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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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이 흩어진다. 거리의 이름, 사람들의 이름, 도시의 이름. 기억에 천착하는 소설가 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속에 무수히도 많은 이름들이 봄날 벗꽃잎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름들을 만나지만  몇몇 특별한 이름들을 제외하고 그 이름들은 상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인생의 어느 순간 함께 했던 어떤 장소, 어떤 거리, 어떤 얼굴들이 퇴적되는 시간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얼마나 묻혀 버렸던가. 그래서 갑자기 떠오른 오래된 사건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기억나?’ 라고 묻는다. 그 통상의 질문 속에서 기대하는 긍정형 대답은 크지 않다. 나는 기억하지만 너는 기억할 지 모르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우리 인생을 다가왔지만 또 그렇게 멀어져갔고 어떤 사실, 어떤 시간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었던 것처럼 잊혀졌다.


다라간에게 갑자기 나타난 남녀 질 오톨리니와 샹탈은 다라간이 떨어뜨린 수첩을 주었다며 다라간에게 접근한다. 다라간에게 잃어버린 수첩은 잊어버린 기억이며, 찾고 싶지 않은 수첩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다. 하지만 오톨리니는 그 수첩 주소록 속에 기록된 한 남자의 행방을 찾기 위해 홀로  몇 달째 아무도 만나지 않은 그를 찾아온다. 그들의 목적은 다라간의 기억을 쥐어 짜서 수십년도 전에 무심코 수첩에 적었을 한 남자 기 토르스텔에 대해 알아내고 싶은 것이다.  다라간의 눈에 남자는 의뭉스럽고, 동행했던 여자 샹탈은 혼란스럽다. 오톨리니의 남자친구 샹탈은 남자의 부재 중 홀로 다라간을 찾아와 오톨리니가 모아온 자료를 복사해 주는 등 정보를 제공하고 그를 위해  협조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방문이 거듭될 수록 샹탈은 오히려 질 오톨리니에 대한 석연찮은 사실들을 얘기하며 남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다라간은 그녀가 진실을 말하는지 혹은 그와 한패로 짜고 치는 것인지 확신하지도 못하는데, 그러면서도 여자의 무례한 부탁은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계획에 끌려가는 듯하다.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은밀히 다라간에게 접근해서 목적을 이루려는 건가 싶었는데, 곧 그녀가 하는 말 중 얼마간은 거짓말임이 드러나고 그녀가 사용하는 샹탈이라는 이름 역시 본명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야기가 흐를 수록 수첩 속 인물을 찾는 두 사람의 목적은 본질에서 멀어지고, 이야기는 더욱 알 수 없는 지점을 향해 의문스러운 기억 조각을 따라 부유한다. 


다라간은 이미 소설가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로,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처럼 몇달 째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지낸다.  작품은 두 사기꾼이 유명인에게 접근하여 그가 연루된 어떤 사건을 파헤치는 것처럼 전개되지만, 이야기가 진전될 수록 비밀은 점점 더 묻히는 느낌이 들고,  좀처럼 이야기는 앞을 향해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샹탈이 복사해 준 자료 속에는 마치 이름 속에 묻힌 어떤 과거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듯 묻혀있다. 이름과 이름 사이에서 아득히 먼 시간 저편 깨알같이 작은 디테일들이 떠오르고, 그녀가 준 자신의 첫번째 소설의 일부 페이지에 잠시 아무 의미 없는 이름으로서만 등장하는 '기 토르스텔'은 기어이 어떤 날의 다른 기억을 부른다.


어떤 지점에서도 그 남녀가 누구인지 왜 그를 혹은 기 코르스텔을 쫓는지 밝히지 않는다. 이들이 왜 그를 괴롭히는지 그것이 괴롭히는 것인지 혹은 기 토르스텔을 어떤 목적으로 추적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다. 기억이 찾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끝날 때까지 모호하다. 오톨리니는 샹탈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등장한 듯이 보이고, 샹탈은 다시 다라간 자신이 쓴 과거의 소설과의 조우를 위해 등장한 듯이 보인다. 즉 그들의 등장은 단지 다라간의 어떤 기억을 환기시킬 목적일 뿐이다. 그들은 단지 그가 기 토르스텔이라는 이름을 통해 과거의 어느 가을날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이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다는 듯이 무대에서 사라진다. 


기 토르스텔이라는 이름 역시 다라간에게 기억의 미끄럼틀 위에서 손을 잡아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는 샹탈이라는 여자의 이름에서 자신이 청춘 시절 함께 있곤 했던 동명의 여자를 떠올린다. 과거의 샹탈과 현재의 샹탈은 유사점이 있는데 하나는 과거의 샹탈이 주말이면 도박하러 다니는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는 사실과 또 하나는 그들의 파트너가 없는 사이에 어떤 목적으로든 다라간을 만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샹탈의 남자친구가 도박하러 갔던 장소와 질 오톨리니가 간 곳은 공교롭게도 같은 곳이다. 그는 젊은 시절 폴이 샹탈을 떠났을 때마다 그 과거의 샹탈과 자신이 함께 시간을 보냈음을 떠올린다.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다라간이지만,  좋았던 기억의 사람과 이름을 공유하는 때문인지, 의뭉스럽고 다소 위험한 현재의 샹탈에게도 좋은 감정을 갖는데, 이러한 다라간의 심리는 독자에게 의문의 조각이다. 


