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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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져 있는 요코하마 히데오의 데뷔작.


경찰소설을 좋아한다. 아마도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2009, 비채)를 읽고 나서 경찰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다른 경찰소설이 무엇이 있나 싶어 검색하다보면 늘, 사사키 조와 함께 거론되는 작가가 요코마야 히데오였다. 출간된 많은 작품들이 작품성과 사회파 미스터리를 충족시키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의 데뷔작으로 먼저 그의 진가를 느끼게 되었다.


<루팡의 소식>은 요코하마의 데뷔작이자 지금은 없어진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대상 가작 수상작이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인 요코하마 히데오의 첫발걸음인 이 책은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작품으로, 중견 작가가 썼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인으로서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 한 편의 책은 세 친구들이 어렸을 때 치기로 학교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일명, 루팡 작전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어차피 인간 따윈 말이지······."

다치바나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말로 제대로 듣지 않으면 믿을 수 없어. 자기 귀로 들은 것밖에 믿지 않아. 내 말이 틀리냐?" -p.212


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앞두고 카페 루팡에서 세 아이들은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해 모의를 한다. 교장실에 있는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한 모험을 하는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다치바나를 시작으로 시험지를 훔친다. 그러나 그들이 늦은밤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해 학교에서 숨어 있던 중 평소 글레머러스하고 섹시하다는 평을 들었던 여교사가 시신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 이후 여교사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을 맺고, 15년 후 사건의 시효가 딱 하루 남았을 때 경시청에 한 통의 제보가 날아든다. 15년이 지난 고교생의 아이들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거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기타와 영업을 하고 있는 다쓰미, 노숙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다치바나를 연행해 각각 그날을 복기하며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음에는 치기어린 아이들의 장난같은 사건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됨으로서 이야기의 폭들이 서서히 조여온다. 계속해서 사건이 진행 될 수록 각각의 인물들이 갖는 딜레마와 그들이 갖는 이야기이 하나 둘 쌓이면서 이야기는 예상한 라인을 벗어나 또다른 이야기로 튀어가 버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는 세 악동의 청춘소설이었으나 이내 미스테리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버리더니 다시 사랑이야기가 되어 버리다가 학교와 선생님, 학생이 연결되어 버리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서 변모한다.


아니, 잊어버린 것은 소마나 사치코만은 아니었다. 도도하고 건방졌던, 하지만 스스로는 반짝반짝 빛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교시절의 많은 일조차, 하나씩 하나씩 색깔도 모양도 없어져서, 의식이 닿지 않는 마음속 깊이 흐리멍덩하게 짐전되어 버렸다. - p.454


세 명의 아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인물 뿐 아니라 잠시 나왔던 인물까지도 헛투루 버리지 않는 치밀한 계산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교장실 금고의 이중, 삼중 금고보다 더 치밀하면서도 가슴뭉클한 사연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하나의 경찰소설로서 읽히기도 하고, 청춘소설, 사랑이야기, 성장소설,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히는 여러 변주는 한 신인이 내놓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하나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놓은 삼억 엔 탈취 사건과 여교사의 추락사건, 매일 밤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순찰했던 수상한 화학선생님의 과거 까지고 모두 까발려진 희대의 사건이 물밀듯 이어져 내려온다.

무엇보다 단 하루 밖에 남지 않는 긴박한 공소시효의 시간이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면서 사건을 느끼다 보니 더 사건에 몰입하게 되었다. 거장의 시작점은 그 무엇하나 빠트릴 것 없이 안정적인 발걸음으로 신호탄을 쏘았을 정도로 재미와 이야기, 감동이 겸비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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