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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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소설이 결합하면 뭔가 디저트처럼 달콤하고 포근한 걸 기대하기 쉽다. 이승우 작가가 썼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사랑, 그게 대체 뭔데, 진짜 정체가 뭔지 한번 들여다보자, 며 덤벼들어 낱낱이 해부하고,  재단하고, 사랑과 싸우고 그러는 과정 중에서 사랑이 뭔지,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과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성찰한다.


사랑과 사랑이라는 두 글자 말은,  참으로 복잡하고 많은 감정과 행동을 담는다. 가장 흔하게 쓰인 말, 널리고 널린 게 사랑이지만,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 객관적 실체를 모른다. 사랑에 사실 객관적 실체라는 것이 있는 건지 혹은 찾는다고 찾아질 수  있기나 한 건지도 알 수 없다.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 폭력도 사랑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미움도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간주되는 걸 상기한다면, 남녀가 사랑한다고 하는 것의 그 진실한 의미는 복잡 미묘하고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기 가장 어려운 개념일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사랑을 하나의 생명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주어가 되고 주체가 된다.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을 덮치는 것이다. 사랑이 사람에게 기생하기 시작하여 사랑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짧던 길던 그 자신의 생애를 모두 끝마친 후에야 그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작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이고, 큰 공감을 만들었다.


사랑과 사람의 관계가 역방향으로 서술되는 것처럼 소설의 형식 역시 서사와 철학이 역방향이다. 이야기 속에서 사랑의 철학적 이해와 해석이 동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탐구와 관념적 사유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랑은 세 사람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찾아와 각기 다른 개인의 삶에 큰 충격을 만들며 기생을 시작하는데 그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은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진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서 끝없이 변화하는 사랑의 또다른 모습을 실천하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사랑이 사랑이라고 말해졌을 때, 사랑은 사랑을 발화시키거나 혹은 잠재된 사랑의 불씨를 영원히 꺼뜨리기도 한다. 누가 봐도 커플이라 생각되는 두 사람에게 진정한 양방향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은 사랑이라는 말이 발화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거기엔 위험이 뒤따른다. 한 사람에게서 발화되는 사랑이 반대쪽 사람이 꺼뜨리면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이전의 관계로 돌이킬 수 없다.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을 수는 없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일단 한 번 알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는 그 사람을 사랑하던지, 그 사람과의 이제까지의 친밀했던 관계마저 단절하던지. 겉보기에 쿨한 관계로 되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 무참히 깨졌다는 자괴감은 관계의 균형이 깨뜨릴 것이다.


사랑이라는 놈은 자기가 기생해서 살게 되는 숙주의 품위와 위엄, 그리고 편리함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둘이 만났는데 동시에  같이 좋아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면 세상이 얼마나 편하겠으며, 문학은 얼마나 재미없을까. 엇갈린 사랑은 2년 전에 나를 사랑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시간이 지나도 자신을 향한 사랑이 아직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남거나 혹은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의 오만과 이제 그를 향한 사랑을 완전히 몰아냈으니 그가 제안한 야식 만남을 부담없이 여기는 사람 간의 비껴간 사랑이 조소를 보내고 있을 때, 사랑의 크기가 너무 커서 활활 타오르고 남는 에너지가 엄청난 크기의 불안과 질투를 유발한 그녀 남자친구와 만나는 순간에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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