앞의 개자식을 본다. “케이트는 어떤 면에서 이 바보와 아주 똑같았다. 그들은 다 불행하게도 그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마법사와 주술사들은 케이트가 그를 한다는-어떤 면에서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잇다는-소중한 느낌은 환상일 뿐이다. 그뿐 아니라 야심이 있는 공연자가 매니저와 시장 고문과 커리어 플랜 등을 가지고 진부하게 끼워맞춘 가공되고 조작된 환상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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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진짜배기들, 순수한 이들은 죽은 이들이었다. 죽은 가수의 레코딩은 기술의 개입이 적을 뿐 아니라(따라서 정서적으로 더 믿을 만햇다) 하잘것없는 인간성이 모조리 폐기처분된 후 테이프에 오롯이 순수성만 남았기 때문에 다르다.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가 되어서도 사춘기의 감정을 노래하고 당신의 고통에 아이러니한 웃음을 반복해서 날리고 또 날리고 그러면 작위적인 구조물이 된다. 줄리언이 돈 때문에 하는 일보다 중요할 게 없는 아니 심지어 그보다 더 하찮은. 그런데 케이트는 그에게서 연료를 얻고 싶어 했던가? 그의 가치를 증명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랐던가? 신선한 감정과 경험을 갈구하는 그 만족을 모르는 허기를 채워달라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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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받는 스타와 누구보다 스타를 잘 이해하는 팬으로서 둘은 서로를 절실하게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는 이유는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그들의 관계를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관계로 만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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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팟의 목소리만 있는 케이트와 현실에 몸을 가진 케이트의 거리를 환상으로 메운다. “그 여자가 한 사람으로서 그 여자 자체가 이런 기분이 들게 햇다. 그러니 어쩌면 칼턴(죽은 아들)이 이미 박탈한 과거나 미래에서 온 달콤씁^쓸한 고문이 아니라 그의 삶에 현전하는 기쁨이라 느낄 수 잇게 해줄지도 모른다. 삶에 케이트가 잇다면 자유롭고도 구속받는 젊고도 늙은 기쁘고도 서글픈 그리고 용서받은 사람이 될 수 잇다 믿을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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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여자는 그런 여신이 될 수 없다. 결혼도 해봤고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 그것을 알만한 나이가 된 그는 자신의 환상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애써 무시하기에 줄리언은 케이트에게 다가가 현실의 남자가 되는 것을 망설인다.“그냥 전화를 걸어버릴 수 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를 원했다. 그러나 하루가 또 하루가 지나도 그냥 전화를 걸지 못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저항하는 자기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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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줄리언에게 그의 아버지가 들려주던 동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수도승은 그에게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제 슬픔을 잊었어요.’ 토시로는 항의햇다. “그 때가 바로 행복이 끝나야만 하는 때다.” 수돗6ㅡㅇ이 말햇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토시로가 우겼다. “아니다.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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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줄리언에게 케이트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 빨리 대답해요. 음악 따위 언급도 하지 말고, 어째서 나를 쫓아다녔는지. 내 안에서 어떤 깊이를 보았는지. 하지만 음악 얘기는 하지도 말아요. 지금 당장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들이 좀 있어요.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얘기들이겠지만. 아니면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남아 잇을까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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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걸 모으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녀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그의 기대에 못미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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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깨닫는다. “실망하고 화가 난 그녀는 그 같은 남자들에게 작고 어리고 재미없고 뻔”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일 수 없엇다. “그녀는 그만두엇다. 완성된 최종본은 워라고 해야 할까? 음률이 맞지 않을 터엿다. 전혀 말이 안되는 코드 진행이엇다. 부모, 아기, 자란 아기, 더 자란 아기, 케이트. 오늘 밤 무대에서는 세상 만물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기분이엇는데 지금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망치고 잇다는 느낌이엇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난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46/79/cover150/8972754870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4870</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The Anxiety of Influence - [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462070</link><pubDate>Sun, 23 Jan 2011 2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4620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48519&TPaperId=44620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44/23/coveroff/8989548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48519&TPaperId=44620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a><br/>김영진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01월<br/></td></tr></table><br/>평전이란 제목이 붙은 이책의 내용은 평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책은 물론 백석이란 인간의 생애를 다루지만 이책의 관심은 백석이란 인간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백석이며 백석이라는 시인이 만든 세계가 한국의 근대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추적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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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백석의 시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를 민족정신에서 찾는다. 김소월을 배출하기도 했던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는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었다. 그 학교를 다닌 백석은 한민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고 시를 쓰는 것을 민족운동으로서 의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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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석의 시는 얻은 것은 이념이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던 당시 사회주의 예술과는 달랐다. 백석은 민족은 그 언어에 살아있다고 생각햇으며 언어를 갈고 닦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저자는 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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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말을 오해 보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나라 문학을 높은 수준에 올리는 것이다.” 백석의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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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그 가능성을 자신의 시에 담는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좋은 예는 백석 시의 음악성이라 저자는 말한다. “바로 백석의 시는 시 그대로 노래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제자 강소천이 동요를 짖게 된 것이라는 점을 말씀해셨다. 백석의 시는 조선 말기의 판소리 어법과 맞는 형식이기도 하고 고려 말기에 존재한 외치는 소리 혹은 들판의 소리로도 불리는 사대부 집안의 한글시와도 유사하다고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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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강점을 살리는 시였기에 그리고 한국어의 매력을 발산하는 시였기에 백석의 시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언어의 마력은 다층적인 마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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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시를 보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이든 지성인이든 그 시를 읽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켰는데 1차원적으로 보면 그저 향토적이고 음식을 사랑한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져서 좋아하는 것이고 2차원적인 해석을 할 수 잇는 사람들은 그 안에 표현된 인간을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며 3차원적인 눈으로 시를 볼 수 잇는 사람들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백석 시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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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백석 시의 그런 다층적 깊이가 그의 시가 해방 이후에도 시, 가요, 회화를 넘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 이유라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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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매력, 향토적 소재만을 다루었다면 1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며 다른 예술가들에게 그렇게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김기림이 백석을 존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br />
<br />
이상이 이책이 말하는 백석의 시세계를 요약해 본것이다. 그러나 실제 위에서 다룬 내용은 이책의 주 내용이 아니다. 이책의 주 내용은 그런 백석의 시세계가 작사가들의 가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대중가요들의 가사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며 보여주는 것, 근현대 시인들의 시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는 것 등의 영향관계를 따지는데 거의 책의 반 이상이 할당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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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과 한국 근현대 예술사가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백석의 예술 자체나 백석의 삶은 비중이 일천하다. 평전이라 고른 책에서 지루한 영향관계 고증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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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3.5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44/23/cover150/898954851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548519</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카페라는 공간 - [도쿄 카페여행 바이블 - 반짝 반짝 보석처럼 숨어 있는 도쿄 카페로 떠나는 시크릿 여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456851</link><pubDate>Fri, 21 Jan 2011 17: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4568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424&TPaperId=445685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49/62/coveroff/89255414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424&TPaperId=44568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쿄 카페여행 바이블 - 반짝 반짝 보석처럼 숨어 있는 도쿄 카페로 떠나는 시크릿 여행</a><br/>조성림.박용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01월<br/></td></tr></table><br/>“호퍼의 그림은 도회지의 고독과 불안을 그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평하는 사람은 고독은 나쁜 것이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고독은 쾌적할 수 잇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호퍼 자신 함부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호퍼의 그림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가끔 공허하다는 말을 듣지만 공허한 실은 모든 것을 채우는 예감으로 가득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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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에드워드 하퍼에 대한 평이다. ‘Nighthwaks’는 하퍼를 말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텅 빈 뉴욕의 거리를 배경으로 홀로 빛나는 바를 그린다. 등장인물은 4명. 바텐더와 연인 그리고 중절모를 눌러 쓰고 등을 보이는 남자. 그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도 없다. 그들 사이의 공간을 메우는 것은 가게의 조명뿐. 그 빛은 가게를 메우는데도 벅차다. 그 빛은 네 사람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데도 힘에 겨워 어두운 거리를 비추기엔 역부족이다. 빛이 갇힌 그 공간은 텅 비었고 건조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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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공간에 갇힌 사람들. 빛이 모자란 하퍼의 세계. 바는 하퍼의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도시에서 사람의 영혼은 돈도 물건도 아닌 마지막엔 같은 사람에 의해서 밖엔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퍼의 도시에선 기댈 사람이 없다. 하퍼의 도시는 혼자가 되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는 특별한 공간이다. “미국의 바에는 오래 전부터 이런 얘기가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가 마지막에 이야기 상대로 고르는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목사 또 하나는 바텐더” 바텐더는 손님의 이야기를 받아주며 무거운 마음을 받아낸다. “바의 카운터 판은 아주 두껍고 무겁다. 손님의 고독 미움 슬픔 괴로움 절망하는 영혼 그런 너무나 무거운 마음을 단단히 지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바텐더는 아무리 괴로워도 그 얼굴을 손님에게 보여선 안된다 바란 손님이 비를 피하는 장소 우산을 내밀어야 할 바텐더가 우는 소릴 하면 어쩌냐. 바는 녹슬고 지친 손님의 마음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 세상 모두가 손님의 적이라 해도 바텐더만은 마지막 한편이 되어야 한다.” (조 아라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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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모자란 도시에서 바는 사람을 빌릴 수 있는 섬이다. 사람을 빌리는 바에서 주인공은 손님을 상대할 줄 아는 바텐더이며 바텐더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주변으로 물러나야 하며 어둡게 남아야 한다. 바에 비를 피해 온 손님을 받아주는 것은 바라는 공간이 아니라 바텐더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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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페의 주인공은 공간이다. 카페에서 우리가 사는 것은 차도 음식도 아닌 공간 자체이다. 바가 사람을 빌려주는 접대업이라면 카페는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업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빌려주는 카페는 그 공간이 어떤 곳인가에 따라 좋은 카페와 그저그런 카페가 나뉜다. 그러면 우리가 카페에서 빌리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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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가오카의 한적한 분위기를 이끄는 일등 공신은 뭐니뭐니해도 그린 스트리트다. 지유가오카 역 남쪽 출구를 빠져나와 2분 남짓 걷다 보면 푸르른 녹음이 한껏 자태를 뽐내는 가로수길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그린 스트리트다. 아름다운 가로수들이 만드는 그늘 밑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벤치 아래로 커피 한 잔을 들고 오면 이곳이 바로 노천카페, 또 유명 스위츠 숍에서 달콤한 디저트 하나 테이크아웃하면 바로 노천디저트카페가 되니 지유가오카는 동네 자체가 커다란 카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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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지유가오카 카페 문화 발전을 저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지도 모르겠으나 여성들이 열광하는 지역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다. 