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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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째 생일 이후 공식적으로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구스타프 아센바흐는 우리 대륙에서 몇 달 동안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던 19××년** 어느 봄날 오후 뮌헨의 프린츠레겐텐 가에 위치한 집을 나와 혼자 꽤 멀리까지 산책을 갔다 (박종대 역) 



구스타프 아센바흐, 또는 50회 생일 때부터 공식적으로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로 불린 그는, 유럽 대륙에서 몇 달 동안 불길한 조짐을 보여 온 19××년[1] 어느 봄날 오후, 뮌헨의 프린츠레겐텐 가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나와 혼자 꽤 멀리 산보를 했다 (홍성광 역)



작품의 첫 문장이다. 여기서 19xx년은 1차대전의 불길함을 나타낸다고 하고, 아센바흐라는 이름 역시 어떤 조짐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이 첫 문장은 제목에서도 직접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죽음 혹은 불길함을 암시한다고. 대충 읽으면 뭐 첫문장부터 중언부언하나 싶은데, 구스타프 아센바흐 가운데 폰이 붙은 건 귀족 작위가 붙었다는 그런 의미로서, 작품 내내 흐르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라는 의미와도 통하는 게 있다. 원래는 귀족이 아니었는데, 글을 잘 써서(?) 귀족 작위를 받은 뭐 그런 뜻으로 이해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느 날 문득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어떤 순간들이 올 때가 있다. 이 책이 쓰여진 100년 전에는 사실 TV나 영화 인터넷과 같은 매체가 끊임없이 소비를 부축이고 자극하는 때가 아닌지라, 일탈을 꿈꾸는 일도 흔치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도시 바이에른에 살고 있는 성공한 작가 아센바흐가 베네치아로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길에서 이방인인 듯한 이국인을 보고 나서다.


그것은 떠돌아다니는 불안감 같은 것이자, 먼 곳에 대한 청춘의 갈망이자, 생생하고 새로우면서도 오래 전에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 현대문학 단편선 토마스만 편


발작처럼 일어난 훌쩍 떠나고 싶은 격정적인 욕구는 그를 성공으로 이끈 그의 자기규율과 이성에 의해서도 억제되지 않고,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떠나기에 이른다. 그동안 감정을 가혹할 정도로 억누르고 차갑게 식혀온 아센바흐가 그것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억제보다는 충동으로 더 잘 표현되는 베니스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향후 그곳에서 있을 사건을 예건하는 전조로 보인다. 


여행길에 오른 후, 아센바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사소한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 중 가장 강렬하게 그의 심리를 설명하고 소설의 주제와도 관통하는 부분은 염색과 화장으로 교묘하게 나이를 감춘 늙은이가 젊은이들과 함께 호탕하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는 그 늙은이의 추한 기만에 경악을 느낄만큼 혐오하는데, 결국 그 모습은 작품 내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훗날 그가 타지오를 욕망하면서 결국 그 늙은이와 다를 바 없이 염색을 하고 화장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베니스에서 맨 처음 마주친 곤돌라 사공 역시 공용 보트를 이용하려는 그를 속여 직접 리도로 향하는데, 후에 면허증이 없는 가짜임이 드러난다. 가장 커다란 거짓말은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는 도시의 침묵이다. 호텔 지배인, 악사,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작정을 하고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콜레라 발생 사실을 적극적으로 숨긴다. 즉 작품 전체에는 아센바흐가 마주하고 있는 거짓과 속임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아센바흐는 그것을 알아차리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거나 오히려 그 거짓에 묘하게 끌려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 거짓으로 가득찬 베니스에서 그는 예술적이고 충동적인 욕구를 발견한다. 그 가장 중요한 핵심에 타지오가 있다. 호텔과 해변에서 그는 여자들에게 둘러쌓인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를 매일 만나는데, 그에게 끌리는 욕망은 동성애적이고 말초적인 것인지 단순히 아름다움에 끌리는 예술적인 것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는 없으나,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에서 그것을 모르는 척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분명 스토커인데,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눈길만 스칠 뿐인, 스토커임을 증명할 길도 없는 난해한 스토커이다. 


암시와 상징이 곳곳에 깔려있지만, 실제로 타지오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주치고, 소년을 몰래 따라다니고 관찰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한 남자의 불안한 내면을 따라 읽을 뿐이다. 알고 보면 별 내용도 없는데, 토마스 만의 소설 중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듯하고, 읽으면 읽을 수록 그 속에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듯해 박종대 버전으로 한 번 더 읽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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