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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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래로, 그 어떤 사상을 추종하건, 그 어떤 종교를 따르던, 혹 그 어떤 정치 체계를 선택하건, 인류 모두가 공동으로 동의하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헌법상으로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요 가치로 채택하고 있는 근본 가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헌법이 안지켜지는 문제는 별도의 문제로, 예를 들어 강력한 신분제로 사회 질서를 이루고 있는 인도에서조차 헌법 자체로는 이를 부정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권 등의 가치는 인류 공동의 가치다.  대한민국 헌법 1조에 따르면, 1장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1항과 2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선포한 이 주권과 권력을 국민이 언제 가졌으며 지금은 가지고 있을까. 


이승만(1대, 제1공화국) - 이승만(2대) -이승만(3대) - 장면/윤보선(4대, 제2공화국, 11개월) - 박정희(구테타 정권, 5대) - 박정희(6대, 제3공화국, 4년제 재선 1회가능) - 박정희(7대, 재선 2회 가능) - 박정희(8대, 유신, 임기 6년 재선 무제한) - 박정희(9대) - 최규하(10대) - 전두환(11대, 12대) - 노태우(13대) - 김영삼(14대) - 김대중(15대) - 노무현(16대) - 이명박(17대) - 박정희딸(18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거의 40년이 흘렀을 때까지 역대 대통령의 숫자는 겨우 11개월을 통치했던 윤보선/장면 정권을 제외하면 단 2명에 불과했다. 그 때 현대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외울 필요가 없었음이 유일한 이유는 혜택이다. 나 역시 태어나서부터 어린 시절 내내 박정희가 집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권력이 개인을 눈멀게 하고 귀먹게 한 나 같은 시대의 학생들에게 학생시절의 어느 기간까지는 태어날 때부터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절대적 권력은 권력은 민족과 국민의 생존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을 보장해주는 신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그가 권총에 맞았을 때 그 소식을 전하던 선생님도 울고, 아이들도 울었다. 그 죽음이 역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십년간 박정희의 권력 아래에서 그가 가린 모든 것들을 보지 못했던 개인이 앞으로 펼쳐질, 헌법의 1항과 2항이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권력을 국민이 갖게 될 것이라는 당연한 희망 앞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알지 못했음이 지금 생각하면 애석하다. 


만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쏘지 않았다면, 현재의 우리 나라는 어떤 형태의 나라를 이루고 있을까. 남과 북이 공동으로 생존 기간 내내 왕위에 올라 있는 것도 모자라 대대손손 왕권을 물려 받는 민주주의건 공산주의건 세계의 어느 국가에서도 유래가 없는 상속적 권력을 나란히 이루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박정희의 장기 집권이 의미했던 것들을 박정희의 죽음을 애도하던 모든 이들이 이해하고나서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우리는 박정희가 단단하게 구축해 놓은 군부의 총칼 앞에 놓여있었다. 박정희가 나쁜 건 그가 자신만의 성공 방식을 그를 모방하는 또다른 독재자들, 또다른 위정자들에게 학습시켰다는 거다. 그에게 학습된 많은 정치 대결의 논리가 더욱 세련되게 보이도록 발전하여,  민간정부가 출범된지 2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도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혼탁한 정치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을 보면, 박정희와 이승만의 독재는 당대의 독재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를 후퇴시긴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민간 정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어떤 대통령을 진정한 민간 정부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대통령 직선제에 의해 출범한 대통령과 그의 내각을 민간 정부라고 치면 박정희의 정권 유지를 위해 구축된 신군부하에서 세력을 잡았던 노태우가 영호남 두 야당 후보의 단일화 실패를  기회로 정권을 잡은 것도 민간 정부라 할 수 있는지, 또 국민의 뜻과 반대로 야합으로 출범된 김영삼 역시 민간 정부는 민간 정부이니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아직 판단이 서지 못한다. 비록 박정희의 구테타가 내각 책임제 하에서 실권을 갖지 못한 대통령 윤보선이 실권을 잡기 위해 그의 구테타를 지원했고, 당시의 모든 상황이 쿠테타를 용인하는 분위기였다는 말을 수용한다 하더라도(이 책에서는 그렇게 쓰여 있지만 내가 그걸 수용하겠다는 건 아니다) 박정희는 1인 독재가 국가와 국민의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결정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코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의 가장 위대한 치적으로 알려진 경제개발 계획은 전적으로 그의 생각이 아니었으며 그가 총으로 뒤집어 엎은 2대 내각 책임제 상에서 장면을 국무총리로 움직였던 장면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아직까지 태극기 부대들의 영혼까지 삼키고 있는 박정희의 치적들의 대표적인 것들은 장면 정권이 민주적 절차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으며, '못살던 나라가 잘살게 된' 사실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피와 땀이라는 대가 뿐만 아니라 서슬퍼런 독재가 몰아주던 정경유착의 깊은 고리가 더욱 더 심화되는 자본주의 내에서 국민의 고통을 담보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평가하거나 언급할 때, 한 개인에게 촛점을 맞춘다면, 역사를 배반한 많은 실책과 오판, 과오들이 희석될 우려가 있다. 누구든(대통령이든 대통령이 아니든) 한 인간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본다면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핑계가 있고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에서 지금처럼 어수산하고, 또 지금처럼 중요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 대선 후보로서의 한 개인을 조명하는 일은 그 개인을 이해하는 일과도 닿아있으므로 책을 선택할 때, 읽을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책에서 조명한 부분은 드러내고 싶은 일부일 뿐이고, 책에서 그 어두운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나간 대통령의 경우 다면적인 평가가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대선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준오르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줄 수 있다. 


건국이래, 국민이 거쳤던 모든 대통령들에 대한 미니 자서전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대통령이 되기까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태어나고 자란 배경과, 젊음을 바친 가치와 행적,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택했던 수많은 결정들에 대해 떠돌았던, 지금도 떠돌고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았다. 여기 모인 역대 대통령의 인생 모음의 일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결정했고, 또 어떤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까지도 결정했으며, 또 특정 대통령의 경우 그렇게 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아이러닉하게 국제적 경제 호황이라는 기회와 결단력 실행력으로 사상 유례없는 최고의 호황기를 맞아 높은 수준의 경제 도약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이렇게 통으로 대통령 개인 한 사람 한사람을 조명하면서 역사를 바라보니, 대한민국의 민주 발전에 먹칠을 하고 장기집권한 두 사람의 이승만/박정희, 그리고 40여년만에 비로소 찾아온 서울의 봄을 짓밟고 광주학살로 정권을 다진 전두환이 만든 어두운 흑역사는 면면히 이어온 친일들의 후손들에게 정권을 내어주기 전인 16대까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선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할 말 하고 살 수 있는 것도 잔인한 순환의 역사 속에서도 시민과 민중의 거센 저항이 이룩해낸 위정자들의 양보가 조금씩 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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