사실 봄이면 길가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가로수의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이면 거리마다 단품이 넘실거리는 무료 노천카페가 있는데 굳이 답답한 실내에 앉아 잇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지유가오카에 주로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디저트 샵들이 많이 모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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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자체가 카페이기에 카페가 희귀한 곳. 저자가 생각하는 카페라는 공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모든 거리가 지유가오카 같을 수는 없다. 인사동에서도 쉬려면 카페를 찾고 찻집을 찾아 돈을 주고 쉬어야 하는 게 도시이고 공간이 사유화된 도시의 논리이다. 그런 도시에서 이상적인 카페는 어떤 곳인가, 저자는 이런 곳이라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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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사진을 찍어대던 첫 방문 때와는 달리 두 번째 고소앙과의 만남은 정취처럼 차분했다. 고즈넉한 다이쇼 시대 저택 그대로의 와관과 아담한 정원을 지나 들어서자 느껴지던 평온한 실내는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평일, 그것도 월요일인 탓인지 관광객보다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엇다. 모두들 누가 들을세라 조근조근 담소를 나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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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 이마 위로 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가 무색하리만치 시원한 바람이. 평소 같았으면 사정없이 내리쬐는 도쿄의 오후 햇살에 눈을 찡긋거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신선한 바람 탓인지 고소앙의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마냥 기분 좋게만 느껴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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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공간은 혼자 또는 나와 같이 온 누군가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배경이어야만 한다. 그곳은 도시에서 물러나 쉬는 곳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해도 좋은 장소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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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카 포트로 끊여 낸 커피와 바나나 2개가 총총 박힌 바나나케이크를 먹으며 천천히 시간을 즐겼다. 계속 흘러나오던 생소한 탱고 선율도 어느 새 익숙해져 모든 것이 편안했다.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 쓰는 이 없고 누구 하나 나에게 눈치 주는 이도 없었다. 모두 각자 자기 시간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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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공간은 특별하다. 카페마다 자신만의 색이 있기 때문이다. “10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은 정말 이름 그대로 방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 카페는 운영하는 사람의 또 다른 방이라 생각한다는 이곳의 주인 사이토상의 말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공간이다. 마치 옆집 언니네 놀러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아늑하고 작은 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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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페가 모두 같은 카페는 아니다. 저자가 찾는 카페는 그리 흔하지 않다. “가만 생각해보면 혼자 잇을 때, 애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찾아가는 카페는 모두 다른 장소일 확률이 높다. 나는 주말을 제외하곤 거의 카페에 혼자 가곤 하는데 우리나라 카페에 가장 큰 불만은 바로 혼자 갈 만한 카페가 별로 없다는 것. 홍대 쪽의 몇몇 카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러 명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 여자 혼자 가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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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저자는 도시를 누비며 카페를 찾아 헤멘다. 이책은 저자가 꿈꾸는 그런 공간을 찾아 도쿄를 누빈 기록이다. 저자가 꿈꾸는 카페는 이런 곳이다. “전쟁터 같은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가끔은 여자로서 ‘나’를 느끼는 순간이 절실해질 때가 있다. 내 취향대로 꾸며진 공간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순간, 밑바닥을 쳤던 감성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흠뻑 차올라 행복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49/62/cover150/892554142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424</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천년 유럽을 걷는다 - [프라하 걷기여행]</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440837</link><pubDate>Sun, 16 Jan 2011 1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4408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914377&TPaperId=444083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37/56/coveroff/89929143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914377&TPaperId=44408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라하 걷기여행</a><br/>프랭크 쿠즈니크 지음, 정현진 옮김 / 터치아트 / 2010년 12월<br/></td></tr></table><br/>위키의 프라하 항목을 찾아보면 프라하의 인구는 130만, 교외지역까지 포함하면 230만이다. 서울과 맞먹는 런던 같은 도시에 비하면 별 감흥이 없는 수이다. 그러나 정치, 경제, 문화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큰 도시이다. 그러나 위키 아티클을 더 읽어가다보면 그보다 더 놀라운 아니 감흥이 있을 만한 수치가 보인다. 2009년 기준으로 프라하를 거쳐간 관광객의 수가 410만이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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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로 잡은 인구로 봐도 2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왜 그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로 오는 것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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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전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몰다우강을 끼고 있는 프라하는 중부유럽의 교통요지였고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의 성으로 정치, 경제, 문화의 센터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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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차대전의 패전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된 이후 프라하는 역사에서 잊혀진 도시일 뿐이었다. 프라하의 봄 같은 이벤트가 있었지만 세계사의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사건일 뿐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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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 그렇게 흐름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프라하의 매력을 만들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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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프라하 여행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다른 가이드북들과 달리 두발로 여행지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이책의 구성은 걷는다는 것을 전제로 프라하를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하면서 그 코스를 걸으면서 눈여겨 보아야 할 사이트들을 나열하고 간단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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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다보면 왜 프라하가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도시 전체가 골동품이기 때문이다. 중세 초기 고딕 양식이 나오기 전의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그리고 19세기의 아르누보를 거쳐 20세기 초의 국제주의 양식까지 건축의 골동품이 모여있는, 역사가 동결되어 있는 공간이 프라하이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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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다른 유럽도시들과 달리 프라하는 중세부터 근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게 되었고 20세기의 대부분을 역사의 주류에서 비껴있었던 덕에 전쟁으로부터 파괴되지 않은 유적들이 개발의 흐름에서도 비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과거의 유산이 프라하를 다른 도시와는 다른 곳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프라하의 매력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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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는 불친절함, 바가지, 소매치기 등을 경고한다. 더군다나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고 영어안내판 조차 드문 곳이다. 여행자에게 그리 호의적인 곳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이책을 보다보면 그런 프라하라도 찾도록 만드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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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기준으로 재설계된 다른 도시들과 달리 프라하는 사람이 걷는 것을 기껏해야 마차 정도가 대체수단이었던 시절의 설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라하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사람의 걸음을 기준으로 설계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프라하를 즐기는 방법으로 걷는 코스를 소개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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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책은 볼만한 책인가? 프라하를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책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단지 이런 책도 없이 프라하로 무작정 가는 것보다는 분명히 좋은 시작점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 이상을 말하기는 어렵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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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책은 읽을만한 책인가? 여행가이드가 단지 여행자를 위한 책으로만 나오지는 않는다. 여행을 갈 생각이 없더라도 그 장소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을 얻고 싶은 사람들도 가이드북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책은 어떤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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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목적이라면 쓸만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책은 걷기 코스를 소개한다는 목적에 충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코스소개에 충실하고 도시 전체에 대한 소개에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읽고 나서도 프라하에 대해 그리 많은 정보를 얻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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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읽다보면 걸으면서 얻게 되는 프라하에 대한 느낌을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이책의 장점이다. 걷는 사람의 기준으로 프라하가 어떻게 보일지를 이책을 보면서 알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가이드북과는 상당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정보보다는 그 장소에서 걷는 경험이 어떤 것일지 그 공간의 느낌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는 색다른 장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37/56/cover150/899291437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91437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따뜻한 시선 - [조엘 마이어로위츠]</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410281</link><pubDate>Thu, 06 Jan 2011 15: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410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902&TPaperId=4410281"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5/46/coveroff/89301009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902&TPaperId=4410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엘 마이어로위츠</a><br/>콜린 웨스터벡 지음, 신가현 옮김, 조엘 마이어로위츠 사진 / 열화당 / 2005년 04월<br/></td></tr></table><br/>‘거리의 사진(street photography)’이란 장르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종인 거리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candid situation)’를 모토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법 상으로 스트레이트 포토의 일종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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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거리의 사진은 거리, 공원, 해변, 매장, 집회와 같은 공공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장소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채우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고 거리를 거리답게 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다. 거리에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제가 될 수 있다. 그 무엇이든 카메라라는 기계의 시선으로 그것의 순수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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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에 거리의 사진은 아이러니한 것이 보통이며 주제와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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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이 다루는 조엘 마이러로위츠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분명 거리의 사진가이다. 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아이를 찍은 사진을 보자. 울먹이는 표정으로 어쩔줄 모르며 안절부절하는 아이가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의 중심에 후드에 파묻힌 아이의 주변에는 등뒤에서 어깨를 잡고 있는 남자 손과 아이의 옆에서 또 아이를 잡고 있는 여자의 손이 있으며 우측 의 배경엔 위를 보는 노파가 메우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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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사진을 찍던 시절에 나는, 어린아이는 어른과 아주 다른 경험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카메라에 새 필름을 넣으려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때 우연히 군중 틈에 낀 한 남자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낮은 자세로 있으면서 어른의 세계에 제압당한 어린아이의 느낌이 어떤지 알게 되었다. 그후 몇 주 동안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사진을 찍었다. 끔찍한 경험이었다. 쇼핑백과 카메라,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펄럭이는 외투자락, 손에 들고 있는 불을 붙인 담배 등, 아이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키가 일 미터가 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두렵게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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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세계는 다른 거리의 사진가들과 다르다. “로버트 프랭크가 미국인의 삶에서 비극적인 면을 보았다면 마이어로위츠는 흥겹고 희극적인 삶을 포착했다. 여러 해 동안 마이어로위츠와 함께 작업했던 게리 위노그랜드가 거칠고 도전적인 시선을 가졌다면 마이어로위츠는 관대하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여주었다. 