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해당 언어권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몇년 전 <이방인>의 번역 논쟁으로 이 곳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는데, 내가 불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문학 번역에 무슨 생각이나 신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충 흘려 보면서 다 잊어버렸다. 얼핏 생각나는 게 siren(?) 대한 국내 모든 번역을 비교한 내용이었는데, 내게 들은 생각은 논쟁 자체에 대해 좀 시니컬했다. 그 글이 쓰이던 당시 공간, 당시 시간에서 통용되는 그 말의 뜻을 어떻게 정확하게 국내어로 1:1 대응시키는 표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한자어랑 자주 사이는 순수어랑 그 설명 불가능한 미묘한 차이를 다른 모든 언어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의 차이도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많을 거다. 하나의 언어와 표현이 자아낼 수 있는 천차만별의 뜻이 있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 톤과 공기의 미세한 흐름과 웃을 때 나타나는 주름의 차이와 같은 아주 사소로운 차이 속에서도 전혀 반대의 뜻을 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 그 자체로서 완벽하게 다른 언어로 1:1 번역될 수 없으며, 정확한 기준이 있기도 어렵다.  번역은 원전에 대한 번역자 개인의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석과 그 해석을 유려하게 현지어로 번역하는 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번역을 잘 하려면 어떤 문장의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닌, 전체 작품 내에서의 의미를 알아채야 하고, 그 알아챔은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을 무시하고, 모든 단어와 뜻을 1:1로 매치시키고 하나의 문장을 하나의 또다른 문장으로 바꾸는 식민지식 영어 학습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취지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영어를 배울 때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 언어는, 언어의 구조가 달라서다.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언어는 문장의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정확한 문법은 천천히 배워도 (상대적으로) 쉽게 말 자체를 배우고 따라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와 한국어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그 다른 점을 그냥 문장의 순서 라고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정확하게 무엇의 차이가 이토록 문장 구조를 다르게 느끼는지를 알려준다. 즉 영어는 동사중심의 언어이고, 우리는 명사 중심의 언어라는 건데, 우리가 주어+동사라는 초간단 문장을 만드는데도 그토록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아마도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언어순으로 배열되면서 어떤 말을 영어로 옮기기 위해 명사를 먼저 생각하고, 그 명사를 어떻게 했다는 동사를 그 다음에 생각한 다음 그 명사를 수식하는 동사를 역으로 찾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치는 사고의 지연 때문인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영어가 주어+동사의 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동사가 문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정보를 전달하고 있음을 생각하라는 거다. 책을 읽은 지 꽤 되어 상세한 사항은 잊었지만, 이 부분을 다루는 장은 가볍게 설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영어를 대해왔음에도 영어 문장을 대하면, 주어와 동사를 찾은 후, 목적어들이 어디에 있나 그 구성관계에 연연했던 걸 생각하면, 동사 그 자체를 먼저 인식하고, 동사 위주의 사고를 하면서, 굳이 목적어를 찾아 한국말로 거꾸로 옮기지 않고 읽어나가는 것이 전체적인 뜻을 한눈에 파악하기에 훨씬 빠르다는 걸 늘 주지하고 있어야 겠다.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은는이가'의 사용이 외국인들에게는 문법적 틀 내에서 매우 어려워하는 문제인 것처럼 우리에게 관사의 사용은 정말 어렵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고, 대개 들 다 어려워한다고 한다. the와 a 를 사용하게 된 어원에 대해 이해하고 나면 훨씬 그 까다로운 사용법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한국어가 직관적인 데 비해 영어는 추상적 언어라는 설명이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화면에 검은 소들이 너른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다. (1)Cows are black, (2) The Cow is black. 무엇이 맞을까, 우리는 그냥 소들은 검다라고 말하면 되지만, 그 한국말을 그대로 영어에로 옮겨 (1)로 쓰면 전세계에 있는 모든 소들이 검다는 뜻이 된다. 


한국문학을 읽을 때 마음을 만져주는 느낌을 종종 받는데, 한국어는 감각적이고 직관적이어서 하나의 어근에서 비롯된 작은 어미의 차이가 무수히 많은 다른 직관적 느낌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문학의 풍요로운 감각적 언어의 선택이 낳은 미학적 우수성이 번역어로 표현 불가능한 관계로,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어려운 점도 이해하겠다. 반면 추상명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한자어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고, 일본에서 열성적으로 만들어 쓰는 말도 가져다 쓰고 있으므로 뭐가 문제가 될 게 있나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나 학술용 문장에서 한국어가 오히려 어렵게 생각되는 이유는 바로 그 추상적 언어라는 영어의 특성에 있다. 


라틴어와 칼트어 등 다양한 어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어는 그 때문에 단어의 종류도 굉장히 많고, 어근이 라틴어냐 아니냐에 따라서 문장의 품격도 달라지고 그 의미의 배경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는데, 이런 차이를 단어 사전만으로 인식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영어에 얼마나 노출되었느냐가 관건인데, 영어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는 방법으로 연관어 사전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과 시를 읽으라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문법적 틀 내에서만 영어 해석이 가능한 나로서는 시를 읽으면 당췌 이게 뭔뜻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시를 읽으라니. 하지만 시는 축약된 형태로 느낌을 전달하는 서정적 언어로서 시를 많이 읽으면 언어의 사용이 더욱 융통성있게 됨을 강조한다. 


내가 뭐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하려고 이 책을 읽은 건 아니고, 집에 있는데 표지도 산뜻하고 가볍게 읽기에 좋겠다 싶어 집어 들었는데 평소 관심있던 언어학에 관련된 내용도 나오고, 영어 학습서라기 보다는 언어와 문화의 이해라는 차원에서 기술된 책이어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도 재미지만, 몇몇 부분은 영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두고 두고 참고할만한 내용도 많기에 추천한다.


#플루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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