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 1서〉 4장 16절


고골의 단편 <외투>를 읽다 보면 19세기 러시아에서 가난한 서민에게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맞설 외투 하나를 장만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고골보다 약 반세기 후대 문인이었던 톨스토이의 시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두 수선공 부부에게는 헤진 낡은 외투 조차 둘이서 하나를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옷이다. 모든 생활비가 먹는 데 다 들어간다면 어떻게 외투를 장만할 수 있겠는가. 요즘도 값비싼 브랜드의  최고급 재질 거위털 패딩이나 캐시미어 코트 같은 것들은 서민적 월급으로는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저렴하고 따뜻한 대안도 시장에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둘이 같이 번갈아 입던 코트 마저 더는 입을 수가 없게 될만큼 다 헤어져 버렸다. 벼르고 별러 2년을  모으고 또 모아 부인은 드디어  2 루블이라는 약간의 돈을 모았고 외상으로 받을 돈을 3루블을 받아 합치면 외투를 만들 수 있는 가죽을 구입할 수 있게 되어 남편에게 외상값 3루불을 받아 코트 만들 가죽을 사 오라고 내보낸다. 추운 겨울 구두공 세몬은 아내의 낡은 외투 속에는 아내의 누비옷을 끼어 입고 외상값을 받으러 다닌다.


생활고는 그에게 구두를 맞춘 농부들에게도 다르지 않아서, 가는 곳마다 구두값은 받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한다. 반면 외투 가죽상은 그에게 외상은 절대 안된단다. 겨우 수선비의 푼돈을 받아 술을 진땅 마시고 수선할 털신 한켤레를 덜렁덜렁 들고 돌아오다가 혹독한 추위에 발가벗은채 웅크리고 앉은 한 청년을 발견한다. 그냥갈까 도와줄까 고민하던 구두수선공은 외면하던 발길을 돌려 자신의 헤진 외투를 벗어 입히고 신발을 신겨 집으로 돌아온다. 당장 가족의 끼니인 빵조차 부족해 걱정을 하던 마트료냐는 새 외투를 만들 가죽은 커녕 헤진 외투까지 남에게 주고, 군입까지 달고 거나하게 취해 들어온 남편에게 잔뜩 화가나서 소리를 질러댄다. 그칠줄 모르던 잔소리는 청년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는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잦아들고, 이어서  가족이 먹을 빵과 차를 나누어주고 집에 머물게 한다. 


한 밤중에 벌거벗겨진 채 추운 거리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 청년의 정체는 무엇일까.  구두수선공도, 그의 아내도 사정을 물어보지만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고, 하느님의 벌을 받았다고 말할 뿐이다. 이름은 미하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집에 묵으며 구두 수선일을 배워 돕기 시작하는데, 구두 만드는 솜씨가 빼어나 가게는 날로 번창하고 멀리서까지 믿고 맡기려고 이 곳을 찾아오는지라, 살림은 나날이 


한 거만한 신사가 독일산 고급 가죽을 들고 나타나, 1년이 지나도 헤어지지 않도록 부츠를 지어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고소미를 시전하여 감옥에 넣을 것이라 협박하며 돌아간다. 세몬은 자칫 낭패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썰미도 정확하고 빠른 미하일에게 일을 시켰는데, 헐, 부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 놓지 않는가. 놀라 자빠지려고 하는데, 그 부츠를 부탁했던 신사의 하인이 나타나서는 자신들의 나리가 마차에서 갑자기 죽었다며 부츠는 필요없고,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미하일을 더없이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게 된 이들에게,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구두를 맞추는데 그 중 한 아이는 발을 절고, 미하일은 아이들을 마치 오래동안 알던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연을 알고 보니 이렇다. 6년 전 남편이 나무를 베다 깔려 죽은 후, 만삭으로 홀로된 아이들의 엄마가 홀로 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  그 아기 중 하나가 죽은 엄마에게 깔려 장애를 입었고, 자신도 8개월된 아이가 있었던 이웃이었던 이 여인이 젖을 셋에게 나누어 키우다가 자신의 아이는 2살때 죽고, 이 아이들을 입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천장을 향해 미소짓던 미하일은 이제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다고 알린다. 알고 보니 미하일은 대천사 미카일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죄를 지어 인간의 땅에 떨어졌고, 세 가지 진리를 깨달은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어서 가서 그 여인의 영혼을 거두어와라. 그러면 세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벌거벗은 채로 인간의 땅에 떨어진 대천사 미카엘은 쌍둥이들을 만난 후에야 하느님이 말씀하신 세 가지 진리 중 마지막까지 물음표 상태였던 남은 한 가지 진리를 깨닫고 이제 세 개의 해답지를 들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구두수선공과 아내를 만나면서 첫날 알게 되었고,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거만한 신사의 일화를 통해 알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 쌍둥이들을 길러온 여인에게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세 가지 진리는 무엇일까요? …. 는 아이들 독서토론 주제일 듯. 


농민의 교육에 힘써왔던 톨스토이는 농민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외>로 알려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누구나 복음서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러시아 민화를 각색한 것들이라고 작가해설은 전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9-04-28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혜심 <소비의 역사> 보니 옷도 중요한 유산 품목이더군요. 옷을 차등 분배하는 것에서 고인과 얼마나 각별했던가를 살펴 볼 수 있던^^; 패스트 패션 시대지만 이런 풍습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 이야기가 그저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요즘의 계급 차도 그에 버금가는 거 같아서겠죠.

CREBBP 2019-04-29 10:12   좋아요 0 | URL
한국에선 고인이 입던 옷은 약간 좀 뭔가 거림칙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나아졌지만 그래서 중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인이 무슨 병에 걸렸었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밍크 코트 같은 고가품은 또 사정이 달라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