또한 리 프리들랜더가 냉소적인 유머 감각을 소유했다면 마이어로위츠는 천성적으로 낙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 마이어로위츠의 사진이 제시하는 것처럼 흥미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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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사진은 시선이 냉정하다. 시선이 냉정하기에 컬러보다는 흑백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왔다. “사진에서 흔히 정의하듯이, 흑백사진은 차가운 느낌을 주어 아이러니, 거리감, 예술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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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이어로위츠의 천성에는 그런 냉정한 시선이 어울리지 않았던 것같다. 그는 거리의 사진 전통에선 처음으로 컬러 사진을 시도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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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사진은 따뜻하고 풍부하며 흥겹고 열정적인 느낌을 잘 전달한다.” 그러나 거리의 사진가들은 흑백사진을 고집했었고 현장사진은 흑백인 것이 공식처럼 되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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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품격이 떨어지는 통속적인 대중매체라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예술로서 당당히 자리를 구축했다. 사진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사진 자체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을 구해내야 했다. 그 어떤 예술 분야보다도 컬러 사진은 이러한 미학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컬러 사진이 광고와 키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매체라는 이유로 예술 사진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기피해왔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 컬러가 온통 흔해지면서 흑백사진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도래햇는데, 이렇게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것은 사진 매체를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에 이르러서 당시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던 소수의 미국 사진가들이 컬러 사진의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마이어로위츠는 그 소수 중의 한 명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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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컬러를 도입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진은 1962년 뉴욕의 거리에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은 유리 너머의 장면을 찍은 것이다. “한 상가의 유리창 너머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처녀가 남자친구의 넘겨 올린 머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어릴 적 인형의 머리를 다듬어 주던 방식과 같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어 이 연인의 은밀한 장면을 찍으려고 했을 때 나는 커다란 용기를 내야 햇다. 그러나 이들과 나 사이에 놓인 유리창이 처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을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보호해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 나는 곧바로 다음 장면을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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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여인의 빨간 드레스를 빼고 유리창에 비친 저녁 노을의 노란 색조를 빼고 걷어진 블라인드의 연두색을 뺀다면 연인의 관계는 묘사할 길이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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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를 시도한 후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풍경사진과 도시사진 작업을 병행했다. 컬러를 도입하면서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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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턴의 색채는 자극적인 반면에 쇼어의 색채는 희미하고 창백하며 때로는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다. 이들의 작업은 제각기 상업적 사진이 활용하는 색채의 풍요로움에 의도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리창 너머에는 목이 드러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 등을 보인 채 자기 남자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있다. 마이어로위츠는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컬러 필름에 내재된 색채의 풍부함을 그대로 수용해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색채를 운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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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후 작업의 특성은 베르사이유 궁을 찍은 사진에서 잘 나타난다. “마이어로위츠는 컬러 사진의 묘사적 특성에 이끌려 색채 자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사진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은 그가 1966년에 찍은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텅 빈 베르사유 궁의 궁정 사진에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베르사유 궁 전면의 벽돌 하나하나는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선명하다. 이 사진에는 오로지 색채만이 묘사력을 발휘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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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에 대한 작가 자신의 말이다. “이 사진은 규모와 세부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적 하나 없는 궁전은 인형극이나 바그너의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준비된 텅 빈 무대처럼 보인다. 비바람이 몰아친 직후 미약한 햇살이 비치는 궁전은 황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잇다. 바닥에 깔린 포석과 건축물의 벽돌, 석판과 같은 조그마한 부분들이 보는 이에게 현실감을 일깨워 준다. 이처럼 풍부한 세부를 통해서 우리는 이 거대한 공간이 연극적 환영이 아니라 실재하는 장소라고 깨닫게 된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5/46/cover150/893010090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0902</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소설가가 사는 법 -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96904</link><pubDate>Mon, 03 Jan 2011 07: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969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136125&TPaperId=43969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37/coveroff/89911361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136125&TPaperId=43969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a><br/>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08월<br/></td></tr></table><br/>이책은 제목처럼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강조하는 영미권에선 글쓰는 요령에 대한 좋은 책이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책은 많고도 많지만 그책들의 요점은 대동소이하다: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짧게. 형용사 3개로 요약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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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영어작문에서 배웠던 저자의 요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없앤다’라는 저자의 원칙을 보자. 진행형의 ‘있다’, 가능성의 ‘수’, 부정대명사 ‘것’의 공통점은 앞에서 말한 3가지 원칙을 모조리 깬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단어는 말을 늘어지게 한다. 구체적이지 않다. 말이 늘어지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말의 박력이 떨어져 간명하지 않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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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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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문장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보자 “이렇게 말끝마다 진행형을 붙여놓는 까닭은, 대부분의 경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짧은 단어나 짧은 문장을 구사하여 만든 짧은 표현을 두려워한다. 그런 문장을 쓰면 실력이 짧아 보일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있다’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버려도 진행형은 멀쩡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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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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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있다’만 솎아내더라도 오히려 문장이 간결해져서 힘이 생긴다. 같은 단락에 나오는 ‘보고 있다’와 ‘가고 있다’와 ‘하고 있다’와 ‘오고 있다’의 경우, 같은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너덜너덜해 보이지만, 모든 표현의 공통 분모인 ‘있다’를 없애버리면 ‘본다’와 ‘간다’와 ‘한다’와 ‘온다’가 되어, 모든 단어가 갑자기 다양한 모습을 저마다 뽐낸다. ‘있다’는 여드름처럼 모조리 짜버려도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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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 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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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밑천이 탄로날까봐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서 너도나도 ‘있다’와 ‘것’으로 자꾸 문장을 잡아늘일 때는 오히려 혼자서 솎아내고 줄여야 눈에 잘 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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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저자는 여러가지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원칙들 역시 simple and clear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수동태를 쓰지마라는 영어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원칙 역시 뜻을 명료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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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사를 글더듬이라 부르며 다 쳐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원칙은 동일하지만 조금 뉘앙스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눈에 걸리적거리는 단어들, 특히 긴 단어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장이 간결해지고 압축된 문장에서는 폭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간결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저자는 글을 너저분하게 늘어트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 말한다. 두려움은 자신이 할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말을 모르는데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를 바랄 수는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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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책은 소설가가 소설가를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소설을 쓰는 방법에 할애된다. 지면이 상당한 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기법이 소개된다. 그러나 그 기법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저자의 입담을 재연할 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리뷰에서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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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의 나머지 부분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있다: 소설가에게 영감은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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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작품이 순간적인 영감에서 싹이 튼다고 믿는다. 영감이 씨앗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으로부터 계시가 내리듯, 어떤 깨달음이 열리고, 그러고는 영감의 씨앗에서 뿌리가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싹이 돋아나 나무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꽃과 열매가 맺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결코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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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쉬웠던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이책의 내용은 거의 저자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써나갔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이 재미있게 읽히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소설은 발냄새가 물씬 배어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소설의 소재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소재거리를 만나면 언제든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같은 소설가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다. 아니 같은 글쟁이들과 어울려 봐야 맨날 같은 이야기나 맴돌게 되니 소설가에겐 치명적인 시간낭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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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자체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막노동이다. 어떤 글쓰기건 어떤 창작활동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은 없다. 땀 흘린 만큼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일과를 ‘비낭만적’이라 말하며 “이른바 영감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채와 같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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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책의 소설작법을 다루는 부분은 구체적인 소설 기법보다는 이렇게 직업인으로서 소설가가 어떤 자세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작품을 보아야 하는지에 더 많은 초점이 가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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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이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작법으로가 아니라 소설가가 어떻게 사는가를 소설가의 일과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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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5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37/cover150/899113612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136125</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미술의 경제지리학 -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 예술가들이 미치도록 사랑한 도시]</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96326</link><pubDate>Sun, 02 Jan 2011 2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963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084&TPaperId=439632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5/48/coveroff/89255410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084&TPaperId=43963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뉴욕, 아트 앤 더 시티 - 예술가들이 미치도록 사랑한 도시</a><br/>양은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br/></td></tr></table><br/>이책은 뉴욕 가이드북이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행 가이드북과 달리 이책은 한가지 주제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뉴욕의 미술이라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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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뉴욕의 경제/문화의 중심이랄 수 있는 맨하튼의 거리를 따라 미술과 관계된 흔적들을 따라간다. 