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한 때 생명의 물이라고 불렸었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봤을 때, 술과 같은 만병통치약이 있을까. 그러나 술은 약주고 병주고 약주고 병주고를 반복하며, 우리에게 울렁거리는 속과 두통을 구제하고자 약국을 찾는 후회에 찬 아침을 선사한다.  술이 뭐길래. 술꾼에게 술은 생명이다. 그 생명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효모의 정체가 화학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 그들은 그럼 술이 효모가 포도당을 먹고 싼 똥이냐고 했다. 오줌에 해단하는 건 이산화탄소다. 효모는 포도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만든다. 사람들이 빚지 않아도 효모가 당분을 공급받으면 자연적으로 술이 만들어졌으나, 1만여년전부터 야생 효모를 길들여 술에 최적화된 효모를 길러 술을 빚어 왔으면서도 19 까지 술을 만드는 원초적인 힘이 효모라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과 효모가 만나면 기본적인 발효가 일어나기에 과실주는 쉽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곡주의 경우, 탄수화물이 당분으로 분해되어야 가능하다. 그 일은 효소가 담당했다.  맥주는 효모가 보리를 먹고 만들고 청주와 같은 전통주들은 쌀을 비롯한 여러 곡물로 만든다. 두 종류의 술을 만드는 공정에서 주요 차이점은 곡물에서 당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것에 있다. 맥주는  보리가 싹을 튀우는 과정에서 탄수화물을 당으로 바꿔주는 아밀라제 효소가 만들어지는 성질을 이용한다. 보리를 적셔 몇일동안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살짝 싹을 튀운 후 발아를 정지시켜 만든 것이 맥아다. 당화가 끝난 맥아는 쓴맛을 결정하는 홉과 알코올 제조를 담당하는 효모와 함께 발효되어 맥주가 된다.

 

아시아의 전통술은 누룩 곰팡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누룩을 알기 전에는 곡물을 씹어서 침에서 나오는 아밀라아제 효소에 의한 당화를 이용했었다고 한다. 우웩. 당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누룩 '코지'는  2005년에나 유전자 염기서열이 분석된, 2만년 이상된 미생물로, 이 역시 술을 빚는 과정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 유해한 유전자들이 소실되었다. 타카미네는 맥아를 만드는 번거로운 절차를 단축할 수 있는 당화 효소를 누룩곰팡이에서 축출했는데 몇일씩 걸리는 몰팅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거대한 맥아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맥주 산업은 아마도 나름 타당한 이유로 외면했고,  그는 만든 효소로 소화제를 만들어 팔았다. 소화 효소는 누룩 곰팡이의 유효성분만 축출해낸 것이다.

 

균류는 150만에서 500만종 이상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10만종이 학명을 부여받고 특성이 기술되었다. 이 중 200여종의 게놈이 완전 해독되었는데 대부분이 상업적으로 유용한 효모다. 효모는 길들여진 늑대가 선택적 유전자에 의해 온순하고 사랑스러운 개가 되듯, 야생 효모의 선택적 배양에 의해 오늘날 청량한 라고를 만들어내는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 품종을 만들었다는 것일까. 맛과 향이 좋은 술이 나오면 그 찌꺼기를 잘 보관했다가 다음 발효를 할 때 넣어주고 안 좋은 술이 되면 버리고 통을 깨끗이 씻는 방식으로 선별을 해온 셈이다. (라거맥주를 만드는 효모는 사카로미세스 세레지비지에가 아니다! 빵효모는 에일맥주를 만드는데 색이 짙고 향이 풍부하지만 맥주 특유의 알싸한 느낌은 덜하다.)


프루프는 알코올 함량을 나타내는 옛용어다. 미국에서 프루프는 알콜 부피 %를 두배한 값으로 80프루프는 알코올 부피로 40%다. 영국에서는 좀 더 복잡하다. 앞에서 술은 생명의 물이라고 했는데, 이건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1280년대 이후 증류주를 일컫는 말이었다. 증류주는 12세기 쯤 의료에 쓸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냈으며, 볼로냐의 한 의사가 <의료조언>이라는 책에서 증류주를 만드는 방법을 수록하고 이를 생명의 물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 어쨌거나 이 생명의 물은 '병을 고치고, 통증을 줄이고 구취도 없애고 상한 와인도 정제하고 고기를 보존하고 식물의 정수를 뽑아낼 수 있었다(p144). 한 때 흑사병이 유행이었을 때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명의 물'을 처방해 환자들의 기분을 낫게 해주는 일 뿐이었다.

숙성은 증류주의 품위를 결정한다. 물론 그 품위는 시간이 가져다준 향기와 입안을 감도는 맛과 브랜드를 포함한다. 중요한 건 가격인데 오래될 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는 설명이 필요없다. 수요는 많아지고, 수십년 전에 만들어둔 술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품은 액체(맥주)를 거품층으로 끌어올리지만 중력 때문에 대부분은 수 분 만에 다시 밑으로 내려간다. 거품들이 합쳐서 커지고 결국엔 터진다... 


괜찮은 아이리쉬 바는 기네스 맥주를 따를 때 다른 트릭을 쓴다. 수도꼭지에서 술잔을 가득 맥주를 따른 뒤 3분동안 둔다. 그리고 잔에 가득 따른 뒤 손님 앞에 내놓는다. 이중 분사 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두번째 따를 때 생기는 거품이 처음 따를 때 형성된 거품 층 아래 자리하게 한다. 위에 있는 거품 층이 아래 거품층을 공기와 닿지 않게 해 이산화탄소가 천천히 빠져 나가게 한다. 123

 

 

맥주가 차가울수록 거품 층이 더 오래 간다 그리고 높은데서 따를수록 공기 중의 질소를 더 많이 끌고 들어가 거품 중이다 안정해진다 123

 

우리는 산만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내고 막연한 곳에서 핵심을 뽑아 낸다. 과실주에서 브랜디 맥주에서 위스키 사탕수수 발효액에서 럼을 증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지식에서 핵심을 뽑아 낸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증류 과정에서 액체가 기체를 거쳐 다시 액체가 되는 일련의 변화를 두고 삶의 근본이 되는 영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술적 변형이라고 불렀다.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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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6-02-1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세 이전에는 퍼 마셨는데 점점 싫어 지더니 어느날 부터는 맥주 한 캔에 헤롱데요 ㅋㅋㅋ 설날에도 와인 세 잔 마시고 이틀을 뻗었네요. 아직 미각은 살아 있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넘기면 죽어요......

CREBBP 2016-02-13 20:10   좋아요 0 | URL
와인 세 잔 마시고 이틀을 뻗다니 대다나다~!ㅋㅋㅋㅋ

북프라기 2016-02-1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좋아요

CREBBP 2016-02-13 20:09   좋아요 0 | URL
저도요~

CREBBP 2016-02-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왜 리뷰로 안올라가고 페이퍼로 ㅠㅠ. 좋아요와 댓글 땜에 놔두고 리뷰로 중복 올립니다~ ㅋ

오거서 2016-02-13 20:11   좋아요 0 | URL
리뷰와 페이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CREBBP 2016-02-13 20:23   좋아요 1 | URL
제 경우 책 한권에 대한 얘기만 집중적으로 할 때에는 리뷰로.. 이런 저런 잡 얘기와 더불어 여러 책 얘기를 할 때에는 페이퍼로 올린답니다. 알라딘에서는 사실 책 상품 보기에 리뷰와 페이퍼가 다 나오기 땜에 별 차이는 없지만 습관상 페이퍼보다는 리뷰로 올려버릇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