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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배신
이노우에 요시야스 외 지음, 김경원 옮김 / 돌베개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의료산업은 한국과 얼마만큼 닮아 있을까. 우선은 그것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 책은 대개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근거가 일본의 의료 산업과 의료 행위, 매스콤, 의사의 태도, 환자들의 믿음 등에 근거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의료에 대한 믿음은 일종에 신앙 같다. 질병 혹은 어떤 증상에 대한 서로 대립되는 치료 행위는 종종 믿음을 근거로 결정된다. 현대 의학을
맹신하는 사람, 현대 의학을 거부하는 사람, 자신만의 자연요법이 신흥 종교라도 되는 듯 전도에 열을 올리는 사람, 그래서 균형있는 시각으로
의료 체계를 바라 보는 것이 늘 어렵다.
여러 분야의 의사와 전문가가 건강 불안과 과잉 의료의 시대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건강이고 의료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현재 일본 사회의 의료 및 건강 산업과 건강 염려증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기획 도서이다. 각 챕터별로 다른 사람이 썼기에 겹치는 부분도
있고, 문체나 글의 구성 등에 있어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의료 현실에 비추어봤을 때, 비판할고
꼬집고 넘어가야 할 요소요소를 골고루 배치했다는 점에서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겠다. 다만, 책을 읽기 전, 의료 시스템을 비판하는 서적들
중에는 주장만 있고 근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근거가 확실해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런 의견도 있다 라는 시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첫번째 두 챕터는 불필요한 CT 검사와 피폭 문제, 충치 예방용 불소의 위험성을 다룬다. 실제 그 분야를 주제로 단행본으로 엮은 저자들에
의해 쓰여져서 내용이 자세하다. 생활습관병의 정체를 밝힌다는 다음 챕텨는 일본 후생성이 위험 인자로 채용한 식습관, 운동습관, 흡연, 음주 등의
위험인자의 수수께끼와 의료업게의 사정에 대해서 폭로한다. 다음 챕터에서는 필요 없는 과잉 검진의 현주소를, 그 다음 챕터는 무라 사회라는 일본
사회의 독특한 구조로 본 의료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계속되는 챕터에서는 정신의료의 권력성에 대해 건강검진이라는 상품이 소비되는 현상의 준의료
종사자로서의 해석, 그리고 불건강이라는 꼬리표와 싸우며 스포츠클럽에 다니는 일본인의 건강불안 해소 실태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의료 과잉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충고로 끝을 맺는다.
의학이라는 것 자체가 수학이나 물리처럼 연역적 방법으로 증명가능한 명확한 자연 법칙이 아니라 확률에 의지한 가능성을 다루고 있기에 그
의학이 의지하는 확률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완전 엉터리 치료와 주장이 삐집고 들어갈 여지가 수도 없이 많다. 그나마 우리가 가장 객관적으로 믿고
따르는 이 확률상의 게임 역시 사실 철저하게 독립변인들만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기에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수돗물에 불소를 함유한 나라에서 암 발생률이 높았다는 주장은 실상은 우리에게 신뢰할만한 정보가 못된다. 두 나라의 암 발생률의
차이는 수돗물에 불소 첨가 여부가 전부가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연구 사례들이 은폐되고 축소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불소
첨가 여부가 두 나라 사이의 암 발생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통계적인 주장이 신뢰가 적은 방법으로 분석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음을 항상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참조 논문을 일일히 찾아서 뒤져볼 수도 없다. 그들의 식습관, 운동습관, 생활방식, 노동 시간, 주거환경, 위생상태 등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두 문화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런 복합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역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밝혔다고 말하는 것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과학이란 이름으로 선량한 독자를 속이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학을 의료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가급적 다양한 소스로부터 많은 정보를 접한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스스로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 기반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무엇을
근거로? 확률? 확률은 의사에게 있다. 그리고 의사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믿는 최선의 확률을 가진 치료법을 선택하여 치료를 권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치료법은 만능이 아니다. 다른 많은 동일한 케이스에 같은 방법을 적용했더니 차도가 생겼으므로 이 경우도 나을 확률이 많으므로 그
방법을 쓰는 것 뿐이다. 9명의 다른 환자들에게 나았지만 1명인 나에게만 부직용이 있을 수도, 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확률은 믿고 따라야 할 진리가 아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선택하는 것이다.
