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설계도, 게놈 -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
매트 리들리 지음, 하영미.전성수.이동희 옮김 / 반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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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어떤 운명은 정해져 있다. 만일 점쟁이가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면, 또 만일 그 운명이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때로 우리의 어떤 운명은 유전자에 적혀 있고, 그것은 거의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내가 몇 살때 죽을 건지 알려주는 유전자가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특정 유전적 변이를 가진 경우 유전자 염기 서열을 통해 이 특별한 조합의 유전자가 몇 살에 죽을 것인지 이미 결정된 경우가 있다. 돌연변이의 이름은 월프-히르시온이다. 이 유전자의 특정 장소에서 CAG 단어가(염기가) 몇번 반복되느냐에 따라 정확히 몇살에 헌팅턴병에 걸리게 되는지가 운명지어진다. '칼뱅도 상상하지 못한 결정론이며 예정된 운명(p73)'이다. 그것은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그 단어가 39번 반복되면 평균 66세에 치매의 첫 증세가 나타나고 41번 반복하면 54세 42번이면 37세 50번 반복하면 27세에 지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가 가슴 제거 수술을 한 이유도 그가 가진 유전적 변이가 확률적으로 유방암 혹은 난소암의 가능성을 매우 높이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닭의 모습은 알 속에 내재해 있고 도토리는 상수리나무의 계획에 따라 문자 그대로 제시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p19)



11번 염색체의 짧은 팔 속에 있는 D4DR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라는 단백질을 만들며 뇌의 특정한 세포에서만 발현된다. 이 신경세포에서 도파민 수용체가 도파민과 반응하면 그 신경세포가 스스로 전기를 생성하는 것이 뇌가 작동하는 방법이다. 항상 전기적 신호에 의해 화학적 신호가 만들어지고 화학적 신호에 의해 전기적 신호가 발생한다. 뇌는 최소 50가지의 화학 신호들이 동시에 발행하여 서로 의사소통한다


만약 우리의 염색체 길이를 지구 한바퀴 길이로 친다면 정상과 정신착란의 차이는 2.5센티 이하에 불과하다고 한다. 10억개의 세 글자 단어 중 이 1개가 질병의 유무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간과 침팬지를 가르는 그 2퍼센트의 차이란 그 작은 한 글자의 유전자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테나는 자신의 목욕장면을 훔쳐본 테이레시아를 눈멀게 한 것을 후회하며 미래를 보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괴로운 일이다. 운명을 볼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헌팅턴 돌연변이의 경우는 유전자 결정론의 극단적 예다. 천식과 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질병들은 유전자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총 23쌍의 염색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각 하나씩 받아 쌍으로 존재하는 염색체들은 가장 긴 쌍이 1번이고 가장 작은 쌍이 22번이다. 23번은 성 염색체다.  생명의 설계도는 이 23쌍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책 속의 배배꼬인 DNA 가닥 속에 몸을 숨기고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하는 독특한 특성들을 만들어낸다. 23 장으로 구성된 수천개의 이야기들을 유전자라고 한다면 각 유전자들은 엑손이라고 하는 여러 단락이 연결되어 만들어져 있고, 단락 사이에는 인트론이라 부르는 광고가 끼어 있고, 각 단락은 코돈이라 부르는 단어들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ACGT 같은 문자로 나타내는 염기 3개가 하나의 코돈을 만들어 특정 문자로 해독되는데, 이것이 20개의 아미노산이다. 이 문자들을 이루는 코드들은 종이 대신 DNA 분자 위에 쓰여진다.


저자 매트 리들리는 생명의 현상을 23개의 염색체와 연결하여 23개의 주제로 분류하였고 각 염색체가 특정 주제와 연결되도록 해당 염색체 내에서 발견되는 대표 유전자들을 환기한다. 예를 들어 1번 염색체는 생명, 2번 염색체는 종, 3번 염색체는 역사, 등의 식으로 각 염색체 별로 주제를 정했는데, 이것은 해당 염색체에서 발견되는 유전자가 인간의 무엇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각기 다른 염색체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것이다.

 

염색체의 어떤 중요한 유전자, 혹은 우리가 발견해낸 유명한 유전자들이 하는 역할들에서 이끌어 낸 통찰, 즉 각 염색체 별 주제는 앞서 말한 것 외에도, 운명, 환경, 지능, 본능, 충돌, 이기주의, 질병, 스트레스, 개성, 자가조립, 유사이전, 영생불멸, 성, 기억, 죽음, 치료, 예방, 정치학, 우생학 자유주의가 있다. 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저자는 염색체의 어떤 유전자가 매우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과 작용해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심도있게 파헤친다. 

 

기존에 나왔던 책인데 작년(2016년) 초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생명 공학에 관련된 책들은 종류도 많고, 과학 도서 중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무얼 읽어도 좀처럼 진부하지가 않다. 23쌍의 염색체와 그 속에서 우리가 '유전자'라고 부르는 것의 꽤 구체적인 구조와 정보를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몇달 전에 읽었는데 한번 더 읽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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