그 순서는 뉴욕미술사의 타임라인을 따라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 첼시 그리고 그 미술을 후원했던 부호들의 거리인 백만장자 거리, 그리고 뮤지엄 거리를 훑어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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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미술사의 흐름이 그러한 괘적을 따르게 된 이유는 경제 더 구체적으로는 부동산경제학에 따른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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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들은 가난하다. 그들 중에서 성공해 부와 명성을 얻게 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수입이 별로 없는 그들이 집세를 내기 쉽지가 않다. 돈은 없는데 직업이 미술가이니 넓은 작업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은 집세가 싼 곳을 찾아 모여들게 된다. 그런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 ‘마지막 잎새’의 무대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였고 소호였으며 지금은 첼시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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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소호는 뉴욕 미술계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 굳건하게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첼시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호도 그렇고 첼시도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집값이 저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화랑이 들어서고 동네가 변하고 그러면서 상권이 만들어지고 주거환경이 바뀐다. 그러면 집세가 올라가고 돈이 없는 미술가들은 다른 동네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상권이 들어섰다가 빠져나가 폐허가 된 소호에 다시 상권이 들어서 상업지구로 변모한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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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싼 값에 얻은 작업실을 공들여 고치고 수도관을 잇고 화장실을 개조하면서 만든 예술가들만의 독특한 동네 분위기가 문제엿다. 겨우 살 만한 곳이 됐다 싶으니까 새로움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어울리면서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의 생활용품, 주방제품, 인테리어 가구, 옷을 파는 가게들도 생겼다. 원가 특이한 것을 구하려면 이곳에 가면 된다는 소문도 퍼졌다. 주말이면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상권이 좋아하는 짭짤한 손님들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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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소로는 번잡한 곳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서 1990년대 히우 소로는 관광, 쇼핑, 레스토랑 사업이 주를 이루는 뉴욕의 주요 상권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한때 예술가들이 살던 로프는 고급 주거 공간으로 수백만 달러에 팔렷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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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건물을 소유하지 못한 화랑들은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작업실을 가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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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호에서 밀려난 화가와 화랑들이 첼시로 모여들었다. 소호가 그랫던 것처럼 이곳도 빈 공장들의 자리엿고 버려진 곳이었다. 당연히 집세가 싸다. “소호에 있던 갤러리들과 화랑들이 이제 이곳에서 뉴욕 화랑과 뉴욕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3백 개가 넘는 화랑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잇는데 이 정도 숫자면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갤러리 집성촌이 아닌가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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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첼시도 소호의 전철을 밟아가는가 보다. “처음에는 싼 임대료 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했는데 5년 전에는 1평방피트에 월 20달러였던 임대료가 벌써 50달러를 넘어 더 오르고 잇다. 그래도 같은 규모에 월 100달러가 넘는 소호에 비하면 아직도 천국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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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같다. 맨하튼을 벗어난 퀸즈, 브루클린 지역까지 저자가 다루고 잇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호를 떠난 미술가들과 화랑들이 여기로도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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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이책은 뉴욕의 미술사의 괘적을 기본 줄거리로 거리 거리에 있는 유명했던 작가들의 흔적과 현재 뉴욕미술의 현장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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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책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북 스타일이다. 뉴욕미술사를 목표로 하는 책도 아니고 뉴욕미술이 어떻다고 말하는 책도 아니다. 단지 뉴욕미술계가 어떤 공간에서 살아왔고 살고 잇는가를 보여주고 그 장소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을들려주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책 한권을 읽고 뉴욕미술계가 어떻다는 감을 잡을 수는 없는 책이란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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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책과 함께 본다면 이책은 그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요 근래 나온 것으로 ‘세계의 크리에티브 공장, 뉴욕’이다. 이책은 미술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미술가들은 물론 패션, 디자인, 광고, 문학, 언론, 음악과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네트웤을 맺으며 그런 네트웤이 그들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공간과 어울리는 공간에 대한 분석이 자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네트웤 분석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책처럼 실제 그들이 살고 어울리는 공간이 어떤 곳이며 어떤 느낌의 공간인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두권을 같이 읽는다면 왜 뉴욕에 예술가들이 몰려들며 그들이 실제 살아가는 뉴욕이 어떤 공간인가를 아는데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25/48/cover150/892554108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1084</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국민을 그만 둘 자유 - [2019 한반도 묵시록 - The Revelation]</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57524</link><pubDate>Tue, 21 Dec 2010 1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575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7284&TPaperId=435752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5/42/coveroff/89509272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7284&TPaperId=43575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19 한반도 묵시록 - The Revelation</a><br/>한호택 지음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10년 12월<br/></td></tr></table><br/>“’못살겠다 갈아보자’는 1956년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던 민주당이 내세운 표어다. 당시 표어는 민중의 호응을 얻었고 집권당의 제지를 뚫고 수십만 인파가 구름처럼 한강 백사장에 모였다. 그 후 60년도 더 흐른 2019년 그 시절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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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방음기에 막혀 군중이 외치는 소리도 넘어오지 못햇다. 빈부, 남북, 좌우, 내국인과 외국인, 선과 악… 이분법은 컴퓨터 뿐만 아니라 세상을 가르는 기준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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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대한민국 영토가 보였다. 하늘에서 보기에도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부자동네가 산뜻한 파스텔 톤이라면 달동네는 황사가 덮여 우중충한 똥색으로 갈아앉아 있었다. 부자들은 발달한 보안기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견곻란 성을 쌓았고 그들이 만들어 배부한 표식이 없으면 누구도 그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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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발달하자 사람이 하던 일이 손쉽게 기계로 대체됐다. 유휴인력이 남아돌아 먼지처럼 떠돌아 다녔지만 그들을 채용하려는 기업이 없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학력 인플레가 본격화됐다. 이제 대졸자가 회사에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웠다. 박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낙엽만큼 많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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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는 언제나 살기 힘들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친 세상이 되었다. “환경오염과 그로 인해 이어진 물 부족은 세계적인 문제였다. 물 부족으로 식량 부족으로 이어졌고 빈민들은 오염된 물로 키운 유전자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은 위생적으로 처리된 유기농식품을 먹었다. 부자들의 한 끼 식사비용이 가난한 자들의 한 달 식사비용보다 많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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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한국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포보스라는 테러집단이다. 모든 테러집단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는 이상을 꿈꾼다. 포보스란 집단이 꾸는 꿈은 ‘사람들이 원하는 국가를 만들어 그 국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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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신의 고향을 조국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저 우연히 거기에 태어날 뿐이다. “이 땅이 싫으면 그 사람이 떠나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는 이 땅에 살 권리가 있어. 문제는 땅이 아니라 국민을 만족시키지도 못하면서 다른 선택도 못하게 하는 정치체제야.” 포보스는 그것을 불합리라 부르며 사람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려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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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다른 모든 것처럼 국가 역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 국가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포보스는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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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국에서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테러로 죽은 사람의 백 배가 넘습니다. 이런 법질서를 지켜야 합니까? 왜요? 전 세계의 11억 인구가 비만인데 이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잘못된 세계, 잘못된 국가,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그런 부조리를 뜯어 고치려는 조직을 없애려 합니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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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선거가 가능한 세상이 됐고 정보의 공유로 권력의 독점도 막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업이 만든 물건을 일방적으로 구입하던 소비자들이 지금은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제품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그러면 안되는가? 이들의 질문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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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선택의 자유를 줄 것인가? 세계를 도시국가로 나누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br />
<br />
“앞으로 국민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국가로 몰려갈 것입니다. 왜 그 나라에 태어났다는 한 가지 이유로 온갖 부조리를 감수하며 그 나라 국민으로 죽어야 합니까? 포보스연합이 아니더라도 굳이 국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국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유도시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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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민이 쉽게 허용되지 않지만 국가가 많아지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민도 원활해져. 최종목표는 마을 단위의 국가를 만들어 노자의 소국과민을 실현하는 거야. 백만 개 정도의 국가를 만들면 과거의 국가개념은 사라지게 될거야.” <br />
<br />
그러나 지금의 국가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다른 국가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최저의 규모를 만든 결과이다. 이들의 비전은 신선하면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일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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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설정에 따르면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을 장악해 재력을 갖추고 그 재력을 기반으로 첨단군사기술과 핵으로 무장한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br />
<br />
이들은 자신들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그 전략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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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더라도 과연 그들의 꿈이 현실적일까? 작가도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같다. 이들의 꿈은 결국 실현되지 않는다. <br />
<br />
저자는 그 이유를 사랑으로 제시한다. 사랑 앞에 무력해지면서 그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은유는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 <br />
<br />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어차피 그 아이는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텐데” <br />
“그럼 너는 왜 도시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br />
“지금 국가체제보다는 나으니까. 도시국가가 세워진다고 인간의 고통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아.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자원도 고갈돼 갈 거야.” <br />
<br />
너무 이성적이다. 그들의 이상은 그렇게 차가운 논리의 구축물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작가는 암시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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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만들고 지켜야 할 게 있어.” <br />
“그게 뭔데?” <br />
“가족” <br />
<br />
