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파노라마 - 피타고라스에서 57차원까지 수학의 역사를 만든 250개의 아이디어
클리퍼드 픽오버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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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많은 곳에 수학적 원리가 숨어있다. 수학의 세계는 많고 적음 같은 가장 원초적인 개념에서부터 인간의 머리속으로는 그 본질 자체를 상상할 수조차 힘든 복잡한 다차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많은 현상들을 법칙으로 규명하고 기호로 표현한다. 대학의 교양과목을 제외하더라도 초등 6 년 중고등 6년 총 12년간 거의 매일 적어도 한시간씩은 책상 머리에 앉아서 풀고 이해하고 외우고를 반복했던 영어나 국어 만큼이나 익숙한 언어가 될 법한 수학이지만, 타고난 수학적 상상력으로 그 개념을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소수의 수학 매니아들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수학 하면 골치아픈 학문임에는 틀림없다. 고등 수학 이상의 개념들을 성인이 되어 접했을 때 느끼는 위화감과 기를 쓰고 주입해야 했던 시간의 무용함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쉽다. 문제는 어린 아이도 하는 소인수분해 따위를 할줄 아냐 모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단순하고 깔끔한 규칙과 수식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이치가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고 놀고 접하는 세계 속의 한 부분을 이루는 개념들이고, 그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해 뭔가 그럴 싸한 것들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경위에 대해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고대때부터 철학적 고민과 종교적 신념까지를 아우르던 숫자들에 내재된 원리적 아름다움과 정갈하게 배치된 규칙들이 발견이라는 계단을 뛰어 넘어 인간의 두뇌에 이해의 범주 내로 안착하여 일상 언어가 되고 도구를 이해하는 틀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학에서 수식과 방정식이 빠지면 그것은 응용과 개념의 역사가 남는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넓디 넓게 다양한 영역에 걸쳐 펼쳐져 있다. 수학의 파노라마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너울너울 펼쳐져 왔다.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수학으로 다리를 만들고 배와 비행기를 띄우고 우주를 탐사하는 건 말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지만 석양이나 우리 뇌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면 의아할 것이다. 수학적 사고는 모든 과학 뿐만 아니라 철학과 인문학 예술 분야에 스며 있다. 아름답기만 한 자연의 기하학적 속성에도 수식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 독자에게 상상력을 펼치고 단련시키면서 수학의 풍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공식을 자제했다고 한다. 비록 공식이 있다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공식과 그 설명이 빠지니 원리적 설명이 누락된 것 같은 아쉬움도 든다.

오백쪽 이상의 큰 판형에 올칼라 인쇄 화려한 외형과 '파노라마'라는 제목 만큼이나 수학에 대한 다채로운 이론들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는 이 책은 마치 수학의 백과사전 같은 인상을 준다. 기원전 1억 오천만년전부터 시작해서 매 페이지마다 새로운 수학적 개념을 한페이지 가득 싣고 그 옆 페이지에는 그 수학적 개념과 연관된 그림을 공백없이 가득 실었다. 그림 페이지에는 수학자들과 관련된 회화들도 있고 그 수학적 개념들과 연관된 추상적인 개념도나 기하학적 모형들 혹은 도구들도 있다. 얼마전에 읽은 <수학의 즐거움>이 인물 위주로 연대순의 수학사를 수식과 함께 실었다면 이 책은 개념 위주다. 따라서 오일러나 가우스 등과 같이 큰 업적이 많은 수학자들은 여러 페이지에서 나타난다. 수학자의 삶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는 것도 <수학의 즐거움>과의 차이점이다. 수식이 없는 대신 개념 위주의 그림들이 실제 그 개념에 대한 어렴풋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억이 신통치않은 독자들에 대한 배려로 매 페이지마다 연관된 페이지와 제목이 태그처럼 달려있어 읽으면서도 연관된 패이지들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기호로 된 공식이라는 수학의 가장 난공불략의 요새 같아 보이는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수학이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채 1mm도 안되는 작은 집구멍을 찾아오는 개미는 하늘빛을 방향계로 삼고 자기 발걸음을 센다. 인간은 개미가 집을 어떻게 찾아가는 지 거리를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개미 다리를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줄였다. 어떻게 줄였냐.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서 줄였다. 나도 어릴 때 개미를 가지고 놀다가 흙속에 파묻어 보거나 물에 빠뜨려보거나 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지. 근데 사실 애들은 원래 좀 못됐다. 잔인함이라는 것도 학습된 거라서 개미라는 작은 생명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개미가 징그러워지거나 귀찮아질만큼 동심이 파괴된 다음에야 가졌던 것 같다. 옆길로 샜다. 뿐만 아니라 집과 자신을 잇는 수평 투사값을 계산할 수 있어서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모래 사막에서 언덕과 계곡이 새로 생겨나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온다고 한다. 훈련에 의해 쥐들과 침팬지, 다람쥐, 앵무새들 등 많은 동물들이 수를 세지만 그것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거나 기호로 쓸 수 없을 뿐이다. 십여년을 땅속에 묻혀서 식물뿌리 진액을 빨아먹고 살다가 잠깐 짝짓기를 하고 죽어버리는 매미는 태어난 해로부터 소수째 해인 14년과 17년에 올라와서 짝짓기를 한다. 맥스 플랭크 연구소의 분자생리학 연구단 은 '포식자와 피식자 간 상호작용을 다루는 수학적 진화 모형에서 저 매미처럼 수의 값을 가지는 생활사 주기가 자연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4) '

수학을 오랫동안 배웠지만 써먹을 데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늘 수학적 원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컴퓨터가 모든 계산을 해주는 현대에는 더욱 더 그렇다. 수학적 이론들에 대한 증명이나 개념적 원리 대신 몇 수십년 수백년간 수학자들을 매료시켰던 규칙에 대한 응용이 활발해지고 있다. 수의 세계는 수학자들에게도 어렵다. 그들에게도 어떤 간단해 보이는 공식, 증명까지 완벽한 아름다운 공식들의 의미는 여전히 어렵고 개념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현대 수학에서는 더더욱 몇백 쪽에 이르는 수학적 증명을 동료 심사관들이 이해할 수 없어 5년씩 심사관들과 학회지 그리고 편집자들의 거쳐 가까스로 논문이 되어 출판되면서도 이 증명이 옳은 것인지 편집부에서도 알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인쇄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한다. 증명을 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이미 존재하고, 이해를 할 수 있든 없든, 개념을 떠올릴 수 있든 없든 자연속에 존재한다고. 그것을 발견했다면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수를 신격화 했다던 피타고라스 학파들을 떠올려본다.무언가가 이미 거기에 있다면, 그리고 인간이 할 일은 그것을 발견하는 일 뿐이라면, 그런 고상한 생각들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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