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보는 미국사 - 아메리칸 시티, 혁신과 투쟁의 연대기
박진빈 지음 / 책세상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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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들이 가진 역사는 길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 내에서 굵직한 도시들은 각 도시마다 환경에 차이가 있고 개성을 가진다. 특정 도시는, 도시 계획 쪽에 치중한 역사가, 또 다른 도시는 무차별한 유색인종 차별의 역사가 다른 도시는 한 때의 산업 중심 도시로서의 영광을 뒤로한채 천천히 망해간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방인으로서 어떤 도시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먼저 주목한다. 도시의 풍경은 무엇보다도 구획되거나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리와 그 거리 사이의 건물들, 멀리 보이는 랜드마크가 지배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사람을 본다. 사람들의 모습 사람의 차림새, 그 사람들이 반대로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나서, 만일 자유여행이거나 방문이라면 도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잘한 도시의 디테일들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아마도 도시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이 중에서 마지막 일상을 지배하는 자잘하고 세부적인 풍경들일 것이다. 


세계 어느 도시나 우리에게 길거리에서 가장 먼저 (친근하게도) 눈에 띄는 것은 스타벅스 커피숍이나 바디숍, 맥도널드 같은 다국적 기업의 체인점일 것이다. 그것들이 친근한 것은 그 샵들이 우리에게 친절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골목 상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다국적 기업들이 전통과 특색이 가미된 전통적 1인 샵들을 몰아낸 것이 단지 그 어느나라에게도 뒤질세라 친세계화의 궁극을 달려, 친기업적 친자본적 생리에 닳고 닳아 무감각해져버린 대한민국의 일, 단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라서, 그것이 세계적인 일이라서 안도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 게다. 


책은 미국의 대표적 8개의 도시의 역사를 다루는데, 비교적 100~200년 사이에 일어난  핵심적이고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미국이란 사회, 더 나아가서는 자본주의 속에서 현재 인류가 걷고 있는 사회적 공간에 대해 비판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유럽이나 아시아처럼 나라와 정권이 바뀌었어도 도시 공간 자체가 오래된 역사를 가지는 것과는 달리, 미국은 침략 이후 인디안들을 몰아내고 그 땅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기에, 도시라는 사회 문화적 공간 속에 구석 구석 스며든 긴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나무를 베고, 숲을 태워 경작을 하고, 소떼들을 죽이고, 전염병을 옮기고 땅을 빼앗아 도시를 만들기 전에도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은 그렇게 태고적부터 존재하던 공간이었을 터인데, 패자는 역사마저 없었던 것처럼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잊혀지고 지워지고 사라지고 없다. 


독립전쟁 이전에도 꾸준히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의 유입이 있었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국 각 대도시의 '참된 역사'는 미국이 자유와 해방의 정신 아래 독립했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 자유와 해방의 정신 아래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편견과 차별과, 편파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아왔는지를 환시시켜준다. 미국의 화려함을 한눈에 확인시켜주는 대도시들. 그 공간들의 역사는 크게 두 가지 흑역사로 요악된다. 흑인 및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과 박해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고 부동산 투기와 특혜 정경 유착을 통해 소수 특권층의 새로운 귀족 계급을 양산해 낸 역사이기도 하다. 


아메리칸 드림이 펼쳐지는 이민자들의 천국처럼 여겨지는 로스앤제레스를 먼저 보자. 사막의 한 가운데 건설된(1905~1913) 로스앤젤레스는 경제 급성장 시기에 인구가 늘자, 544킬로미터나 떨어진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물을 끌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산업화를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때 시장과 주변인물들은 도수관 건설과 관련된 지역에서 부동산 투기를 했고, 도수관 덕분에 현재가지도 이 도시의 물리적 경제적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산업을 끌어모았고, 구엘리트들이 없는 이 지역에서 그들은 그렇게 만든 검은 돈으로 유력가문을 형성하였다. 부패와 투기로 만들어낸 신흥 귀족들은 그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날이 가고 해가 가고 세대가 바뀔수록 더욱더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며 대대손손 천년만년이라도 살 것 같은 부를 누리고 세상을 주무르고 있다. 