많은 내용이 잡다하게 섞여 있지만 의심과 공감을 동시에 하면서 주목했던 부분이 몇몇 군데 있다. 노화는 병이
아니다. 이 부분은 누구나 인정한다. 사람은 늙으면 반드시 죽는다. 마찬가지다. 따라서 고령자가 되어 발생하는
증상은 질병이 아니다. 병이 아니니까 증을 붙여서는 안된다. 설득력 있다. 따라오는 주장은, 그 대표적인 예가 고혈압
증상이라는 것이다. 고혈압은 증이 아니다. 고혈압 상태는 나이와 더블어 생겨 나기 때문에 병이 아닌 것이라는 거다. 그래서 저자는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고혈압증, 고지혈증, 골다공증처럼 나이들면 생기는 증상에 증을 붙여 약을 팔아 먹으려
드는 것이 요즘 세태다라는 것이다. 늙으면, 기억력도 쇠퇴하고, 피부도 쭈글쭈글 해지고, 작은 글씨들은 보이지도 않고, 미세한 음의 차이를
구분해낼 수도 없게 된다. 그 불편을 이기기 위해 돋보기도 쓰고, 좋다는 크림을 사서 바르고, 뇌에 좋다는 운동과 영양제도 먹지만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지는 않는다. 늙으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은 것들은 최대한도로 저항을 하지만 그래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해간다.
고혈압? 고지혈증? 골다공증? 이 모두도 노화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약을 먹는 것은 불필요한 것일까.
그것에 대한 결정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길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1만5천원짜리 책의 일부의 주장에게 그대로 맡길 수도
없다. 어쨌든 자신의 의료 가치 체계 내에서 결정해야 될 문제다. 균형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꽤 높은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
자격증도 없는 수상한 사람들 중에 전문가나 전공자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진짜로 수상한 사람도 섞여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잘못된 건강 상식을 미끼로 취약한 노약자를 대상으로 돈벌이 수단에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무언가가 좋다고 하면
어김없이 매스컴을 타고, 그것을 복용한 후 온갖 고질병과 불치병 심지어는 암까지 나았다는 사례자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고 대한민국은
냄비처럼 그 신비한 물질 세상이 되었다가 곧 얼마 안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는다. 그러한 의료 현실은 일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하일루론산을 경구 섭취할 경우 하일루론산 자체가 분해되어 그 성분은 몸속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도, 마치 구세주인양 불티나게 팔렸던
사례가 서장에 소개되어 있다.
가장 내용도 충실하고 풍성한 읽을 거리가 있던 부분은 6장 <정신 의료의 권력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가> 라는 제목의
내용이다. 심리 치료를 위한 의료인과 카운셀러와의 대화는 의뢰인이 무엇을 말하든 경청하고 수용하며 공감을 나타내야 한다는
카운슬링을 위한 특정 규칙에 의해 움직이고, 그 반작용으로 의료도 감정에만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는 문제가
수반한다. 또한 현재와 미래의 심리 치료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증진적 개입에 의해, 인간의 신체
개조를 꾀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정신과 치료제를 일반 사람들까지 함부로 복용하거나 ADHD
아동에게 처방을 내리고, 기억력이 높아진다고 알려진 항우울 치료제 프로작을 일반 학생들이 항시로 복용한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약을 팔기
위해 우선 환자부터 만들고, 내향적인 사람까지 환자로 취급하는 상황을 꼬집고,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자본으로 삼아 경영하는 기업가'라는
모토하에 자본으로서의 인간 능력 향상을 위해 매순간 자신을 갈고 닦는 행위를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는 파놉티콘에 비유한다.
이 장(6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통칭 바살리아법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법률 180호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이 법률은 병원
내의 의사와 환자 사이의 권위적 관계가 치료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전국의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정신의료센터가 정신병 환자의 지원을
대신하는 것이다. 바살리아는 언제나 '병이 아니라 고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존적 고민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정신병원이라는 제도하에 벽 속에 처박아 두기만 한다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철학에서 나온 법률이다. 당시
이탈리아의 거리에는 '가까이서 보면 제정신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표어를 적은 플랫카드를 여기저기 걸어 놓고
이 법률을 홍보했다고 한다. 흔히 기분이 조금 우울해지면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서 하고, 당장이라도 항우울제를 먹지 않으면 자살
충동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정신건강염려증에 많이들 걸려 있는데. 그건 병이 아니다. 그냥 우울한거다. 300여명의 어린 아이들을 물속에
수장한 나라에서 안우울하면 정상인가.
*리뷰어 클럽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