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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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신념이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중심의 가치가 있어 추호의 의심도 없이 흔들리지 않게 그것이 옳음을 믿고 숭배하는 어떤 것이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인지혁명, 농업혁명, 그리고 최근의 과학혁명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가면서 숭배해온 종교적 가치들을 탐구하면서, 국가와 민족과 자본주의와, 회사 등 인류가 만들고 적응해 온 사회적 시스템들을 ‘상상의 질서‘라고 불렀다. 

새 책 <호모데우스>에서는 이러한 상상의 질서가 숭배하는 가치들을 더욱 심화시켜,종교에 비유하였다. 


전작 사피엔스를 다 읽고 덮으면서도, 한 숨이 나오도록 글 정말 잘쓴다고 느꼈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모데우스에서도 인류라는 스스로의 얼굴을 비추어보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매우 먼 생물학적 조상이 시작되는 호모 사피엔스를 기점으로 한 거시적인 역사다. 전작 사피엔스가 현재를 과거의 역사에 비추어보았다면, 이번 작품이 인류의 거시적 역사를 통해 조명을 비춘 곳은 다름 아닌 인류의 미래,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류다. 유발 하라리의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회적 속성들을 유려한 문학적 비유로 기술하는 것이다. 


복잡도가 증가하는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쉽다. 누구도 예측된 미래가 100퍼센트 들어맞을 것이라고 전적으로 믿게 할 재간이 없기 때문에, 예측자는 그저 자신의 예측 혹은 조망한 택한 전략은 어떤 근거인지에 대해 납득시키면 된다. 독자는 그 근거의 정당성을 판단할 뿐이어서, 아님 말고의 말고의 전략이 실패한 예측자에게 비난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먼 과거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정신적 세계를 지배해온 가치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떻게 무엇에 의해 붕괴되어 왔는지의 과정을 통해 현재 모든 인종과 국가, 종교와 정치방식에 걸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대의 가치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불멸, 신성, 행복이라는 것을 납득시키고, 이 최우선 과제지만 실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격변들이 어떻게, 왜, 우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를 전망한다. 즉 우리 시대의 최고 가치인  인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이며, 왜 인본주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 꿈을 해제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현재의 최고 가치가 그 어느 과거의 가치보다 낮을 수 없고 궁극의 가치는 항상 미래의 현재에 선택하게 될 가치이다. 고대 이집트를 수천년간 지배했던 파라오의 붕괴가, 과거 천년을 지배했던 신의 죽음이 인본주의로 이어졌지만 이 인본주의는 고작 이제까지 3백년을 지배해온 종교로서, 언젠가는 신의 죽음을 이끈 것과 같은 논리 즉 새로운 가치가 낡은 가치를 몰아내는 원리에 의해 몰락할 것이고, 그게 더 좋은 것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 무엇을 선택하든 내일의 신이 궁극의 신이 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가 오늘 알고 이해하는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차원이 되더라도 현재로서는 경험하지 않은 세계가 형성한 그 보이지 않는 가치 체계를 이해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동물은 나무, 바위, 강 같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와 두려움, 즐거움, 욕망 같은 내부의 주관적 경험이라는 두가지 커다란 이중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에 비해 사피엔스는 돈, 신, 국가, 기업과도 같은 상상의 질서가 추가되어 삼중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데, 역사는 바로 이러한 허구의 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전작 사피엔스에서도 커다란 주제 중의 하나였다. 고대와 중세 도시에서 신들은 법적 실체로 기능했는데,  예를 들어 나일 계곡의 실질적 통치자는 수백만 이집트인이 공유한 이야기들 속에 존재한 상상의 파라오였다는 것이다. 문자와 돈 같은 강한 허구적 실체들의 출현은 추상적 상징을 통해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실재를 기술하는 문자 언어는 서서히 실재를 고쳐쓰는 강력한 방법이 되었으며, ‘공식 보고서와 실재가 충돌할 때 물러나야 하는 것은 대개 객관적 실재(p232)였다. 


