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징징대는게 페미니즘은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억울하다고 호소하거나 고발하는 게 페마니즘인 시대는 지났다. 여성 주인공이 기존의 남성이 해왔던 영웅적인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해서 그게 페미니즘도 아닐 것이다. 무엇이 페미니즘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상속에서 자각하지 못했던  불합리한 울타리. 여성이라는 틀. 그것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해주는 것.먼저 태어나 부당한 세상에 저항했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선거권을 인권을 동등한 권리를 쟁취했던 선배들이 덜부순 것들 혹은 도저히 부술 수 없어 보이는 뿌리박힌 인습들 그런걸 알아가기 하는 게 페미니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 사상들을 글을 통해 전달하기는 쉽지만, 삶 속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소설을 통해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소설을 통해 주제의식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지겨운 계몽이나 선동 문학이 되기 쉽다.   


분명 우리에겐 틀에 박힌 여성의 이미지가 있는데 때로 그것아 문화적 틀 내에서 시대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걸로 몇겹씩 곱게 포장되어 있다.  그러한 문화와 착붙이된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의 틀은 때때로 인간의 자유와 펑등과 정의를 지속적으로 훼손함에도 불구하고  부수기 힘들다. 내 세대의 퀘퀘묵은 성적 순결 문제가 그랬었고, 아직도 진행중인 시부모와 친정 부무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의무감의 차이가 그렇다.  더 말하자면 끝이없다. 시대가 결혼과 동시에 여성에게는 가사와 육아와 시가에 대한 의무가 차곡 차곡 쌓이며 차례를 기다린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수없이 일상 속에서 제기되는 것이어서,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될 필요성도 있다.  불만과 성토의 장이 된 커뮤니티,  미러링이란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왜곡하는 곳까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은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악용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시 여성에게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시대가 요구하는 성적 역할은 지배적 성이 결정했다. 힘이 센 남자가 힘이 덜센 여자를 지배하는 전통은 더이상 힘이 세상살이를 결정하지 않는 문명의 시대에 와서 정교하게 다듬어져 윤리와 도덕과 문화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틀을 부수는 데는 시대가 이건 도덕이야 라고 부르는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 그 의심은 갈등을 부른다. 뭐야 여자가. 왕세자와 유명 철학가덜의 청혼도 마다하고 과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의 상징인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여성 수학자 히타피아가 머리털이 뽑히고 굴껍질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문끝에 죽임을 당한 이유는 분명히 그의 성과 관련이 있다. 


사둔 책들 중 페미니즘과 관련된 소설이 하나 있어 앞부분을 조금 들여다 보았다. 이갈리아의 딸들, 아마도 메갈리아의 용어가 이갈리아에서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구 문화에서  보조적 성으로서의 여성의 롤은 언어에 그대로 스며있다. 그 책의 첫페이지가 첫줄이 용어 설명인데 여성과 남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뀌었다.   wom(움)은  여성과 인간을 동시에 지칭한다. 영어의 man에서 대부분의 직업을 나타내는 말이 합성되어 spokesman, policeman 등의 단어가 나오는 대신 이곳은 반대로 spokeswom, seawom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바로 여성 wom에 man 접두어가 붙어서 manwom이 된다. 그리고 남성은  페호라 부르는 성기 보호기를 찬다. 아무튼 이런 역설적 설정이 남성들에게 여성의 겪는 불공정함, 불편함 등을 간접경험하는 기회이기는 할테지만,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굉장히 불편해할 것은 뻔하다.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나는 지금 시점(남녀 갈등이 심화된 시점)에서,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남녀 양진영에서도 공격받지 않으면서도 할말을 하려면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 라는 것. 82년생 김지영을 쓴 작가처럼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대한 민국 평균의 여성의 삶의 일부(부당한 부분)를 도려내 마치 카메라로 다큐를 찍듯  찍고 편집하는 방법과  암시와 상징으로 모호하게 페미니즘를 나타내는 방법, 이 책의 단편들은 이 두 가지 중 하나다. 조남주의 <현남 오빠에게>와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는 전자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앉아 한 줌 얘기로 끝나는, 끝나고 돌아가면 모두가 각자 잊혀지고 다시 그 현실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현남 오빠는 지방에서 올라와 현남오빠와 캠퍼스 커플이 되어 현남오빠의 주도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부터 주인공 여성의 삶과 미래까지 모두 결정되고 결국 결혼 코앞까지 갔다가 막판에 깨닫고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서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하고 통쾌하게 끝나는 내용. 이기적인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그가 베푸는  '보호'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심지어 자기 직업까지도 남성의 요구에 맞춰 결정하는 그런 멍청한 여성상이 21세기 지금 현실에도 존재하는 현대적 여성상이라면, 이건 남자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런 남자에게 계속 의지한 여성의 잘못이 크며, 여성의 자각이 사회적 변화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당신의 평화>는 대를 이어 인간대접도 못받는  마지막 며느리였던 정순이, 늘 외식하던 남편 생일날 결혼 예정인 아들 약혼녀를 집으로 불러 시켜먹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을 딸 유진이 묘사한 내용이다. 김이설의 <경년>도 비슷하게 주변의 있을법한 현실의 이야기인데, 고딩 아들의 문란한 성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 아버지의 태도, 자신의 이중적인 잣대를 다룬다. 그 이중적 시선은 자기 아들로서 옹호하고 싶은 약간의 마음과, 여성으로 느끼는 남성의 성적 지위에 대한 불편함 등이 있다. 즉 이 세 작품은 여성의 틀을 깨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이며,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여성들이다.


