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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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랑, 추억이 명반의 음악과 함께.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다보면 사람들의 눈이 늘 손바닥만한 네모기계에 매여있다. 나 또한 그 기계에 눈을 못 뗄 때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간혹 누군가의 손에 들려진 책을 볼 때면 눈을 반짝이며 언뜻 보여지는 표지나 글귀에 작가나 어떤 작품인지 유추하곤 한다. 나름의 안테나가 반짝반짝하며 관심사를 이어나가지만, 상대적으로 무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영화나 드라마 OST혹은 당대 유행했던 음악 이외에 새롭게 명반을 찾아 듣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음악에 대해 남다른 조예도 없고, 날씨나 상황에 따라 흥얼흥얼 거리며 나오는 음악 또한 좁디 좁다. 그렇기에 음악 에세이를 읽을 테면 마치 여행서적을 읽듯 나름의 벽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저 개인적인 이야기에 비추어 소개되는 음악이기에 관심사가 좁은데,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그 보다 더 글이 좋고, 그가 자신의 경험담에 비추어 소개해주는 허풍담이나 추억 속 이야기가 쩍쩍 달라붙는 듯 문장들이 좋아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저 본인의 추억과 무미건조한 일상의 이야기겠거니 싶은 그의 웃기고 슬픈, 조금은 심심한 이야기들이 마음속에 삼삼하게 들어온다. 대부분의 음악들이 쩍쩍 달라 붙지 않지만 그 중에 빅뱅의 '루저'는 자주 듣는 곡이기에 친숙했고,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는 어떤 곡인지 궁금하여 유튜브를 통해 들어보았다. 처음 듣는 곡이라 생소했고, 롤링 스톤스의 'Paint It Black'의 뮤비는 오래된 손때가 묻는 앨범을 보는 것 마냥 선명한 색감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음악을 비롯해 많은 예술 작품들은 시공간을 떠나 언제 듣고, 보고, 읽어도 세월의 주름이 지지 않는 것 같다. 새삼 그의 선곡들을 찾아 들으며 시간의 흐름을 잊고, 당시에 발매된 음악을 들으며 그 시대의 음악을 느끼게 된다. 추억은 박상의 개인의 것이지만 음악은 너도 나도 듣고 추억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문장에 반하게 되고,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그들의 또다른 음악을 찾게 된다. 관심있는 분야가 다를 뿐 책을 읽고, 또 다른 책을 읽는 여행이 계속 되는 것처럼 박상 본격 뮤직 에세이는 그런 음악적인 오감을 찾아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때로는 그의 허풍에 피식- 웃게 되기도 하고, 만화처럼 그려진 일러스트에 큭하게 되는 김빠진 사이다 같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솔직히 음악에 대한 에세이는 비슷비슷하겠지, 라는 무의식적인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여느 에세이와는 다른 글의 단단함이 좋아 읽는 내내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그 이외에도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더불어 그의 지나간 추억담과 여행기가 적절하게 담겨져 있어 오랜만에 편안하게 읽고 즐겼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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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엔 초청하지 않은 울적한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오고 뭔가를 잘못 선택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는 대신 <Get Lucky>를 듣는다. 이 신나는 곡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머리를 까딱거릴 때마다 마치 이비사 섬의 클럽에서 일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한 사람들과 같은 기분이 되고, 이비사 바다의 투명한 물속에서 훤히 보이는 물고기들 사이를 유유자적 수영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 p.18~19


<Paint It Black>은 아시다시피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 바보 같은 전쟁에 대해 시적 상징을 가진 자책의 노랫말을 외친 전설의 명곡이다. - p.86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음을 깨달았다. 음악은 마을 열고 들을 때 비로소 빛나는 보석인 것이다. 음악이 비즈니스가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것이다. 달랏의 음악을 잠시 촌스럽게 생각한 내 편협한 감각이 몹시 부끄러웠다. - p.89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을 흔들다 보니 내 삶을 짓누르던 궁상, 공포, 불안 다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도 떠올랐다. 공들였던 광산의 철탑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며 "양고기가 타버리겠어"라고 말했던 여유만만 조르바. 망해 나가는 와중에 춤을 추며 처절함을 극복하려 한 그리스인 조르바. <맘마미아>의 극본을 쓴 캐서린 존슨이 왜 그리스를 배경으로 삼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음악과 춤을 통한 위대한 극복. 그것이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 메세지가 아니었던가.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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