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진화하게 만들고, 지능이라는 저주를 내린 건 바로 우리야.



젤라즈니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지만 맨 처음 실린 작품은 ≪12월의 열쇠≫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딱 첫장을 펼치자마자 작품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다. 첫 장만 읽으면 작품이 내 취향과 맞는지 대략 알 수 있다. 과연 작품은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읽을수록 점점 더 흥미로와진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잉태되었지만 GMI 계약 옵션에 의거 한랭 행성종(얄료날 거주를 위해 개조된) Y7 고양이 형태로 개조된 쟈리 다크는 그에게 거처를 보증해주었던 이 우주 어느곴에서도 살아가기에 적합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축복으로 볼지 저주로 볼지는 당신을 자유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하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얄료냘 거주를 위한 한랭 행성종이니 고양이 형태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의 남발에 뭐야. 컬트적이고. 이 재치있고 천재적인 작가의 소설은 몇 쪽 읽기도 전에 푹 빠지고 말았다. 이런 신선한(SF에 일천한 내 기준에서) 작품을 만날 때마다 작가의 작품들은 속속 카트를 채운다. 이렇게 알쏭달쏭한 첫 문장은 실제로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의 프리퀄에 해당되고 마지막 문장은 쟈리 자크의 선택에 대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느 미래의 혹은 먼 과거의 사회. 우주 곳곳에 문명이 침투한 어느날 아이를 낳기로 한 쟈리의 부모는 출산 관리국의 조언에 따라 얄료날이라는 몹시 춥고 기압이 높은 행성에 알맞는 조건을 가진 고양이 형태로 아이의 형태를 차세대 후계자 DNA의 조합으로 결정한다. 유전자 조작이니 그런 말운 일언 방구도 없다.  뱃속에 털복숭이 고양이를  잉태하고 분만하거나 하는 자세한 설정들은 처음부터 빠져있다. 


행성의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만큼, 은하계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할만큼 과학 문명이 발달된 사회인데, 설마 뱃속으로 아이를 낳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람 모양의 아들을 낳지 않고 고양이 모양의 아들을 낳은 이유는 이렇다. 제너럴 광업 주식회사가 알료날이라는 행성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행성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자, 아예 행성에 적합한 모양으로 개조한 인간(DNA겠지만)을 만들어냈다.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50~60년대 시기로 사기꾼 멜서스 인구론이 잡아먹을 듯  활개를 치던 시대니까, 인구 통제국이라는 기관이 자연스레 등장하고,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는 인구 통제국과 딜을 한 모양이어서, 그런 고양이 아기를 낳으면 교육과 의료 직업 연금 그 모든 걸 책임져주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모양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도 자세히는 안나온다.  


영하 50도의 한냉 행성에서 거주할 변형 유전자 고양이 인간들을 대대적으로 뽑아 세계를 만들어놨는데, 그 알료날이라는 행성이 '신성폭발'로 사라져 버렸다.  졸지에 갈 데가 없어졌다. 직업과 교육 의료 등등 여러가지를 보증하는 계약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쟈크와 모든 고양이 형태들은 연금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아간다. 


다시 정리하면, 자원 굴착을 위해 행성을 하나 개척했는데, 너무 척박해서 살 생물이 없어 그 행성에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고양이 인간)로 개조시켜놨더니 행성이 폭발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고양이 형태들은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행성이 어느 곳에도 없음을 안다. 


제너럴 광물 주식회사와의 계약 조건에 따라 쟈리를 비롯한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답답한 기온 기압 조절 장치속에서 약물에 의존해 삶을 유지시킨다. 그들의 삶을 유지 가능하게 하는 온도는 영하 50도다. 그들은 외부로 나오지 못하고 감옥 같은 제어 장치 속에서 수당을 받으며 생활한다. 쟈리는 돈버는 재주를 가진 덕에 큰 돈을 벌어 자신들과 같은 종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행성을 구입하여 환경을 바꾸기로 결정한다. 


수만명의 고양이 형태들은 <12월클럽>이라는 공동체를 결성하고 이미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어떤 행성을 사들인다. 이 행성을 행성 개조 유닛을 통해 제2의 얄뇨날처럼 추운 곳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행성 개조 유닛이 풀 가동해도 행성이 영하 50도의 기온을 갖는 최적의 장소로 바뀌려면 3천년이 걸린다. 고양이 인간들은 사들인 행성 곳곳에 그 행성 개조 유닛을 세워두고 동굴에 들어가 냉동 수면 침대에서 잠을 잔다. 250년마다 3개월씩 당직을 서기 때문에 각자가 천 년당 1년씩의 개인적 시간을 투자한다. 


