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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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처에는 가해적 상처가 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원치 않은 상대 혹은 상태에 저항하다가 누군가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면 그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나 역시 피해를 입는다. 내가 의도했건 안했건 가해자가 되었을 때, 몹쓸만큼 엄청난 가해자가 되었을 때 그 누구에게도 온정을 바랄 수 없다는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세상의 유일한 정의일 지도 모른다. 이 때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벌주는 것이다. 이 방법 밖에 없다. 


가해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동안 가해자는 자기 피부 아래쪽 깊숙히 궤양이 생기도록 스스로를 향해 깊은 상처를 판다. 그 깊은 우물 속엔 자신 밖에 없다. 그 우물 속을 빠져 나올 구원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스스로 벌주기가 스스로를 파멸시켜 모든 가학적 행위가 피학적 행위와 같아졌다는 생각은 사랑이 다가왔을 때 나타난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빗속, 어둔 구름을 뚫고 한줄기 빛처럼 홀현히 나타난 사랑 그것은 유일한 구세주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구원은 영속성이 없다. 개별적인 인간은 그 인간을 규정짓는 망할 정체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인간이 자기가 지닌 개별적인 특성, 성격 때문에 마지막 구원을 남겨두고 다시 또 유사한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은 인간의 개별성을 규정한다. 


인간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는 걸까. 아니다.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같은 동굴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엔 선셋 파크의 주인없는 집을 무단으로 점거해서 살아가는 동료들이다. 함께 공유했던 건 빈곤 밖에 없는 줄 알았던 그들. 그들에 대한 정의감이 그를 다시 망가뜨렸지만,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닐 터이다. 그의 곁엔 가족이 있을 터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를 기다릴 터이다.


중요한 건 이거다. 가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가해자에게 깊이 깊이 공감하고, 흐느낌 같은 감정들이 들숨 날숨을 통해 폐를 통과하며 그 감정에 함께 머문다는 것은.. 나 역시 이 세상의 어떤 관계들 속에서 인식하고 있지 않던 어떤 작은 사건, 작은 상황들 속에서 가해자라는 것이다. 힘든 친구에게 따뜻하게 마음쓰지 못하는 것들, 아픈 부모님에게 자주 전화하지 않는 것들.. 수없이 많은 순간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가해의 행동을 한다는 걸 인식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피부 밑을 파내어 상처를 만들고 우물을 판다는 뜻일 터이다. 


우리도 어쩌면 선셋파크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주인 없이 스러져 가는 낡은 집에 내 빈곤한 정신과 궁색한 물건들을 채워 넣고, 공허한 하루가 더 공허한 내일이 되지 않기 위해 달그락 거리며 살아가는 곳. 그림자를 피해 작은 희망의 햇살조각 안에 앉아 있는 곳, 언제 경찰이 들이닥쳐 그동안 채워놓은 것들을 삶에서 밀쳐버릴 지 모를 그 허름한 선셋 파크의 주인없는 집에 무단 침입하여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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