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이 ,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스스로 죽거나 타협하거나다. 차선으로 망명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 아마도 그건 배반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것 이상으로 역겹긴 마찬가지일 터였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양분된 세계에서 어느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선택한 서방 체제에 충성한다는 전제가 필요할 터이니 말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 작곡가는 자본가들이 열광하고, 서방 체제가 선호하는 곡을 써야 했을 지 모른다. 얼마 전 읽은 러시아 문학 강의에서도 망명을 택할 것인지,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 채로 전제 정권이 망할 때까지, 혹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살아 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했던 스탈린 시대의 수많은 문학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 예술가들이 스탈린 공산 치하에서 '양심껏 '살아남는 일은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었을 테다. 공산진영에서는, 노동을 찬양하지 않아서 감옥에 가고,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노동을 찬양해서 감옥에 가고(70~80년대 한국), 예술가들이 정치 선전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남기가 어려웠던 냉전 시대, 망명을 선택하지 않은 한 위대한 예술가들 초상이 일기장에 쓴 글처럼 띄엄띄엄 그의 삶을 조명한다.



포르테시모에 장조로 끝나는 음악, 낙관적이고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음악이 당이 원하는 음악이다. 러시아 인민의 진짜 삶은 비관적이고 어둡다. 형식주의라는 비판아래 예술가들이 하루 밤사이에 체포되어 사라지는 예술가 대숙청 시기에 쇼스타코비치는 프로크피예프를 비롯한 몇 안되는 음악가들과 함께 살아남았다. 문제는 스탈린 스스로가 예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었다. 이 독재자는, 예술을 사랑하고 장려했다. 첫 불은은 그렇게 찾아왔다.


이미 당 예술 기관지<프라우다>에 호평을 받은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보러왔던 스탈린과 측근은 그들이 보고 있다는 긴장감에 금관악기를 시작으로 소리가 커져버린 연주를 보다 중간에 나가버리고, 이후 <프라우다>지는 그의 음악이,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며 혹독하게 비판한다. 이 일을 계기로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둘씩 처형되어 버리고, 그의 차례가 오자, 스탈린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올가미가 쒸워졌고, 함께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은 대원수는 이미 처형되었다. 이제 심문을 받기 위해 매일 밤마다 승강기 앞에 스스로 가서 기다리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를 기대리는 심문은 더이상 없었고, 살아남는다. 


4번으로 끝날 뻔했던 그의 교향곡이 5번을 붙여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었고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 숙청의 공포를 경험한 후 보란 듯 내놓은 권력이 원하는 음악, 프로테시모에 장조로 끝나는 음악에, 매체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말이 음악을 더럽힐 수는 없으며,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고. 그러므로 음악을 모르는 권력층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게, 거기에 그 권력의 더러운 말들을 갖다 붙일 수 있게 해 주는 눈속임, 혹은 귀속임일 뿐이다. 그의 음악의 난해함, 끽끽거리는 아이러니는 음악의 그 순수함이 갖는 승리의 조롱이다. 교향곡 5번의 대성공에 대한 분석적 설명은 '낙관적인 비극'이라 불린 것을 보면 그의 의도를 권력은 알아챘다는 것일까.


어쨌든 그가 살아남게 된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예술을 탄압했던 스탈린이 예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점이었다. 또한 당의 선전 도구로 이용하기를 원하고, '썩은 마인드를 가진' 예술가들을 탄합했던 했던 스탈린이 특별히 사랑해서 더 듣고 싶었던 음악가들 중에 그가 속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대가. 그는 당의 선전 도구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그러나 괜찮았다. 당이 써준 연설문,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연설문을 서방 세계에서 그대로 앵무새처럼 읽는 것도, 당이 원하는 음악, 형편없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것도 괜찮았다. 어쨌든 그는 음악은 음악일 뿐이며, 그 음악을 말이 소유하고, 정권이 소유하고, 인민이 소유하고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나보코보와의 만남은 그 인생에 최대의 치욕을 안겨준다. 쌀벌한 냉전의 그늘 아래 당의 선전도구로서 친선 연주를 위해 북미 여행을 간 그가 공개석상에서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그곳에 온 자신을 비판하는 인터뷰 질문을 받았을 때,  세계가 보고 있는 그 인터뷰 상에, 질문은 쇼스타코비치의 심장을 찌르고 양심을 찌른다. (나중에  작가 노트에서인가 보니 나보코보가  CIA에서 지원을 받았다고).  


진실을 말하고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세상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질문에 또박 또박 대답한다.  "예 개인적으로 그런 의견에 동의합니다. " "예 그런 조치에 동의합니다. ".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스트라빈스키를 공격하는 연설문을 자기 생각인 것처럼 대중 앞에서 (성의없게) 읽지만, 나보코보는 확인 사살을 시도한다. 연설문 원고를 검토하지도 않고 읽으면서 예리게 찔린 양심은 이제 나보코보의 질문에 무참하게 짓이겨진다. 오늘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대하여 당신의 연설에서 피력한 견해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십니까?" "예 그런 견해에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심정으로 그는 전세계가 보는 대중 앞에서 비굴하고 겁쟁이인 자신의 민낯, 발가벗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야 만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싸우기를 바랐고, 싸워서 피흘려 쓰러질 순교자를 원했고, 그리고 그렇게 많은 순교자로 그 체계의 끔찍함과 잔혹함과 사악함을 입증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피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권력층과 더 닮았는지 생각한다.



그것은 배신이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를 배신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음악을 배신했다. (162)


윤년마다 치욕을 겪는 쇼스타코비치에게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치하에서 가장 큰 사건이 기다린다. 당에 가입하라는 압력이다.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회유와 압력을 받던 그는 스탈린 치하에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당원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고, 이제 순교자가 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한다. 승강기 문 옆에서 심문과 처형을 기다리던 시절, 공포 속에 한편으로 제거되어 버리고 싶었던 가슴 두근거리던 욕망을 기억했다.

늙어서는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233)

전기는 굉장히 많이 따로 있고, 그것들을 참조하여 쓴 소설이다.  우리는 어떤 위대한 예술가의 생을 읽으며 한쪽 귀만 보이고 반대쪽 귀는 가려서 보이지 않는 택시 운전사를 상상해야 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부이 주변에 남긴 여운들을 통해 시대가 남긴 소음을 만난다. 그 소음과 협력한 한 음악가의 치열했던 삶, 삶속의 양심, 자존감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스탈린 시대에 탄압의 주체가 되거나 권력의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협력함으로써 비겁자로 남아야 했던 한 예술가가 남긴 음악을 들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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