가족을 만들고 지키는 것처럼 국가 역시 손익계산만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저자가 이 소설에서 내리지 못하는 결론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br />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25/42/cover150/895092728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27284</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긍지의 의미 - [프라이드 Pride 12 - 완결]</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27409</link><pubDate>Fri, 10 Dec 2010 16: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274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46527&TPaperId=4327409"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85/56/coveroff/89258465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46527&TPaperId=43274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라이드 Pride 12 - 완결</a><br/>이치조 유카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0월<br/></td></tr></table><br/>‘불의 전차’라는 오래 된 영화가 있다. 1981년 만들어진 이 고전 스포츠 영화의 주인공은 둘이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영국의 육상선수로 뛰어던 에릭 리델(이언 찰슨)과 해럴드 에이브러험(벤 크로스). 에릭은 자신을 하느님에게 바친 사람이다. 에릭은 달린다. 달리는 재능을 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달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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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결승전이 일요일에 열렸다. 하느님의 종인 에릭은 일요일에 달릴 수 없다. 영국 황태자가 부탁하는데도 그는 단호하다. "국왕보단 하느님.." "국가보단 천국.."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그는 자신의 두 다리로 얻은 금메달도 하느님의 영광으로 하느님에게 돌린다. 에릭은 그런 사람이다. 나중에 에릭은 선교사로 중국에 가 거기서 하느님의 곁으로 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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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태인인 해럴드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일생을 살아간다. 유태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달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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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의 열정과 신념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다리는 이유는 다를 수 밖에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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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런 그들의 경쟁과 그들이 누린 승리의 기쁨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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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전차’처럼 ‘프라이드’란 제목의 이 만화 역시 주인공 두 사람의 경쟁을 그린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성격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불의 전차’가 선의의 경쟁이라면 이 만화는 악의의 경쟁이다. 그것도 일방적인.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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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씨는 정말이지 하느님한테 사랑받고 있나 봐요. 그 사람은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요.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그런 오라는 절대로 못 당해요. 주역이 될 인생을 걸어가는 사람은 처음부터 주역이에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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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라 스칼라 좌의 프리마돈나였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딸로서 어울리는 재능, 화려한 이태리 오페라에 어울리는, 동양인으로서는 드문 화려함이 있는 미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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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주역인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주어진 사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어서 아무 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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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은 특징은 기품이 있다는 것이다. 기품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품이 무엇이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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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기품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정년을 앞두고 이제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 있는 노교수님들을 보면서 사람의 기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교수님들의 기품은 연륜이 만든 것이다. 그 나이가 되었다고 모두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런 기품을 가진 분은 손 안에 꼽았다. 한국이란 사회에선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얻었고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분들에게서만 그런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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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기품을 타고 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주어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야하는 사람은 절대 그런 기품을 가질 수 없다. 가질 수 있다면 노년에 이르러 인생을 완성할 때만이 가능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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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고 말고요 파롯티(파바로티의 이름을 작가가 꼬은 것)의 추천인걸요. 이 세상은 슬프게도 연줄과 돈이에요. 미래의 퀸 레코드 사장부인이시잖아요. 더군다나 시오 씨에게는 실력과 미모까지 있어요. 무적이죠”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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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좋겠네요. 시오 씨는 부자에다 방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수업료가 비싼 미카 음대에 다니고 키하라 사와코의 딸이라니 미인에다 빽까지 있다니 짜증나요." 이 만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모에의 말이다. <br />
<br />
“의심같은 건 할 줄 모르도록 잘 자란거야 사랑받으면서 귀하게 자랐겠지 항상 당당하고 켕기는 건 전혀 없을 걸? 너한테 소중한 건 인간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거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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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시오. 그런 시오는 모에에겐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br />
<br />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그녀에겐 없었으면 더 좋았을 사람에 불과하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들어온 말은 너란 짐덩어리 때문에 남자들과 잘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려운 형편에 학비로 쓸려고 벌어온 돈을 뺐어 호스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어머니. 그녀가 가진 것이라고는 평범한 학교에 평범한 재능 평범한 미모.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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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는 그런 그녀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졌다. <br />
“짜증나 이 여자를 만나면 항상 그래 내가 얼마나 비천한 인간인지를 확인하게 돼 더렵혀주고 싶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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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처음 만났을 때 맛봤던 비참함이 지워지질 않아 내 비열함이 치사함이 비참해져 이 여자가 더러워지면 좋을 텐데 불행져서 울면 좋을 텐데 이 여자한테 이기지 못하면 이 비참함은 평생 없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필요없어 난 그런거 필요없어 더럽혀지든 미움을 받든 최후에 승리해서 웃고 말거야.” <br />
<br />
이 만화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을 만큼 막다른 곳에 몰려 있는 여자와 자존심이 방해를 해서 고지식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여자”의 경쟁을 그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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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에게 모에 같은 사람은 처음이 아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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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오랑 피아노 배우기 싫어 짜증난단 말야. 시오만 점점 더 잘 치고." <br />
"엄마가 비교해서 싫어 시오를 본받으라고 하잖아.' <br />
'어쩐지 난 들러리 같아서 상처를 받게 돼 나도 나름대로 예쁜데' <br />
'시오는 너무 잘났어. 난 부자다, 라는 듯한 태도라니까' <br />
'부자라서 어머니의 피를 물려 받아서 하느님한테 편애를 받으니까.' <br />
'정론을 무기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힌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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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하고 있으면 왠지 제 자신이 점점 비참하게 느껴져서... 똑같은 인간인데 왜..!" 불공평하다. 그러나 다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을 인정할 수 없다. <br />
<br />
그러면 그런 말을 들어 와야 했던 사람은 어떨까? ‘지긋지긋해 이 말을 듣는 게 벌써 몇번 째지?'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미안해요 그쪽이 짜증난다고 해도 어쩔수가 없네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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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냉정한 태도는 저 가정환경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터특한 성격이야 동성으로부터 끊임없는 질투가 지긋지긋해서 터득한 내 성격 아 그렇구나 자기에게 필요없는 것은 잘라내 온 삶의 방식이 닮은 거야” 그녀가 약혼자의 부모를 만난 느낌이다. <br />
<br />
그러나 카이사르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이사르는 모욕을 당해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 준으로 내려가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 는가.”시오노 나나미가 그리는 카이사르이다. 정적을 가차 없이 제거했던 술라와 정적을 포용하고 관용을 베풀었던 카이사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점에서는 양극단이었다. 후세 역사가 들은 이런 카이사르를 '진정한 귀족 정신의 소유자'라고 평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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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의 본질은 여유이다. 강자의 여유이다. 세상 무엇도 자신을 흔들지 못한다는 자신감이다. 카이사르가 해적에게 잡혔던 이야기는 그 여유의 본질을 보여준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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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해적에게 붙잡혔을 때 카이사르는 타고난 천성대로 해적을 마음껏 무시했고 이런 점은 오히려 해적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며 공포에 빠진 포로는 익숙했지만 카이사르처럼 해적을 자신의 바쁜 일정을 잠시 방해하는 훼방꾼 이상으로 보지 않는 포로는 처음이었다.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겨우 20달란트(어마어마한 거액이었다)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모욕감을 느끼고 스스로 몸값을 50달란트(은화 30만냥)까지 올리기도 햇다. 카이사르는 동료 한 명과 노예 두명만 남기고 나머지 일행에게 몸값을 가져오게 햇다. 카이사르는 포로로 지내는 40여일 동안 해적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그들의 체력훈련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를 지어 들려주었다가 해적들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천박하고 난폭한 야만인이라고 면박을 주기도 햇다. 이런저런 주문을 하기도 했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노예를 시켜 해적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또 자신이 풀려나면 반드시 다시 돌아와 모두 책형에 처해 죽이고 말겠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기도 햇다. 해적들은 이 대담한 젊은이를 무척 좋아햇고 몸값을 실은 배가 도착하자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였다. 카이사르는 떠들석하게 웃고 손을 흔들며 해적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배와 의용군을 징발해 해적들에게 돌아와 모두 체포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필립 프리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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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품은 귀족을 말할 때 쓰는 말이었다. 귀족은 여유를 타고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애정을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평생 동안 그를 특징지은 것은 하나는 아무 리 절망적은 상태에 빠져도 유쾌한 기분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낙천적일 수 있었 던 것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나이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 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자연히 자신감에 뒷받침된 균형감각을 얻게 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적극성도 어느새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시오 역시 카이사르와 마찬가지 환경에서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오를 말할 때 사람들은 기품이란 말을 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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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기품은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은 오페라 가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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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대로의 우등생의 노래따윈 아무런 매력도 없다구 콩쿠르에서는 평가받을지 몰라도 그걸로 끝이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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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를 괴롭힌 것은 질투만이 아니다. 거물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성격도 목소리도 다른 데 (어머니는 리릭 소프라노이나 시오는 메조 소프라노이다)도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창법을 흉내내도록 만든다. <br />
<br />
질투와 압박감은 시오를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배우로서의 한계를 만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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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미란 매력하고 관계가 있구나 나 그렇게 매력이 없었어?” <br />
“그럼 있는 줄 알았어? 시오는 화장실도 안 가는 인형이었어 땀도 안 흘리고 경계가 철저해 보이는데다 매너는 좋지만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었지 오페라엔 속물스러운 성격의 인간들이 수두룩해서 시오에겐 도도한 공주역 밖에 안 어울릴거라고 생각햇어”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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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위기라는 이름의 기회가.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라진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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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야 시오 네 그 공주님 근성이 걱정이야 이젠 부모도 돈도 친척도 없잖아 정론이 토용되지 않는 일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어. 사람은 말야 자존심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구.” <br />
<br />
시오는 ‘불의 전차’의 이언 같은 사람이다. “난요 노래는 신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노래할 때마다 조금씩 신께 돌려드리는 거라고.” 그렇기에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자 드레스를 입었으면 하늘의 성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노래합시다. 나는 노래 공주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공주님" 노래하는 것 자체가 행복인 시오. 그러나 "이제 공주님은 끝... 날 지켜주던 아빠는 없어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도 없어."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던 것이 사라졌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br />