하지만 샹탈과 오톨리니가 밀어넣고 떠난 기억의 미끄럼틀은 직선 코스가 아니라 나선형이다. 최종 목적지는 최초의 방기가 시작된 곳,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리움과 따뜻함의 또다른 이름인 어머니와 버려진 어린 시절들의 분절된 기억이다. 다라간에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죽은 것도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닌 채로 방치해, 이 사람 저사람의 손에 맡겼졌던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기 토르스텔이 그의 어머니라고 기억했던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아나 아스트랑이라는 여성이었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잠시 돌보아주었던 보호자였음이 뒤엉킨 기억의 한자락 끝에서 드러나게 된 것은 최초 샹탈이라는 여성을 통해 튀어 오른 오래된 샹탈에 대한 기억이 트랑블레 경마장을 다녀오는 차 속의 장면을 환기시킴으로서 시작된다. 기억의 여로를 따라, 그들이 그토록 찾던 ‘기 토르스텔’이라는 사람이 샹탈-폴 커플과 함께 트랑블레에서 돌아오는 길 자동차를 운전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가 그 커플을 내려준 후 조수석에 있던 다라간에게 자신은 한 번도 함께 시간을 보낸 적 없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던 것을 떠올리면서, 꽉 막혀 흐르지 않던 서사가 다시금 과거를 찾는 희미한 여정 속에서 계속되는데, 어느 국경의 도시에서 유기된 어린 아이가 거기에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나 아스트랑이라는 여인을 찾던 그의 청춘시절의 어느 가을날을 찾아 가서, 그 시절에 자신이 쫓던 아나 아스트랑, 그 과거에 자신이 떠올렸던 더 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이중 삼중의 중첩된 기억의 구조를 갖는다. 


다시 말해, 시간의 시점은 6세 정도의 아주 어린 과거, 그 후로부터 15년이 흐른 후의 어느 가을날이라는 과거, 그리고 현재 이렇게 세 개로 분절되어 있으며, 그 기억으로 미끄러져 가는 과정 속에서 처음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지명과 인명들은 그 시간 여행을 더듬는 지팡이에 불과하다. 세상과 동떨어진 채로 몇달 동안 전화 통화조차 하지 않으며 홀로 살아가던 그에게, 현재라는 시간 또한 그를 과거 혹은 미래로부터 고립시킨다. 인과 관계 속에서 현재란 누적된 과거들이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품지 못하고 덩그러니 섬같이 격리된 현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 유일한 모성애를 찾을 수 있는 아나 아스트랑이 연결된 것은 결국 다른 형태의 방조와 유기였음이 드러나는 기억보다는 망각이 쉬운 선택이었으리라. 


<지평>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두 편의 패트릭 모디아노 작품을 읽었는데, 전작들이 꽤 오래전에 쓰여진 것에 비해 이 소설은 노벨상을 받던 해에 쓰여진 비교적 최근작이다. 그 전에 읽은 두 편의 소설이 과거의 시간, 잊어버린 기억을 찾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기억이라는 주제의 깊이를 더욱 입체적이고 깊이있게 다루고자 했던 것 같다. 여기서 모디아노가, 혹은 다라간이 찾는 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며 과거의 어떤 날 그가 찾던 과거 혹은 과거에 잊혀졌어야 했던 더 깊은 과거이다. 


삼중의 시점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청춘 시절의 자신, 한 때 어린 자신을 보살피고 또 방기했던 어머니로서의 혹은 연인으로서의 아나 아스트랑의 행방을 찾던 청춘의 모습, 그리고 어린 시절 아나 아스트랑과 함께 이사를 다니고 학교에 입학하고 했던 기억을 찾고자 어떤 이름 붙여진 거리들을 찾아 다니던 청춘 시절의 자신과 현재와의 설명할 수 없는 거리다. 청춘 이후 35년여간 어떻게 그 중요했던 이름들을 모두 잊어 자료 속의 검은 글씨일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들이 되었는지에 대한 아무 설명도 없다. 현재의 그 아득한 고립적 상태는 오히려 다라간의 인생 혹은 파트릭 노디아노의 인생의 어떤 미세한 부분 혹은 전체일지도 모를 어떤 것을 장황한 삶의 이야기 서서가 말해줄 수 없는 깊이에서 설명한다. 


그에게 청춘 시절은 아마도 아나 아스트랑을 쫓던 날들로 채워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결핍의 상징이 되었지만, 방기하고 내버려둔 어머니 대신 어떤 기억 속에서 어린 소년이 의지했을 대상은 아나 아스트랑이었다. 그의 청춘 어느 가을날 그 사무치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 혹은 원망 혹은 알 수 없는 감정은 그녀에게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기 위해 책을 쓰게 만든다.


"다라간은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인물이 일단 거울을 통과하듯 소설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오고 나면 영원히 저자의 수중에서 벗어나고 마는 것을. 실제의 삶에는 존재한적 없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을. 사람들에 의해 무로 환원되고 마는 것을. (p78)"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씀으로서 그녀를 영원히 소멸시키는 선택 대신 그녀와 자신만이 공유했을 어떤 순간을 묘사한다. 국경을 넘기 위해 위조 여권용 즉석 사진을 함께 찍는 장면이 그것이다. 둘이 했던 대화, 미세한 행동, 번쩍이는 플래쉬에 눈을 감아버려 다시 찍던 일 등 둘만 알 수 있는, 소설의 나머지와 어울리지 않는 소설 속 '남몰래 삽입한 현실의 한 조각'은 아나 아스트랑을 그에게 닿게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청춘 시절의 그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그가 그 흩러진 이름들 속에서 아나 아스트랑의 이름조차 단번에 붙잡아 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잊고 살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더 어린 시절의 그는 절대로 혼자서 방치되면 안되는 나이의 어린 그는 그렇게 낯선 국경지대의 한 호텔 방에 홀로 남겨져 버려지면서 언젠가 그녀를 그런 방식으로 다시 만날 거라고 그리고 또다시 영원할 것처럼 잊혀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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