나머지는 첫 세 개의 작품과 조금 다르다. 여성이 주도적인 주인공이거나 여성의 위치에 처한 남성이 주인공이다.최정화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서 주인공은 손에 습진을 앓아 장갑을 끼고 다니는데, 폐건물의 촬영을 맡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폐건물에서 여자 치마로 보이는 게 떨어져 있어 그걸 치우다가, 하나씩 손을 대 말끔하게 치운 다음 사진을 찍는데, 그런 다음 장갑을 벗으니 자기 손의 습진이 다 나았다는 건데,  이 소설이 무얼 말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상황은 장황하게 묘사하는데, 결국에 아리송 작전으로 끝을 맺는 단편은 나랑 잘 안맞는 거 같다. 손보미의 <이방인>은  SF 추리 소설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로  권력과 타협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신있는 여성 수사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소설이 조금 특별했던 이유는, 주인공의 행동이 이제껏 모든 추리 소설에서 남성이 담당했던 내면적 고뇌와 외부의 압력, 그리고 반대성의 추종자(?)동료의 협업 같은 요소들을 그대로 여성 주도적 인물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어? 여성이었어? 하고 의외였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문학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고정시켜놓았는지를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역시나 가장 좋았던 소설은  좋아하는 작가 구병모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었다. 제목에서도 알다시피, 그리고 구병모적  판타지적 세계를 굉장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천연덕스럽게 묘사하고 특유의 화려면서도 약간 엣스러운 만연체로 풀어나가는 동안, 내용은 다른 것과는 달리 남성이 주인공이다. SF적 판타지와 남성이 등장하면서도 페미니즘으로 태깅된 소설을 쓰는 아이디어 역시 높게 평가한다. 이 남성은 우연히 어떤 섬에서 개최되는 여성분장 미인대회에 출전했다가 봉변을 당한다. 그러면서 벗겨지지 않는 굽 높은 구두와 벗겨지지 않는 꽉 끼는 원피스를 입고, 귀신인지 홀로그램인지 정체모를 것들이 쏘는 화살 습격으로 도망가고 함께 출전한 남성참가자들은 이미 화살이 목에 박혀 죽는 다이나믹한 장면이 포진된 단편이면서도 흥미진진하고, 그러면서도  페미지즘적 메시지를 가장 명료하고 또한 정치적으로도 올바르게 전달하는 소설이다.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 역시 SF 계열인데, 인간도 아닌 어떤 생명체 클론이 우주 탐사를 위해 우주선에 태워져서 보내지는데, 알고 보니 임신했다는 얘기. 나름 흥미롭기도 한데, 김성중의 스타일과도 나는 잘 안맞는것 같다. 너무 심오한 주제와 암시가 심해서 피로감이 나타난다고 할까. 그래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는 대충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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