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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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목적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이 묶어놓은 좁아 터진 관계망과 문화적 경계 밖으로 어슬렁거리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생활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원후 20세기와 기원전 10세기 전체 3천년 전에 쓰여진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는 초기 인류 문명의 풍경을 그 어떤 자료보다 매우 세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보물단지다.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딧세우스는 양적 방대함이나 완벽한 예술성, 그리고 오래 전에 쓰여진 점까지 모두 합쳐 서구 문학의 기원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리아스가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전쟁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오딧세이아는 귀향을 다루는데, 두 개의 스토리는 신화적으로, 작중 인물과 성격 모두 일관성있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야기상 약 10년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전투장면에 대한 묘사가 많은 일리아스에 비해 오딧세이아는 그동안 우리에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어떤 변화를 통해서건 접해본 적 있을 법한 기이하고 신비한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전편인 일리아스에서는 오딧세이아가큰 비중이 없고, 노획물(여자)을 둘러싼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과의 갈등 속에서, 아킬레우스 없이 트로이아에게 참패를 거듭하는 와중에 신들이 패가 갈려 서로 자신들의 팀을 돕고, 신들 자체가 직접 전장에 끼어드는 모양새로 돌아가는데, 그리스 군은 여러 종족에서 징집된 여러 전사들의 가문과 각 등장 인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성을 띄며 가문과 신화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사연들을 수도 없이 열거되어 전쟁 중간 중간에 신들과 인간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중간 중간 들려주는 인물이 가진 여러 사연들이 플래시백처럼 기능하긴 하나, 시간순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리아스 편이 배경 자체가 전쟁터이고, 전쟁의 참상을 세세하게 리얼하게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야기라기 보다는 신과 인간의 이야기라고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로 사실 누가 이겼는지 결론이 나지 않고 끝났다 사실을 들 수 있다. 즉 이 서사시의 목적은 그리스 군이 연합해서 트로이아를 함락했다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전쟁을 조직하기까지의 배경, 신들의 질투와 개입, 그리고 노획물을 둘러싼 내부 분열 및 신들 자체의 이해 관계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전투가 점점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상황 그 자체로 보여진다. 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필멸의 생을 선택한 댓가로, 영웅이 되지만 아가멤논에게 노획물마저 빼앗긴 후, 삐져서 무슨 전쟁 놀이도 아니고 그럼 나 이제 안해 하고 함선에서 뒹굴거리며 논다. 그동안 트로이아의 영웅 헥토르는 연합군을 떡주무르듯 주무르고 양편으로 갈라진 신들의 다툼은 더욱 거세게 전쟁의 흐름을 좌우하는데, 결국 결말은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에게 친구를 잃은 후 헥토르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전세가 바뀌어 트로이아의 패배가 눈앞에 보일 뿐이었다. 


오딧세이아는 이와 달리 구성부터가 흥미롭다. 귀향이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을 뿐더러, 일리아스와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연장선상에 있어서 훨씬 읽기가 수월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오딧세이아가 전쟁이 끝난 후부터 귀향하기까지의 과정이지만, 서사시는 이야기를 안이하게 시간순으로 풀어놓지 않는다. 겹겹이 쌓인 액자 구조 속에서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그리고 다양한 시점에서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오딧세이아의 귀향이 조금씩 밝혀지는 형태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인공은 오딧세이아이고, 초반의 무대는 오딧세이아의 고향 이타카이고,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무대에는 오딧세이아가 나타나지 않는다. 트로이아 전쟁의 승리와, 트로이아 전쟁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고 누가 얼마나 그 전쟁의 공로가 컸으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었느냐 같은 중요한 문제들은 이미 끝난 상태여서 그 유명한 트로이아의 목마는 여기 저기를 떠돌며 오딧세이아의 소식을 이야기하는 구절이나 오딧세이야 자신이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부분적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네는 살아남아 있는데, 트로이아가 함락되면서 메넬라오스가 다시 찾아온 모양으로, 오딧세이아의 활약을 상기하는 형식으로 알려준다. 자기 몸을 몹시 매질하고 상처 투성이로 만들고 누더기를 걸쳐 거지로 분장해서 트로이아로 침투한 후, 정보를 얻어 가지고 나오고, 목마 속에 군사들을 태우고 숨어 들어갔을 때에도 지략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딧세이아는 전설처럼 활약상이 떠돌뿐,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와 함께했던 전사들과 그는 돌아오지 못하고, 집에는 아내에게 구혼하는 구혼자들이 매일 모여 파티를 벌이며, 오딧세이아의 아내에게 결혼을 요구하면서 오딧세이아의 집을 거덜내고 있다. 그는 이타케의 왕인데, 말이 왕이지, 당시의 왕이라고 하면 이장이나 동장, 면장 정도 되는 것 같다.  훌륭한 장수가 왕이 되어 결혼해서 막 아들을 낳아놓고는 전장으로 떠났다. 살면서 늘 입을 조심해야 하는데, 알고 보니 비극의 트로이아 전쟁의 원인 역시 오딧세이아가 일부 제공했다. 헬레나가 미인이라 그녀에게 청혼한 구혼자들이 엄청 많았던 모양인데, 자기들끼리 딜을 해서 헬레나가 누구를 선택하든 그 남편의 권리를 지켜주자고 맹세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오딧세이아였던 것이다. 


