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오스카 와일드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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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델센의 인어 공주가,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지느러미와 말을 포기하고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두 발을 얻었다면, 오스카의 동화에서 인어 공주를 사랑한 어부는 인어 공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영혼을 제거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어부와 그의 영혼> 이야기다. 동화적 순수함과 영혼의 의인화가 주는 기괴함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9개의 이야기가 모두 동화같은 이야기들이다. '같은' 이 아니라 이미 동화책으로 어릴 때 혹은 어린이들이 드글거리는 치과나 소아과 같은 곳의 대기실에서 흔하게 집어들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행복한 왕자>나 <저만 아는 거인> 를 여기 저기서 많이 본 듯 익숙했지만, 정독을 해보면 어린 아이들에게 단순한 교훈이나 흥미를 주려고 만들어낸 이야기라기 보다는 훨씬 풍부한 컨텐츠를 담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이나 배경의 묘사 등은 충분히 아름답고 우화적으로 쓰여 있지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비극적인 결말을 갖는다. 크게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과 <석류의 집> 두 파트로 나뉘는데, 각각 1888년도와 1891년도에 따로 출간된 동화집의 제목이다. 앞의 이야기들이 조금 더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직조된 것에 반해 뒤의 이야기들은 보다 더 진지한 이야기들로, 두 파트 모두 삶의 비참함과 탐욕의 대조, 허영과 욕망, 죄, 구원 같은 무겁고 진지한 문제들을 다루면서, 그 이야기의 이면에 숨은 작은 디테일들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의 해결불가능한 모순들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어부와 그의 영혼>이 특히 흥미로와 요약을 남긴다. 


우연히 인어를 낚아 올린 어부가 처음엔 그 인어를 풀어주는 댓가로 물고기들을 유인을 위해 노래를 부르도록 하였는데,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자신이 그 인어에게 빠져들고 만다. 그는 인어의 사랑을 얻고 싶어 구애하지만, 인어의 세계에는 영혼이 없으므로 영혼을 떠나보내야 구애가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영혼 따위, 볼 수도 없고 만질수도 없는 영혼을 떠나보내기로 결심한 어부는, 신부를 찾아가 영혼을 제거하는 방법을 묻지만, 신부는 노발대발하며, 영혼은 그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며, 인어야말로 버림받은 존재들이며, 선악도 분별하지 못하는 짐승에 불과하며, 그런 사악하고 타락한 것들과 함께하려는 자네 역시 타락한 존재라며 내쫓아버린다. 


실망한 어부는 상인을 찾아가 자신의 영혼을 팔겠다고 제안하지만, 이번에 상인은 그의 영혼이 닳아빠진 은화만큼의 가치도 없다고 차라리 그의 몸을 판다면 노예로 사겠다고 제안한다. 이번엔 마녀를 찾아가는데, 마녀는 젊고 아름다운 어부에 반해 자기랑 춤을 추면 영혼을 파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유혹하고, 드디어 영혼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알아낸다.


The shadow of the body is the body of the soul.


사람들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몸의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의 몸이란다. 바닷가에서 달을 등지고 서서 네 발에서 그림자를 잘라 버려. 몸의 그림자를 말이야. 그러고는 네 영혼에게 널 떠나라고 하면 돼.


그리하여 어부는 마녀에게서 받은 살모사 자루 달린 칼로 바닷가 모래밭에서 그의 영혼인, 영혼의 몸인, 그림자를 잘라낸다.  그의 영혼은 슬퍼하며, 어부에게 어부의 마음을 함께 달라고 부탁하지만, 만일 마음을 주어버린다면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며 거절한다. 영혼은 비정하고 두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달라며 재차 부탁하지만, 어부에게 마음은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이다.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적 사고에 익숙한 기독교적 사고관에서 정신을 다시 마음과 영혼으로 나눈다는 발상이 신기한데, 계속 이어지는 스토리를 보면, 오스카 와일드에게 영혼은 인간의 정신 중에서도 특정한 부분을 말하는 것 같다. 신부에게는 보석 같은 것, 하지만 상인에게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 사랑할 때에는 필요하지 않지만, 악과 선을 구분할 때는 필요한 것. 동물(인어)에게는 없지만 인간에게는 있는 것. 게다가 마음과 영혼의 관계 역시 석연치 않다.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영혼이 그의 마음도 달라고 하는 걸로 봐서, 마음은 몸에도 속할 수 있고 영혼에게도 속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이란 어떤 종교적인 믿음 혹은 윤리적인 잣대, 선과 악을 명령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몸을 떠난 그의 영혼은 해마다 바닷가에 찾아와서 그를 부른다. 홀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경험한 모험담을 들려주는데, 인어 공주와 바닷속 왕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어부에게, 그에게서 떨어져나간 영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유혹하는 상상도 못한 재물과 신기하고 기이한 모험과 세상 구경도 그에게는 별 관심사가 못되는데, 3년이 되던 해에, 하얀 발로 춤추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에, 자신의 인어 아내에게서는 없는 하얀 발에 대한 욕망이 생겨, 하루만 세상을 구경하고 오기로 동의하고 그의 영혼을 따라 나선다. 


어부가 뭍에서 나가 영혼의 손을 잡는 순간 그림자는 다시 어부에게 달라 붙으며, 소녀를 보여준다던 그의 영혼은 그를 이 도시 저도시로 데리고 다니며 절도와 폭력과 살인을 교사한다. 어찌된 일인지, 어부는 영혼이 시키는 대로 어린 아이를 때리라면 때리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을 죽여 금덩이를 훔쳐내라면 그렇게 한다. 어부는 일단 한 번 떼어낸 영혼을 다시 붙였다면 두번째로 떼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자신의 손을 동여매고 입을 막고 영혼의 지시에 저항하고 바닷가 앞에 서서 인어를 부르는데, 인어는 나타나지 않고... 부서지는 파도에 밀려온 하얀 거품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의 영혼의 타락은 어떤 의미일까. 어부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3년간 그의 영혼은 여러 도시를 전전하며 많은 경험을 한다. 이 부분은 다시 찬찬히 읽어야 해석이 가능할 것 같긴한데, 영혼의 타락은 그 도시에서 생긴일과 관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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