겉으로 보이기에 평온해 보이는 로스앤젤레스의 문제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라는 것이다. 부동산 이해집단과 개발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공세에 도시는 대부분의 대도시가 수직으로 높이 솟은 마천루들을 갖는 데 반해 한도 끝도 없이 수평으로 확장했고, 교외 지역의 밀집 주거 단지 건설된다. 자가 자동차 위주의 계획도시이다보니 대중교통은 미비하다. 고속도로를 따라 형성된 쾌적한 교외 지역으로 자동차를 가진 백인 위주의 중산층은 탈출했고 도시에는 빈민만 남았다.


"이 길(기적의 마일)은 철저히 자동차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 심지어 거리의 간판과 건물 등은 시속 30마일로 달려가면서 볼 때 가장 잘 식별되었다."


뉴욕은 도시 공간의 역사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인 노동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 붙인 용어였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는 흔하고 흔한 현상인데, 낙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유색인종, 예술가 집단, 이민자들)을 정책적으로 교묘히 내쫓고 재개발하거나 건물을 수리하여, 그 곳에 있던 이민족의 정서나 혹은 급진적 예술가적인 정체성의 일부들을 흡수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흔하디 흔한 재개발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 속상한 것은 그들이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 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부동산과 관광 산업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도시 빈민과 노숙자들을 도시의 중심에서 내쫓는 현상은 1994년 줄리아니 시장의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알려진 불관용정책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도시빈민과 노숙자들을 젠트리피케이션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로 보지 않고, 도시 공간의 약탈자로 보는 것이다. 버려져있다시피한 할렘이 시정부보증을 담보로 투자가 시작된 때도 1990~1998년 미국의 경제활황기였다. 낙후되고 허름한 거리들은 오래된 상태로 그대로 있다는 이유로 옛정취와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할렘에 정체성을 부여했던 사람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야 했다. 그곳에 있던 독특한 소규모 상점들은 전국,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 상점으로 교체되고,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은 물론 부동산 투기자들이다.  로어이스트사이드의 한 버려지다시피한 싸구려 임대 아파트는 어떤 부동산 투자자가 경매에서 2500달러에 낙찰되었는데, 약 10년뒤 개보수 후 총 86세대, 세대당 120만 달러 팔렸다.


반대로 낙후된 상태의 공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공간의 흑백 분리라는 문제를 유발한다. 세인트루이스의 푸루잇 아이고를 전에 정지돈의 단편집에서 읽고 인터넷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역시 같은 시나리오다. 백인들이 빠져나간 한 마을이 공동화되면서 범죄가 끊이지 않자, 임대주택을 지었는데, 애초 엉터리로 지은 것,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아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도 망가지기 일쑤. 그곳에 사는 흑인들은 나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많았고, 자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관리가 너무 엉망이어서 점점 더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스콤은 게을러 빠진 흑인들 잘못이라고 사람들 탓을 했다는데, 우리나라 주요 보수 일간지들이 보수 정치인들과 함께 약자와 빈곤층을 향해 퍼붓는 독설과 어찌 그리 쌍둥이 같이 똑같은지. 정부는 입주자들을 계속 속였고, 입주자들이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은 입주자들도 있었다는 것.


아틀란타와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다른 남부지방의 많은 도시들의 경우 도시에는 가난한 흑인들이 살고, 중산층 이상의 백인 부자들은 잘 정비된 고속도로를 끼고 외각으로 나가 사는데, 그렇게 된 시나리오는 이렇다. 도시에 산업이 발달하면 흑인들(혹은 유색인들)이 인구집단을 형성하고, 1950년대까지만 해도 백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동네에 흑인들이 이사오면 보이콧했다. 집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고, 그 부동산을 파는 부동산 사무실을 불지르는 등의 과격한 분리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유색인들이 한둘이라도 들어오면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백인들은 집을 팔고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 외곽의 부유한 주택지 개발을 위해 주정부는 혈세들을 펑펑 쏟아 고속도로를 정비하고 각종 편의 시설을 지어대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주변도시가 형성되면, 이제는 그 자신들이 버리고 왔던 주도시를 위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으니 도시를 분리해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많은 도시들 중 8개 도시들만 다루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환경에서 생긴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역사를 가졌을 거다. 미국의 역사는 차별과 편견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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