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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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책장을 덮으며 문득 내 나이가 얼마인지를 떠올려본다.

서른 넷? 어라...... 아닌가?

결국 7에서 2를 빼보고서야 내가 만 서른다섯임을 깨닫는다.

그렇다!

나도 1982년생이다.

서른넷은 돌이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걷지 못하고 있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을 임신한 나이였다.

그랬다!

그때부터 내 시간은 내가 나이를 먹는지조차 모르고 흐르고 있었구나!

하기야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서서 이것저것 쑤셔 넣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나이 드는 시간을 알 틈이야 있겠는가

 

그렇게 버티듯 키워낸 아이가 느리다.

 

아이가 느리고부터 모든 일들은 화살이 되어 나의 가슴에 꽂혔다.

김지영씨가 부러웠다.

미지의 힘을 얻어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그녀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초등 수학 문제집이라도 사서 한번 풀어볼까?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뭉치던 가슴도 덜 아프고)

드디어 (잠을 조금 줄이면)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육아서를 봤어야 하는데 너무나 다른 책들이 보고 싶었다.

한때 ‘책은 아이를 더 키워놓고 봤으면 좋겠다는 시어머님의 말씀이 꽤나 서운했지만,

이제는 육아서를 챙겨보지 않은 내 자신을 탓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시간의 경계에 읽은 유일한 책이다.

아이가 느리다는 사실을 간과하며 읽기 시작한 구십 쪽과,

절망 속에서 읽은 나머지 백 쪽!

그리고 알게 된 천금같은 사실!

 

책은 지금 현재 나에게 딱 맞추어 다가온다.

 

앞의 구십 쪽은 화났지만 참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늘 4647번을 달고 다니면서도

왜 남자들은 1번부터, 여자들은 41번부터 번호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이런 나에게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추억에 사로잡혀 웃게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시절 일기도 꺼내어 읽어 보았는데

정말 하나같이 유치한 글들에도

일일이 진심으로 답 글을 달아주신 담임 선생님의 글씨들을 보며

나 혼자 스스로 커버렸다 믿어왔던 지난 시절을 반성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허나 뒤의 백 쪽은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한쪽이 계속 찌릿찌릿 아파왔다.

결국 남편은 육아를 돕기만 했기 때문에 아이가 느린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죽을 각오로 아이를 낳았고

출산 후 20kg가량 살이 빠져 체중계의 앞자리가 3으로 내려가려는 데도

아무도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아직 10kg가 안되다고, 그리고 느리다고 애 안보고 뭐했냐고 묻는다.

잘 시간을 줄여가며 책을 봤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모성애가 없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무대답도 하지 못할뿐더러 지옥에 갈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이어서 참 다행이다.

솔직히 아이만 좋아진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안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여자로서 내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어느 곳 일지

찾아내고 말겠다는 생각도 같이 한다.

김지영씨도 나도 회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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