꿈도 없는 잠을 자고 깨어나면 3천년간의 시간의 변화는 3년으로로 압축된다. 하지만 자는 동안 행성은 행성 개조 유닛의 작동으로 끊임없이 변해간다. 쟈리는 약혼녀와 함께 2세기 반마다 깨어나 우주의 변화를 실감한다. 점점 추워지고 생명들은 멸종되거나 적응하기 위해 두터운 껍질을 두른다. 


당직을 서던 중 그들은 직립 보행하는 짐승들 중 하나가 자신들이 대들랜드라고 부르는 그 춥고 황량한 곳에까지 죽은 짐승을 가지고 오는 걸 목격한다. 쟈리는 수 세기마다 한번씩 당직을 위해 깨어날 때마다 그 생명체들이 점점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몸집이 커져 털을 진화시켰는 줄 알았는데 짐승의 털을 두르고 다닌 거였고, 이마가 생기더니 손바닥을 마주보는 엄지가 생긴다. 그리고 알게되는 사실 하나 이 고양이 형태들을 신으로 알고 제물을 바치고 숭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차피 3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인위적으로 환경을 그토록 바꾼다면 그곳에 서식하던 대다수의 생명체들은 예고된 멸종에 직면할 것이다. 적응에 성공한 소수의 돌연변이의 조합이 탄생시킨 새로운 종류의 소수의 생명만이 남게 된다. 그래도 상관 없다. 적응하는 생명체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윤기나는 털을 다듬으며, 그르렁거리던 답답한 공간 속에서 나와 마음껏 뛰어오를 제 2의 얄료날 행성을 가질 수만 있다면 다른 생명체 따위는 안중에 없다. 


딜레마는 그 생명체들이 지적 종족이라는 데 있다. 지적 종족이라면 무엇이 다를까. 그와 약혼녀는 한갓 짐승에 불과했던 두발 다리의 그들이 빠른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지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목격하고는 혼란스러워한다. 자신들의 행성 개조로 인해 이 지적 종족은 결국 멸종할 것이다. 


종의 멸종을 막으려면? 방법은 있다. 변화의 속도를 늦추어 종이 적응할 시간을 주는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7천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냉동인간처럼 쭉 내리 자는 게 아나라 1천년당 1년씩의 개인 시간을 당직에 써야 하기 때문에 7년을 더 소비해야 하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투표도 해야 한다. 그 적색형태라 이름붙인 지적 종족을 보호하고 싶은 사람은 쟈리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확고하다. 그는 그 지적 생명체들에게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이 분의 최고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이 아니라는 게 더 놀랍다. 작품집의 모든 소설이 가장 창작의욕이 왕성했던 초기작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도 아껴 아껴 읽어야겠다. 테드 창의 소설들이 생각났는데 테드창 읽을 때는 먼가 유식하고 철학적인 소리들을 해대서 못알아먹는 게 많았는데(못알아먹어도 재밌게 못알아먹게 만드는 이상한 테드창) 이 책은 보다 유머러스하다. 



너무 감동스럽게 재밌어서 뒤에 가서 작품설명 읽었는데 더 모르겠더라는 뭐 신화적 원형에 뿌리를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은 소설을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데 엄청 어렵게 설명되어 있다.  암튼 과학 소설이란게 장르적 구분 같은 걸로 쓸모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듯한 느낌. 그냥 읽으면 인간과 신의 그 태초의 관계적 탄생을 우화적으로 재탄생시키는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고양이 토템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나무니 곰이니 하는 토템의 뿌리를 이런 식으로 상상할수 있는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 새로운 소재 정말 좋다. 



지적 생명으로 나가는 진화의 시작점에 빙하기라는 극단의 추위가 압력으로 작용하고,  생물(유전)학적 메카니즘을 통해 그 극단적 추위에 적응하는 동안 , 진화된 인간의 정신은 신을 창조하고 숭배함으로써 결국 그 환경의 극적 변화에 제동을 거는 제법 개연성이 있는 상상을 신화의 탄생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SF 명예의전당 2편에 맨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토록 많은 책이 출간되었다가 절판되었다. 파는 책보다 안파는 책이 더 많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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