문서 기록의 힘은 수천년동안 권위를 유지해온 성경의 출현으로 절정을 이루었다고 보는데,  성경은 일신론적 역사이론을 널리 집요하게 퍼뜨리며 실재의 진정한 본성을 오도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본성은 무엇이며, 성경과 일신론이 어떻게 본성을 오도했다는 것일까. 성경은 좋은 일은 내 선행에 대한 보상이고, 재앙은 내 죄에 대한 처벌이라는 사상을 퍼뜨리는데, 당연하게도 이 인과관계는 상호관계의 모순 때문에 있을 수 없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유년기에 보이는 특징일 뿐이다. 성경 의 구약 시대에 고대 유대인들의 가뭄과 네부카드네자르의 추방이 기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믿은 것은 그들이 지구 생태계, 바빌로니아의 경제, 페르시아의 정치 체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류가 넘처나는 책은 아직까지도 미국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할 때 손을 얹어 진실을 맹세하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며, 강력한 힘으로 인류의 대규모 협력을 도왔다. 


성경시대에 신들은 인간에게만 불멸의 영혼을 주었다. 불멸의 영혼을 주는 것이  그리스도교 세계가 존재하는 목적이므로 창조의 정점은 인간이었고, 영혼이 없는 동물들은 주변으로 밀려났다. 애니미즘에서 유일신으로 넘어갔을 때 40억 세월을 함께 진화해온 사피엔스 이외의 동물은 세계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가축화된 동물만이 인간의 생존을 목적으로 지구 동물의 주류를 이루게 된 거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작가 하라리가 인본주의를 종교라고 규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를 창조한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종교를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기능이다. 종교는 인간의 사회구조에 초인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떤 것으로 거기에는 초인적 법칙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규범과 가치를 정당화하는데, 불교와 도교부터 공산주의 나치즘, 자유주의에 이르는 다른 종교들은 이 초인적 법칙을 자연법이라고 주장한다. 나치 친위대 장교는 아들이 왜 유대인을 죽이냐고 물으면 그것이 세상의 작동원리라고 설명했다. 그들을 살려두면 인류가 타락해 멸종할 것이며, 히틀러는 그 작동원리를 해독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미신이나 초자연적인 힘과 동일시하며 그 이념을 종교라고 말하면 싫어하겠지만, 그들이 믿는 것 역시 복종해야 하는 어떤 도덕법 체계이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각각 체계가 추구하는 믿음, 신념, 가치를 숭배하는 도덕적 체계가 있으며, 왜 라고 질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작동원리가 세계와 우주를 지배하는 단일한 규칙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이념은 종교라는 것이다. 


근대사에 등장한 과학은 필연적으로 전통적인 종교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각기 다른 진리를 지지하므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둘은 실제로는 진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타협하고 공존하고 협력한다. 진리는 개인에 의해 우선시될 수 있으나,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는 것이 하라리의 통찰이다. 더 나아가 근대사를 과학과 종교의 계약과정으로 본다. 여기서 종교는 인본주의라는 근대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종교를 뜻한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인본주의 교의를 믿고 그 교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과학을 이용한다.(p275) 인본주의는 교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과학을 이용하지만 이 계약은 21세기에 깨지고 매우 다른, 어떤 ‘포스트인본주의’ 종교 사이의 계약이 될 것이라는 거다. 


경제 성장에 대한 집착은 새로운 인본주의의 교의다. 이에 대해 하라리는 경제 성장에 대한 집착은 지구라는 한정된 자원 앞에서 제로섬 게임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세계 모든 곳에서 당면한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해주는 구원자로 여겨지며 종교적 지위를 획득했는데, 특히 요즘에는 장기적 성장을 확보하는 특정 형태의 자본주의가 인정받음에 따라 탐욕스러운 재벌, 부농, 표현의 자유가 보호받고, 생태환경, 사회주의 전통가치들은 해체되고 파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방대한 텍스트들을 통해 하라리는 계속해서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가 지위를 획득해서 과학과 타협하며 새로운 교의들을 탄생시켰는지를 고찰하고, 나아가 다음 장의 수백 페이지를 통해 과학이 이 인본주의를 밟고 어떠한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킬 것인가를 전망한다. 즉 유전자 과학과 신경과학, 빅 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 등의 새로운 과학이 그 어떤 속도보다 빠르게 대다수의 인류를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잉여로 전락시키고, 자원을 획득한 지극히 소수의 인류가 신의 지위에 오르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는 것, 우리가 종교처럼 철썩같이 인본주의적 사상에 따라 자아 내부의 목소리들이 유전자와 생화학의 결합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임을 인정하고 결국은 세상은 대다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만들어내는 무엇이 될 것임을 지적하며, 이러한 역사 고찰과 미래의 전망이 전속력으로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이 세상에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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