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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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멋진 경험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욕망을 충족할만큼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제대로' 쓸 시간은 줄어든다. 돈이 쌓여 있으면 뭘하나,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 바쁜 사회 유흥점들이 판치는 이유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하면서 살겠다고 해보자. 이번엔 돈이 없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의식주가 기본으로 먼저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그 뭔가를 위한 자본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무슨 운동을 하려 해도 각종 장비가 필요하고,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유유자적 삶을 즐기고 싶어도 땅과 시골집이라는 기본이라고 할 수 없는 비용이 소비된다. 더욱이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돈을 버는데 그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 경우 요행이 따르지 않는 한 인생을 즐기고자 했던 광활한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궁핍과 불안이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돈이 주어져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돈과 바꾸는 건 손해보는 짓이라 생각하기 쉽다.  돈은 요행이 따르거나 구조적으로, 합법적으로 남을 약탈하는 방법으로 벌 수 있는 방법이 차고 넘치니 역시 시간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고 해야 옳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역시 오판이다. 요행은 일부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며 그 특별한 요행이 신화가 되고 책이 되고 희망이 될 만큼 큰 성공을 이루려면 대다수의 불운을 모두 합쳐 한사람의 그 요행에 기여해야 하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폴의 창백한 청춘은 이 시간과 돈의 시이소오에서 극단을 오갔다. 작가와 이름도 같은 주인공 폴이 작가의 페르소나의 일부임을 부인할 할 수 없는 이 소설 바깥쪽에서  볼 때는 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오판마저도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짧고, 그의 무명의 작가로서의 고생은 길었다.


젊은 날, 돈 대신 자유로운 시간을 선택한 그는 그 자유가 글을 쓰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동안도 실존의 시간은 흘러가고 글을 쓰기 위해 먹고 입으며 잠을 자는 생존의 책임에서 면책되지 않았으며 글이 되돌려주는 금전적 가치는 너무 하찮아서 먹고 살기에 빠듯핬다.  먹고 살만큼 글을 쓰기 위해 그는 너무 많은 글을 써야 하고,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이 더 이상은 즐거운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일은 지극히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국에서도 외국 어느 곳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도 생존에는 궁핍하게 숨을 이어갔던 인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이 모두 잘살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지만 읽는 사람들의 다수는 소도 키우고 종이도 펜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폴과 같은 개고생이 앞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회에서는 교수들의 월급이 일용 노동자들의 월 급여만큼 짠 곳도 있다. 조용남이 그 자신의 이름으로 몇억에 팔 그림을 대신 그린 예술가는 딱 먹고 숨쉴수 있을 만큼만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밤을 새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사는 것의 그 상세한 실체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폴 오스터의 실제 그대로의 경험인지 소설적으로 많이 극적인 부분이 가미된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을 지키고 추구하기 위해 잃는 것이 추구하는 것과 점점 더 멀어져갈 때의 초조함이라는 것의 일반성에 공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사는 일이 충족되어야 하고, 먹고 사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해서 충당하기에는 좋아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피곤한 일이 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가장 중요한 청춘의 시간들은 서서히 내 삶에서 빠져나가고, 남는 것을 초조해하면서 이런 삶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동안, 그 방황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며 먹고 살아야 하고 시간을 잃어버려야 한다.


원제는 조금 다른데 한국에서 번역하면서 책 제목을 빵굽는 타자기로 바꿨다. 타자를 쳐서 빵을 구워 먹고 사는 이야기라는 절묘한 제목이 내용과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폴 오스터의 이런 류의  이야기, 그러니까 어떤 평범해 보이는 상황을 극단에까지 몰고 가는 이야기에는 묘하게 힐링을 주는 데가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먹고 사는 이야기임에도, 그는 사회 질서에 저항한다.  처참히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비참해지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그 무언가, 타협하지 않고 버티고, 무너지지 않는 주인공의 어떤 힘이 수많은 타협된 현실속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걸까 혹은 그 험난한 가지 않은 길, 집중하지 않았기에 고생도 덜했던 인생을 돌아보며 안도감을 느끼는 걸까. 어쨌든 우리는 노력하지만 끝내 우리를 배신하는 것들의 일반적인 속성을 작품을 통해 확인하고 동질감을 느끼고 다독이는 듯한 위로감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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