<br />
시오는 자신이 경멸할 수 밖에 없는 모에에게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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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가 갖고 있는 비장감은 부모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트라우마에서 온 것이겠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알 수 없는 외로운 마음 방황하는 영혼 울부지는 듯한 애절함" <br />
<br />
“난 이렇게 살아서 걷고 있어 견디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br />
<br />
인형 같은 우등생의 노래와 달리 재능도 미모도 평범한 모에는 배우로서 탁월하다. 그녀의 삶이 준 불행 덕분에 탁월한 표현력을 갖게 된 것이다. <br />
<br />
그러나 그런 모에의 노래는 슬프다. "넌 향상심보다 투쟁심이 더 강해서 큰일이야 남과 비교해서 행복을 느끼는 타입이잖아 그래서 노력도 하고 근성도 잇지 다만 남과 비교를 해봤자 기분은 좀 좋겠지만 그다지 행복해지진 않아 그보다는 열심히 자신과 싸워 봐 남하고만 싸우다간 무너지고 말아." <br />
<br />
이런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시오가 모에를 보면서 자신을 채워가려 하듯이 모에 역시 시오를 보면서 노력한다. "그녀가 노력할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지만 그건 힘들고 너무 슬퍼. 행복해지고 싶어서 노력하는 거잖아.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는거야" <br />
<br />
그러나 시오가 모에를 경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투쟁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불행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방법론이다.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줄까? 아무리 추해 보이더라도 주어진 기회에 달려드는 것. 그 방면 일류의 겉과 속을 아는 것." "꽤 고생을 한 모양이라 남의 마음을 잘 읽긴 하지만 그 놀라운 변신도 그렇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말로 뭐든지 할 것 같아 이런 아이를 곁에 두는 건 위험할지도 몰라" 시오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모에보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에가 사는 방식이다. <br />
<br />
“그런 일이라고?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그런 일이야? 철면피 그런짓까지 하면서 우승하고 싶었어?” <br />
“괜찮아요 아픈 건 지금 뿐이니까 분이 풀렸나요? 이 정도로는 안되겠죠? 더 때려도 돼요” <br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자존심도 없어?” <br />
“그런 쓸모없는 건 버렸습니다.” <br />
<br />
“울든 싸우든 상처받든 품성만큼은 나빠지면 안돼 알겠지 남을 떨어트리는게 아니라 자기가 올라가는 거야.” 이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br />
<br />
두 여자는 서로를 보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고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야 어른이란 부자가 된다 해도 유명해진다고 해도 그런 것과는 달라. 어른이 뭔지 알게 될 때가 올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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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가르쳐 줄수 없었던 인간미 있는 감정이나 색이 그녀에게서 풍겨나오고 있잖아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이 된다는 감각을 터득하려 하고 있어 우등생일 뿐이었던 이 아이가 거물이 되는건가 손에 꼽을 정도의 가수에게만 주어진다는 재능을 시오가 손에 넣으려 하는건가?” <br />
<br />
‘부드럽고 자장가처럼 다정한 음색. 대단해 경직되고 정확한 우등생이 이렇게 요염하고 매력적인 가수로 변하다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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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역시 성장한다. "전보다 깊이가 있네요. 부드럽고 따듯하고 예전의 서늘하고 외로운 이미지가 없어졌어요. 전 이쪽이 좋은데 모에 씨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br />
"_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지금의 모에에게는 딱이야. 아이가 생기고 그녀는 정말 많이 달라졌어. 전처럼 독기가 없고 순수하고 따듯해. 무엇보다도 행복해 보여.늘 만족하지 못하던 그녀가 커다란 배를 쓰다듬으면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는다니까." <br />
“좀 상상이...” <br />
<br />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기에 정에 굶주린 모에.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녀의 음악도 변한 것이다. <br />
<br />
'모에 씨가 아이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정말로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기를 안듯이 그것 뿐인데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br />
<br />
"대단해요. 늘 갖고만 싶어하던 모에 씨가 주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닺니 사람이란 이렇게 변할 수 가 있군요. 난 전부터 당신이 싫었어요. 노래만이 우리를 이어준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의당신은 멋져요.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에요. 앞으로도 함께 노래하고 싶어요." <br />
<br />
'동경하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상처 입힌 사람에게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긍지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당신과 노래하는 것은 나의 긍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저질러 왓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느님 전 다시는 이 사람에게 상처입히고 싶지 않아요.' <br />
<br />
이상이 이 만화가 그리는 세계이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이 만화의 작가는 일본만화에선 원로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런 원로가 만화 경력 40년에 만든 이 만화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돋보인다. 보통 사람에겐 낯설 수 밖에 없는 오페라의 세계의 내면과 그 세계를 배경으로 서로 어울릴 것같지 않은 성격의 라이벌을 그리는 이 만화는 삶의 깊이가 배어나온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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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10권까지는 긴장감을 가지고 그려지던 스토리가 11권부터는 멜로드라마로 추락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내 우상이에요. 시오 씨처럼 키우고 싶어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책의 결말이다. <br />
<br />
작가가 구상했던 것은 두 주인공이 삶의 여유를 갖게 되고 진정한 프라이드를 갖게 되고 둘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내려던 것같다. 그러나 실제 결말은 모에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시오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끝난다. <br />
<br />
시오가 그렇게 느꼈듯이 모에의 비열함과 천박함은 좋아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에는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이다.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리고 그런 구덩이에서 기어오르려는 그녀이기에 왠지 공감이 가고 끌리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진화는 임신으로 멈출 성격이던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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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결말이다. 그러나 10권까지 두 주인공을 그려내는 솜씨는 원로의 원숙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이 시리즈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85/56/cover150/892584652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84652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달걀을 깨뜨리지 않으면 오믈렛은 만들 수 없다 - [사랑의 달걀 4 - 완결]</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17604</link><pubDate>Mon, 06 Dec 2010 23: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176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251427&TPaperId=431760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8/85/coveroff/60001125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251427&TPaperId=43176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의 달걀 4 - 완결</a><br/>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문화사(만화) / 2004년 05월<br/></td></tr></table><br/>이 만화의 처음에 나오는 서양 속담이다. 주인공이 TV를 보며 요리를 할 때&#160; 나오는 말이다. 그 뒤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깨뜨리지 않으면 썩을 뿐이죠. 인생에서 벽에 부딪혔다면&#160; 껍질을 한번 벗어보세요." 이 만화는 주인공의 껍질이 강제로 깨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br />
<br />
회사에 출근했을 때 로커의 대화는 구조조정이 주제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인공의 이야기가 된다. 지방으로 가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껍질이 부서지는 이야기이다. <br />
<br />
'지방에선 못 살아. 어떻게 하지 지금 일이 없어지면. 이런 시기에 다음 직장은 구할 수 없어!'<br />
'벌서 모두 알고 잇구나 내가 짤렸다는 걸. 그렇다면 말이라도 걸어줘. 위로라도 좀 해줘. 너희들이 적당히 해온 일을 내가 다 처이해왔잖아. 친구잖아. 친구? 착각이었나. 시간 때우기 위한 사이였구나. 크게 믿지는 않았어... 만약의 경우에 전화할만한 사이도 아니고 의지하고 싶지도 않아. 누구에게도? 결혼...해 버릴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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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껍질은 한번 더 부서진다. "회사 남자를 다 건드렸다는 타치바나 유가! 양디라 걸쳤었어? 나... 난 애인이 아니었어."<br />
<br />
껍질이 부서지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시골의 명문 여고를 나와 도쿄의 명문여대를 다니고 일류기업의 사무직원으로 남들이 가는 레일을 따라 별 생각없이 적당히 적당히 남이 하는대로 해왔을 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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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기다려 줘 난 아무 짓도 안 했어!"<br />
"아무 일도 안 했기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하는 거야. 호황기에 입사해서 쉽게 쉽게 회사생활하고 세상을 안이하게 봤지.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잇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생각해보지 않고."<br />
"생각해볼게요. 지금 당장! 당장 쓸모있는 인간이 되겠어요!"<br />
"8년씩이나 엄청히 있다가 이미 늦었어!"<br />
꿈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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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그리 마음이 아프지 않다. "이런 사람 좋아하지도 아무 것도 아니야." 연애도 진지하게 이 남자야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살 생각이었던 것도 아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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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년 회사원 8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따뜻해지지 않아.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아. 대단한 게 아냐. 인생을 정하는데 고집 외에 아무것도 없다니 뭘 하고 싶은지 자기 자신이 모르다니. 이대로 흘러가 버리면 또 똑같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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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사 발령 환송회 자리에서 퇴사를 결심한다. 이 만화는 그녀가 껍질을 깨고 나와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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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울분을 참지 못해 뛰쳐나왔지만 마땅히 할 것이 없다. 그러다 얼떨결에 점심을 먹던 카페에 점원으로 취직한다. 일단 급하게 땜방일 뿐이라 생각하고 구한 자리이다. 그러나 "내 적성에 맞고 돈도 되는 자격이 도대체 뭐야?" 어중간한 8년 경력의 사무경험 밖에 없는 30살의 그녀에게 다니던 직장같은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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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녀는 임시라고 생각했던 카페에 계속 다니게 되고 건축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는 연하의 건축학과 학생(27살)과 사귀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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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친구들은 예술계통의 사람들이다. 조각, 그림, 사진 그들의 세계는 이렇게 표현된다. "좋아하는 걸 한다는 건 어설프게 해서는 안돼 정말 극소수의 사람밖에는 성공 못 해 대부분은 백수인 상태로 언젠가는 꿈을 접고 말아요. 자기를 잘 모르고 이루지 못할 꿈을 쫓아 주변사람을 슬프게 하는 일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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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트는 잘 모르겠어. 강한. 강한. 강한 주장.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느낌. 아티스트들은 잘 이해가 안돼. 자기 중심적인 데다 제멋대로여서 어려워.' 그러나 '재능, 눈부심.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질투 때문에 괴로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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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지 않은 만화의 대부분은 연애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을 연애를 통해 자신은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던 껍질이 사라진 후 "불안 속에서 자기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느낌" 그 느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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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좋을지 모른 채 멍하니 지내다 회사에 들어가 마음놓고 있다가 너무 마음을 놓은 나머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다... 레일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하게 되고 얌전하고 성실하고 착한 남자랑 결혼해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고 아이 낳고... 하지만 난 하고 싶었던게 있어.' 꿈이다. 깨었을 때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 만화는 그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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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이 깨진 주인공의 오믈렛이 만들어지는 것은 카페 주인이 입원하면서 2달동안 가게를 책임지면서이다. 도쿄 요지의 집세를 낼만한 매상을 올리게 위해 악전고투를 하고 난후 "이런 것 회사다닐 때는 느끼지 못햇었어. 회사란게... 보람을 갖고 노력해보지만 남의 일이라는 느낌뿐이야. 자기 일이라고 느끼면서 일했던 적 없었어. 이런 느낌이구나." 카페 주인은 퇴원하고 나서도 그녀에게 가게를 떠안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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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을 맡고 나서는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부족하다. 그건 회사다닐 때도 마찬가지엿나? 예전에는 일에 쫓겨서 쉴 시간도 없이 일을 해도... 이렇다 할 강한 희망도 불만도 없는데도 항상 피곤했어.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포기했었어.' 그러나 지금은 "내 자신이 가장 놀랐어. 이렇게 이 가게를 소중히 여기다니.'<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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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애인이 콘테스트에 대상을 받는다. "같이 갈래? 이탈리아..." 주인공은 자신에게 묻는다. "예쁜 옷에 맛잇는 음식... 남자의 사랑받으면서 뭐 하나 불편한 것 없이 걱정없이 살고 싶어... 그게 아냐!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뭐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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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만 따라가면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레일에서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고 자기 발로 걷지 않으면 이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됐어. 무엇보다 어디로 갈 건지를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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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머리 속에는 스스로 행복해진다는 생각은 없어. 집의 크기, 점포 규모, 돈이랑 그 누군가. 그 무엇인가에 기대면서 사는 것이 이미 기본이야. 기댈 수만 있으면 자기자신의 의견이나 감각은 안종에도 없어. 그래서 불안해서 불평불만만...' 