이로서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 도대체 어떻게 여자 하나 때문에 그리스 전역에서 군대를 그토록 많이 모을 수 있었으며, 남의 일에 그토록 목숨을 걸고 싸우는걸까. 당시 전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예다. 아름다운 여자를 갖는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과는 완전히 다른 소유의 문제, 명예의 문제였고, 누가 차지하건 그 명예를 함께 존중해주기로 한 이상 그들과 같은 운명 공동체 속에 속했던 것이다. 어쨌든 오딧세우스 편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음에도 전쟁의 당사자인 메넬라우스와 헬레나는 살아있다. 헬레나 한 명을 구해오기 위해 그 숱한 그리스의 전사들이 죽었음에도 당당하게 살아있는 헬레나, 수많은 전사들의 가족들은 어쩔껀가. 3천년 전 버전의 라이언일병 구하기다. 


그렇다면 전쟁이 끝났는데 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아버지는 아기가 갓난 아이일 때 전장으로 떠났고, 그 아비를 기다리며 아기는 어른이 되었다. 그 아기가 텔레마코스다. 왕이 집을 비운지 오래되었으니, 왕이 가진 여자와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타카의 많은 훌륭한(?) 장수들이 페넬로페(오딧세이아의 아내)에게 구혼을 한답시고 집안으로 몰려와 집안의 살림들, 먹을 것들을 거덜낸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시아버지는 이미 은퇴를 하고 시골에 내려가있고, 아버지가 떠났을 때, 아이는 어렸으며, 페넬로페 역시 어린 색시에 불과했으므로 짧은 신혼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아무 힘없이 왕없는 왕가를 지켜야 했을 것이다. 


수많은 신들의 진흙탕 싸움이었던 일리아스와는 달리, 오딧세이아의 주인공 신은 아테나이다. 오딧세이아의 귀향을 진정으로 바라는 아테나는 제우스에게도 조금씩 도움을 받아 물심양면으로 오딧세이아를 돕는다. 서사시는 텔레마코스가 아테나가 준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 섬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여기 저기 들러 찾아온 곳은 바로 오딧세우스와 전쟁을 함께한 메넬라오스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오딧세이아의 이야기는 메넬라우스와 헬레나의 입을 통해 재현되지만, 그들이 헤어진 지는 오래되었고, 단지 메넬라우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전쟁이 끝난 후 전사들이 분열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소식 뿐이다. 메넬라우스가 하는 이야기 역시 프로테우스를 잡아 들은 이야기인데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귀향중에 세상을 떴다. 아이아스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파멸했고, 아가멤논은 아내가 아이기스토스와 바람이 나서 귀향하자마자 암살당했다. 한편 오딧세우스는 살아서 바다 어딘가에 붙들려 있다는 것인데, 이 때 그는 배도 없고 전우도 없이 요정 칼립소 궁전에 붙들려 있는 중이다. 오딧세우스의 극적인 등장은, 이렇듯 떠도는 소문에 의해 현재 오딧세우스가 오귀귀 섬의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는 장면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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