고향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강제로 선을 보게 했을 때 주인공의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과 엄마가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우린 쌍둥이 같아...' 자신도 애인에게 기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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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한다. 자신의 카페를 갖겠다고 '정말로 뭔가가 시작되는 거야. 나 스스로. 마츠는 이탈리아에 유학가고 나는 도쿄에 남는다. 저금을 깨서 내 가게를 여는 거야. 처음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뭔가를 시작한다는 건 두근두근 굉장히 무서워. 하지만 아무것도 못했던 OL 시절의 불안감과는 달라. 혼자야. 이제 혼자 가는거야.'<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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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마츠 사실은 계속 쭉 마츠 곁에 있고 싶어 감기걸려도 금방 알 수 있는 곳에 하지만 그러면 나 게을러서 홀로서기할 수 잇는 실력이 안 생길거야. 금방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될거야.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안가.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느 사람이 되고 싶어 불안해도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해나갈 수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이 돼서 마츠와 가족이 되고 싶어. 마츠와 가족이 되고 싶어."<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8/85/cover150/6000112567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3251427</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시간이 박제된 땅 - [낭만 쿠바 - 시네아스트 송일곤의 감성 스토리]</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305138</link><pubDate>Wed, 01 Dec 2010 16: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3051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1403X&TPaperId=4305138"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09/32/coveroff/89522140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1403X&TPaperId=43051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낭만 쿠바 - 시네아스트 송일곤의 감성 스토리</a><br/>송일곤 글.사진 / 살림Life / 2010년 06월<br/></td></tr></table><br/>우리가 쿠바란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책의 제목처럼 ‘낭만’일 것이다. 최고의 시거라는 궐련의 향기처럼, 아바네라, 맘보, 살사, 손, 룸바, 구아히라, 구아라자, 파창가, 등등 쿠바에서 만들어진 리듬들 처럼 아니면, 체 게바라의 빛 바랜 사진처럼 무언가 일상의 것이 아닌 이미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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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미지가 실제의 쿠바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낭만의 이미지는 쿠바라는 동전의 한면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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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쿠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자였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건물이 올드 아바나에 가득하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화려한 조각들로 수을 놓은 문양들이 과거의 영화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창을 보라. 유리를 끼울 돈이 없어 낡은 합판으로 덧대어 햇빛을 막고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슬레이트판을 얼기설기 얹어 놓았다. 회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부식되어 폐허 직전의 색을 드러내고 잇다. 그러나 여전히 쿠바의 슬픈 건축은 쿠바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들은 기묘하게 어울리고 칠이 벗겨지고 나무로 덧댄 창들 또한 하나의 질서처럼 정연하다. 그래서 올드 아바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리라. 과거의 영화를 고스란히 견뎌낸 이 공간.”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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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쿠바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이책은 저자가 영화를 찍기 위해 쿠바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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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다보면 세피아 톤이란 말이 떠오른다. 흑백의 투톤을 갈색톤으로 처리하는 기법 말이다. 저자가 본 올드 아바나처럼 쿠바는 열대의 섬답게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우리가 쿠바란 말에 떠올리는 ‘낭만’이란 말에 어울리는 땅이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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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는 오늘의 쿠바는 예전의 색채를 잃어버렸고 과거의 영광은 흔적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흔적은 묘하게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박제된 오래된 사진처럼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를 엿보는 느낌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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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경제는 최악이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으ㅢ 색칠과 보수를 하지 못하고잇지만 20세기 초반에는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였다는 것을 믿게 만든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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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순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의 쿠바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 쿠바 수입의 절반이 관광산업이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혁명 성공 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며 자봊주의 탐욕을 통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쿠바는 점점 가난해졌고 외국의 자본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햇다. 자본과의 타협만이 생존이라는 답을 내렸다. 쿠바인 모두의 것인 바라데로 해안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유럽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쿠바인들이 유럽인과 캐나다인을 위해 침대의 시트를 갈고 청소를 하고 경비를 허며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춘다. 기막힌 아이러니가 천국과 닮은 해안에서 차차차처럼 벌어지고 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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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리조트와 호텔을 찾는 사람이 찾는 낭만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세피아 톤의 쿠바에서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시에스타의 거리가 아닐까? 모두가 쉬어야 하는 시에스타의 시간, 태양을 견지지 못해 모든 것이 비어버린 거리의 풍경에서, 그늘 밖의 뜨거움을 피해 즐기는 죽음처럼 달콤한 낮잠의 시간 같은 나른함. 포기의 나른함.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느낌이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09/32/cover150/895221403x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21403X</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방콕 간다 - [푸껫 100배 즐기기 - 2011~2012년 최신판]</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265666</link><pubDate>Sun, 14 Nov 2010 2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2656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0274&TPaperId=42656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03/40/coveroff/89255402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0274&TPaperId=42656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푸껫 100배 즐기기 - 2011~2012년 최신판</a><br/>한혜원.성희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br/></td></tr></table><br/>이책을 보면서 떠오른 말이다. 전에 리뷰한 이 시리즈의 발리편과 푸껫을 소개하는 이책을 비교하면 비슷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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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이책의 구성은 인천공항에서의 출국부터 현지 공항에서의 출국, 목적지까지의 교통편의 종류와 비용, 그리고 목적지의 특징, 일정을 어떻게 짤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묶을 숙소와 즐길 레스토랑, 스파, 쇼핑, 나이트 클럽 등이 사진과 함께 업소의 특징을 요점만 골라 낸 간략한 설명 등으로 되어 잇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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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이 현지에서 겪게 될 여정을 따라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시리즈에 대한 다른 리뷰에서 말했듯이 현지에 가지 않더라도 그 공간의 느낌이 어떨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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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쭉 훑어보면서 떠 오른 말은 ‘방콕 간다’는 말이다. 방콕하면 떠오르는 느낌은 향락가라는 것이다. 에이즈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예전에 있었는데 그 원인이 향락가를 드나드는 외국인 때문이었다. 매춘에다 게이들, 여장남자와 같은 태국만의 특징 아닌 특징은 푸껫을 소개한 이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책에 소개된 다른 곳은 그렇지 않지만 나이트 클럽이 밀집된 빠똥 지역은 방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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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넓은 푸껫 섬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업체들이 밀집된 빠똥만 그런 것이다. 그러나 조용하고 한산한 편인 다른 지역들도 발리와 비교하면 향락이란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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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도 그렇지만 푸껫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은 해변 때문이다. 거친 남성적인 바다의 발리와 달리 열대의 바다하면 떠오르는 바닥이 비치는 것 같은 투명한 파란 바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에머랄드빛 물색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바다. 이런 바다 덕분에 푸껫이 유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는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가 없다. <br />
<br />
그런 자원만으로는 매니아 사이에만 떠도는 신비의 장소에 그칠 뿐이다. 이책의 대부분 지면을 차지하는 호텔, 레스토랑, 스파, 쇼핑시설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대중적인 명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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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역시 이책이 보여주는 푸껫만큼 그런 시설이 잘되어 있고 그런 업소들의 사진만 봐서는 발리인지 푸껫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니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 어쩔 수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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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프라만 갖춰진다고 다가 아니다. 그 나라만의 특색있는 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푸껫도 그런 문화를 느낄 수 잇다. 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과 풍경, 공연은 이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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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은 발리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발리와 비교하면 뚜렷한 나름의 컬러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이책을 보면서 느꼈다. 전체적인 느낌은 바다에서 해수욕하고 쇼핑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즐긴다는 것이 다란 느낌이다. <br />
<br />
물론 푸껫에 대해 들어본 것이 거의 없고 이책만으로 확인한 것이니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시리즈를 여러권 보아온 경험으로 보면 아마 실제 푸껫의 사정이 그렇기 때문이고 그런 사정이 책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803/40/cover150/8925540274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40274</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전쟁의 안개 속에서 - [차가운 밤]</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250180</link><pubDate>Mon, 08 Nov 2010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2501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9672&TPaperId=42501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58/33/coveroff/89527596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9672&TPaperId=42501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차가운 밤</a><br/>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08월<br/></td></tr></table><br/>‘중경삼림(重慶森林)’, 이책을 보면서 떠오른 이름이다. 왕가위 감독의 초기작인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왜 제목이 중경삼림이라 붙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보면서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br />
<br />
충칭(重慶)은 안개로 유명한 도시이다. 안개. 새벽의 숲을 거닐거나 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산뜻하면서 편안한 느낌이다. 그러나 도시의 안개는 어떨까? 원시림 한가운데 길을 잃고 헤맬 때의 기분이 아닐까? 오리무중(五里霧中), 오리에 뻗은 안개 가운데 있다는 말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br />
<br />
중국인은 개인주의가 강한 민족이다. 그들의 개인주의가 화려하게(?) 만개한 홍콩. 왕가위 영화는 도시라는 바다에 갇혀 갈 곳 없이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그린다. 그의 영화 역시 사랑 타령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어딘가 어긋나 있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다. 섬끼리는 바라만 볼 뿐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것 조차도 안개에 가려 윤곽만 보일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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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의 여주인공 페이(왕비)는 주인공 633(양조위)과 사랑을 꿈꾸며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청소를 하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우렁각시와 같은 페이의 행동은 ‘타락천사’의 이가흔에게 복제되는데 이는 어쩌면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사랑이며 판타지의 사랑이다. <br />
<br />
그렇기에 홍콩이란 거대도시의 사랑을 말하는 왕가위의 영화는 ‘영웅본색’과 같은 홍콩느와르만큼이나 암울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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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역시 암울하다. 이 소설의 무대는 중일전쟁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에서 45년 일본이 패전하기 충칭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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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전쟁을 피해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쫓겨온 한 가족이 전쟁의 무게에 눌려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그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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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설은 전쟁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전쟁은 무대배경 이상이 아니다. 일본군과 중국군의 전투는 도시 멀리서 일어나고 가끔 일본군의 폭격을 조심하라는 사이렌이 울릴 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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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전쟁은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 전쟁은 때때로 일본군이 이웃도시를 점령했다, 충칭으로 진격하고 있다, 피난을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루머로만 떠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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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쟁은 주인공의 가족을 짓누르는 실체이다. 충칭의 안개처럼 그들의 숨을 조이는 조건이다. <br />
<br />
대학을 나와 교육자로 일하던 주인공 부부는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당시 일제시대 조선에서도 그랬지만 대학을 나올 정도면 상당한 집안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안일은 모두 하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었고 손에 물 한방울 묻혀본 일 없던 집안이엇다. 그러나 피난을 다니면서 돈도 떨어지고 아는 인맥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떨어진 가족.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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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교사 시절의 꿈은 피난생활의 고달픔에 온데간데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쓸데 없는 지식뿐. 충칭에 와 얻은 것이라고는 야워어 허약해가는 몸뚱아리 뿐이고 생활고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그의 어깨에 가족의 불화까지 더해진다. <br />
<br />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은 가족뿐인데도 주인공의 가족은 싸움으로 지세운다.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시어머니는 대학을 나온 신여성인 며느리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며느리에게 아들을 뺐기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더군다나 무능한 아들은 하고싶지도 않은 교정일이나 하면서 푼돈을 벌 뿐인데 수완이 좋은 며느리는 은행에 취직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그러니 자존심이 상하면서 더더욱 좋아질 수가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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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가족의 생계를 떠안으면서 시어머니와 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하루를 마감하는 생활에 지쳐간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안다. 그녀도 남편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 때문에 가족이 이런 고생을 한다는 자괴감 때문에 그와 아내 사이엔 대화도 뜸해진다. 더군다나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어머니와 아내 뿐인데 둘이 싸우기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중에서 아들은 누구 편도 들지 못하고 지쳐가고 병들어간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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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부부는 중경삼림에 나오는 왕비와 양조위와 비슷한 캐릭터이다. 중경삼림의 주제가로 쓰인 크랜베리의 히트곡처럼 가벼운 발걸음에 생명력이 넘치는 아내는 아무리 어려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표정을 지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그녀를 맞는 것은 충칭의 차가운 안개 같은 냉냉함과 적막함.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줄 힘이 없고 의지도 없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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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에 짓눌린 세 사람은 어서 전쟁이 끝나 지긋지긋한 현실이 끝나기를, 전쟁이란 안개가 걷히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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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파멸 밖에 없다. 시어머니와 다투는 것도 더 이상 인내하기 힘들어졌을 때 그녀는 집을 떠나 다른 도시로 전출한다. 이 소설의 시작이 그녀의 가출에서 시작했듯이 소설의 끝도 그녀의 가출에서 끝난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그녀는 남편이 잡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잡지 못한다. 잡을 자격을 없다고 그리고 그녀를 잡을 수단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떠났을 때 그를 지탱하던 힘이 소진되어 그의 병이 악화된다. 그래도 그녀에게 마지막 배려로 병이 좋아지고 있다고 마지막 죽는 날까지 편지에는 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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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본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곧 붕괴할 구사회, 구제도, 구세력이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희생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세 명의 주인공을 모두 동정하지만, 그러나 또한 그들 모두를 비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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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의 비극은 그들보다 거대한 힘에 눌려 그 힘에 반항할 수 없었던 나약한 인간의 무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란 말이다. 작가는 그 거대한 힘을 당시 중국의 모순에서 찾지만 그들이 느꼈던 자신이 어쩔 수 없는 힘에 휘둘린다는 무력감,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무력감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가족이 무너져 가는 것을 우유부단하게 손 놓고 있었던 남편에게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짓누르던 충칭의 안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758/33/cover150/8952759672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9672</link></image></item><item><author>Cura</author><category>예술/문학/여행</category><title>추한 도덕 -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title><link>http://blog.aladin.co.kr/706688166/4216966</link><pubDate>Mon, 25 Oct 2010 1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706688166/42169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4139&TPaperId=42169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87/65/coveroff/89591341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4139&TPaperId=42169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a><br/>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br/></td></tr></table><br/>“톨스토이는 실로 매혹적인 작가다. 톨스토이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 광대무변한 성격의 스펙트럼에 놀라게 된다.” 이책의 결론의 첫머리이다. 그러나 언뜻 보면 그렇고 그런 주례사식 마무리로 보인다. 톨스토이. 읽지는 않았더라도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고 그가 대문호라는 것은 다 아는 것이니까. 그러나 저자는 뻔한 마무리를 하고 있지 않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보자.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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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 안에 그토록 섬세한 예술과 그토록 지겨운 설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인류 보편에 대한 그토록 거룩한 사랑과 특정 대상에 대한 그토록 매서운 독설이 공존한다는 것이 놀랍고, 그토록 거대한 지성과 그토록 불가사의한 미련함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토록 실용적인 사람이 그토록 실천 불가능한 것들에 관해 그토록 끈질기게 설교를 했다는 사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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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왜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가? 저자는 톨스톨이가 황당한 인물이 된 것은 메멘토 모리,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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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평생을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보냈다. 아니 공포라는 표현은 조금 부족하다. 그는 죽음을 싫어했고 혐오했다. 죽음은 이 현실적인 청년을 철학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죽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봐 두렵고 이상한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 더불어 삶이라는 것 역시 알 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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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랄 수 있는 레빈이 이렇게 말하게 한다. “오늘내일 사이에 죽으면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결국 사람이란 오직 이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냥이나 노동으로 마음을 달래면서 일생을 보내는 거야.”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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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식으로 말하자면 톨스토이는 삶의 부조리함을 깨달은 것이다. 사르트르는 ‘의미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뿐이다.”라고 말햇다. 세상이란, 삶이란 원래 설명되는 어떤 의미, 즉 조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그 의미없는 것, 설명되지 않는 것을 설명해내고 의미를 부여해야 직성이 풀리고 살아갈 힘이 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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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깨달은 것은 삶의 부조리성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는 게 의미가 없으니 죽자! “실제로 톨스토이는 여러 차례 자살을 생각했다.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다. 아니면 복에 겨운 투정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그 후 약 삼십년간 그를 ‘인류의 스승’이라는 어려운 자리에 올려놓은 가장 직접적인 동인이었다. 죽음 앞에서의 허무, 바로 이것이야말로 톨스토이가 거대하면서도 기괴한 도덕가로 거듭나게 한 것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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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의 톨스토이를 스테판 츠바이크는 ‘지성의 자살’이라 평하고 저자는 사이비 교주 같다고 말한다. 이때부터의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교’의 교주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톨스토이교의 교리는 무엇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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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는 전통적인 수단은 종교이다. 그러나 너무나 똑똑한 “톨스토이는 이 세상 모든 것에서 거짓과 위선을 발견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다. 위선 탐지라는 영역에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니 그가 기존 종교에서 위선과 거짓을 찾아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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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리스고교와 교회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러나 올바르고 참되게 살기 위해 진지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다 결국 자신만의 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신의 이름은 ‘도덕’이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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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리나’에서 레빈은 우연히 어떤 농부와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신’을 찾아낸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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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사람들 중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요. 자기 이익만 차리고 살면서 자기 뱃속을 살찌게 하는 것만 생각하는 놈도 있고, 정직한 아저씨도 있지요. 아저씨는 영혼을 위해 살아서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거든요.” <br />
“어떻게 하면 영혼을 위해 사는 거지?” 레빈은 거의 외치다시피 말했다. <br />
“어떻게라니요? 뻔한 일 아닙니까? 정직하게 하느님의 율법대로 살아가는 겁니다요.”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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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것이 레빈의 깨달음의 순간이라 말한다.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하는 의문은 어떤 사변적인 철학이나 교리로 설명될 수 없다. 생활 자체만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가 하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계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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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명백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유일한 표시는 전 세계에 계시되어 있는 선의 율법이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속에서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신은 ‘선’ 즉 도덕이 되었다. 도덕이 인생의 답인 것이다.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즉 채식, 시골살이,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성생활의 중단, 예술의 박멸 등은” 톨스토이교의 율법이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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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기 짝이 없는 설교자가 된 톨스토이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잘 살자’였다. 그의 지루하고 고루한 그의 설교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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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환락의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야 한다. <br />
자신이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즉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br />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벌서 결혼했다면 부부 생활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br />
모든 사람을 형제처럼 사랑해야 한다 <br />
착하게 살고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br />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br />
곡물과 채소만 먹어야 한다. <br />
술과 담배는 끊어야 한다 <br />
어렵고 복잡한 예술은 다 버려야 한다 <br />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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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다 옳은 말이고 다 좋은 생각이지만 아예 세상을 등지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지킬 수가 없다. 그토록 똑똑한 사람이, 그토록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이 왜 이런 꿈 같은 이야기를 했을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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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톨스토이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일리가 있다는 것이 진리는 아니다. 톨스토이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는 일리 있는 것을 진리라 믿고 싶어 했다. 부분적인 진실을 진리 그 자체라고 단정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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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어딘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요즘 세상에 진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종의 수사처럼 쓰일 따름이다. 그러나 톨스토일츨 읽고 나면 진리에 관해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것이 스쳐 지나가는 한순간일망정…” <br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487/65/cover150/895913413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4139</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